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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자료 목록

廣瀬三郎筆供

히로세 사부로 공술서
  • 수신자
    일본전범심판 션양특별군사법정[瀋陽審判日本戰犯特別軍事法庭]
  • 작성자
    푸순전범관리소[撫順戰犯管理所]
  • 날짜
    1954년 8월 14일
  • 위치
  • 지역
    중국 산둥성 지난[山東省 濟南]
  • 주제
    관리감독/동원
해제
히로세 사부로, 1903년 도쿄 출생. 일본군 제59사단 고급부관. 1944년 4월 중순 제12군 부관으로부터 지난[濟南] 소재 군 후방시설 중에서 군인회관(軍人會館), 호시클럽[星倶樂部], 요정 ‘사쿠라’[料亭「櫻」], 계행사 요리부(偕行社料理部) 및 군 주보(軍酒保)의 감독 업무를 이어받음.
(1) 호시클럽은 일본군 장교와 병사 전용 ‘위안소’임. 군이 지난 중국기관조합장(中國妓館組合長)에게 경영을 위탁함. 일본군이 건물을 마련하고, 종업원의 식량, 일용품 등도 저가로 공급함. 의료도 일본군이 부담함. 기녀는 17~20세의 중국인 여성 약 30명임. 와타나베 진술에 따르면 군 부관이 직접 관리 경영했던 ‘위안소’(중국인 ‘위안부’)가 1944년 4월에는 중국인 ‘유곽’조합장에게 “위탁”하는 방식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임. 일본군이 중국 점령지역의 장악 상태에 따라 ‘위안소’ 통제에 대한 관여 방식을 바꾸기도 함. 지난의 호시클럽은 군이 직접 관리 통제하는 방식에서 중국인 조합장에게 위안소 경영을 맡기고 있음.
(2) 군인회관은 일본군 장병(주로 하사관 병)을 위해서 영화관람, 식사·음주, 이발, 입욕, 오락, 일용품 등의 구입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하였음.
(3) 조선인 ‘위안부’를 최전선으로 이동시킴: 1944년 6월경, 기녀를 보내달라는 제12군의 요청에 따라 조선인 기녀 약 30명을 최전선인 정저우[鄭州]로 약 3개월간 파견함.
지난 지역에 설치된 ‘위안소’ 및 군 ‘위안시설’의 실태와 시기별 군의 통제관리 방식의 추이를 알 수 있음.
DB주석 ) 비고
2015년 중국 국가당안국(國家檔案局)에서 발표한 〈‘위안부’-일본군성노예당안선(“慰安婦”-日軍性奴隸檔案選)〉 제6집 중국 사법기관의 중일전쟁 일본전범 심문 문서에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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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고
    2015년 중국 국가당안국(國家檔案局)에서 발표한 〈‘위안부’-일본군성노예당안선(“慰安婦”-日軍性奴隸檔案選)〉 제6집 중국 사법기관의 중일전쟁 일본전범 심문 문서에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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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瀬三郎筆供 자료번호 : iswc.d_0003_008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