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청계중일한관계사료

조선국왕이 관군을 남겨 방어 업무를 도와준 일에 대해 감사의 뜻을 상주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서리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내는 문서

朝鮮國王請轉奏, 申謝留營善後, 會辦防)
  • 발신자
    署理北洋大臣 李鴻章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4년 5월 24일 (음)(光緖十年五月二十四日) , 1884년 6월 17일 (光緖十年五月二十四日)
  • 문서번호
    4-10-07(856, 1398b-1399a)
五月二十四日, 署北洋大臣李鴻章文稱:
 
光緒十年五月十九日, 准朝鮮國王咨:
敝邦自經前年變亂, 國步艱難, 民心渙散, 其能轉危復安, 保有今日, 莫非我皇帝陛下眷顧綏靖之恩, 暨貴大臣體恤援護之惠. 亦惟欽差廣東提臺吳軍門宣颺皇威, 恤難扶危, 三載之間, 民國賴安. 折奸萌於未然, 杜外侮於方來, 威愛互濟, 功莫與京. 至若營務處袁世凱, 分統朱先民·黄仕林·吳兆有,주 001
각주 001)
분통(分統)은 상군(湘軍)에 설치되었던 무관직의 하나로서, 증국번(曾國藩)에 직속한 통령(統領)이 통솔하는 부대의 숫자가 많거나 작전상 필요시 그 아래에 임시로 설치되었다. 이홍장의 회군(淮軍)이 상군을 모델로 하였으므로, 회군에도 분통이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닫기
總兵方正祥·張光前, 咸克奮威効力, 協幹防事, 一國上下, 恃以無恐. 現因中原防務緊要, 檄吳軍門移兵一半, 駐防金州. 竊以軍門西歸, 今已閲序, 方期帥節之遄旋, 以資保後, 驟聞營壘之半撤, 實深危惧. 然而尚有三營仍留善後, 會辦防務. 袁中書世凱公廉明達, 軍民孚悦. 吳統領·張總兵, 與之悉心共濟, 庶可漸次安謐, 感幸之極, 不知攸云. 移回三營, 已於本年四月二十九日起程内渡, 西望㫌旆, 不勝悵依. 凢係大小事情, 理合據實具咨, 伏乞崇慈另垂鑒諒, 轉奏天陛, 代達小邦感激, 鳴謝之忱, 不勝幸甚. 專差機器局幫辦李用俊賫咨前去. 爲此合行移咨, 請照騐轉奏施行.
等因. 到本署大臣. 准此. 查上年援護朝鮮親慶六營, 現撤三營由吳提督統率回駐金州, 本係欽奉諭旨, 奏明辦理. 茲該國王以留營善後, 請轉奏代達, 感謝之忱. 據李用俊面禀, 已分咨貴衙門在案. 應請貴衙門核奪, 據情代奏. 除咨行外, 相應咨會貴衙門, 請煩查照施行.

  • 각주 001)
    분통(分統)은 상군(湘軍)에 설치되었던 무관직의 하나로서, 증국번(曾國藩)에 직속한 통령(統領)이 통솔하는 부대의 숫자가 많거나 작전상 필요시 그 아래에 임시로 설치되었다. 이홍장의 회군(淮軍)이 상군을 모델로 하였으므로, 회군에도 분통이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李鴻章, 朱先民, 黄仕林, 吳兆有, 方正祥, 張光前, 世凱, 李用俊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조선국왕이 관군을 남겨 방어 업무를 도와준 일에 대해 감사의 뜻을 상주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서리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내는 문서 자료번호 : cj.d_0003_010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