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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군기(軍器) 제조를 배우러 온 기술자 등은 이미 기기(器機)와 제조(製造)를 학습하도록 하였다고 군기처(軍機處)에서 총리아문(總理衙門)에 보낸 주접(奏摺) 초록(抄錄)과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등 첨부 문서

조선에서 軍器 제조를 배우기 위해 파견하여 天津에 온 위원·기술자 등은 이미 機器, 製造 兩局에 보내 학습하도록 하였습니다.
  • 발신자
    軍機處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1년 12월 4일 (음)(光緖七年十二月四日) , 1882년 1월 23일 (光緖七年十二月四日)
  • 문서번호
    2-1-2-12 (385, 538b-542b)
12월 4일 軍機處에서 李鴻章의 다음과 같은 주접 초록을 보내왔다.
 
조선 委員이 기술자·학도를 데리고 天津에 와서 무기 제조를 학습하는 일에 대해 현재 이미 각 위원을 나누어 보내 적절히 처리하였다는 점을 삼가 주접으로 아뢰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에서 天津에 사람을 보내 무기 제조의 학습, 練兵, 기계 구입 등을 하겠다고 간청한 문제는 전에 臣이 軍械·製造局의 위원들을 독려하여 節略과 章程을 적절하게 마련하도록 하였습니다. 작년 9월 이 점에 대해 상주하여 유지를 청한 결과 조선 국왕이 적절하게 편리한 바를 헤아려 스스로 짐작하여 처리하게 하라는 상유를 받은 바 있습니다. 올해 3월 조선 국왕은 陪臣 趙龍鎬가 기술자·학도를 데리고 天津에 오도록 결정하였고, 미리 副使直 李應浚에게 咨文을 가지고 와서 제게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뒤이어 바로 李應浚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趙龍鎬가 병으로 작고하여 조선에서는 다시 지연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9월쯤에야 비로소 陪臣 吏曹參議 金允植 등이 학도 등 총 69명을 인솔하여 와서 먼저 기계 제조의 학습을 할 터인데, 마침 해로가 얼어붙어 육로로 入關한다고 합니다. 이미 禮部를 통해 上奏한 바 있습니다.
11월 28일 朝鮮 陪臣 金允植 등이 保定에 와서 조선 국왕이 제게 보낸 자문을 올리면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자못 시대의 어려움을 파악하여 武備를 강구함으로써 自强의 계책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臣은 金允植, 卞元奎 등을 만나 모든 사항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고, 데리고 온 위원·기술자·학도를 모두 天津에 데리고 가서 機器·製造局에 나누어 배속시키고 전에 議定한 章程에 따라 정성껏 학습하도록 하였습니다. 아울러 각 委員에게도 지시하여 조선의 기술자들을 독려하며 진심으로 가르침으로써 반드시 技藝를 연성하고 돌아가 그들이 귀국한 다음 서로 傳授할 수 있도록 꾀하였습니다. 그리고 金允植 등에게는 각 기술자·학도 등을 단속하여 局의 규정을 삼가 지키고 製造를 講求하며, 밖에 나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조금이라도 나태하거나 그르치는 문제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삼가 총리아문과 예부에 자문으로 알리고 아울러 조선 국왕에게 자문으로 답장하는 것 외에, 조선 국왕이 두 차례 보낸 자문과 명단을 초록하여 올리니, 황태후·황상께서는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광서 7년 12월 4일에 軍機大臣은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다.
해당 아문에 알리라. 첨부문서도 아울러 발송하라.
이상.
 
첨부문서:삼가 조선 국왕이 두 차례 보낸 자문을 초록하여 살펴보시도록 올립니다.
별지: 「조선 국왕 자문」:趙龍鎬를 天津에 파견하여 위원·기술자 등을 인솔하여 武備를 학습시키기로 하였으니 미리 李應浚을 보내 자문으로 보고합니다.
 
