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경이 파병한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도착하여 정세를 보고하는 서신
조선을 지원하러 보낸 육・해군 장령이 반란 수괴 이하응을 획치하여 신속하게 천진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상주하는 주접과 부편 원고를 자문으로 알려 왔습니다.
7월 15일, 군기처에서 장수성의 다음과 같은 부편(附片)을 베껴서 보내왔습니다.
첨부합니다. 신이 마침 상주하려는 참에 오장경이 7월 8일 조선에서 보내온 서신을 받았습니다. 오장경은 몸소 처음 파견된 부대 병사들을 이끌고 7일 진각(辰刻) 조선에 도착하였습니다. 인천에 일본 군함 7척과 육군부대 1개 영이 주둔하고 있어, 같은 곳에 머무르기 불편하여 마침내 약 60~70리 떨어진 남양 지방에 그날로 상륙하여 주둔함으로써 차츰차츰 진격하는 기지로 삼았습니다. 도대 마건충은 향도(嚮導) 역할을 맡은 조선 배신(陪臣) 김윤식, 어윤중이 비밀리에 탐문하도록 하였는데, 일본의 주조선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초3일 군대를 이끌고 한성에 들어갔으며, 조선 국왕과 이하응은 아직 그를 접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부사 또한 아무런 반격의 상황을 보이지 않고, 조선 백성은 중국의 대규모 부대가 입국한 것을 알고 환호하지 않음이 없다고 합니다. 남양부(南陽府)는 선박 십수 척을 준비하여 항구에서 도움을 주고자 하였으며, 종전에 의약대・부관(議約大·副官)을 맡았던 조영하와 김홍집 역시 다행히 여전히 생존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국왕의 파견으로 남양에 와서 군사 지원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정여창 제독은 마건충 도대와 상의하여 결정하길, 초8일 2개 초(哨)의 부대를 보내, 마건충 도대와 함께 한성으로 달려가 자세하게 동정을 살펴보고 처리하며, 오장경의 부대는 배치가 대략 정해지면 역시 즉시 진격하기로 하였습니다. 정여창 제독은 해구(海口)에 머무르면서 후방을 돌보기로 하였습니다. 조선 인심이 우리에게 호응하여 따르고, 조영하와 김홍집이 이미 도착하였으므로, 이하응은 세력이 점차 고립되어, 혹시 능히 이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신속하게 이 사람을 획치하여 국왕이 다시 정치를 할 수 있게 한다면, 내란은 진압되어 아마 그다지 시일을 끌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일본인들이 다양한 변칙적 계획을 꾸며 여러 문제를 파생시킬 수도 있으므로, 오장경에게 비밀리에 신속 지시를 내려 적절하게 상황을 보면서 대처하라고 지시하고, 아울러 이후의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려 수시로 속히 상주하는 것 외에, 지금까지 육군이 조선에 도착하여 상륙한 대체적인 상황을 삼가 부편을 통해 아뢰면서, 황상께서 살펴봐 주시길 간청합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광서 8년 7월 15일, 군기대신은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
[내용 없음]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