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李昰應)을 중국에 영원히 감금하는 방안과 중국이 내란을 진압하였으므로 공의(公議)를 통해 일본의 추가 요구를 막아야 한다는 서리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낸 서신과 관련 첨부 문서
1) 이하응을 영원히 중국에 감금하고, 조선 국왕이 해마다 봉양(奉養)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도록 해야 합니다. 2) 조선이 내란에 이르고 중국이 이를 대신 진압한 연유를 포고하여, 공의(公議)를 빌어 일본인의 추가적인 가혹한 요구를 막아야 합니다.
주 001
각주 001)

여기서 마건충이 조정에 보고한 내용에서는 대원군이 사절이나 편지를 보내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점이 철저하게 서술・보고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이와 관련된 부분을 번역・정리한 연구와 비교해 보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岡本隆司, 『馬建忠の中國近代』(京都大學出版會, 2007)의 第II部 6章 「東行三錄」, pp.87-164를 참조] 이를테면 조영하・김홍집이 마건충을 만났을 때 대원군이 보낸 편지를 전달하였는데, 이 보고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원군이 그와 연락한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 보고는 생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원군을 반란의 주동자, 수괴로 몰아 아예 협상・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임오군란 이후 조선의 정국에 대한 청조의 정책을 관철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방향으로 몰고 가려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원군의 배제에 대해서는 또한 국왕이나 민씨 척족, 그리고 김윤식, 어윤중, 김홍집 등 개화파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7월 22일 서리 북양대신 장수성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이달 20일 등영주(登瀛洲) 군함이 조선의 이하응을 압송하여 천진에 도착하였는데, 이 모든 처리 상황은 이미 상주하여 알린 바 있으므로, 다시 되풀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반란에서 이하응은 뒤에서 화란의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의 종사를 거의 위태롭게 할 뻔하였으므로 실로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조선에서 국왕과 부자 관계에 있고 군주와 신하라는 명분이 없어, 모든 관료보다 앞선 예우를 받고 우러러보는 사람도 많은 데다가, 또한 평시에 외교를 거절하는 주장을 고집하여 조상과 옛 전통을 따르는 사대부와 백성들 사이에서 그들 비호하는 뜻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누차 오장경, 정여창 제독과 마건충 도대의 서신을 받았는데, 모두 다 이하응은 국왕의 존친으로 만약 그 죄에 따라 법대로 처리한다면, 국왕이 스스로 체통을 세울 수도 없고, 또한 조선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고 그 마음을 모두 깨우쳐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가 다시 귀국하게 된다면, 장래 그에게 의존하는 세력을 키워주어 그 위세가 더욱 강해질 뿐만 아니라, 또다시 난리의 싹을 끼워 도저히 수습할 수 없게 될 우려도 있습니다. 즉 현재 조선의 인심은 여전히 관망하면서 배회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해 어느 쪽을 따를지 거스를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전에 이하응을 살려서 돌려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원히 중국에 감금하고, 조선 국왕이 매년 그를 봉양할 물자를 보내오도록 함으로써 은혜와 의리 두 가지 모두를 지킬 수 있게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마건충의 보고에 의하면 조선 국왕이 서신으로 알려왔는데, 이하응을 위해 대신 변호하기 위해 직접 마건충의 숙소로 이르고자 하며, 아울러 조영하, 김홍집 등을 보내 윤선을 함께 타고 천진에 이르러 관대하게 이하응을 용서해달라고 황상의 은혜를 간청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리(情理)에 비추어 보면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하응은 약간 휴식을 취하게 한 다음에 즉시 길에 나서 북경으로 압송하려는데, 조정의 지극한 인의(仁義)를 우러러보건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당연히 결정할 법도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미 오장경, 정여창 두 제독과 마건충이 보고한 각 사정에 따라 감히 좀 더 황상께 덧붙여 아뢸 것이 있습니다. 마건충이 또 다른 보고에서 조선의 반란 발생 경위와 중국이 대신 반란을 진압한 연유를 일본과 조선과 조약을 맺은 각국에 보고하여 그 공의(公議)를 빌어 추가적인 가혹한 요구를 하려는 일본인의 뜻을 막아야 한다고 건의하였는데, 아마도 상당히 그럴듯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원래의 보고를 베껴 올려 엎드려 결정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또한 마건충이 천진에 보낸 필담과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제시한 7개 조 요구, 조선 국왕의 고시 및 오장경 제독에게 보낸 친필 서신, 압송위원 반청조(潘靑照)가 이하응과 나눈 필담 등은 모두 검토하실 수 있도록 삼가 그대로 베껴 첨부하여 올립니다. 이상입니다. 다만 편안하시길 빕니다.
별지: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3토가 내건 7개 조 요구」: 조선은 흉수를 징벌하고 사상자를 무휼(撫恤)하고 배상금을 내며, 아울러 일본인의 내지 유력(遊曆)과 공사관 주둔군의 배치를 허용한다.
1)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내건 7개 조의 요구(日使花房義質所議七欵)」
(1) 오늘부터 15일 이내에 흉도의 우두머리와 그 무리를 포획하여 무겁게 처벌할 것.
(2) 피해자는 예우를 우대하여 매장함으로써 그 장례를 후하게 치를 것.
(3) 5만 원(5萬圓)을 지급하여 피해자 유족, 부상자에게 지급하여 체휼(體恤)할 것.
(4) 흉도의 폭거로 인해 일본이 받은 손해 및 출병 준비 등의 일체 비용은 그 액수대로 배상할 것.
(5) 원산・부산・인천 각항의 간행이정(間行里程)을 사방 1백리(조선 리)로 하고, 새로 양화진(楊花鎮)을 개항시장으로 삼고, 함흥(咸興)과 대구(大坵) 등지도 통상왕래를 할 수 있게 할 것.
(6) 일본 공사, 영사 및 수행원과 권속이 내지 각처를 유력(遊曆)할 수 있게 할 것.
(7) 앞으로 5년 동안 일본 육군 병사 1개 대대(大隊)를 두어 일본 공사관을 보호하게 할 것. 단 설치와 병영 수선 등의 비용은 조선 정부가 책임질 것.
별지: 「호송위원 반청조(潘靑照)와 조선 이하응의 필담」: 조정은 급히 함께 논의해야 할 중요한 공무가 있습니다.
2) 「호송위원[護觧委員] 반청조가 조선의 이하응과 나눈 필담(護觧委員潘靑照與朝鮮李昰筆談)」
반청조[潘]: “본관은 지주(知州) 반청조(潘靑照)입니다, 직예총독의 지시로 파견되어 북경으로 가시는 길에 동반할 것입니다.”
