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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조선국왕이 원세개(袁世凱)와 시무(時務)룰 논의하기를 청하였는데 원세개가 대원군의 귀국길을 호송한다고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내는 문서

朝鮮國王咨請派袁世凱東來, 籌議時務, 該員業經遵旨派定伴送大院君回國.
  • 발신자
    北洋大臣 李鴻章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5년 8월 20일 (음)(光緖十一年八月二十日) , 1885년 9월 28일 (光緖十一年八月二十日)
  • 문서번호
    4-7-19(1064, 1945b)
주 001
각주 001)
이 문서는 『李鴻章全集』(安徽敎育出版社, 2008)에 수록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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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月二十日, 北洋大臣李鴻章文稱:
 
八月十八日, 准朝鮮國王咨開:
敝邦自撤防, 以復民無所恃, 物情危懼, 既有天津鈐約,주 002
각주 002)
이 천진조약(天津條約)은 1884년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를 위해 1885년 청과 일본과 청이 맺은 조약을 가리킨다. 그 내용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 군대는 동시 철수하고, 동시에 앞으로 파병을 하게 되면 사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군의 조선 진출을 합법화한 이 조약은 1894년 청・일 전쟁때 일본이 파병할 수 있는 구실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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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便遽改. 惟袁舍人世凱駐東三年, 熟諳國俗, 練達時事, 爲上下所信. 去年冬, 身試危險, 廓掃亂氣, 扶植藩邦, 誕敷皇靈, 舉國人民方切感佩之心. 不圖該員成功不居,주 003
각주 003)
성공불거(成功不居)는 공성불거(功成不居)로도 표현되며, 공을 세우고도 그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지 않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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飄然辭去. 聞有母病不輕, 未能强留. 然悵缺於中, 未甞暫弛. 今聞該員假滿還津. 現敝邦事務殷繁, 無與咨商, 應請再派該員東來, 藉以鎮定民心, 籌議時務, 必大有禆益於艱難之際. 爲此備文咨會, 請煩查照派送該員, 以副國人之望, 至爲幸甚.
等因. 准此. 查分發補用同知袁世凱, 業經本閣爵大臣遵旨飭派, 會同前江西南贛鎮總兵王鎮永勝, 乘坐兵輪, 伴送朝鮮大院君回國在案. 如有與袁丞籌議事, 宜自可就近商籌. 除咨覆朝鮮國王外, 相應咨明貴衙門, 煩請查核.

  • 각주 001)
    이 문서는 『李鴻章全集』(安徽敎育出版社, 2008)에 수록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 천진조약(天津條約)은 1884년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를 위해 1885년 청과 일본과 청이 맺은 조약을 가리킨다. 그 내용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 군대는 동시 철수하고, 동시에 앞으로 파병을 하게 되면 사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군의 조선 진출을 합법화한 이 조약은 1894년 청・일 전쟁때 일본이 파병할 수 있는 구실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성공불거(成功不居)는 공성불거(功成不居)로도 표현되며, 공을 세우고도 그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지 않음을 뜻한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李鴻章, 世凱, 袁世凱, 永勝
오류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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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이 원세개(袁世凱)와 시무(時務)룰 논의하기를 청하였는데 원세개가 대원군의 귀국길을 호송한다고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내는 문서 자료번호 : cj.d_0003_0070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