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하 할아버지, 오사카에서 독도를 외치다
‘일본어로 된 독도 홍보 책자를 보내주세요’
2013년 3월,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내온 편지 한 통.
‘독도 홍보 책자를 200권 더 보내주세요’
‘독도 홍보 책자 300권 더 부탁합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편지가 이어졌는데요.
편지를 쓴 주인공은 바로 일본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윤영하 할아버지.
일제강점기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난 윤영하 할아버지는 광복 직후인 1949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2005년 어느 날, 신문을 보던 할아버지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시마네현 의회
2월 22일을 죽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점거‘ 하고 있다는 내용의 우익 성향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증손자들이 이런 내용을 교육받는다고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했다는데요.
‘나라도 뭘 해야겠다’
독도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할아버지는 밤낮없이 독도에 관한 공부를 한 끝에 독도 관련 핵심 주장을 6개로 정리했는데요. 바로 독도의 진실 6개항입니다.
2013년 3월,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내온 편지 한 통.
‘독도 홍보 책자를 200권 더 보내주세요’
‘독도 홍보 책자 300권 더 부탁합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편지가 이어졌는데요.
편지를 쓴 주인공은 바로 일본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 윤영하 할아버지.
일제강점기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난 윤영하 할아버지는 광복 직후인 1949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2005년 어느 날, 신문을 보던 할아버지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시마네현 의회
2월 22일을 죽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점거‘ 하고 있다는 내용의 우익 성향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증손자들이 이런 내용을 교육받는다고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했다는데요.
‘나라도 뭘 해야겠다’
독도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할아버지는 밤낮없이 독도에 관한 공부를 한 끝에 독도 관련 핵심 주장을 6개로 정리했는데요. 바로 독도의 진실 6개항입니다.
독도=죽도 진실의 역사를 알자
1.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령이 아님을 확인하고 도해금지령을 내리고 ’죽도일건‘을 해결하였다.
2. 1877년(메이지 10년) 지적 편찬 때, 태정관이 죽도 외 일도는 일본령이 아니라고 지령을 내려 결정하였다.
3. 1900년 10월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칙령 41호를 제정, 군수를 임명하여 독도를 관할토록 하였다.
4. 1905년 2월 22일 카쓰라 내각은 독도=’죽도‘는 주인 없는 섬이라 하여 시마네현에 편입, 러시아 함대 감시기지로 사용하였다.
5. 1946년 1월 GHQ는 카이로 선언을 이행하고 독도=’죽도‘를 일본에서 제외, 그 후 한국 어민은 자유롭게 왕래, 어업을 하고 있다.
6. 2005년 3월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조례로 ‘죽도의 날’을 제정, 한국이 무력으로 탈취했다고 그럴듯하게 위의 역사를 은폐·왜곡하고, 100년 전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거듭 탈환하자고 말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일본 언론에 반박 기고문도 쓰고 광고도 내려 노력했지만,
일본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실마저 올바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의 거리로 나오게 됩니다.
자신을 무명의 재일교포 노인이라 소개한 할아버지는 ‘죽도의 날’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잘못된 정보를 접할 때마다 신문사로, 방송사로 항의서한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의 편지는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령이 아님을 확인하고 도해금지령을 내리고 ’죽도일건‘을 해결하였다.
2. 1877년(메이지 10년) 지적 편찬 때, 태정관이 죽도 외 일도는 일본령이 아니라고 지령을 내려 결정하였다.
3. 1900년 10월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칙령 41호를 제정, 군수를 임명하여 독도를 관할토록 하였다.
4. 1905년 2월 22일 카쓰라 내각은 독도=’죽도‘는 주인 없는 섬이라 하여 시마네현에 편입, 러시아 함대 감시기지로 사용하였다.
5. 1946년 1월 GHQ는 카이로 선언을 이행하고 독도=’죽도‘를 일본에서 제외, 그 후 한국 어민은 자유롭게 왕래, 어업을 하고 있다.
6. 2005년 3월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조례로 ‘죽도의 날’을 제정, 한국이 무력으로 탈취했다고 그럴듯하게 위의 역사를 은폐·왜곡하고, 100년 전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거듭 탈환하자고 말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일본 언론에 반박 기고문도 쓰고 광고도 내려 노력했지만,
일본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실마저 올바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할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의 거리로 나오게 됩니다.
자신을 무명의 재일교포 노인이라 소개한 할아버지는 ‘죽도의 날’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잘못된 정보를 접할 때마다 신문사로, 방송사로 항의서한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의 편지는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오래된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에 독도의 진실을 알리는 옥외 홍보 간판을 세우고 독도 역사 자료실을 만드는 것이었죠.
할아버지는 꿈의 실현을 위해 93세의 나이에 한국행을 선택합니다.
서울역과 동대구역에서 활동을 홍보하며 모금에 나선 것인데요.
사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애에 그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도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죠.
바로 일본에 독도의 진실을 알리는 옥외 홍보 간판을 세우고 독도 역사 자료실을 만드는 것이었죠.
할아버지는 꿈의 실현을 위해 93세의 나이에 한국행을 선택합니다.
서울역과 동대구역에서 활동을 홍보하며 모금에 나선 것인데요.
사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애에 그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도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죠.
2019년 한국에서 제7회 독도평화대상이 열렸습니다.
〈동도상〉의 주인공은 바로 윤영하 할아버지.
몸이 불편하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수상 소감문을 대신 전했는데요.
한국 국적을 가진 민단이 더욱 앞서서 독도 역사를 공부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일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의무가 아닐까요.
2020년 4월. 윤영하 할아버지는 독도평화대상 상금 중 일부로 일본 잡지에 독도 광고를 게재하셨는데요. 이 광고를 끝으로 할아버지의 뜨거웠던 활동이 마무리됐습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후손들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배운다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 고 윤영하 (1926~2020)
〈동도상〉의 주인공은 바로 윤영하 할아버지.
몸이 불편하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수상 소감문을 대신 전했는데요.
한국 국적을 가진 민단이 더욱 앞서서 독도 역사를 공부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일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의무가 아닐까요.
2020년 4월. 윤영하 할아버지는 독도평화대상 상금 중 일부로 일본 잡지에 독도 광고를 게재하셨는데요. 이 광고를 끝으로 할아버지의 뜨거웠던 활동이 마무리됐습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후손들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배운다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 고 윤영하 (1926~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