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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기 제조 및 병력 훈련 등의 처리 문제에 대한 주접과 장정(章程)을 자문에 보낸다고 북양대신(北洋大臣)이 총리아문(總理衙門)에 보낸 서신

조선의 무기 제조, 병력 훈련, 기계 구입을 적절하게 처리한 것에 대한 주접과 하급 문·무 관원의 선발·파견·학습에 관한 장정을 자문으로 보냅니다.
  • 발신자
    北洋大臣 李鴻章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0년 9월 28일 (음)(光緖六年九月二十八日) , 1880년 10월 31일 (光緖六年九月二十八日)
  • 문서번호
    2-1-2-03 (340, 421a-430a)
9월 28일, 북양대신 이홍장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다.
 
본 대신은 광서 6년 9월 27일 천진행관에서 諭旨를 받들어 조선의 일체 상황을 알아보고, 제조 학습 및 연병, 기계 구매에 관한 일을 적절하게 처리한 것에 대한 주접을 역참을 통해 올렸습니다. 또한 조선에서 하급 문·무 관원을 선발하여 중국에 와서 제조 학습 및 조련하게 하는 일에 관하여 논의한 장정 4조를 附片으로 아울러 올렸습니다. 이에 마땅히 원고를 초록하여 자문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마땅히 귀 아문에 자문을 보내니 삼가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문서:「주접 원고」 초록
별지: 「북양대신 이홍장의 주접」:유지를 받들어 조선의 제조 학습 및 연병과 기계 구입에 관한 일을 적절하게 처리한 것에 대해 주를 올립니다.
 
1. 유지를 받들어 조선의 일체 상황을 묻고, 제조 학습 및 연병과 기계 구입에 관한 일을 적절하게 처리한 것에 대하여 삼가 주접을 올려 답변을 드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신은 군기대신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寄信上諭를 받았습니다.
9월 6일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
이홍장이 조선에서 기술자를 파견하여 기계와 제조를 학습할 것을 요청한 일에 유지를 받들어 처리하였다는 주접을 올렸다. 조선은 동북의 藩服으로 이와 잇몸처럼 서로 의지하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조선이 현재 武備를 강구하고자 하여, 기술자를 천진에 파견해 기계와 제조를 학습하겠다고 청해왔는데, 응당 청한 대로 하여 허락하여 잘 이끌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미 예부에 지시하여 통역관을 선발하여 조선의 상주문전달관[齎奏官] 卞元圭와 함께 천진에 가게 하였다. 이홍장으로 하여금 일체의 상황에 대해 물어 본 다음 다시 주를 올려 처리하게 하라. 李裕元이 이홍장에게 보낸 서신에 대해서도 또한 상황을 잘 헤아려 답장을 작성하여 보냄으로써 [李裕元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라.
이상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 황상께서 藩邦을 아끼고 근심이 없을 때 미리 대비하시는 지극한 뜻을 삼가 우러러보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윽고 예부에서 유지를 받들어 통역관을 파견하여 조선의 상주문전달관 卞元圭와 함께 보내 9월 16일 천진에 도착하였습니다. 신은 곧 天津海關道 鄭藻如,주 001
각주 001)
鄭藻如(1824~1894)는 자가 지상(志翔), 호가 예헌(豫轩. 玉轩)으로 광동성 향산(香山. 오늘날의 中山市) 출신이다. 1851년 举人에 합격하였고, 1854년에는 동향총국(东乡总局)의 단련(团练)을 조직하여 반란 진압을 도운 공로로 내각중서(内阁中书) 직함을 받았다. 이후 이홍장·증극번 등과 알게 되면서 막료로 뽑혀 양무·외교 사무에 간여하게 되었는데, 1869년 상해의 강남기계제조국 방판(帮办)이 되었고, 1878년 천진해관도(天津津海关道)로 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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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定河道 游智開 및 辦理機器·軍械局의 候補道 許其光·劉含芳, 候補道 王德均 등에게 지시하여 먼저 함께 [조선의 상황] 일체에 대해 물어보도록 하였습니다. 해당 도대 등은 연일 그와 필담을 나눠 조선의 대략적인 정세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機器局·製造局·軍械所 및 西沽의 화기·화약 비축 창고로 데리고 가서 두루 관람시켜 실마리를 알게 하였습니다. 신은 뒤이어 9월 22일 卞元圭를 불러내어 만났는데, 또한 그와 필담을 매우 오래 나누었습니다. 그는 시국에 상당히 신경을 쓰며 한쪽에만 사로잡혀 선입관을 고집하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으며, 그 언사의 취지를 보면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깊게 지니고 있어, 조속히 사졸을 정돈하여 훈련시키고 利器를 구매·제조하여 뜻밖의 일에 대비하고 싶어 합니다. 외국의 침략과 압박에 두려워하고, 사태가 급박하여 기다릴 수 없다고 보는 상황이나, 우리의 성원에 기대 절실하게 보호를 구하는 뜻은 자주 그 말에서 드러납니다.
