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하지만 천진(天津)에서 무기와 군사 학습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할 뜻을 갖고 있다고 북양대신(北洋大臣)이 총리아문(總理衙門)에 보낸 서신과 관련 첨부 문서
조선은 서양과의 통상을 굳게 거부하지만, 따로 훈련 인원을 天津에 보내 무기와 군사 학습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할 뜻을 갖고 있습니다.
11월 15일, 北洋大臣 李鴻章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다.
7월에 丁日昌이 진술한 각 항목을 그대로 조선에 전달하여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고 통상을 함으로써 일본의 간교한 음모를 막도록 권유하라는 기신상유(寄信上諭: 즉 군기처를 통해 전달되는 황제의 상유를 가리킨다)와 더불어 보내주신 538호 서신을 받았습니다. 즉시 諭旨에 따라 조선의 原任太師 李裕元에게 서신을 써서 비밀스럽게 설득하였고, 그 내용은 이미 베껴서 답장 상주[覆奏]를 올리고 아울러 그 대략의 내용을 써서 [귀 總理衙門에] 서신으로 알린 바 있습니다.
이어서 10월 7일 [直隸省] 永平府 知府인 游智開가 李裕元의 서신을 전달해 왔는데, 이전의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아마도 분명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고충이 있는 것 같습니다. 游智開의 비밀 보고[密稟]에 따르면, 李裕元이 보낸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다른 서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본뜻은 다른 나라와 왕래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일본에 개항한 것은 실로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서양인과 통상을 해야 한다면 감히 항구를 개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7월 말 무렵 北洋大臣의 서신을 받았는데, 은근히 조선을 위해 여러모로 지도해주시는 것이 간절하고도 지극하였다는 점을 이미 조정에 아뢰었지만,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게 되어 감히 힘써 다투지는 못하였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부디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만약 답장을 주신다면 아울러 7월 서신에 관한 일은 드러내지 않도록 해주시길 대신 비밀리에 아뢰도록 부탁해왔습니다.
조선의 자문전달관[賫咨官] 李容肅이 다시 游智開와 상의하여 저를 만나러 와서 무기 제작, 군대 훈련 등에 관한 일을 직접 이야기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저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막을 수 없어 游智開에게 서신을 보내어 적당한 사람을 함께 안내인으로 삼아 호송하라고 알렸습니다. 그런데 游智開가 서신을 받고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李容肅을 안내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 北京에서 돌아오면서 해당 자문전달관의 답장 서신을 가져왔는데, 사신의 임무를 맡은 자로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여 주저하면서 중지하였다고 하였으며, 또한 李裕元의 서신에서 자세하게 직접 아뢰겠다고 한 중요한 일은 조선의 여론 때문에 외국인으로 중국에 입학하였던 옛적의 선례에 따라 예부에 자문을 보내 능력 있는 인원을 선발하여 天津 등에 보내 무기와 군사 학습을 요청하겠다는 것으로서 제게 대인께 전달하여 지시를 내려달라고 특별히 부탁해 왔습니다.
생각건대, 李裕元이 홀로 謀議를 주도하지 못하는 것과 자문전달관이 감히 내지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은 모두 실제 상황이며, 조선이 軍備를 강구하는 일은 실로 더이상 미루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游智開에게 답장을 보내 그들이 요청한 바를 모두 실행할 수 있다고 알리게 하였습니다. 장래 조선이 자문을 보내면 마땅히 예부에서 상주하고 총리아문에도 咨文을 전달하여 적절히 처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후에 조선에서 인원을 天津으로 보내면, 天津에서는 병사를 훈련하고 무기를 제조하는 방법에 대해 그 秘要를 모두 알려주고 적절하게 지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하여 성과를 거두고 이를 통해 自强의 기반을 만든다면 우리 울타리의 견고함을 더욱 늘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자문전달관 李容肅이 永平府를 지나기를 기다려 상세하게 설명하고 아울러 우리 조정의 속뜻을 알려줌으로써 조선이 날로 법도를 일신하고 변경 방비에 더욱 엄격하게 힘쓰게 함으로써 강한 이웃 나라가 엿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따로 李裕元에게 답장을 보내는 서신은 다만 안부를 묻는 인사말 정도를 쓰고 7월에 논의한 각 항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가는 길에 휴대하여 전달할 수 있게 하고자 합니다. 삼가 李裕元이 보낸 서신과 제가 쓴 답장 서신을 초록해서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조선이 굳게 서양인과의 통상을 거부하니 중국은 자연히 강권하기 어렵고, 이 문제로 제가 다시 쓸데없이 상주할 필요 없이 직접 召對를 하게 될 때 이 점에 대해 좀 더 아뢸 수 있을지 엎드려 총리아문의 결정을 기다립니다. 삼가 비밀리에 알립니다.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첨부문서:淸摺 초록
별지: 「조선 太師 李裕元이 北洋大臣 李鴻章에게 보낸 서신」:서양과 조약을 체결하여 통상하는 일을 비밀리에 권유하였으며, 자문전달관 이용숙에게 답신을 가지고 가서 자초지종을 전달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1. 「조선의 原任太師 李裕元이 보낸 서신」 초록
李 中堂大人께.