대원군[李]: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 병세가 아주 심해, 몹시 힘듭니다.”
반청조: “당장 총독에게 보고를 전달하여 조금 늦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쉬십시오. 이야기를 오래 끌어 정신을 힘드시게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듣기에 창졸간에 이리로 오시게 되었으니 힘들고 피곤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북경으로 들어가는 데 물길로 사흘이 걸리며, 배 위에서는 자못 편안하며, 그다음 다시 육로로 반나절이 걸리니 모두 사흘이면 경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즉시 총독에게 보고를 전달하여 내일 출발하는 것으로 상의하여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원군: “본인은 지금 나이가 일흔이고 방금 난리를 겪어 심신이 불안한데, 이런지 이미 7~8일로 결코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또한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아마 곧 병으로 쓰러질 듯합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병 조리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묻는 대로 응대하여 적절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컨대 이런 사정을 총독께 상세하게 알려주십시오. 만약 내일 다시 출발한다면 실로 공사 모두 행운이라고 하겠습니다. 충분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반청조: “부탁하신 일은 모두 실정에 속하니 당연히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조정에서는 기다리는 것이 몹시 간절해서 중요한 공무가 있어 급히 상의할 필요가 있으니, 아마 총독께서는 감히 귀하를 오래 머무르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원군: “중요한 공무가 무엇을 처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본인은 비단 나이가 들었을 뿐 아니라 조선의 중요 정무를 전혀 처리한 적이 없다가 갑작스레 민란을 만나기까지 크고 작은 사무가 모두 자식[家生]에게 속하였습니다. 본인은 산속에 은거하여 세월을 보내며, 단지 손주를 가르치는 것만을 일삼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천조(天朝)에서 소환 명령을 내리고 기무(機務), 상무(商務)가 중요하다고 하니, 지금으로선 특히 정신을 수습해야 하므로 대신 다른 방법을 마련하여 하루 이틀 몸조리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별지: 「마건충 도대가 보낸 보고」: 먼저 내란을 진압하여 조선 국왕이 자주(自主)할 수 있게 한 다음 일본과 담판하며, 아울러 중국이 대신 반란을 진압한 연유를 각국에 공고(公告)하여 일본의 가혹한 추가 요구를 막아야 합니다.
3) 「마건충 도대가 올린 보고(馬道建忠來禀)」
삼가 보고합니다.
조선의 현재 사정은 내환(內患)과 외우(外憂)가 함께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외우의 발생은 내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내환을 제거하는 일은 외우보다 훨씬 더 급합니다. 오늘날을 위한 계책으로는 조선을 위해 먼저 내환을 제거하여 국왕이 자주(自主)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 다음 일본 공사를 불러 이전의 일은 모두 난당이 저지른 일로 국왕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지금 상국(上國)의 힘을 빌려 (난당의 무리를) 모두 내쫓고, 권력을 제자리로 되돌린 다음 이전처럼 화호(和好)의 관계를 원하기 때문에, 요청한 각 사항에 대해서 차분하게 협상해 보자고 알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명의(名義)가 이미 올바른데다가 사리(事理) 역시 순조로울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 날 한편으로는 오장경 제독과 서신으로 논의하여 진군을 요청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천으로 달려가 이런 뜻을 하나부사 요시모토에게 주제를 잘못 파악하지 말라고 알렸습니다. 그렇지만 인천에 도착한 다음 하나부사에게 거듭 되풀이하였지만, 비록 결렬하겠다는 뜻은 조금 되돌린 듯하지만, 협박하겠다는 마음은 더욱 심해진 것 같아, 총독께서 총리아문에 서신으로 논의하여 조선이 반란에 이른 상황과 중국이 대신 이를 진압하게 된 연유를 일본 정부에 포고하고, 아울러 일찍이 조선과 조약을 체결한 서양 각국에도 알려주시도록 요청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종전 조선에서 벌어진 일이 국왕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하면, 도리상 이런 일에 대해 가혹한 요구를 하기 어려우니 일본 또한 혹은 공의(公議)에 굴복하여 종전처럼 완강하게 고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다음의 처리는 어떻게 응수해야 할지 아직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마건충은 오로지 못난 재주라도 최선을 다하여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서, 너무 격렬해서 우의를 손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히 저들의 수에 넘어가 번봉(藩封)에 피해를 주지도 않음으로써, 총독께서 일을 맡겨주신 뜻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별지: 「조선 국왕의 친필 고시」: 왕심리 백성에게 반란의 수괴와 난당을 체포하여, 마을 전체가 도살당하는 것을 피하라고 알리는 칙유.
4) 「조선 국왕의 친필 고시(朝鮮國王告示手書)」
왕심리[枉尋里] 백성에게 효유(曉諭)한다.
오호라! 6월 10일의 사건은 천고에 있어 본 적이 없는 변고였다. 다만 너희 왕심리 마을은 경성(京城)에 바짝 붙어 있고, (관청의) 조아(爪牙)・심복 (心腹)이 거주하는 곳으로 바로 반란을 창도하고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대부분 거기에서 나와, 군주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윗사람을 범하면서 두려움을 모르고 사납게 날뛰었지만, 천리(天理)가 명백한데 어찌 천지 사이에 포용될 곳이 있겠는가? 지금 대규모 병력이 사방에서 전면으로 포위하여 응당 일거에 아무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도살해야 할 터이지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있어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받을까 염려하여 먼저 효유하는 바이다. 너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반란을 찬성한 것은 아닐 터이고, 비록 위세에 눌려 억지로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 터이다. 지금 대규모 병력이 배치되어 있어 재앙이 눈앞에 닥쳐 있으니, 난당의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오는 사람에게는 1천 냥의 상금을 내리며, 난당을 사로잡아 오는 사람에게는 1백 냥의 상금을 내릴 것이고, 그 수급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각기 절반씩 지급할 것이다. 악의 우두머리가 이미 그 죗값을 치르게 되면 협박당해 어쩔 수 없이 따른 사람의 죄는 자연스레 따지지 않게 될 것이고, 마을 전체의 백성이 도륙당하는 일도 피할 수 있다. 만약 여전히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깨닫지 못하고, 감히 체포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죄를 두려워하여 몰래 숨어서 왕명을 지키지 않겠다고 한다면, 총포가 번갈아 들이닥쳐 좋고 나쁜 사람 구별 없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 될 터이니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희들은 이 효유문을 상세히 읽어보고 각자 몸을 지킬 것을 생각하라. 내 말이 그릇되지 않음을 응당 알아야 할 것이다.
7월 15일 고시.
