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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2장 와전

기와는 가옥의 지붕을 덮는 건축 부재이다. 양질의 점토를 재료로 제작틀을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서 제작한다. 이런 기와를 지붕에 사용하면 내구성과 방화성 등의 유리한 점이 크다. 아울러 건물의 존엄성과 장엄성을 가지게 되며 이는 지배층의 계층적 위계서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처음에 기와는 토기를 만드는 장인이 만들었다(瓦陶兼業). 그러다가 전문화되면서 국가적인 조영사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기와를 알려주는 사료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지(三國志)』,『구당서(舊唐書)』 등이 있다. 그 기록은 신라에서 먼저 나타난다. 『삼국사기』 지마이사금 11년(122년) “여름 4월에 큰 바람이 동에서 불어와 나무가 꺾어지고 기와가 날렸다”주 007
각주 007)
『삼국사기』 권1 지마이사금 11년조, “夏四月 大風東來 折木飛瓦 至夕而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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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기사가 있으며, 또 조분이사금 4년(233년)에도 “4월 여름에 큰 바람이 불어와 기와가 날아갔다”주 008
각주 008)
『삼국사기』 권2 조분이사금 4년조, “夏四月 大風飛屋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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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내용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신라는 늦어도 2세기 초에 이미 기와를 사용하였으며, 기상이변에 의해 기와가 날린 현상에 대해 국가적인 정세변동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고구려에서는 미천왕 원년(330년)에 “집 앞의 연못에서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 기와와 돌을 던져 그 소리를 멈추게 하였다”주 009
각주 009)
『삼국사기』 권17 미천왕 원년조, “其家側草澤 蛙鳴使己弗夜投瓦石某其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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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기사가 보이고 있다. 또 안원왕 12년(542년)에는 “봄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기와가 날라갔다”주 010
각주 010)
『삼국사기』 권19 안원왕 12년조, “春三月 大風拔木飛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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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도 기와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기록에서는 고구려가 다소 늦게 나타나지만 중국의 영향이나 국가발전단계를 고려한다면 신라보다 늦지는 않았을 것으로 이해된다.
또 중국 사서인 『구당서』 고려전의 “대부분 볏단으로 지붕을 얹었으나, 불교사원과 신묘, 왕궁, 관청 등은 기와를 사용하였다”주 011
각주 011)
『구당서』 권199상 동이 고려전, “其所居必依山谷 皆以茅草葺舍 唯佛寺 神廟及王宮 官府內用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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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내용이 있다. 이는 당시 기와가 국가와 관련된 권위건축물이자 물질적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구려는 국가 발생 초기부터 한 군현이나 중국 세력과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중국 문화를 일찍 받아들여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기와나 목조건축술에서도 주변국과는 다른 발전된 양상을 드러냈는데, 예를 들면 『삼국지』 동이전에 “그들의 습속에 음식은 아껴먹으나 궁실은 잘 지어 치장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구려의 건축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림1 | 집안 통구12호묘 전각도
『삼국사기』에는 동명왕 때부터 궁실과 성곽을 조영한 기록이 있어 이때부터 기와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중국 집안의 고구려 고분인 마선구 2378호묘와 2381호묘에서 발견된 기와가 1세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편년되고 있다(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c). 북한 측 자료에 의하면, 자강도 초산군 운평리 2지구 35호분과 4지구 6호분 등 고구려 초기의 돌각담무덤에서 기원전 3세기~기원전 2세기 무렵에 사용된 청회색 암키와가 발굴되었다는 보고도 있다(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1989).
한편, 고구려 목조건축물의 의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을 와당은 그 기록이 전무하여 인접국의 경우를 통해 유추하거나 고고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전하는 발굴 자료 가운데 가장 빠른 절대편년을 가지는 유물은 집안시 국내성 인민욕지(人民浴池)지점에서 출토되었다는 ‘태녕4년(太寧四年)’명 권운문와당이다. ‘태녕’은 중국 동진 명제의 연호로 4년은 326년에 해당한다.주 012
각주 012)
동진의 명제는 태녕 3년 8월에 죽었기 때문에 태녕이 중국의 연호가 아니라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렇지만 그 뒤를 이은 성제가 함화(咸和)로 건원하는 시기는 2월이므로 그 이전까지는 태녕 연호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 와당이 제작된 시기는 태녕 4년 1월에서 함화 원년 2월 사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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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고구려가 늦어도 4세기 초엽에 이르면 문양과 명문을 새긴 와당을 생산하는 기술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이다. 또한 1990~2003년에 집중된 집안시 국내성 일대에 대한 발굴 결과, 여러 점의 문자와당이 출토되었다. 이들은 각각 ‘무술년(戊戌年)’, ‘기축년(己丑年)’, ‘정사(丁巳)’, ‘을묘년(乙卯年)’ 등의 간지가 새겨져 있어 그 시기 추정이 가능하다.
그림2 | 국내성 출토 ‘태녕4년’명 권운문와당
이처럼 현재 전하는 자료상으로 고구려 와당의 상한은 4세기 초엽이며, 학계에서도 대개 이러한 견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 와당의 시원 양식이 찾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원을 4세기 무렵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시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이미 기원전부터 와당을 제작·사용했으며 고구려와 경계를 맞대고 있던 낙랑과 중국 북조 유적에서는 양질의 와당이 출토되고 있어 고구려의 경우도 이들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와당을 생산하여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기와나 토기에 명문을 넣는 기법은 생산기술이 절정에 달한 후에야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와당의 생산 또한 이러한 기술적 수준을 토대로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고구려에서 와당의 기원은 고구려에서 기와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세기 무렵부터 ‘태녕4년’명 권운문와당이 제작된 4세기 초엽 사이의 어느 한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기와 중에서도 와당은 드림새라고 불리는 점토판을 수키와와 암키와의 한쪽 끝에 붙여 모양을 낸 기와로 처마 끝부분에 놓인다. 드림새는 처마를 비나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의도로 제작되었으나 차츰 목조건물을 장식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의장성이 중요시되었다. 의장성은 드림새의 형태와 새긴 문양을 통해 나타내며 건축물의 존귀함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와당은 중국 와당 제작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형태는 비슷하나 새긴 문양은 고구려인의 사상체계와 상층 귀족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고구려의 와당은 용도와 형태 면에서 중국 와당의 영향을 받았지만, 표면에 나타난 문양은 중국의 와당 문양과 구별되는 차이점이 발견된다. 중국의 와당이 중국인들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반영한 것이라면 고구려 와당에 나타난 문양은 고구려인들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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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삼국사기』 권2 조분이사금 4년조, “夏四月 大風飛屋瓦.”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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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삼국사기』 권19 안원왕 12년조, “春三月 大風拔木飛瓦.” 바로가기
  • 각주 011)
    『구당서』 권199상 동이 고려전, “其所居必依山谷 皆以茅草葺舍 唯佛寺 神廟及王宮 官府內用瓦.” 바로가기
  • 각주 012)
    동진의 명제는 태녕 3년 8월에 죽었기 때문에 태녕이 중국의 연호가 아니라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렇지만 그 뒤를 이은 성제가 함화(咸和)로 건원하는 시기는 2월이므로 그 이전까지는 태녕 연호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 와당이 제작된 시기는 태녕 4년 1월에서 함화 원년 2월 사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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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와전 자료번호 : gt.d_0009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