1. 「조선 국왕의 자문」
조선 국왕이 咨文으로 알립니다.
광서 6년 11월 1일 자문전달관 行副使直 卞元奎가 京師로부터 돌아오면서 휴대하여 온 禮部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살펴보건대 기계 제조와 연병에 대해 곡진히 계획을 세워주시는 성지를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생각건대, 조선은 구석진 모퉁이에 위치하면서도 큰 은혜를 도타이 입어, 매번 천지와 같이 감싸주시는 인자함을 받았고 훌륭히 다스려주시는 德을 유독 많이 입었습니다. 지금 天津器機製造局의 利器는 바로 武庫의 秘藏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선발된 인원이 가서 배우도록 해주시고, 뒤이어 계속 인원을 파견하여 와서 가르치도록 해주시겠다고 하니, 본인[當職]은 온 나라의 신민들과 함계 북쪽을 바라보며 송축할 뿐입니다. 이미 定期使行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대략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계 제조 학습 항목은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되기에, 陪臣 吏曹參議 趙龍鎬를 선발하여 기술자들을 인솔하여 天津에 가게 하는 것 외에 司譯院의 副司直 李應浚에에 전담 임무를 주어 직접 자문을 가지고 가서 해로를 살피고, 天津에 이르러서는 미리 정착할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미리 자문으로 알리오니 번거롭더라도 귀 아문에서 살펴보시고 대신 상주하여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광서 7년 3월 29일 발송, 6월 1일 도착.
별지: 「조선 국왕 자문」:金允植으로 고쳐 파견하여 위원·기술자 등을 인솔하여 天津에 와서 軍器 제조를 학습하게 하겠습니다.
 
2. 「조선 국왕의 자문」
조선 국왕이 기술자를 선발하여 천진 제조국에 보내 기계 제조를 학습하는 문제에 대해 자문을 보냅니다.
작년 겨울 자문전달관 卞元奎가 京師에서 돌아와 황상의 유지를 전달하였는데, 節略·章程 등의 문건을 내려주시고 조선에서 적절하게 참작하여 처리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미천한 제가 사사로이 아뢰었는데 우악한 은혜가 나왔으니, 북쪽을 보고 송축하면서도 너무나 송구합니다. 조선은 至誠으로 事大를 하면서 字小의 은혜를 두터이 받았습니다. 또 中堂大人께서 내·외를 똑같이 대해주는 聖朝의 덕을 확장시키고 友邦끼리 같이 원수에게 맞서는 의리를 잘 헤아려 주셔서, 일에 앞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살펴주시니 조선이 스스로 계획해도 이에 미치지 못할 바라 자나깨나 감사함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일들을 거행하고자 하지만, 일의 정세를 살펴보면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을 찾아 긴급한 것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 근심으로 여기는 武備의 소홀함은 器械가 不利한 데 말미암고, 器械의 불리함은 다만 工技를 배우지 못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때문에 현재 병사들은 익힐 만한 무기가 없고, 이미 구입한 무기는 손상되어 번번이 버려집니다. 이 때문에 온 나라의 논의는 모두 기술자들을 선발하여 製造를 배우는 것이 지금 시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마땅히 우선시해야 할 것이라고 일컫습니다. 이에 陪臣 吏曹參判 金允植에게 전담 임무를 주어 기술자·위원들을 데리고 귀 아문으로 가서 공경히 지시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번거롭더라도 황상께 대신 전달해주셔서 시행되도록 해주신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일행 人員의 명단은 별도로 목록을 갖추는 것 외, 이에 마땅히 자문으로 알리니 살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별지: 「명단」:조선의 위원·학도·번역·수행원의 명단.
 
3. 「명단」:朝鮮國 위원·학도·통사·수행원의 이름과 인원수
領選使 金允植
從事官 尹泰駿
官弁 白樂論
譯官 崔性學
醫員 柳鐘翕
伴倘 朴泳鈺 尹泰驛
學徒 高永喆 朴台榮 尚澐 李熙民 李昌烈 趙漢根 李苾善 秦尚彥 高永鎰 金光錬 金台善 趙台源 安昱相 安浚 李章煥 李南秀李□崔圭漢 金聲 鄭在圭 金永元 韓得俊 黃貴成 金興龍 金泰賢 河致淡 金聖元 張榮煥 崔同順 朴奎性 皮三成 洪萬吉 宋景和 安應龍崔志亨 金成孫 朴永作 金德鴻
通事 鄭麟興 李文熙 崔志華
隨從 順得 仁錫 學甫 長孫 善基 萬吉 根成 龍成 興福 在吉 公祿 千萬 壽鳳 學祚 貞哲 同伊 仁石 石伊 漢傑
別遣堂上 卞元圭 堂下 李根培
 
광서 7년 9월 26일 발송, 11월 28일 도착.
 
광서 7년 12월 4일, 軍機大臣은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다.
알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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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군기(軍器) 제조를 배우러 온 기술자 등은 이미 기기(器機)와 제조(製造)를 학습하도록 하였다고 군기처(軍機處)에서 총리아문(總理衙門)에 보낸 주접(奏摺) 초록(抄錄)과 조선국왕의 자문(咨文) 등 첨부 문서 자료번호 : cj.k_0002_002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