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조선의 반란 수괴를 징벌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고 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일본대신의 서신과 여서창 등과 일본대가사 주고 받은 첨부 서신
朝鮮兵變, 日本出兵在懲辦亂首. 現朝鮮國王無事, 由大院君執政.
七月十三日, 出使日本國大臣黎庶昌函稱:
六月初四日肅上一函, 諒邀均察, 十三日接奉本字第六十六號鈞函, [중략] 神戶理事馬中書建常兼任繙譯,주 001
각주 001)

自可勝任愉快, 惟現因胞兄病重, 三次乞假赴滬省視, 情詞甚悲, 不得已暫准一月往返. [중략]. 十七日, 外務省遣大輔吉田淸成來署, 面告日本駐高公使花房義質來電:마건상(馬建常, 1840~1939)은 청 말의 문관으로 원명은 마지덕(馬志德)이고 약슬(若瑟)・흠선(欽善)・건상(建常)・ 량(良)이란 이름도 사용하였다. 자는 사장(斯藏) 또는 상백(相伯) 등인데, 마상백, 또는 마량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청 말의 저명한 외교관 마건충(馬建忠)의 형이기도 하다. 주일 영사를 지낸 다음 1882년에 정부 기구가 개편된 후 이홍장의 추천으로 조선에 와 통리군국사무아문의 참의(參議)가 되고, 후에 참찬으로 승진하여 나라의 기무(機務)와 권리를 장악하고 내정을 간여하였다. 이후에는 복단대학(復旦大學) 등의 창시자 등 교육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천주회 신부이자 신학박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중서(中書)는 여기서는 내각중서(內閣中書)의 직함(종7품)을 말하는데, 마건상(馬建常)은 과거 출신자가 아니고 천주교 신학박사(神學博士)의 학위만을 가졌다. 산동기기국총판, 일본 고베(神戶) 영사 등을 거치는데 그때 후선내각중서(候選內閣中書)의 직함이었다. 이홍장에 의해 조선에 파견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11월 17일 기해 1번째 기사에는 “中國舍人 마건상과 전 청나라주재 독일 영사관 묄렌도르프를 접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中國舍人’은 ‘中書舍人’의 오기로 보인다.
西曆七月二十三日, 突有高麗亂黨數百人, 圍攻使館, 抗禦七時之久, 未能援兵到來, 該公使等二十餘人, 奪圍而出, 逃至仁川, 又被該處兵丁圍擊, 死者二人, 傷者數人, 又逃至海邊, 得一小船, 行至南陽, 遇英國測海船救告.
等語. 庶昌以好言慰之而去. 次日外務卿井上馨, 即離東京, 親往督辦此事, 是數日內群議紛紜, 有滅此朝食之意,주 002 派兵調饟, 舉國囂然, 幸而政府以此次倡亂之徒, 不但與日人爲難, 并及王宫執政, 非出自高廷之意, 其意祗欲懲辦得體而止, 似尚可言. 然其預備軍械之屬, 刻未停止. 二十日外務送來英文信函一件, 即詳言此事原委, 當經節次電聞大畧. 二十一日接到衙門擬派馬道建忠督帶兵船前往調停之電報, 即經函告外務卿, 外務亦有復函, 今一并錄呈鈞覽. 自高麗與美英立約, 論者咸以爲中國屬邦可幸無事, 然觀其國人, 黨與不和, 亂機方始, 亦頗聞美·英條約, 該二國尚難批准之議, 則是朝鮮一隅, 尚煩廟堂籌畫, 似宜催請傅相假滿即出, 東方之事, 以後尚費經營, 正未能固守禮經也. 本日新聞紙載花房義質發來電報, 高都之變, 國王無事, 王妃及世子妃大臣等死者十三人, 現歸大院君執政, 又日本學生死者二人, 廵捕死者三人, 可謂大亂. 然尚未聞該國王作何辦法, 招商局派來迎載難民之懷遠輪船, 於二十日抵横濱, 二十三日開赴箱館, 除有要聞隨時電知外, 伏乞代回堂憲爲禱. 耑肅, 祗請勛安.