이에 정조여 등을 감독하여 때와 장소 및 조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바에 맞추어 적절한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였습니다. 기계 제조는 반드시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練兵과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연병을 하면서 사용할 기계는 갑자기 직접 제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이것은 기계 구매와도 관련이 됩니다. 현재 조선에서 기계 제조를 모색하고 있으니, 응당 쉽고 다급한 것을 골라 시행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탄환·화약 및 무기 수리 기계는 반드시 적절하게 헤아려 구입해야 합니다. 조선 왕성에 현재 병력 3만이 있는데, 마땅히 포병·기마병·보병에 따라 사용하는 기계의 표준을 나눠야 합니다. 포병은 크루프 後裝式 철강포로 하고, 기마병은 前裝式·後裝式 소총을 각기 반씩 갖추게 하며, 보병의 3분의 2는 전장식 소총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후장식 소총을 사용하게 합니다. 연해 요충지의 軍需나 雷·電機學 또한 조선에서 순차적으로 역량을 헤아려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에서 와서 배우거나 가서 가르치는 문제를 보자면 조선 군신의 처음 의도는 우리 쪽에서 가서 가르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義州와 奉天에서 새로 설치한 安東縣은 단지 압록강만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저들의 의도는 기계를 구매하고 교사를 초빙하는 것으로, 중국이 능력 있는 인원을 선발하여 파견하면 安東에 공장을 설치하여 기계 제조와 병력 훈련의 요체를 傳習받게 되면, 언제든지 천진에 사람을 보내 소식을 통하고 견학하는 데에도 편리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계를 서양에서 구매해도 해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시간이 걸리니, 응당 조선에서 먼저 총명한 견습공을 선발하여 천진에 보내면 이미 갖추어져 있는 기기를 가지고 여러 기술자들의 기교를 배울 수 있으니 [이 방법이] 절반의 노력으로 두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강이나마 그 입문을 깨우친 다음에 구입한 기계와 함께 귀국하게 하면 가르치는 사람 또한 쉽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계 제조는 마땅히 와서 배운 다음 이후에 가서 가르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총부대와 포병부대의 훈련 방법은 다릅니다. 만약 먼저 몇 명의 인원을 파견하여 가서 가르치게 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 제식훈련이나 구령, 신호 등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염려가 있습니다. 먼저 조선의 하급무관 수십 명을 선발하여 천진에 보낸 다음 각 부대에 분산 배치시켜 아침저녁으로 훈련시키면 항상 보고 들으면서 익숙해져 습관이 될 것이라 소득이 비교적 많을 것입니다. 소총과 대포가 구매되면, 그 다음에 중국 측 교련 인원과 함께 돌아가 그들이 교육을 도와주면 차츰 서로 번갈아 傳授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병 역시 마땅히 와서 배우고 가서 가르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해당 도대 등이 이러한 몇 가지 문제를 조선 사신과 왕복하면서 상의하여 그 節略을 만들었는데 모두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실행의 느리고 빠름, 기계 구매의 많고 적음은 조선 측 경비의 넉넉함과 부족함을 살펴야 하는 것으로 조선 사신이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응당 돌아가서 국왕에게 보고하여 대신과 적절하게 상의·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기기국에 지시하여 먼저 전장식 라이플 소총 10자루와 거기에 맞는 탄약, 탄피를 헤아려 짝을 맞추고, 후장식 기병용 마우저 소총 10자루와 탄환 2천 개를 해당 사신에게 주어 휴대하여 귀국하게 함으로써 조선이 그 사양을 보고 대략적인 내용을 조금 알게 하였습니다. 이미 卞元圭에게 한양으로 돌아가 유지를 기다리게 한 것 외에, 삼가 천진에 와서 기계 제조 및 학습, 연병을 하는 문제에 관해 논의한 각 조항을 초록하여 올려 보내니 살펴봐 주십시오. 삼가 예부에 지시하여 조선 국왕에게 자문을 보내 그 편의 여부를 직접 헤아려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게 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이유원이 신에게 보낸 서신 또한 즉 적절하게 답변을 보내 알아들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조선의 기계 학습 및 제조와 연병, 기계 구매에 관하여 유지를 받들어 처리한 것에 대해 삼가 주접을 갖추어 역참을 통해 답장을 올리니, 이것이 타당한지 여부를 황태후·황상께서 살펴보시고 훈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광서 6년 9월 일.
