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산업유산과 강제노동
람멜스베르크 광산
독일 최초의 산업유산인 람멜스베르크 광산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000년이 넘는 채광역사를 보유한 광산입니다. 등재 당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람멜스베르크 광산에서는 400~500여 명에 달하는 동유럽 점령지 출신 외국인(대부분 우크라이나, 폴란드 출신)과 서유럽 출신 전쟁포로(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등재 이후 람멜스베르크 박물관은 전시 강제노동에 대해 인정하고 자세하고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1999년 나치 강제노동 연구 전문가에게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해 구성한 것이 지금의 전시 내용입니다. 박물관은 람멜스베르크 광산의 강제노동 규모가 졸버레인 탄광 등에 비하면 적지만,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강제 노동이 있었던 나치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피해자의 생생한 얼굴과 목소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메인 전시구역 층별 안내도(손가락 표시구간 : 강제노동 관련 전시구간)

강제노동 희생자 묘지(115명)와 구역 배치도
- 유산명칭
- 람멜스베르크 광산과 고슬라 옛 시가지 및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
- 등재
- 1992
- 위치
- 독일 고슬라르
- 출처
- 유네스코 세계유산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독일 루르탄전에 있는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유산군은 독일 중공업화 150여 년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 졸버레인 탄광은 전쟁 당시 폴란드, 프랑스 등에서 동원된 사람들과 전쟁포로가 강제노동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졸버레인은 루르공업지대가 무기 생산의 중심지로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뒷받침했으며, 유대인과 외국인, 전쟁포로가 강제노동을 당한 현장이라는 것을 박물관 전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루르박물관 역시 상설전시에서 산업의 발전과 부작용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200년간 에센 지역의 번영과 발전, 삶의 질과 교육의 발전과 동시에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시기였던 세계대전과 유럽 유대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루르박물관

“파괴와 재건(1914~1947)” 주제에 소개된 “전쟁과 폭력” 전시패널
- 유산명칭
-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 등재
- 2001
- 위치
- 독일 노드라인 베스트팔렌 주
- 출처
- 유네스코 세계유산
푈클링겐 제철소
푈클링겐 제철소의 상설전시에는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을 별도의 심화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곳의 강제노동자들을 조사하여 이름과 함께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에는 세계적인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푈클링겐 제철소의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는 특별한 기억의 장소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푈클링겐 제철소 박물관

강제노동을 자세하게 설명한 전시패널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국”의 시민들이 자르 지역의 산업에서 강제노동자로 일했다. 여기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출신 전쟁포로들과 벨기에, 이탈리아에서 온 남녀 공무원이 포함되었다. 푈클링겐의 경우 강제노동자가 총 1,400명 정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강제노동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질적, 양적으로 달랐고 뢰흘링 작업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괴벨스가 “총력전” 상태를 선포했을 때 나치 지배 아래 강제노동은 극한의 최정점에 달하였다. 소련에서 국외로 이송된 강제노동자들의 중요한 기착지는 우크라이나였다. 강제로 연행된 사람들이 독일에 도착하면 바로 신분증명서를 빼앗겼다. 그런 다음 이들은 “동부에서 온 노동자”를 뜻하는 “OST”라는 표찰을 달아야만했고 수용소에 구금된 채로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2,000명이상의 남성과 여성들이 푈클링겐 제철소에서 일하였다. 이들 강제노동자들 가운데 250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다.
- 유산명칭
- 푈클링겐 제철소
- 등재
- 1994
- 위치
- 독일 자를란트 주
- 출처
- 유네스코 세계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