照錄淸摺
별지: 「日本外務卿井上馨發出出仕日本大臣黎庶昌英文函」: 日本派兵艦赴朝鮮係爲護衛, 遣辦之事, 保全國體.
(1) 「譯外務卿英文信函」
啟者:
兹將我國駐高麗公使館近日被擊之情形送覽, 其大畧情形, 諒貴公使已經知悉. 現在我政府已舉行之事, 竝酌量欲行之件, 均已奉聞. 其攻擊之事, 所關甚重, 請看付來電信之譯文便知. 今花房所報之事, 若果確實, 不獨我國公使署被擊, 并悦與外國通好之廷臣, 亦被此亂黨攻擊, 連及於王宫, 如此可知事之有關涉於各國也. 現所知者祗如此, 其餘實在情形如何, 則未知之也. 此次不料之事, 諒我國公使館及高廷皆未及預知. 日後無論如何解釋其事, 惟我國公使與員役不僅受頑民之兇擊, 伊等退走至海濱, 且屢被兵士亦攻擊之後, 只得逃避於大海等, 幸得遇英國測海船扶頼煙斐士, 蒙救帶來長崎. 除公使館官員逃脱之外, 連千總堀本尚有九名, 我國人不知所在. 因防伊等遇害, 及難保居留釡山我國人不再有事, 故我政府擬即派軍艦三艘, 經已前赴高麗. 花房公使經已奉命再往高麗京都, 俾得向高廷討釋, 明其民人行此兇暴之舉, 竝保護我國交涉利益事, 及伊自身, 又與我國之民人也. 另派陸軍一隊, 計三百名前往高麗, 我政府想此事不能不如此辦理. 此小隊兵之管帶官及艦長等, 均已奉命不能行對敵之舉, 祗係護衛遣辦之事, 竝我國居留人民, 及爲此高人干犯, 而欲保全國體之意也. 此事之舉動, 我政府全以敦睦和好爲念, 竝無二心. 故特爲實告, 今所派軍艦及小隊陸軍毫無佯爲之事, 恐外人有未悉我政府之實意, 悮解其事. 應請貴公使早日將此函內之意, 移知貴政府爲禱. 或有何事欲知者, 如本大臣可代勞之時, 自當泐布. 欽差黎庶昌閣下.
별지: 「高使花房發外務井上電」: 朝鮮亂事日本受害情形.
(2) 「高使花房電報」.
本月二十三日午後五㸃鐘, 有高麗人數百名, 突然到來, 攻擊公使館, 擲石射矢放槍, 放火燒公館. 與之抗拒七時之久, 竝未有官兵到來援救. 即向頑民之中, 突圍穿過, 奔至王宫, 而城門又閉, 不得已即退回仁川, 正在停歇之際, 城邑之兵忽然又攻擊我等. 彼時我廵捕被擊死者二人, 傷者三人, 諒我國人死傷者還不止此. 於是盡力打破出國, 出奔至西撥治[所日本音], 得一艇即開身, 於二十六日駛至南陽地方, 適遇英測海船扶頼煙斐士, 蒙該船現載來長崎. 雖有受傷, 尚無大碍. 竝聞二十三日王宫及閔太后閔憲邸亦被攻擊. 至仁川又有此暴舉, 諒釡山及元山難免無其事也. 護船磐城艦現灣泊在仁川, 惟釡山亦要派軍艦一艘前往, 除設法保護外, 今高麗京都政府如何情形, 及高王無事否, 亦須查及. 至日後之事, 必要多派護船護兵. 本公使企候回音, 書記官近大尉水野等共有二十四人皆抵崎, 中尉堀本及外八名不知所在. 由長崎西七月三十日華六月十六日, 半夜十二㸃鐘半發, 外務卿井上馨殿. 花房義質.
별지: 「出仕日本大臣黎庶昌發日本外務卿井上馨函」;朝鮮凶徒滋事, 日館受害, 惟非出韓廷之意, 希能早將亂黨拏辦, 以全睦誼.
(3) 「覆外務卿井上馨函」.