별지: 「북양대신 이홍장의 奏摺과 附片」:조선의 기계 제조 및 연병에 관한 네 가지 논의를 片奏로 올립니다.
 
2. 추가합니다. 신이 천진해관도 정조여 등을 감독하여 조선의 기계 제조 및 연병에 관한 일을 묻고 논의하여 대략적인 기준을 갖춘 것에 대해서는 이미 주접을 갖추어 아뢴 바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사신 卞元圭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조선의 무비를 조속히 강구해야 했는데 지금까지 지체된 것은 실로 外蕃이 사사로이 무기를 구매하는 것은 청조의 금지령을 위반하기 때문이었습니다.주 002
각주 002)
이것은 청 초기 조선과의 관계에서 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또는 양국간의 사대-자소가 확립되기까지 청조가 조선의 군비 강화 움직임(이를테면 築城이나 화약 재료인 硫黃·焰硝의 밀수) 등에 대해 꾸준히 감시하고 견제하였던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홍성구, 「청질서의 성립과 조청관계의 안정화: 1644~1700」, 『東洋史學硏究』 제140집, 2017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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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가 이미 긴박해져 비로소 감히 하소연하게 되었는데, 혹시 너무 늦어 급한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조선의 義州는 營口로부터 겨우 600里 떨어져 있으며, 영구에서 輪船을 타면 천진에 직접 도착하는 데 며칠이면 되며, 혹은 천진의 입구에서 바다로 동쪽을 향해 가면, 조선 황해도의 長淵·豐川府에 곧바로 도달할 수 있으니, 장래 기계 운송과 문·무 관원의 유학은 海路를 이용하면 편리하고 빠를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육로가 아닌 해로를 이용하여 중국에 오는 것은 기존] 定例의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긴요한 군수 문제이므로 지나치게 그에 얽매여 도리어 그 嚮化의 정성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같습니다. 그래서 정조여 등에게 지시하여 해당 사신과 장정 4조를 논의하게 함으로써 융통하는 가운데 제한하는 뜻을 대략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外藩에서 중국에 사람을 파견해 무비를 학습하는 것은 본래 처음 있는 일이므로 응당 시세에 따라 변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인원의 선발·파견 조항은 그 여비를 직접 준비하게 하여 경비 제공의 번거로움을 피하되, 여전히 거주지를 빌려주는 것을 허락하여 위로하고 품어주는 정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왕래하는 도로에 관한 조항은 다만 배우러 오는 하급 문·무관원과 병졸, 기술자의 왕래, 기계 운송에 대해서는 잠시 해로를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되, 이밖에 조공 및 일상적인 公事는 여전히 반드시 기존의 법도를 준수[하여 육로로 왕래]하도록 하여, 원칙과 임기응변 사이에서 조절하면 또한 그다지 심한 폐단은 없을 것입니다. 증명서 발급에 관한 조항은 조사에 대비하고 단속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며, 수행원을 반드시 많이 파견할 필요는 없고, 또한 사사로이 판매용 화물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면 관세의 결손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공문을 여러 방면에 나누어 자문으로 보내는 조항은 만약 예전의 원칙에 따른다면 조선이 보내온 공문은 반드시 예부를 통해 다른 부서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연병, 기계 제조 및 학습, 기계 구매에 관한 사무는 모두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되는 것이니, 설령 모든 일을 예부에서 검토한 다음 전달하게 하면, 예부에 번거로움이 늘어나는 데다가 일 처리의 시기를 그르칠 수 있습니다. 지금 조선에 지시하여 예부 및 북양아문에 각기 자문을 나누어 보내게 함으로써 우여곡절을 피하게 하고 신속함을 보일 수 있게 하면 여전히 신이 수시로 주를 올려 처리하고자 합니다. 무릇 이 네 가지 사항은 모두 이미 여러 차례 고려를 거듭하면서 정밀하고 상세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삼가 논의한 유학 관련 장정을 초록하여 올리니, 이것이 타당한지 여부를 황태후·황상께서 살펴보시고 지시를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附片을 갖추어 주를 올립니다.