별지: 「오장경과 마건충이 받은 조선 국왕의 친필 서신」: 왕심리(枉尋里)・이태리(利泰里) 두 마을의 반란 진압을 요청합니다.
5) 「조선 국왕의 친필 편지(朝鮮國王手書)」
알립니다.
조선은 불행하게도 기강이 무너져, 6월 상순에 난군(亂軍)이 반역하여 왕궁을 쳐들어와 군주를 침범하고, 공경(公卿)을 살해하고, 인가(人家)를 파괴하고, 이웃 나라의 공사관을 포위 공격하여 공사의 부하들을 죽이는 하늘에 미치는 큰 악행을 저질렀으면서도, 스스로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고 사납게 조정을 원수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숙위(宿衛)하던 복심(腹心)의 병졸로, 아주 강력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아 소멸시키기 어려운데, 다행스럽게도 천조의 여러 대인이 황상(皇上)에 의지하여,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와서 번복(藩服)을 진정(鎮靖)해 주셨으니, 이것은 그야말로 바로 조정이 기강을 되세우는 시기이자 역도가 박멸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난군이 거점으로 하는 곳은 대부분 왕심리(枉尋里), 이태리(利泰里) 두 마을로, 다행히 부대를 정비하고 그들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 우두머리를 잡아 신문하여 형벌에 처함으로써 신인(神人)의 분노를 풀고 배은망덕한 못된 습속을 징벌할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이 서신을 오장경, 마건충 두 대인께서 살펴보시도록 보냅니다.
7월 15일 밤 도착.
별지: 「마건충이 보내온 하나부사 요시모토와의 필담 문답. 6월 29일 하오 5시 반 일본 군함에 가서 하나부사와 나눈 문답 절략」: 일본은 즉각 진군해서는 안 되며, 조선이 응당 먼저 방법을 마련하여 국왕이 자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비교적 일 처리를 쉽게 만들 것입니다.
6) 「마건충이 보내온 하나부사 요시모토와의 필담 문답. 6월 29일 오후 일본 군함에 가서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나눈 문답 절략(馬道建忠寄到筆談問答. 二十九日午後五㸃二刻至日艦, 晤花房義質問答節畧)」
먼저 인사 주고받기가 끝났다.
마건충: “초9일 난당의 봉기는 도대체 누가 사주한 것입니까? 귀하는 분명하게 알고 계시는지?”
하나부사 요시모토: “이것은 또한 그 상세한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조선 집정이 전에 부산에서 자문을 한 통 보내왔는데, 난당이 봉기하여 일본인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또한 조선의 신하 여러 명을 해쳤다고 알려 왔습니다. 이 재앙은 실로 양국의 불행인데, 다행히 국태공의 위망이 평소 현저해서 신속하게 진압하여 인심이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또한 말하길, 이 자문 내에서 조선인의 잘못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몹시 불쾌하다고 하였습니다.”
마건충: “제가 사방으로 탐문해 보니 이 일은 실로 난당이 저지른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음모를 꾸몄다가 발동하지 못하였던 무리와 같은 세력으로, 조선 조정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지나치게 가혹한 요구를 하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라고 난당이 없겠습니가만, 불행히도 귀 공사께서 그들과 충돌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부사: “이번에 온 것은 반란의 근본 원인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그다음에 가서야 다시 논의를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외무성에서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자문 1통을 꺼내면서,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마건충: “자문의 취지는 아주 평화적인 것인데, 일본이 일 처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을 보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동원한 부대는 현재 이미 상륙하였습니까?”
하나부사: “이미 100~200명이 상륙하도록 지시하였으며, 내일 제가 직접 인천에 가서 주둔할 것입니다.”.
마건충: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응당 조금 늦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듣기에 각하께서는 머지않아 한성에 직접 들어가신다고 하는데?”
하나부사: “만약 조선 조정이 고위 관원 한 사람을 파견하여 여기 와서 처리하겠다고 하면, 한성에 들어가는 일은 조금 늦출 수 있을 것입니다.”
마건충: “어제 이미 인천 부사로 하여금 사람을 한성에 보내 빨리 고위 관원을 파견하여 여기 와서 상의하도록 재촉하였으니, 내일쯤이면 답장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고위 관원이 파견되어 오면 즉시 귀하에게 알릴 것입니다. 다만 내가 듣기에 국왕이 유폐되어 있어 자주할 수 없으므로, 만약 귀하께서 결국 군대를 보낸다면 국왕은 아마 자신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고, 국왕이 보전하지 못하다면 대원군은 평소에 외교를 몹시 싫어하는 데다가 일단 대권을 독람하게 되면 아마 이 일은 신속한 해결이 어려울 것이니, 귀국의 군함과 병사가 멀리서 와서 오랫동안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오로지 지금으로서는 응당 방법을 마련하여 국왕이 자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일 처리를 쉽게 할 것입니다.”
하나부사: “그 뜻은 아주 좋습니다. 내가 듣기에 중국에서 귀하를 이리로 파견하여 조사・처리하게 하였다고 하니 대단히 기쁩니다. 하지만 어떤 묘책이 있어 국왕이 다시 자주할 수 있겠습니까?”
마건충: “이 일은 관계된 바가 아주 무거워 반드시 분명하게 자세한 탐문을 한 다음에야 방침을 정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이 일은 오로지 저와 귀하가 같은 마음으로 협력해서 겉으로는 나눠진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합쳐져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별지: 「6월 30일 10시 무렵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마건충이 만나서 나눈 담화 절략」: 일본의 조선에 대한 요구.
7) 「6월 30일 10시 무렵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만나서 나눈 담화 절략(三十日晨十㸃鐘, 花房來舟晤談節畧)」
하나부사: “아까 보내주신 서신으로 조영하, 김홍집이 이미 도착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건충: “그들 두 사람은 정오에 배로 왔습니다. 그들과 만나, 귀하를 방문하도록 하려는데, 어떠십니까?”
하나부사: “아주 좋습니다. 저는 이미 오후에 길을 떠나고자 결정하였습니다. 만약 조영하・ 김홍집 두 사람이 현재 배에 없어 만날 수 없다면, 제가 화도로 방문하겠습니다.”
마건충: “두 사람은 집정이 파견하여 보내 이 문제를 논의・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귀국이 도대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알려주신다면 먼저 그들에게 알려 신속하게 이 문제를 마무리 짓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하나부사: “바라는 일은 또한 그들이 어떤 의도로 왔는지를 보아야만 합니다. 만약 좋은 뜻으로 왔다면 사죄, 난당의 우두머리 처벌, 군사 비용 배상, 위로금[卹銀] 지급, 그리고 앞으로 일본인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은 예측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별지: 「6월 30일 오후 3시 양위함(揚威艦)에서 조영하, 김홍집과 나눈 필담. 조영하 주필(主筆).」: 조선은 응당 신속하게 일본과 마무리를 지어 일본군을 조속히 철수하게 해야 합니다.
