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왕의 공문과 조선의 선기(船旗) 도안을 자문으로 보낸다고 서리 북양대신(北洋大臣)이 총리아문(總理衙門)에 보낸 문서
朝鮮 國王의 공문 및 朝鮮의 船旗 도안을 자문으로 보냅니다.
2월 11일, 署理北洋大臣 李鴻章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다.
光緖 9년 10일, 朝鮮 國王이 파견한 관원 閔泳翊이주 001
각주 001)

가져온 다음과 같은 공문을 받았습니다.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자가 우홍(遇鴻)·자상(子相)이고, 호는 운미(芸楣)·원정(園丁)·천심죽재(千尋竹齋) 등이 있다. 아버지는 민태호(閔台鎬)로 1875(고종 12)년 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閔升鎬)와 그의 아들이 죽은 뒤 양자로 입양되어,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 정계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이른바 ‘죽동궁(竹洞宮) 주인’으로 개화당 인사들과 그의 사랑에서 자주 모였다. 하지만 점차 그들과 사이가 벌어진 뒤, 1884년 12월 개화당의 김옥균 등이 주도한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서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자상(刺傷)을 입었으며, 1886년 정부의 친로거청정책(親露拒淸政策)을 원세개(袁世凱)에게 밀고하였다가 정치적 위협을 느껴 홍콩·상해 등지로 망명하면서 여생을 대부분 중국에서 보냈다.
조선은 현재 각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세 곳 항구에서 모두 通商을 허용하였습니다. 앞으로 선박이 왕래하는 데 반드시 깃발을 세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에 國旗 한 장을 제작하고, 그 형태와 색을 그림으로 그려 귀 대신이 검토하시도록 갖추었습니다. 그림으로 그린 깃발의 형식을 분명하게 보존해두는 것 외에, 마땅히 자문으로 알리니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깃발 그림 한 장 외에, 또한 귀 아문으로 보내는 공문 1건도 있으니, 마땅히 자문으로 귀 아문에 보내야 할 것입니다. 번거롭더라도 검토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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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자가 우홍(遇鴻)·자상(子相)이고, 호는 운미(芸楣)·원정(園丁)·천심죽재(千尋竹齋) 등이 있다. 아버지는 민태호(閔台鎬)로 1875(고종 12)년 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閔升鎬)와 그의 아들이 죽은 뒤 양자로 입양되어,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 정계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이른바 ‘죽동궁(竹洞宮) 주인’으로 개화당 인사들과 그의 사랑에서 자주 모였다. 하지만 점차 그들과 사이가 벌어진 뒤, 1884년 12월 개화당의 김옥균 등이 주도한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서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자상(刺傷)을 입었으며, 1886년 정부의 친로거청정책(親露拒淸政策)을 원세개(袁世凱)에게 밀고하였다가 정치적 위협을 느껴 홍콩·상해 등지로 망명하면서 여생을 대부분 중국에서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