광서 6년 9월 일.
별지: 「(중국에)와서 학습하는 것에 관한 장정을 마련하였습니다」: 조선의 卞元圭와 海關道 鄭藻如 등이 조선의 문·무 관원이 천진에 와서 제조 학습 및 조련에 관하여 논의한 장정.
 
3. 삼가 조선의 자문전달관 卞元圭와 천진해관도 鄭藻如 등이 조선의 문·무 관원이 와서 기계 제조 및 학습과 연병하는 것에 관해 논의한 장정을 초록하여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1) 38명을 선발·파견하여, 東·南 양국에 나누어 배치하여 제조를 학습하게 하고, 두 명의 위원이 나누어 관리한다. 통역관으로 말을 전달하는 사람은 東局이 2명, 南局이 1명을 사용한다. 또한 총명하고 건장한 병사 40명을 선발·파견하여 親軍의 槍砲營에 나누어 예속시켜 학습·조련 시키고, 역시 두 명의 위원이 나누어 관리한다. 통역관으로 말을 전달하는 사람은 2명이다. 이상 도합 87명을 정액으로 하고, 여비와 식비 등은 모두 조선에서 직접 준비하되 다만 거주지는 중국이 빌려준다.
2) 조선국 조공 사신이 왕래할 때 통과하는 도로는 반드시 영원히 기존 법규를 지켜 [육로를 이용해]야 한다. 다만 이번에 인원을 파견하여 학습하게 된 것은 파격적인 조치에 속하므로, 만약 직접 해로를 따라 움직이면 더욱 편하고 신속할 것이다. 게다가 제조·훈련 등의 일은 1~2년 안에 당연히 그 입문을 탐구할 수 있어 그 기간이 지나치게 길지는 않을 것이니, 주접과 자문을 통해 적절하게 변통하여 잠시 해로로 왕래하는 것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통은 조정에서 처리하는 [조공 등의] 일상적인 공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주 003
각주 003)
원문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듯하여 그 뜻이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앞서도 언급하듯이 종래의 조공 사무나 공문 전달 등은 반드시 육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기존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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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에 와서 배우는 하급 무관과 병졸, 학도, 위원, 통역, 수행원 외에 그 밖의 다른 사람과 다른 일은 이것을 선례를 삼아 처리[해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조선이 중국에 대신 무기·기계 등을 구매해달라고 요청한 문제에 대해서는 구매하여 도착한 다음 중국에서 조선에 자문을 보낸 다음 비로소 위원을 해로로 파견하여 수령해 갈 수 있다. 위원, 문·무 관원, 학도, 통역 등은 북양대신아문에서 [그 기입 사항을 써넣지 않은] 공백 증명서를 발급하여 조선에 넘겨주면, 조선에서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을 기입하여 발급하고, 또한 그 명단을 책으로 작성하여 북양대신아문 및 예부에 올려보내 비치하여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은] 중국에 도착한 후 중국의 법규를 준수하고, 교육에 열중해야 한다. 만약 혹은 통제를 벗어나면, 중국 관원이 조선에서 파견해 온 위원에게 넘겨 조사·처리하게 한다. 수행원은 꼭 필요한 수에 그쳐야 하며 많이 파견할 필요는 없고, 또한 사람 수에 따라 각기 증명서를 발급하고, 명단 끝에 덧붙여 기록하며, 모든 통제를 지켜야 하며, 사사로이 판매용 및 다른 화물을 가지고 와서는 안 된다.