8) 「6월 30일 오후 3시 양위함에서 조영하, 김홍집과 나눈 필담. 조영하 주필(三十日午後三㸃鐘, 揚威舟次與趙甯夏, 金宏集筆談. 趙甯夏主筆)」
조영하: “쭉 뵙기를 갈망하였는데 가까스로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뜻밖에 저희 조선이 최근 전례 없는 변고를 당하게 되었는데, 죽지 못한 것이 정말 통한스럽습니다.”
마건충: “저는 마침 남쪽으로 출발하여 이홍장 중당을 만나 모든 문제에 대한 지시 받기를 기대하였는데, 상해(上海)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주일본 공사가 보내온 전보를 받아 초 9일 일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북양대신께서 총리아문과 서신으로 논의해서 제가 신속하게 조선에 와서 모든 것을 살펴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정여창 제독은 어제 천진으로 돌아갔고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이 일은 당연히 실마리가 있을 터이지만, 누차 하나부사 공사를 만나보니, 아주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것 같아 아마 상당히 까다로울 것입니다. 두 분께서 힘써 이번 사건의 전말을 성의껏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요컨대, 제가 이번 온 것은 조선을 위해서이자, 또한 대국(大局)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관계되는 바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조영하: “조선의 재정은 몹시 곤궁하여, 몇 년 사이 군대의 봉급이 모자란 데다가 또한 누차 외국과 왕래하다 보니, 난졸(亂卒)과 못된 백성이 이것을 폐해로 여겨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초9일 난군(亂軍)이 먼저 재상(宰相)의 집에 쳐들어가 거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었고, 다음 날에는 다시 왕궁으로 향하여 큰 고함을 지르면서 도착하였습니다. 당황하여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원군이 변고의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들을 깨우치고 지시하여 무마함으로써 다행스럽게 해산하였습니다. 며칠 사이에 위로는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는 번역원[象胥]에 이르기까지, 그 집이 부서지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초9일 저녁 바야흐로 난군이 난동을 시작할 무렵, 못된 백성들도 이때를 틈타겠다고 하면서 무리를 지어 행동하여 일본인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먼지 비밀리에 하나부사 공사에게 소식을 전해 화란(禍亂)을 피할 준비를 하라고 하였으므로, 공사와 수행 병사들은 화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아직 공사관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그날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난군은 하나부사가 도피하였다는 것을 알고 인천까지 추적하여 또 몇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실이 이와 같으니 우리 조정은 일본인에게 빚진 것은 없고, 당장 스스로 구할 틈도 없는데도 그들에게 미리 도피를 지시하여 살길을 열어주었으니 일본인이 우리 조정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마 당연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며칠 전 반접관(伴接官) 윤성진(尹成鎮)이 가서 곤도 마스키(近籐真鋤)를 만나 역시 그 전말을 이야기하였으므로 그 역시 상세하게 알고 조금은 풀렸다고 합니다. 조선에 일이 생겨 끄떡하면 상국(上國)에 근심을 끼치니 정말로 통한스러운 일이며, 대인께서 여기 오셔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데 대해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하고 있습니다.”
마건충: “두 분이 여기 온 것은 국왕의 지시에서 나왔을 터인데,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영하: “당일 내란을 진압한 이후 국가의 크고 작은 사무는 잠시 대원군께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인이 왕림하셨으니, 저희는 누차 큰 지시를 받고 특별하여 대인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마건충: “대원군께서 두 분을 파견하셨군요. 일본인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이 있었습니까?”
조영하: “일본은 전에 조선 정부에 서신을 보내 알리길 군대 500명을 이끌고 한성 내에 들어와 주둔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1천 명이 상륙하였고, 정부에서 어떻게 답장하느냐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하니, 일본인에게 무슨 도리가 있습니까? 문서와 예물을 보내면서 우리 반란의 경과를 밝히고, 사변의 전말을 상세히 알리고, 또한 이전과 같은 화호(和好)의 조건을 언급하였지만, 저들의 불만은 여전하여 도무지 풀기 어렵습니다. 대인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시해 주길 바랍니다.”
마건충: “하나부사 공사가 이미 두 분이 온 것을 알고 새벽에 방문하여, 특별히 제가 귀하께서 자기를 만나러 오길 요청한다는 뜻을 전해달라고 하였는데, 과연 가서 만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영하: “당연히 그대로 해야겠습니다. 아까 이미 위원에게 배첩을 보냈으니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방문할까 합니다. 지금 만약 지시해 주시면 응당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마건충: “일본 정부는 군함을 동원하고 이미 각국에 통보도 하였으므로 이 일의 타결은 결코 입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중국 역시 이곳으로 군함을 동원해 와서, 동정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루 늦게 타결되면 곧 하루만큼의 피해가 늘어날 뿐이니, 잠시 난당의 우두머리 징벌이나 이미 사망한 일본 병사와 가족을 우휼(優卹)하는 은량이 이미 적지 않은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또한 이번에 일본 군함의 왕래와 일본 군대 이동의 비용 역시 하루를 더 주둔하면 장래 귀국은 하루의 비용을 더 배상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일은 결국 신속한 타결이 가장 중요하며, 속히 이를 마무리하는 최선책은 집정이 우선 심복 고위 관료를 파견하여 좋은 말로 유인하고 사죄를 명분으로 삼은 다음, 이후에 내가 옆에서 권고한다면 혹은 쉽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부사는 이번 일은 반드시 국왕이 나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대원군이 직접 와서 처리해야 비로소 타결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생각건대, 일본의 이번 출병은 나름 명분을 갖추고 있어 다른 나라에서 풀어주거나 권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정리에 비추어보면 국가의 군주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도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내일 조속히 한성으로 돌아가 대원군에게 개인적으로 결단을 내리도록 보고하여 그가 직접 항구로 와서 하나부사와 논의하게 하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마침 대원군은 평소 위망(威望)이 현저하고, 또한 내가 여기서 보호하고 있으니 일본인들은 반드시 감히 무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 일은 내가 보증하건대, 반드시 귀국이 큰 손해를 보도록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지체하거나 의심한다면 시기를 놓치게 되어 이후의 상황은 예측하기 어려울 점이 있을 것입니다.”