海外의 미미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대인의 과분한 사랑을 입어 서신이 끊이지 않은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으니 마음속의 위안과 감사를 어느 날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서 추위와 더위가 일정하지 않으니 늘 대인의 신체가 건강하시길 빕니다. 황상을 잘 보필하시고 국가를 안정시켜 軍民이 즐겁게 생활하고 덕망이 널리 퍼지시니 찬송을 금할 수 없습니다. 조선에는 간혹 일본의 사신이 와서 머무는데, 비록 경계를 지나가는 것일 뿐 아직 바깥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이번에 가는 자문전달관 李容肅은 겸하여 맡은 임무가 있어서 특별히 보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찍이 游智開知府와 인연이 있으므로 서신을 가지고 가서 대인을 만나 뵙게 하여, 직접 얼굴을 맞대고 다시 중요한 사무의 세세한 내용을 아뢰고자 합니다. 游智開知府가 반드시 李容肅의 말을 李 中堂大人께 전달하였을 것이니, 다행히 저를 잊지 않으시고 특별히 돌보아주셔서 일마다 주선을 해주시고 끝까지 가르침을 주시어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우러러 바랍니다. 소생은 고향에서 편하게 지내면서 병을 잘 조리하고 있으니, 國恩이 미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소생 李裕元이 다시 인사드립니다.
기묘년 8월 22일.
별지: 「北洋大臣 李鴻章이 조선 原任太師 李裕元에게 보낸 답장」:인원을 선발하여 천진에 와서 무기 제조와 무비를 학습하는 일은 응당 시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영평부 지부 유지개에게 부탁하여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2. 「조선의 原任太師 李裕元에게 보낸 답장」 초록
橘山太師께 보냅니다.
10월 초순 永平府의 游智開知府를 통해 8월 22일에 보내주신 서신을 받았습니다. 과분한 관심을 받아 情誼는 더 두텁고 제 솔직한 마음을 수천 리 밖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손에 쥐고 감상하는데 전혀 싫증 나지 않습니다. 최근에 은퇴를 고하시고 은거하여 보양하시면서도 안으로는 대신들을 도와서 좋은 의견을 임금께 아뢰시고 밖으로는 이웃과의 갈등을 막아 국토를 오랫동안 안정시키면서 멀리 광채를 빛내시니 어찌 박수를 치며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倭人이 귀국과 통상을 한 이후에 때로는 교통 요지의 자그마한 일로 크게 불만의 뜻을 내비치면서 혹은 군대를 파견하여 輪船으로 바다를 순찰케 하거나 혹은 書記官을 북쪽으로 보내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분쟁의 실마리가 잠시 수그러들어 말썽이 일어나지는 않기에 제 마음에 약간 위로는 됩니다. 귀국의 자문전달관 李容肅이 游智開知府와 서로 안 지 조금 되었다고 하는데 방금 游君으로부터 일체를 전달받았습니다. 저로서는 李容肅君이 직접 왕림하여 미처 듣지 못한 것을 보태어 듣고 제 속뜻도 잠시 보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어제 李容肅君이 使命을 띠고 있어 감히 머무르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바로 游君에게 서신을 보내 제 뜻을 전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귀하의 忠謨奮發은 진실로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겨울 추위에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合肥 李鴻章 再拜.
11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