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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6장 건축유적

  • 저필자
    최종택(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6장 건축유적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성곽과 궁궐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즐겨 궁실을 지으며, 거처하는 곳 좌우에 큰 집을 지어 귀신과 영성·사직에 제사한다”주 033
각주 033)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 고구려, “好治宮室 於所居之左右立大屋 祭鬼神又祀靈星社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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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으며, 『구당서』 고려전에는 “산과 골짜기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는데 모두 띠로 지붕을 엮었으며, 오직 사원·신묘·왕궁 및 관청에만 기와를 사용하였다”주 034
각주 034)
『구당서』 권199상 동이 고려, “其所居必依山谷 皆以茅草葺舍 唯佛寺神廟及王宮官府內用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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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다. 이로 보아 고구려 사람들은 궁실을 잘 지었으며, 중요한 건축 부재의 하나인 기와의 사용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던 것 등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건물로 현재 실물이 남아 전하는 것은 없으나, 발굴된 유적과 고분벽화 등을 통해 그 내용의 일단을 알 수 있다. 고분벽화에는 성곽과 전각 및 건물의 구조를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이를 통해서 고구려 건축의 구조에 대해 알 수 있으나 고구려 건축유적에 대한 조사 및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고구려의 건축은 기거하는 주체에 따라 궁궐과 관청, 사묘, 사찰, 귀족저택 및 일반 주택 등의 사저, 군사들의 막사 등 다양하였으며, 거주 주체의 신분에 따라 규모와 형태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건축유적에 대한 조사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대 일본인 연구자들은 만주 일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면서 집안(輯安) 동대자(東台子) 및 이수원자남(梨樹園子南) 유적 등을 확인하였다. 1935년에는 평양성 내성 지역 만수대에서 건물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38년에는 평양의 청암리사지를 발굴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상오리사지와 원오리사지 등도 조사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중국과 북한에서 고구려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집중하였으나 고분과 성곽에 대한 조사가 주를 이루었으며, 건축유적에 대한 조사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중국에서는 1957년 동대자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건축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주요 건축유적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2000년대 초반 환인(桓仁) 오녀산성과 집안 국내성 및 환도산성, 민주유적 등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고구려 건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 지역에서는 1959년과 1960년 압록강 및 독로강 유역 댐 건설로 대규모 구제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로남리유적 등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어서 1970년대에는 정권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며 평양의 대성산성과 안학궁성, 정릉사지 등 건축유적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자세한 내용이 보고되었다(그림1).
그림1 | 안학궁성 및 정릉사지 발굴조사 광경(조선중앙력사박물관 전시 사진, 최종택 촬영)
1. 안학궁성 발굴조사(1974년)
2. 정릉사지 발굴조사(1974년)
3. 정릉사지 발굴조사 회의 광경(1974년)
고구려 건축에 대한 연구는 발굴된 유적을 대상으로 하는 고고학적 연구와 벽화고분과 문헌사료를 바탕으로 하는 건축학적 연구로 대별된다. 북한에서는 발굴조사성과와 고분벽화에 묘사된 건축요소 등을 종합하는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정릉사지 등 주요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건축의 평면형태와 구조 및 건축기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1989년에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고구려 건축의 종류와 상부구조, 기초시설 및 건축기술에 대한 개론서가 간행되었다(리화선, 1989; 한인호, 1995). 남한에서도 한국건축사 연구의 일환으로 고구려 건축에 대한 개설이 이루어졌으며(尹張燮, 1972; 朱南哲, 2000), 1980년대 이후에는 고구려 건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중국과 북한의 연구성과를 소개하는 수준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중국과 북한의 조사성과를 직접 접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연구주제가 다양해지고 있다(조용환, 2015).

  • 각주 033)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 고구려, “好治宮室 於所居之左右立大屋 祭鬼神又祀靈星社稷.” 바로가기
  • 각주 034)
    『구당서』 권199상 동이 고려, “其所居必依山谷 皆以茅草葺舍 唯佛寺神廟及王宮官府內用瓦.”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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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건축유적 자료번호 : gt.d_0008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