3) 연병, 기계 제조 및 학습, 기계 구매 등 軍務 관련 공문은 조선 국왕이 예부 및 북양대신아문에 나누어 자문을 보냄으로써 그 처리를 편하게 한다. 삼가 조선에서 와서 기계 제조 및 연병에 대해 배우는 문제의 각 조항에 대해 목록을 작성하여 살펴보시도록 삼가 올리는 바입니다. 제조에 관한 일은 포함되는 분야가 너무 많아 어려움과 쉬움, 늦음과 빠름을 나누어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이 각종 공장을 창설한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 그 비용과 군비는 약 수천만이었고, [이런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 입문을 찾아낸 다음에야 비로소 반드시 직접 제조해야 하는 것과 직접 제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조선을 위해 계획하자면 마땅히 쉽게 처리할 수 있으면서 다급한 것을 골라 시행해야 합니다. 예컨대 소총과 대포는 이미 구매하기로 하였지만, 탄환은 반드시 계속해서 따로 보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오로지 구매에만 의존한다면 반드시 늦고 빠름에 의지하기 곤란한 점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직접 제조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기는 항상 훼손되어 수리할 필요가 있는데 반드시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이것 또한 반드시 직접 제조해야 하는 것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대개 먼 길을 가자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높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사용하는 기계는 후장식 소총 탄환을 제작하는 경우 반드시 기계를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밖에는 반드시 증기기관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응당 인력으로 움직이는 기계를 선택하는 편이 적절하며, 증기로 움직이는 하나둘 갖추어 이동용 선반으로 깎고 구멍을 뚫게 하면 될 뿐입니다. 무기 가운데 화약이 가장 중요한데, 서양 화약의 뛰어난 점은 硝石을 완벽하게 정제·압착하여 고운 가루로 만드는 것인데, 그 연마공정은 절구로 찧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인력을 이용하는 절구를 사용하면] 기계용 맷돌선반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염초 정제 기구만을 구입하고 압착 기구는 모두 인력을 사용하면 그 비용은 대략 10에 6~7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소총 탄환과 총포 탄피를 제조하는 것은 전체 기계를 구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각종 무기와 기계 구입에 관한 논의가 결정되면, 즉 조선의 나이 15·16세에서 20세인 사람 수십 명을 선발하고, 兩局에 나누어 들여보내 각종 기예를 학습시킵니다. 선택된 학도는 설계·증기기관 이외에는 마땅히 조선에서 종전부터 구리·철·나무 수공에 종사한 기술자 가운데 생각이 민첩하고 뛰어난 사람을 골라 파견해서 배우게 해야 합니다. [사전에 아무런 준비가 없는 사람을 파견하여] 갑자기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제조학은 끝이 없을 정도로 무궁하게 넓기 때문입니다. 1년 후 대략 요령을 파악하기를 기다리고, 또한 구매한 기계가 도착하였을 때 같이 귀국하게 하면 스스로 파악한 것이 있어 망연자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4) 본래 설계[畫圖: 디자인]는 수학[算學]에 기초하고 있고, 기계 제조의 근본이므로, 반드시 나이 15·16세의 총명하고 각오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文義에 능통한 사람 4명을 선발하여 나눠서 학습시켜야 합니다. 工程師의 재능은 여기서 나오며, 그 학문의 경지는 끝이 없습니다.
5) 木型 공장. 무릇 한 가지 물건을 제조하는 데 반드시 먼저 木型을 만드므로, 마땅히 조선의 木匠 가운데 지력이 있으면서 나이가 20세 내외인 사람 4명을 선발하고, 나누어 배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6) 모래 주형공장[翻沙廠]. 이 기술은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구리와 쇠를 녹이는 것은 안목을 길러 불꽃 색깔을 구별하고 재료를 배합해야 하므로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나이가 젊고 혈기왕성하고 체력이 있고 지력이 있는 사람 4명을 선발하고, 나누어 배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7) 탄환공장, 구리코일[捲銅] 공장. 기계가 복잡하여 마땅히 4명을 선발하고, 東局에 들어가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8) 기계공장[機器廠]은 반드시 넉넉하게 선발하여 파견해야 하는데, 마땅히 나이 15·16세인 사람 4명을 선택하고, 선반[車床]에 따라 그 스승의 교육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반 기술은 기계로 기계를 제작하는 것이므로, 선반용 칼날을 잘 사용하고, 톱니바퀴를 잘 분배할 수 있게 되어야 초보에 입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멍뚫기는 끌과 송곳을 사용하여 손으로 기계를 제작하므로, 기술이 비교적 어렵습니다. 소총 수리 기술 또한 학습해야 하므로, 이 4명을 兩局에 나누어 배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9) 증기보일러 공장[汽機鍋爐廠]은 반드시 나이 20세 이상인 사람 4명을 선발하고 증기, 석탄난로로 나누어 배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10) 정련공장[熟鐵廠?]은 반드시 조선에서 예전부터 鐵工에 종사한 사람 4명을 선발하고, 제조·보일러로 나누어 학습시킵니다. 조선의 정련 기술자는 본래 부족하지 않으니, 모형을 직접 모방할 수 있을 터이지만, 다만 보일러와 펀칭[釘鐵?] 기술을 학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11) 화기공장[火器廠]은 반드시 나이 15·16세인 사람 4명을 선발하여 나누어 학습시키고, 도화선[拉火]·폭약 분야를 배합합니다.
