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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조선의 대리 공사가 출사(出使) 일본대신을 만났다고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낸 문서와 관련 답장 서신 첨무 문서

조선의 대리 公使 金嘉鎮이 이미 出使日本大臣 黎庶昌을 만나보았습니다.
  • 발신자
    北洋大臣 李鴻章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8년 4월 30일 (음)(光緖十四年四月三十日) , 1888년 6월 9일 (光緖十四年四月三十日)
  • 문서번호
    2-1-3-74 (1350, 2481b-2482a)
4월 30일, 북양대신 이홍장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다.
 
駐紮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 升用道補用知府 袁世凱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삼가 2월 중에 黎庶昌 駐日本大臣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조선의 駐日本參贊 대리 公使 金嘉鎮이 두 차례 문 앞에서 片文을 건넸을 뿐, 전혀 아직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응당 저는 곧바로 조선 정부에 전달해 알렸고, (조선 정부는) 해당 參贊에게 서신을 보내 찾아가 만나보라고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黎庶昌 大臣에게) 서신으로 답장을 보낸 외에, 마땅히 보고서를 갖추면서 아울러 黎庶昌 大臣이 보내온 서신 및 제가 답장한 서신을 첨부하여 李 中堂大人께 검토해 주십사 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4월 9일 다시 黎庶昌 大臣이 보내온 다음과 같은 답장 서신을 받았습니다.
3월 중순에 해당 參贊 金嘉鎮이 비로소 찾아와 만났습니다.
응당 黎庶昌 대신의 답장 서신을 첨부해 올리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보고를 받았으므로) 이에 마땅히 貴 아문에 咨文으로 알리니, 청컨대 번거롭더라도 검토해 주십시오.
별지: 「出使日本大臣 黎庶昌이 袁世凱에 보낸 답장 서신」:조선의 金嘉鎮 대리 公使가 이미 찾아와 만났는데, 실로 완곡하게 힐문해주신 덕분입니다.
 
1. 「清摺 초록」주 001
각주 001)
台端은 서신에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경어(敬語)다.
닫기
삼가 黎庶昌 駐日本大臣의 답장 서신을 올려 보내니, (李 中堂大人께서) 검토해 주십시오.
 
慰亭 仁兄大人께.
2월 보름날의 서신을 받아 읽었으며, 모든 내용을 받들었습니다. 조선 정부의 기록을 살피시고 우여곡절을 명확히 해 주시니, 삼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金嘉鎮 대리 공사는 제가 지난달 부임한 이래로, 문 앞에 와서 片文을 건넨 뒤에도 일본인들과의 연회에서 종종 만나 제법 교제하게 되었지만, (저의) 관아로 인사하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3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통역관을 데리고 와서 방문하였습니다. 분명히 조선의 외무대신이 서신을 보내와 독촉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실로 귀하께서 완곡하게 견책해주신 덕분입니다. 현재 이미 약속을 잡아 연회에 초대하였고 신경 써서 꼼꼼히 준비하고 있으니, 분명히 점차 친밀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의 교섭 업무는 모두 특별한 것이 없으며, 순조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무대신은 오쿠마 시게노부로 바뀌었고, 이토 히로부미는 추밀원장이 되었으며, 내각총리대신을 승계한 사람은 구로다 기요타카입니다. 국면에 변화가 적으니 조정의 방비에도 당분간은 특별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동북 방면에 대해서만 대비를 하면 될 것입니다.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행복을 축원합니다. 저 黎庶昌이 삼가 올립니다.
3월 26일.

  • 각주 001)
    台端은 서신에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경어(敬語)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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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리 공사가 출사(出使) 일본대신을 만났다고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낸 문서와 관련 답장 서신 첨무 문서 자료번호 : cj.k_0002_0030_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