조영하: “아주 감탄스러운 지시입니다. 제가 내려올 때 국왕께서 대원군의 지시에 따르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만약 대인께서 어떤 분부가 있으시다면 신속하게 알리고 논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삼가 지시대로 한성에 돌아가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만, 언제 돌아올지는 감히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부사가 만약 지금 한성으로 달려간다면 장차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역시 오로지 대인께서 피로함을 무릎쓰고 몸을 움직이셔야 할 것 같은데, 어떠신지?”
마건충: “하나부사는 본래 한성으로 달려가려 하였는데, 내가 재삼 권고하면서 한성의 난당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니 만약 갑작스레 쳐들어가면 예측하지 못할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깨우쳐주었습니다. 지금 하나부사가 이미 인천에 며칠 동안 기다리겠다고 결정하였으니, 나는 급히 대원군이 한성에서 나와 처리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부사의 한성행을 막을 수 있으나, 지체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조영하: “먼저 권고하고 깨우쳐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삼가 이것을 돌아가 잘 보고하겠습니다.”주 002
필담 내에 다른 세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묻고 답할 때마다 조영하, 김홍집이 모두 종이를 찢어버려 남겨서 베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필담도 역시 자신들의 친필로 보고해야 한다고 굳게 요청하였습니다.
마건충: “왕궁이 습격받았는데, 어찌 왕비만 홀로 서거하였습니까? 전해 듣기에 왕비의 서거는 사주한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조영하: “이 문제는 신하로서 감히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며, 차마 말할 수 있는 바도 아닙니다.”
마건충: “현재 어윤중, 김윤식이 모두 초용함(超勇艦)에 있는데, 두 사람을 만나시겠습니까?”
조영하: “오늘의 나랏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서, 저희가 평소 대인의 돌보심을 입지 않았다면 단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터입니다. 김홍집은 가옥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이 누차 그를 잡아가려 하였습니다. 모두 대인께서 알려주셔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김홍집: “어윤중과 김윤식은 제가 아는 사이니, 본래 한번 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험한 처지에서는 만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마건충: “지금 비밀스러운 일을 하나 묻고자 하는데, 생각건대 두 분은 평소 국왕의 신임을 받고, 저와 함께 일한 지도 꽤 되었으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셈은 아닐 터입니다. 저는 국왕이 지금 결코 자주(自主)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영하: “실로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별지: 「7월 초1일 1시 반 어윤중이 찾아와서 마건충과 나눈 필담 절략」: 대원군은 현재 비록 병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군대는 쓸만한 것이 아니며, 그 무리 이유원(李裕元) 등도 대부분 취임하고 있지 않습니다.
9) 「7월 초1일 1시 반 어윤중이 찾아와서 마건충과 나눈 필담 절략(初一日一㸃二刻, 魚允中來舟筆談)」
마건충: “조영하 대관을 보니 그 사람됨이 그래도 충성스럽습니다. 어제 필담을 나누는 도중 자못 사실을 털어놓고자 하였습니다.”
어윤중: “다행입니다. 그 역시 어떤 사람의 뜻을 거슬러 이번 난리 속에서 대왕대비[太王妃]를 지키려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지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마건충: “지금 조정에서 태공(太公)의 편에 선 사람은 모두 몇 사람이나 됩니까?”
어윤중: “실로 많지는 않습니다. 손을 쓸 수 없는 것 때문에 모두가 마치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마건충: “대략 몇 사람이고, 그 성명을 들 수 있습니까?”
어윤중: “지금 대부분 은퇴하였는데, 이유원(李裕元), 정현덕(鄭顯德), 이재완(李載完), 조병창(趙秉昌), 강천(姜淺), 한장석(韓章錫), 이건창(李建昌) 등 몇 사람입니다.”
마건충: “태공의 아들 이재면(李載冕)은 사람됨이 어떻습니까?”
어윤중: “평범한 사람으로 지금 새로 훈련대장(訓練大將)이 되어 군사권을 잡고 있습니다.” 마건충: “앞에 든 여러 사람 가운데 새로 권력을 잡고 실세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어윤중: “아직 배치가 이루어지기 이전입니다. 따라서 단지 먼저 군사권만 장악하였을 분입니다. 모두가 아직은 중용되기 이전입니다.”
마건충: “한성 내에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외국의 공격[外侮]을 막아내기에 충분합니까? 또 전에 군란이 있었는데, 확실히 군량 감축 때문입니까, 아니면 태공의 사주 때문입니까?”
어윤중: “병력의 수는 대략 1만 정도인데, 훈련받지 못하고 무기가 몹시 열악하니, 어찌 외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군란은 처음에 은근하게 통제하였고, 중간에는 격발하였으며[通文이 있었는데, 倭人이 이를 보았습니다], 끝에 가서는 지시하여 부렸습니다.”
별지: 「7월 초2일 밤 10시 조영하, 김홍집이 배로 찾아와 마건충과 나눈 필담」: 1) 이미 하나부사 요시모토에게 한성에 원조하러 들어가지 않도록 권고하여 저지하였으며, 2) 조선은 중국 장령이 계속 한성에 들어와 주둔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0) 「7월 초2일 밤 10시 조영하, 김홍집이 배로 찾아와 마건충과 나눈 필담. 조영하 주필(初二日夜十㸃鐘, 趙甯夏, 金宏集來舟筆談. 趙甯夏主筆)」
마건충: “하나부사를 만나러 갔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조영하: “일찌감치 병력을 이끌고 한성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여러 차례 권고하여 막았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자 바로 저녁때 일본 측에서 보내는 소륜선(小輪船)을 타고 가서 만나보았습니다.”
마건충: “얼마 전 그의 서신을 받았는데, 역시 내일 아침 병력을 이끌고 한성으로 간다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태공이 왔다면 그래도 그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다만 한성에 이른 다음 반드시 정부가 잘 무마해야 할 뿐입니다. 4~5일 지나 중국 병력이 건너오고, 다른 나라의 군함도 역시 도착하면, 혹 그 기세를 점차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영하: “정여창 제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대인께서 먼저 피로를 무릅쓰고 한성으로 가주시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조선은 상국을 우러러보며 의지하니, 비록 아주 어리석은 촌부나 아이들 역시 골수에 미치도록 감격하는 바입니다. 대인께서 먼저 피로를 무릅쓰고 한성으로 가주시길 간청하는데, 어떠십니까? 국왕께서 지시한 바도 이와 같습니다.”