12) 전기방[電氣房]은 반드시 나이 20세 이내인 사람 2명을 선발하여 南局에 전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電引·電機·電表 등 각종 기술은 水雷·引電에 쓰기 위한 것이다. 電氣學은 그 이치가 아주 정밀하고, 기관이 오묘하여 깊이 공부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총명함이 남을 능가하는 사람이 배워야 역시 점차 입문할 수 있습니다.
13) 화약 제조는 응당 조선에서 예전에 이 기예를 배운 사람 3명을 선택하여 東局에 전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나이가 젊을 필요는 없으며, 이미 입문하여 스스로 신중함을 알고 있으면 학습의 진보가 비교적 쉽습니다.
14) 强酸[鏹水] 제조는 마땅히 나이 20세 내외로 총명한 사람 1명을 선발하고 東局에 전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이상 도합 약 38명을 兩局에 나눠 배속시켜 학습하게 해야 합니다. 거주지는 兩局에 각기 기술자의 주택이 있으니 임대하고 구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병과 기기 구매 두 가지 일은 조선의 자문전달관의 서신에 따르면 왕성에 현재 병력 3만이 있는데, “기마병이 그중 1을 차지하고, 보병이 그중 9를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에 따라 연병을 하자면 마땅히 포병·기마병·보병을 구분하여 기계 사용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마병 3천이 이미 기존 정원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보병 2만 7천 가운데 응당 3천을 포병으로 분리해야 합니다. 대포는 그 수가 적어도 되지만, 포병 훈련은 결코 적게 해서는 안 됩니다. 기마병 3천은 응당 기병용 소총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모두 후장식 소총을 사용하면 경비가 너무 커지지만, 후장식 소총을 사용하지 않으면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전장식과 후장식을 각기 반씩으로 하고, 후장식은 독일의 마우저 소총을 사용하고, 전장식은 영국 엔필드 라이플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 나머지 보병 2만 4천 가운데 4천 명은 雜器를 나눠 주고, 2만 명이 소총을 잡게 하는데, 혹은 절반은 후장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경비는 아마 마련하기 곤란할 터이니, 응당 3천 자루는 후장식으로 하고, 1만 7천 자루는 전장식으로 하면 비용이 비교적 절약되고, 점차 후장식으로 교체해 나가면 혹은 지탱할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포 구입은 응당 정교함을 추구해야 하는데, 영국과 프랑스의 전장식 대포를 구입하느니 차라리 독일의 크루프 후장식 철강포를 구입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이 대포는?] 조선의 연해 요충지에는 거치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사정거리(?)로 따진다면, 최소한 역시 반드시 4파운드짜리 좁은 차륜의 후장식 대포 18문, 후장식 야전포(?) 18문이 필요하며, 포탄과 함께 계산하면 비용이 이미 6~7만 냥이고, 전장식·후장식 소총과 탄환·탄피 등의 비용까지 합치면 대략 20여 만 냥이 됩니다. 그러나 연해 요충지에 설치하는 비용은 여전히 이 숫자 내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장래에 순차적으로 힘을 헤아려 거행해야 할 것이고, 여기서 더욱 나아가 수뢰·전기학에 미쳐야 할 것입니다.