敬復者:
昨准貴外務卿英文信函一封, 當即譯出, 本大臣已閲悉矣. 此次高麗兇徒猝然滋事, 攻擊貴國使館, 不及預防, 實於和好大有關碍. 此等舉動, 在我政府亦必不謂然, 然此非出自高廷之意, 尚可原諒. 本大臣已將來函美意轉報我政府. 但願高麗速日將此亂黨嚴拿懲辦, 以全友睦, 是本大臣之所深盼也. 此復, 順頌日祉.
光緒八年六月二十一日, 欽差大臣黎庶昌.
外務卿井上馨閣下.
별지: 「出仕日本大臣黎庶昌發日本署外務卿吉田淸成函」: 朝鮮亂黨滋事, 日館受害, 中國派馬建忠率艦 前往調停.
(4) 「致署外務卿吉田淸成函」.
敬唘者:
本大臣昨接北洋大臣電報, 准總理衙門來函. 高麗現有此等暴舉, 擬派馬道臺建忠乘坐兵船二三號前往, 爲貴國調停此事. 屬即轉告貴政府請勿見疑. 相應函達貴外務卿可也. 順頌日祉.
光緒八年六月二十一日. 欽差大臣黎庶昌.
署外務卿吉田淸成閣下.
별지: 「日本署外務卿吉田淸成發出出仕日本大臣黎庶昌函」: 日本對朝鮮亂事, 已有對策 不勞中國調停.
(5) 「署外務卿吉田淸成覆函」.주 004
敬復者:
頃接貴大臣來函. 以昨接北洋大臣電報. 准總理衙門來函:
高麗現有此等暴舉, 擬派馬道臺建忠乘坐兵船二三艘, 前往爲貴國調停此事.
等因. 業已閲悉. 具徵貴政府友誼之厚. 惟於此事, 本處已有成見, 妥慎籌辦, 想不至煩貴政府及他國爲費神也. 耑此即復. 順頌日祉.
明治十五年八月六日.
署外務卿吉田淸成. 欽差大臣黎庶昌閣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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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마건상(馬建常, 1840~1939)은 청 말의 문관으로 원명은 마지덕(馬志德)이고 약슬(若瑟)・흠선(欽善)・건상(建常)・ 량(良)이란 이름도 사용하였다. 자는 사장(斯藏) 또는 상백(相伯) 등인데, 마상백, 또는 마량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청 말의 저명한 외교관 마건충(馬建忠)의 형이기도 하다. 주일 영사를 지낸 다음 1882년에 정부 기구가 개편된 후 이홍장의 추천으로 조선에 와 통리군국사무아문의 참의(參議)가 되고, 후에 참찬으로 승진하여 나라의 기무(機務)와 권리를 장악하고 내정을 간여하였다. 이후에는 복단대학(復旦大學) 등의 창시자 등 교육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천주회 신부이자 신학박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중서(中書)는 여기서는 내각중서(內閣中書)의 직함(종7품)을 말하는데, 마건상(馬建常)은 과거 출신자가 아니고 천주교 신학박사(神學博士)의 학위만을 가졌다. 산동기기국총판, 일본 고베(神戶) 영사 등을 거치는데 그때 후선내각중서(候選內閣中書)의 직함이었다. 이홍장에 의해 조선에 파견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11월 17일 기해 1번째 기사에는 “中國舍人 마건상과 전 청나라주재 독일 영사관 묄렌도르프를 접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中國舍人’은 ‘中書舍人’의 오기로 보인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색인어
- 이름
- 黎庶昌, 建常, 吉田淸成, 花房義質, 庶昌, 井上馨, 建忠, 花房義質, 堀本, 花房, 井上馨, 花房, 水野, 堀本, 井上馨, 花房義質, 井上馨, 井上馨, 吉田淸成, 建忠, 吉田淸成, 吉田淸成, 建忠, 黎庶昌
- 지명
- 神戶, 高麗, 南陽, 英國, 東京, 横濱, 箱館, 長崎, 釡山, 高麗, 仁川, 南陽, 長崎, 仁川, 釡山, 元山, 仁川, 釡山, 長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