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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목소리들

사도금산 기록으로 밝힌 강제노동

겉으로는 “환대”, 속으로는 엄격한 “훈육”

‘줄 때는 주고 고삐를 조일 때는 조인다’, ‘근무 상황이나 품행이 불량한 자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중한 태도로 임하라’, 이것이 사도광산이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내지화(內地化) 즉 진정한 일본인화를 목적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지도한다면서 훈련 태도가 나쁘면 금강숙金剛塾에 수용해 ‘특별 훈육’을 시켰는데, 여기서 ‘훈육’이란 폭력적 수단을 포함한 노동통제를 의미합니다.
「반도인 노무자에 관한 조사보고 – 사도광산」 (1940)
불량노무자에 대한 취급
불량노무자는 일상적으로 사찰을 엄격하게 함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경찰과 긴밀히 연락하며 엄중 설교 훈계하여 지도하고 있으나 악질적인 자에 대해서는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 교활, 부화뇌동하기 때문에 일상 공사(公私) 생활에 관해 이른바 ‘고삐’를 늦추지 않는 관리를 필요로 한다.
반도인은 어떤 작업에 적합한지에 대한 감상
원래 성질이 둔하여 기능적 재능이 지극히 낮으며 또한 연구심이 없으므로 힘쓰는 작업을 주로 하는 갱내 운반부 등의 업무에 적합하며 그 중 특히 우수한 자만 충분히 훈련 지도하여 기능공으로 사용하도록 노력중이다.
일본광산협회 『일본광산협회자료』 제78집 1940. 12 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
 
 

가족도 불러들이고 기간 연장도 꾀하라

집단 동원된 한국인들 가운데 도망자가 계속 발생하자 가족을 불러들여 광산 생활에 안착시키려고 했습니다. 또한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국가적 필요성’을 이해시켜 ‘어찌되었든 전원 계속 취업시킬 것’을 기본 방침으로 세웠습니다. 기간을 연장하면 장려금을 주겠다는 수법도 썼습니다.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의 3분의 2가 현장에 남기를 강요받았습니다.
「사도광업소 - 반도 노무관리에 대하여」 (1943)

계약 기간 갱신의 유효한 방책

정착 지도에 관한 현재 방침은 기간 만료자에게 미리 정착자 취로 지도회를 개최하여 각자의 시국 인식을 깊이 하여 정착 취로의 국가적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시켜 어쨌든 전원 계속 취로하도록 한다(반도인 특유의 부화뇌동성이 있으니 그에 알맞게). 이후 각자 조선 현지의 가족 상황이나 질병 때문에 귀국 또는 일시 귀국이 불가피한 자는 조선 현지 관청과 경찰서와 논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송환하는 것으로 한다.
또한 기간 연장 절차를 완료한 자에 대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각 개인에게 표창장과 장려금을 수여하여 기간 연장을 장려하였고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보인다.

출처 : 나가사와 시게루(長澤秀) 편 『전시하 조선인 중국인 엽합군 포로 강제연행 자료집Ⅱ』 1992  
 

노무관리자가 기록한 강제노동

사도광산 노무담당자 「스기모토 소지의 수기」 1974

“근무 상태가 나쁜 노동자를 탄압하고 근로과에 끌고 와서 때리는데 차마 보고 있기 힘든 폭력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탄압에 의한 노동과 식사에 대한 불만으로 그들은 먼저 내지로 와있던 지인 선배를 찾아가 자유노동자가 되기 위해 잇따라 도망쳐 한 때는 10여 명 단체로 료쓰(両津)와 와시자키(鷲崎) 등지에서 작은 배로 도주한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근로과에서는 료쓰 오기(小木) 등 선착장에 망루를 두고 경계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강제노동을 당하고 1년 근무기간이 몇 년으로 연장되면서 절반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출처 :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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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금산 기록으로 밝힌 강제노동 자료번호 : isfv.d_0004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