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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조선의 난민이 일본 공사가 주재하는 공간을 둘러싸고 난동을 일으켰다는 전보(電報) 자료

朝鮮亂民圍攻日使館滋事.
  • 발신자
    독일 공사 브란트(德國公使 巴蘭德)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2년 6월 19일 (음)(光緖八年六月十九日) , 1882년 8월 2일 (光緖八年六月十九日)
  • 문서번호
    4-1-02(464, 735b)
六月十九日, 德國公使巴蘭德 주 001
각주 001)
브란트(Max August Scipio von Brandt, 巴蘭德, 1835~1920)는 독일 외교관으로 동아시아에서 33년을 보냈는데, 일본에서 지낸 10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를 모두 중국에서 보냈다. 그는 1861년 프러시아와 중국의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고, 나중에 주일공사를 지내다 1875년부터 주중국 공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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函稱:
 
兹接日本都京六月十七日電報內云:
朝鮮都城亂民突將在彼駐劄日本大臣公館圍擾滋事. 該欽差等逃往海岸, 乘駕小舟行抵海面. 偶遇英國兵船, 當即改乘, 仍回日本地方.
又六月十六日, 由日本發來電報, 所稱與以上大畧相同. 竝稱:
圍擾之際, 日本人猶行看守多時, 後因亂民縱大, 始行逃避. 而欽差服役人等被難不下數名. 現在日本已派兵船數隻, 前往保護.
至公館被圍何日, 兩次電信均未提及. 本大臣聆悉之餘, 自當函達一切, 諒貴大臣當必異常驚駭也. 此佈. 順頌日祉.

  • 각주 001)
    브란트(Max August Scipio von Brandt, 巴蘭德, 1835~1920)는 독일 외교관으로 동아시아에서 33년을 보냈는데, 일본에서 지낸 10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를 모두 중국에서 보냈다. 그는 1861년 프러시아와 중국의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고, 나중에 주일공사를 지내다 1875년부터 주중국 공사를 지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巴蘭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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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난민이 일본 공사가 주재하는 공간을 둘러싸고 난동을 일으켰다는 전보(電報) 자료 자료번호 : cj.d_0003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