연병에 관해서는 마땅히 먼저 와서 배우고, 그 다음에 가서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소총 부대와 포술은 각기 다른 점이 있는데, 만약 먼저 몇 사람을 파견하여 가르치고자 한다면, 현재 아직 익힐 수 있는 무기·기구도 없고, 제식훈련이나 구령·신호 등도 두루 미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언어도 통하지 않아 모든 일을 통역에게 의지해야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이 두루 멀리 미치기 어려우며, 배우는 사람의 心志 또한 믿고 따를 바가 없으니, 반드시 먼저 조선의 총명하고 건장한 하급무관과 병졸 수천을 선발하여 천진의 보병·포병부대에 나누어 배속시키고 아침저녁으로 전문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소총과 대포를 구매하여 받으려면 또한 장차 1년이 걸리는데, 1년 동안 해당 무관·병졸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의지로 구하고 마음으로 얻는다면 반드시 대략적인 기초를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파견된 이 인원들과 기계가 함께 돌아가게 하되 [같이 따라간 중국] 교관이 분야를 나누어 가르침을 도와주면, 가르치는 사람은 쉽게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연병은 한층 반드시 먼저 와서 배우고 그 다음에 가서 가르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에 마땅히 소총과 대포를 대리 구매하기로 약속하여 논의한 경비를 뒤에 덧붙여 열거합니다.
 
3천 명을 포병으로 할 경우.
크루프 4파운드짜리 후장식 대포 18문을 사용, 거치대[車架]와 함께 가격은 약 대포 1문당 銀 1,600냥으로 총액 은 27,000냥. 대포 1문당 포탄 300발이면, 모두 5,400발로 가격은 약 포탄 1개당 은 1냥으로 총액 은 5,400냥.
크루프 2파운드짜리 후장식 야전포(?) 18문을 사용하면, 1문당 포탄 300발에, 가격은 전과 동일.
 
3천 명을 기마병으로 할 경우.
후장식 기병용 소총 1,500자루를 사용하면, 1자루당 가격은 약 은 6냥으로, 총액 은 9천냥. 1자루당 탄환 500발로 모두 7만 5천 발을 구입할 경우 1천발당 탄환 가격은 약 은 22냥으로, 총액 은 16,500냥.
전장식 기병용 소총 1,500자루를 사용하면, 1자루당 가격은 약 은 3냥 6전이며, 총액 은 6,540냥.
 
2만 명을 서양식 소총 보병부대로 할 경우.
후장식 소총 3천 자루를 사용하면, 1자루당 가격은 약 은 9냥으로, 총액 은 27,000냥. 1자루당 탄환 500발로 모두 150만 발을 구입하면 1천발당 탄환 가격은 약 은 22냥으로 총액 은 33,000냥.
전장식 소총 1만 7천 자루를 사용하면, 1자루당 가격은 약 은 3냥으로, 총액 은 51,000냥. 탄환 1,700만 발을 합하면, 1만발당 가격은 약 은 8냥으로 총액 은 13,600냥.
 
이상 도합 은 22만 1,440냥.

  • 각주 001)
    鄭藻如(1824~1894)는 자가 지상(志翔), 호가 예헌(豫轩. 玉轩)으로 광동성 향산(香山. 오늘날의 中山市) 출신이다. 1851년 举人에 합격하였고, 1854년에는 동향총국(东乡总局)의 단련(团练)을 조직하여 반란 진압을 도운 공로로 내각중서(内阁中书) 직함을 받았다. 이후 이홍장·증극번 등과 알게 되면서 막료로 뽑혀 양무·외교 사무에 간여하게 되었는데, 1869년 상해의 강남기계제조국 방판(帮办)이 되었고, 1878년 천진해관도(天津津海关道)로 임용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이것은 청 초기 조선과의 관계에서 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또는 양국간의 사대-자소가 확립되기까지 청조가 조선의 군비 강화 움직임(이를테면 築城이나 화약 재료인 硫黃·焰硝의 밀수) 등에 대해 꾸준히 감시하고 견제하였던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홍성구, 「청질서의 성립과 조청관계의 안정화: 1644~1700」, 『東洋史學硏究』 제140집, 2017을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원문에 약간의 오류가 있는 듯하여 그 뜻이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앞서도 언급하듯이 종래의 조공 사무나 공문 전달 등은 반드시 육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기존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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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기 제조 및 병력 훈련 등의 처리 문제에 대한 주접과 장정(章程)을 자문에 보낸다고 북양대신(北洋大臣)이 총리아문(總理衙門)에 보낸 서신 자료번호 : cj.k_0002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