마건충: “조선의 인심은 아직 두려움과 어지러움 속에 있는 데다가, 일본 군대가 모여드니, 저는 반드시 우리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다음, 대열을 지어 진군함으로써 우리 위세를 크게 과시할까 합니다. 겸하여 일본인을 견제할 수 있고, 또한 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군함도 여기에 도착하니,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 군함의 함장은 하나부사에게 크게 불만을 품고 있고, 아울러 그 제독과 저는 사이가 아주 좋습니다. 이때를 틈타 다른 나라와 연락하는 것 또한 일본인을 제압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주 003
마건충: “내일 아침 두 분은 한성으로 돌아가십니까? 만약 한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오전 9시쯤 제 배로 오십시오. 우선 삼판선에 지시하여 항구서 대기하게 하겠습니다. 오후에 저와 함께 미국 군함을 방문하는데, 그 함장의 뜻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즉 이전 부산에서 조선 동래관찰사(東萊觀察使)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감개무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영하: “마침 이 일에 대해 먼저 요청하고 하였는데, 이렇게 지시를 주시니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응당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마건충: “오후에 서신을 써서 남양 부사에게 선박 연료 확보를 요청하였습니다. 혹시 미리 통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조영하: “요청하신 대로 해당 부사를 지휘하겠습니다. 보내신 편지는 제물포에서 받아보았습니다.”
마건충: “하나부사가 한성에 들어가서 어떤 일을 처리할지, 누구와 함께 처리하고자 하는지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태공은 일본군의 한성 진입 소식을 듣고 또한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조영하: “하나부사는 병력을 이끌고 한성에 들어오겠다는 의도에 대해서 우방국에 내란이 있으니 의리상 서로 보호해야 하며, 또한 난군과 난민을 징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코 태공과과 함께 일을 처리하고자 하지는 않으며, 오로지 국왕을 알현하여 호소하는 것을 바랄 뿐입니다. 태공은 일본군의 한성 진입 소식을 듣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질질 끌면서 일찌감치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한 것이 정말 한스럽습니다.”
마건충: “나 역시 직접 수 개 영의 부대를 끌고 오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부대가 먼저 도착하여 이미 일찌감치 일본의 기세를 빼앗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흘 이내에 정여창 제독이 부대를 이끌고 조선에 도착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 부대는 반드시 남양에 상륙해야만 일본군과의 마찰을 피할 수 있습니다.”
조영하: “아까 하나부사를 만났을 때 저는 이미 일본 부대가 한성에 들어간다면 중국 역시 응당 조선을 염려하여 돌아볼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지금 두 분 대인께서 또다시 응당 부대를 이끌고 한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남양으로부터 입경하여 주둔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조선의 모든 신민은 마치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환영할 것입니다. 이점을 좀 더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건충: “남양은 단지 상륙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며, 상륙한 다음에는 곧바로 한성으로 향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 부대가 도착하면 무릇 연료나 식량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백성들이 부대 내로 운송하고 가격에 맞추어 그 값을 받도록 해야 하며, 응당 우리 부대가 조금이라도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지시할 것입니다.”
조영하 :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저희 역시 동행하길 원하며, 대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겠습니다.”
마건충: “당연히 저는 두 분과 함께 갈 것이며, 국왕께서는 우리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마 또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우리 소식을 지나치게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며, 때가 되면 당연히 계획된 안배가 있을 것입니다. 두 분께서는 이후 실제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조영하: “국왕께서 감격하실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지시를 폐부에 깊숙이 새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별지: 「7월 초3일 오후 9시 어윤중이 배로 와서 나눈 필담」: 1) 외척을 살해하고 공사관을 포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신(大臣)을 겁살한 것은 모두 이하응이 사주한 일이며, 2) 각국의 힘을 빌려 일본인의 기세를 빼앗기를 희망합니다.
11) 「7월 초3일 오후 9시 어윤중이 배로 와서 나눈 필담(初三日午後九點鐘, 魚允中來舟筆談)」주 004
마건충: “현재 어떤 소식이 있습니까?”
어윤중: “다만 상황을 탐문하였을 뿐입니다. 일본 선박에서 하루 밤낮을 보냈는데, 지금은 반드시 무언가 마찰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 사람[彼人. 즉 대원군]은 비뚤어지고 사나움이 점차 고질병이 되었고, 국왕의 옆을 떠나지 않으니, 사람들이 감히 외무(外務)를 가지고 그와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같은 무리를 끌어모으고 흘겨보는 사람은 반드시 보복하여 죽는 사람이 날로 쌓일 뿐, 일본과 화해하느냐 싸우냐에 대해서도 도무지 정해진 결론이 없습니다. 그저 난군(亂軍)을 자극하여 문젯거리를 찾아내게 할 뿐이니, 그 사람이 제거되지 않으면 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정말 통곡할 뿐입니다.”
마건충: “왕비가 이미 그에게 독살당한 것은 알고 있습니까? 도대체 어떤 사정이었습니까?”
어윤중: “왕비께서는 이미 상당히 내조에 공이 있었으므로, 그래서 그 사람은 입궐하자마자 난군을 시켜 협박하여 독약을 마시도록 강요하였습니다.”
마건충: “난군이 봉기한 것은 전해 듣기에 군량 삭감 때문이라던데, 삭감된 군량은 국고에 들어갔습니까, 아니면 개인의 호주머니를 불렸을 뿐입니까?”
어윤중: “이 모두가 (일부러) 자극하여 이런 변고가 이루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조선은 근래 재정이 곤궁하고, 재정을 담당한 신하의 준비・대책이 좋지 못해 군대의 봉급이 몇 개월 동안이나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6월 초 오랜만에 봉급을 지급할 때 창리(倉吏)가 묵고 썩은 곡식으로 지급한 데다가, 분량도 제대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군졸들과 창리가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는데, 창리 몇 사람이 피살되자 창당(倉堂)[즉 선혜청당상 민겸호]이 이들 군인을 붙잡아 처벌하려 하였고, 군인들은 죄가 없는데 억지로 잡아간다고 항의하였습니다. 석방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저 군인들이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호소하였고, 어떤 사람[某人. 즉 대원군]의 집에 이르렀을 때, 그가 한 통의 문서를 내던졌는데, 바로 “궁궐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킨 민비의 오빠[閔哥. 즉 민겸호]를 죽이고, 일본인과 외교를 맡은 사람들을 죽이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다.”는 취지였습니다. 이에 저 군인들과 무뢰배들이 이 전에 없는 변고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가 만약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어찌 감히 이런 변고가 있었겠습니까?”
마건충: “그렇다면 외척을 해치고, 공사관을 포위 공격하고, 일찍이 외교에 참여한 신하들을 죽인 것은 모두 그가 사주한 일이겠습니다.”
어윤중: “그렇습니다.”
