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업유산과 시민의 기억 계승
강제동원 역사의 기억과 계승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군포로 피해자들이 일본 각지의 탄광, 광산, 항만과 군수공장에 강제동원 되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런 희생자를 추모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일본 시민들은 추모비와 안내판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규슈, 야마구치 등 산업유산 주변 곳곳에서 시민들이 세운 추도비를 볼 수 있습니다.
① 무궁화당


2000년 일본 이즈카시(飯塚市) 쇼지(庄司)의 이즈카영원(飯塚靈園)에 세워졌다. ‘재일 지쿠호 코리아 강제연행 희생자 납골식 추도비 건립 실행위원회’가 해방 이후 방치되었던 유골을 수집하고 무궁화당을 건립했다. 유골 중에 일부는 미쓰비시 나마즈타鯰田탄광, 일본제철 후타세탄광, 히사쓰네(久恒)탄광에 동원되었던 한국인이 밝혀졌다.
②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

1998년 다가와시(田川市) 이타(伊田)에 있는 미쓰이 다가와탄광 터, 석탄기념공원에 세워졌다. 비문에는 강제동원·강제노동으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적혀있다. 한편 강제노동 중 희생된 중국인을 추모하는 ‘진혼비’도 2002년에 건립되었다.
③ 마와타리기념비


1997년 한국인 강제동원을 기억하기 위해 미이케탄광 한국인 수용소 터에 만들어진 오무타시 마와타리공원에 ‘마와타리기념비(馬渡記念碑)’가 건립되었다. 오무타시 아마기공원에도 ‘징용희생자위령비’가 있다. 오무타 시민들은 일본어와 한국어로 탄광의 역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배울 수 있는 가이드북을 만들어 한일 시민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④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1995년 일본의 전쟁책임과 가해의 역사를 고발하는데 평생을 바친 고 오카 마사하루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나가사키 시민들이 뜻을 모아 설립하였다. 관의 지원은 받지 않고 순수한 시민의 힘만으로 운영되며 조선인과 중국인의 원폭피해, 강제 노동의 실상 등을 알리고 있다.
⑤나가사키 평화공원

나가사키 평화공원은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와 그 주변인 나가사키 형무소 우라카미형무지소 유적지에 세워진 공원이다. 이곳에는 1979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건립한 조선인피폭자 추도비와 1981년 세워진 외국인전쟁희생자추도비(핵폐기인류부전의 비) 그리고 2008년 만들어진 중국인원폭희생자추도비가 있다.
⑥모든 희생자 이름을 새긴 추모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조세이 탄광 희생자 추도비(2015.3. 촬영)
2013년 일본 시민단체가 야마구치현 우베(宇部)시 니시키와(西岐波) 해변 근처에 추모비를 세웠다. 1942년 2월 3일 조세이(長生)탄광에서 발생한 수몰사고로 인해 갱도에 갇혀 목숨을 잃은 183명의 희생자를 추도하기 위함입니다. 희생자 중 한국인은 무려 136명에 달합니다.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등재 논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인과 다른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against their will” “강제로 노역하게 된 forced to work”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이 ‘강제노동’을 인정했다고 해석한 반면,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띄었으나 징용령에 의한 동원은 불법은 아니라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인, 중국인의 전시 강제노동이 강제노동금지협약 29호 위반이라는 사실을 들어 일본 정부에 문제해결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계속 침묵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건립했지만, 실제 권고했던 내용인 전체 역사를 반영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부분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