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갔던 통역관들의 상금 은냥을 대신 지급하였으니 출사경비에서 상환해야 할 것이라고 총리아문(總理衙門)이 강해관도(江海觀道)에 보내는 차문(箚文)
使韓通官償銀, 已由本署墊發卽, 應於出使經費項下, 照數撥還.
十一月初五日, 給江海關道龔照瑗劄稱:주 001
각주 001)

해관도(海關道)는 관도(關道)라고도 하며, 1858년 해관의 외국인 세무사 제도가 시작된 이래 청 정부에서 해관을 감독하고 관할 지역의 대외 교섭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전국에 설치된 15개의 해관도 가운데 전직(專職)인 천진(天津)의 진해관도(津海關道)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도대(道台)가 겸직하였고, 강해관도(江海關道) 역시 소송태도(蘇松太道)가 겸직하였다. 공조원(龚照瑗. 1835~1897)은 자가 仰蘧, 호가 卫卿으로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 출신이다. 1886년 上海道台(蘇松太道라고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分巡苏松太常等地兵备道이다), 1891년 절강안찰사(浙江按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차(箚)는 차자(箚子)로 관청에서 사용하던 간단한 형식의 상주문이나 관청끼리 주고받던 공문서를 가리킨다.
光緒十六年十月十六日, 由軍機處交出面奉諭旨:
續昌等奏:
此次奉使朝鮮禮部派出通官, 當差勤慎, 請量加獎賞.
等語.
六品通官豫和, 七品通官恆霈, 著每人賞銀四百兩, 由總理衙門出使經費項下給發.
欽此. 欽遵傳知前來. 旋准禮部咨同前因. 查此項獎賞銀兩, 本衙門已於十月二十日, 如數墊發. 相應札行江海關道, 即於出使經費項下, 照數撥還, 以清款目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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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해관도(海關道)는 관도(關道)라고도 하며, 1858년 해관의 외국인 세무사 제도가 시작된 이래 청 정부에서 해관을 감독하고 관할 지역의 대외 교섭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전국에 설치된 15개의 해관도 가운데 전직(專職)인 천진(天津)의 진해관도(津海關道)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도대(道台)가 겸직하였고, 강해관도(江海關道) 역시 소송태도(蘇松太道)가 겸직하였다. 공조원(龚照瑗. 1835~1897)은 자가 仰蘧, 호가 卫卿으로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 출신이다. 1886년 上海道台(蘇松太道라고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分巡苏松太常等地兵备道이다), 1891년 절강안찰사(浙江按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차(箚)는 차자(箚子)로 관청에서 사용하던 간단한 형식의 상주문이나 관청끼리 주고받던 공문서를 가리킨다.
색인어
- 이름
- 龔照瑗, 豫和, 恆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