마건충: “내일 초용함(超勇艦)이 남양(南陽)으로 가서 정여창 제독의 도착을 기다릴 터인데, 귀하도 조영하, 김홍집 두 사람과 함께 같이 가시겠습니까? 나 또한 동행할 터인데, 약 초5일이나 초6일 남양으로 가면 중국 부대가 도착하여 곧장 상륙한 다음 바로 한성으로 진격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죄는 이미 지목 할 수 있지만, 전혀 실질적 근거가 없으니 착수하기 곤란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윤중: “증거라는 것은 여론이 정해진 다음 남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영하, 김홍집과 제가 연속으로 증거를 만들고, 상륙한 다음 국민(國民)으로 하여금 증거를 만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국민이 듣고 공분을 일으켜 팔도에 격문을 돌리면 대략 7월 17일 정도면 이 역적[此賊]을 함께 공격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렇게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죄상을 밝히는 것을 격문 속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해야할 것입니다. ‘이 역적이 한 푼이라도 사람의 도리를 가지고 있다면, 누가 감히 그 권력을 빼앗으려 하겠습니까? 그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야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가 죄 없는 국민을 학살하고, 부유한 국민의 재물을 약탈하고, 남의 부녀자를 간음하고 사대부를 모욕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이를 갈기 때문입니다. 그가 권력을 잃는 것은 결코 남이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마건충: “상륙한 다음, 백성들에게 격문으로 돌리는 연명 고발장을 만드는 것이 참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조영하, 김홍집이 오면 나와 함께 미국 군함을 방문할 터인데, 이 또한 외국과의 우의를 더욱 굳히기 위해서입니다. 미국[함장]은 귀국 내란의 경위를 듣고 몹시 분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공사가 성급하게 행동하여 그를 만나 행동 방침(즉 한성 진입 여부)에 대해서도 상의하지 않은 것에 불쾌함을 느끼고 있으니, 이 또한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3~4일 사이에 영국, 프랑스, 독일 각국의 군함이 이리로 오게 되면 제게는 각국의 힘을 빌려 일본인의 기염을 꺾을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귀하는 일본 군함에 있었으니 하나부사가 한성에 들어간 것이 어떤 생각이었는지 아시겠지요?”
어윤중: “종전에 그는 천천히 움직일 것으로 보였는데, 본국 대신이 보내온 문서를 보더니 다급하게 한성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일본 정부 내부에서 대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라, 일본 국민은 단지 내란의 수괴에 대해서만 복수하기를 원한다는 지시가 내려왔고, 그 역시 거기에 동의한 것 같습니다. 또한 일본의 우대신(右大臣)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 및 외무경(外務卿)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역시 화의(和議)를 주장하였습니다. 지금 한성에 들어가 국왕을 알현하려는 것은 국왕이 신임하는 신하와 마무리를 논의하겠다고 요청하려는 것이고, 대원군[某人]과 협의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파견한 부대는 600명입니다. 각국과 상의하는 것은 정말 좋은 방안입니다.”
별지: 「7월 초3일 밤 9시 일본 외무대서기관(外務大書紀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가 배로 와서 마건충과 나눈 필담」: 1) 일본군의 조선 진출은 난당 우두머리의 징벌과 사후 조치 강구를 위해서입니다. 2) 난당이 일본 공사관을 습격한 것은 조정의 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일본은 단지 배상과 위로금[恤銀]을 요구할 뿐입니다.
12) 「7월 초3일 밤 9시 일본 외무대서기관(外務大書紀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가 배로 와서 마건충과 나눈 필담(初三日夜九㸃鐘, 日本外務大書紀官竹添進一郎來舟筆談)」
다케조에 신이치로: “하나부사 공사가 제게 부탁해서 후의에 삼가 감사드린다고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마건충: “본래 하나부사 공사를 찾아가 방문하려 하였는데, 밤중에 배 위에 사람이 없어 뜻을 이룰 수 없었으니 실로 대단히 송구합니다. 며칠 안에 또한 한성에 들어갈 예정이니 그때 당연히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귀하께서 서신으로 하나부사 공사께 이 뜻을 먼저 받아주시기를 서신으로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케조에: “이번 사건에서 그 초기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일본 국민의 인심이 크게 동요하였습니다. 다행히 일본 정부는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으니, 마치 20년 전 일본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감히 군사력으로 시비곡직을 따질 생각은 없으며, 공법에 기초하여 적절하고 신중하게 마무리할 작정입니다. 다만 폭도들의 기세가 여전히 맹렬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병력으로 호위를 충원하여 군함을 타고 왔을 뿐입니다. 저는 단지 지시를 받고 와서 동정을 관찰할 뿐인데, 인천의 상황으로 보건대 조선 정부 역시 조금은 폭거(暴擧)를 후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내일 이후 귀국하여 사정을 보고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근심을 가라앉히고자 합니다. 귀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만약 귀하께서 여전히 염려하시는 일이 있다면 제가 며칠 늦추어도 상관없습니다. 다행히 가르침을 주시는데 인색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마건충: “초9일의 난은 몹시 기세가 흉흉하여 왕비를 독살하고 중신(重臣)을 해쳤으며, 외교에 관련된 여러 신하를 주살하였습니다. 지금 반란의 기세가 비록 가라앉았으나 남은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으므로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대단히 힘이 듭니다. 그런데 집정하고 있는 사람이 국왕의 지시로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므로, 그와 함께 처리하고자 하면 집정의 명분이 올바르지 못하고, 국왕과 상의하고자 하면, 국왕이 자주할 수 없으니, 하나부사 공사가 이번에 한성에 가면 먼저 어디에서부터 착수할지 모르겠습니다. 난당이 폭동을 일으키고 공사관을 공격한 것은 결코 조선 조정의 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은 생각건대 따져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입니다.”
