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왕이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는 비적(匪賊)을 길림장군(吉林將軍)에게 지시하여 조사해 줄 것을 청했다고 총리아문(總理衙門)이 동치제(同治帝)에게 올리는 상주(上奏)
조선 국왕이 咨文을 보내 진술하기를, 비적들이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니 길림장군에게 지시하시어 착실히 상세하게 조사하도록 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주 001
3월 8일 본 아문에서 다음과 같이 上奏하였다.
조선 국왕이 러시아인과 교전한 상황을 진술한 咨文을 받아 禮部에서 대신 상주하면서, 諭旨를 내려 조사해줄 것을 奏請하는 奏摺을 공손히 갖추어 아뢰오니 皇上께서 살펴봐 주십시오.
동치 6년 3월 1일, 禮部가 조선 국왕이 러시아인과 교전한 상황을 진술한 咨文에 근거하여 대신 上奏한 奏摺에 대하여 軍機大臣이 다음과 같은 上諭를 받았다고 전해왔습니다.
해당 아문에 알리라.
이상. 이상과 같은 諭旨가 전달되어 왔습니다.
살피건대, 조선 국왕은 원 咨文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동치 5년 12월 18일 子時, 비적 1,000명이 무리를 이루어 三洞山 부근을 넘어왔습니다. 매복하였던 우리 군이 일제히 총을 쏘아, 20리에 걸쳐 혼전을 벌였습니다. 강가 모래톱의 절반 정도 얼음이 언 곳에 이르자 匪賊들은 어지러이 흩어지며 서로 건너려고 다투었습니다. 총을 맞고 땅에 쓰러진 자들도 즉시 다른 사람들이 둘러 메고 함께 돌아갔으며, 얼음을 밟고 건너려다 빠져 죽은 자 또한 많았습니다. 牛馬 60필, 가마솥 30개, 수레 20량을 포획하였습니다.
또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최근 러시아인들이 자주 침범하면서 소란을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境界碑를 세워 서로 경계를 넘나들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다음에는 書契를 보내 서로 교역을 하자는 계책을 쓰고 있습니다. 좁은 강을 사이에 두었으나 마치 사람들이 서로 무기를 찾는 일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앞으로 사건이 벌어지면 그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우니 그 우려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번거롭더라도 황제께 대신 상주하여 변경의 금령을 더욱 엄히 하여 영원히 비적들이 왕래하는 것을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總理衙門에서 조사해보니 2월 14일 軍機處에서 禮部가 조선 국왕의 (咨文)에 따라 대신 상주한 주접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습니다.
동치 5년 10월 25, 26일 등에, 조선 慶源府 관할의 河山鎮 白顏村의 주민 尹才官 등 9명이 차례로 강을 건너 도주하였습니다. 30일, 중국인 수백 명이 무리를 지어 강을 건너와서 도주한 사람들의 처자식, 財産과 牛馬 가운데 白顏村에 남겨져 있던 것들을 모두 운반해 갔습니다. 村民 金應哲 등 6명 또한 가족 모두 따라갔습니다. 村民들이 (이들을) 방어할 때 날아오는 탄알에 의해 상해를 입은 사람이 3명이었습니다. 강변에 방어를 위해 (설치한) 천막 또한 세 차례 불에 탔습니다.
또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습니다.
11월 20일, 외국인[異樣人) 12명이 慶興府 동문 밖에 왔습니다. 1명이 조선어로 크게 말하였습니다.
러시아에서 앞으로 경계비 근처에 건물을 지을 것인데 귀 府에서 놀라고 의심스러워 할 것 같아, 제가 交界官의 서신을 받아 가지고 와서 먼저 통지합니다.
그리고 당일로 강을 건너 돌아갔습니다.
저희 總理衙門은 이미 이 일이 邊境과 관련되고 屬國을 침범하는 일이기에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삼가 러시아인들이 여러 해 동안 조선인 등을 꾀어내 吉心河 지역에서 땅을 개간시키는 일과 內地의 奸民 張保汰가 몰래 지도를 가지고 러시아 경내로 잠입하여 銀鑛[銀穴]을 열려고 하였던 사정 등에 대하여 삼가 공손히 奏摺을 갖추어 吉林將軍에게 지시를 내려 조사하여 처리하도록 할 것을 주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조선 국왕이 보내온 咨文에서 동치 5년 12월 18일 비적 1,000명이 무리를 이루어 三洞山 부근을 넘어오자 매복하였다가 격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살펴보건대 전에 咨文을 통해 알렸던 사정들과 시간을 따져보면 불과 한 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번에 격퇴한 비적들이 이전 사건의 주동자들로서 그대로 전철을 답습하여 빌미로 삼아 약탈하였던 것인지, 혹 중국인으로서 격퇴하였던 馬賊들 가운데 도주한 잔당인지, 아니면 러시아인들이 고의로 분란을 일으키고자 먼저 떠보려고 하였던 것인지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만약 內地의 비적들이 국경을 넘어 약탈한 것이라면 조선에서는 스스로 응당 이러한 잔폭한 무리를 섬멸하여 변경을 안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만일 러시아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이웃 나라를 침범한 것이라면, 조선 또한 힘을 써서 방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조선 慶源府城과 琿春은 강을 사이에 두고 멀찌감치 맞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琿春 동쪽은 러시아 경계인지라 세 나라의 국경이 서로 연접하고 있는데 한 척의 거룻배로도 건널 수 있습니다. 변경 방비가 조금이라도 소홀하다면 못된 무리가 쉽사리 종적을 감출 수 있습니다.
하물며 조선은 현재 많은 일에 닥쳐 있는 시간이라, 북쪽 변경의 방비는 특히 중요합니다. 조선은 실로 마땅히 변경의 장수와 관리들에게 엄히 지시하여 더욱더 방어에 신경 쓰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비적들이 때때로 변경을 넘어가 누차 속국을 침략하니 관계되는 바가 또한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응당 저희는 禮部에서 조선 국왕에게 咨文을 보내 확실히 조사하여 밝히도록 지시하는 諭旨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국경을 넘어간 비적들이 만일 중국인이라면 실로 응당 사실에 따라 답장해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꺼릴 일이 없습니다. 아울러 경계비 근처 러시아인들은 이미 건물을 지었는지, 境界碑가 어느 나라 지방에 있는지 함께 밝혀 답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의 咨文에 이미 “황상께 대신 상주하여 변경의 금령을 더욱 엄격히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으므로 실제로 중국인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려우며, 단지 감히 이것을 드러내놓고 지적하지 않은 데 불과합니다. 중국에서는 실로 응당 변경 방어를 엄격히 하여 비적들이 조선에 몰래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하고, 아울러 吉林將軍에게 지시하여 조선 국왕이 차례대로 보낸 咨文의 각각 내용에 따라 하나하나 상세히 조사하여 실제 상황에 따라 답장 상주를 하도록 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이 일은 변경과 관련된 것으로 결코 조금이라도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강을 순찰하는 각 초소의 문·무 관원들에게 힘을 다해 반드시 밤낮을 가리지 말고 착실히 감찰하여 疆域을 분명히 하고 분쟁의 발단을 제거하는 데 힘쓰도록 엄히 지시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 국왕이 러시아인들과 전투를 벌인 모든 사정을 진술하고 諭旨를 내려 조사하도록 해 주실 것을 청한 연유에 대하여 응당 공손히 奏摺을 갖추어 아룁니다. 이런 조치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 皇太后, 皇上께서 살펴보시고 지시를 내려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軍機大臣이 다음과 같은 上諭를 받았다.
별도의 諭旨가 있을 것이다.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