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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목소리들

죽거나 도망치거나

창씨명으로 남은 한국인 사망자의 이름

전시 노무통제 조직이었던 대일본산업보국회가 작성한 「순직산업인명부」에는 한국인 7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에 기록된 ‘순직자’는 1941년부터 1942년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입니다. 피해자 김주환은 갱 안에서 미끄러져 추락해 머리뼈 골절로 사망했습니다. 충남 부여 출신의 스가와라 요시오(菅原啓夫)도 그때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 본명은 알지 못합니다.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인 채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에 제출한 강제동원 피해신고서에서도 사망자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중상을 입고 해고되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피해자도 있습니다. 귀국 후 진폐증으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망한 한국인도 많습니다.
 
「순직산업인명부」에 수록된 사도광산 한국인 사망자(1941~1942년)
창씨명으로 남은 한국인 사망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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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한 탈출, 도망이라는 저항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전쟁을 확대한 1941년 12월, 「노무조정령」이 공포되었습니다. 「노무조정령」으로 지정한 사업장에서 도주하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사도광산에 동원된 한국인도 식량사정이 나쁘고 임금도 낮았지만, 이직이나 퇴직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고, 도망친 한국인은 전국에 지명수배되었습니다.
사도광산의 한 노무 담당자는 폭력에 의한 노동 강요와 기간 연장이 있었고 그에 대한 저항으로 도주가 계속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동원된 한국인은 처벌의 위협 아래 자신의 의사에 반한 노동, 즉 강제노동을 강요받았던 것입니다.
 
'집단 이주' 한국인 노동자 탈출 수배자 명단

함연태(咸然泰)[伊原吉一] 24세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
키 5척 4촌[164cm] 정도, 흰 피부, 길쭉한 얼굴, 가르마 머리, 언뜻 보기에 내지인 느낌, 감색 점퍼 검정바지 또는 상하 갈색 양복

조옥동(趙玉同)[月山玉同] 30세
충남 논산군 광석면 사월리
키 5척 4촌[164cm] 정도, 까무잡잡한 피부, 짙은 눈썹, 삭발, 양복, 갈색 셔츠, 고무화

윤성병(尹晟炳)25세
충남 논산군 광석면 사월리
키 5척 5촌[165cm] 정도, 둥근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 큰 눈, 긴 머리, 살찐 몸, 감색 점퍼, 검정바지, 작업화, 모자 없음

이화실(李化實)[高本政元] 27세
충남 부여군 양화면 입포 85번지
키 5척 5촌[165cm] 정도, 까무잡잡한 피부, 둥근 얼굴, 긴 가르마 앞머리, 체격 양호, 연한 청색 점퍼, 연 흑색 바지 또는 상하 감색 양복

가라후토청(樺太庁) 「경찰공보」 551호, 1941. 12. 15
(출처: 나가사와 시게루 편 『전전 조선인 관계 경찰자료집-가라후토청 경찰부 문서Ⅲ(戦前朝鮮人関係警察資料集 樺太庁警察部文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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