다케조에: “이 일의 해결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시비곡직을 따지면서 조선을 진정시키고자 한다면 거의 간섭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하나부사 공사의 의견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 조선 정부가 과연 국왕의 지시를 명분으로 삼아 이를 논의하겠다고 하면, 그래도 명분은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정세를 보면 지금 문제는 정파(政派)끼리의 싸움이지, 개국과 쇄국의 싸움은 아니므로, 일단 신속한 마무리만 할 수 있다면 서서히 그 시비곡직을 가리는 것도 안될 것은 없습니다. 귀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마건충: “아주 옳으신 말씀입니다. 일본과 조선은 우방으로 당연히 그 내정을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처리할 때 응당 공사관을 공격한 반란의 우두머리를 징벌하고, 아울러 사후 처리를 할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난당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사후 처리를 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부사 공사와 조선 정부가 당연히 신속하게 타결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저는 대국(大局)을 위한 입장에서 조선 내정에 대해 불안을 느끼면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다케조에: “일본의 뜻은 오로지 교의(交誼)를 돈독하게 하는 데 있으며, 남의 어지러움을 틈타 약탈을 꾀하려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조선에 요구하는 것은 단지 난당의 우두머리를 징벌하고 아울러 사후 처리의 방법을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만 신속한 해결뿐입니다. 만약 시일을 지체하여 조선 난민이 다시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일본은 병력으로 그 죄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고, 과연 그렇게 되면 우방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고 아시아의 전체 국면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마건충: “진실로 귀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후 대책을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귀하께서는 이미 계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케조에: 손해 및 군사 비용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니 부득불 이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재물을 탐해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실제적인 피해에 따라 계산하려는 것이지, 결코 지나친 요구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후 대책의 경우 아마 공사, 영사 및 그 권속이 내지 각처를 유력(遊曆)하도록 허용하여 그 백성들과 친숙해지게 하는 것 등일 것입니다. 조선이 외국인을 혐오하는 것은 원래 외국인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이고, 그래서 불편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우리를 의심하니, 우리 상인들도 역시 이들을 자극하고, 이렇게 원망과 의심이 교차하게 됩니다. 과연 유럽 각국에 문호를 개방하였을 때도 이와 같다면, 만일 불행하게도 조선의 폭도가 유럽인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때는 조선의 근심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때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는 질리도록 외국인을 보게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마건충: “조선은 실로 몹시 빈척하고, 국고는 텅 비어 있고, 민생 또한 위축되어 있는데, 장래 이 일을 마무리하자면 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됩니다. 만약 이를 너무 많이 요구하면 아마 조선은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군사 비용 배상의 경우도 제가 찬성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정부의 세입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일본이 실제적인 비용만을 청구하더라도 조선이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내지 유력과 같은 경우는 조선 백성이 외국인을 보는 데 익숙해지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 말씀은 정말 타당합니다. 하지만 방금 난리를 겪은 터라, 너무 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귀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다케조에: “일본 국내의 인심이 매우 소란스러워 그 때문에 이러한 명분을 빌어 그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선의 빈곤에 대해서는 일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감당하지 못할 요구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일본에 과연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다면 저들이 우리 국기를 능욕한 죄를 문책하여 분에 넘친 보상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도서(島嶼)의 분할을 요구하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에는 결코 이런 마음이 없다는 점을 제가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그런데 조선은 우리에게 항상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 ‘오늘날의 일본은 옛적의 일본과 같아 반드시 우리 토지를 빼앗을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 재보를 가로챌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일은 우리 정부가 공평하게 만국공법에 의해 처리하고 다스릴 것입니다. 귀하께서 만약 제 말이 의심스럽다면 하나부사 공사와 조선이 마무리하는 날을 기다려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검증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마건충: “만약 말씀하신 대로라면 오로지 위로금을 넉넉하게 지급하는 것을 명문으로 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국 운남의 마가리 사건을 회고해 보면, 영국 역시 군함을 동원하였으나, 마무리할 때는 다만 위로금만을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공법에 비추어보면 각국이 서로 전쟁할 때는 또한 그 군사 비용을 물어주지 않습니다. 흑해 전쟁(크름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가 화의를 요구하였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 비용을 내놓으라고 추궁하지 않았으며, 이탈리아도 누차 싸워 누차 패배하였지만, 역시 군사 비용을 배상한 적이 없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군사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데, 하물며 일본은 우방을 우대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군함의 동원은 오로지 우방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만약 이것을 구실로 요구하는 바가 있다면, 저는 아마 시작은 인의[仁]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 마무리는 이익 추구[利]로 끝났다고 모두 비웃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제 의견에 대해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다케조에: “일본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조선인이 일본에 오면 일본에서는 극히 우대하는데, 지난해 조선인이 우리 국민 3명을 구살(歐殺)하였고, 올해는 또다시 한성의 공사관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사가 인천으로 도피하였는데, 인천 부사가 그를 속이고 잠을 자는 틈을 타서 병기를 빼앗고 몇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인 가운데 조선 정벌을 제창하는 사람들이 어깨를 밀치며 일어났는데, 일본 정부는 이를 진압하고 배상금의 명분을 빌어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이른바 군비라는 것은 육・해군은 국내에서도 봉급을 받고, 함선 역시 각각 경비가 있으니, 실제 조선 파견 비용만 계산한 것으로, 결코 과다한 청구는 아닙니다. 이런 일들은 또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지, 기실 스스로 보상을 얻기 위한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위로금이라는 것은 역시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비용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인의에서 시작하여 이익으로 끝난다고 하는 지적은 아직 일본의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마건충: “이른바 인의에서 시작하여 이익으로 끝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외국인들이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뜻입니다. 일본 민심의 경우 처음 폭동의 발생을 들었을 때 당연히 공분을 일으켰겠지만, 가령 귀하께서 파악한 실제 사정을 돌아가 정부에 알리면서 ‘난당이 봉기하여 공사관을 공격하고 일본 백성을 살해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신하와 백성들 역시 모두 그 피해를 입었고, 아울러 왕비까지 독살하였다.’고 이야기하신다면, 일본 백성이 듣고 당연히 그 분노가 얼음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케조에: “저 역시 대략 성현의 책을 읽어 의리(義利)에 대한 변론은 좀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일본에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저 역시 이를 위해 항해하고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중국에 있었을 때 누차 이홍장 중당 및 여러분들과 국사를 논의하였는데, 제가 말하는 바는 속이지 않는다는 점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돌아가 정부에 보고하면 얼음 녹듯이 풀릴 것이라는 것은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간절히 청하건대, 귀하께서도 역시 일본의 마음가짐이 어떤가를 신속하게 이홍장 중당에게 보고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마건충: “며칠 안에 연락할 일이 있으니, 삼가 지금까지의 내용을 이홍장 중당에게 보고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비밀리에 물어볼 것이 있는데, 청구하는 비용은 대략 얼마로 계산하고 있습니까?”
다케조에: “얼마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고, 다만 이것을 명분으로 삼을 뿐입니다.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한다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본은 이런 논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건충: “이 필담의 내용을 베껴서 조선 정부에 보여주어도 됩니까?”
다케조에: “됩니다. 여서창 공사가 동경에서 인심이 흉흉한 것을 보면서 혹은 의심할지 모르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말을 믿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역시 해로가 단절되어 있어 혹은 일본을 의심할지 모르겠습니다. 귀하께서 본 바와 제가 말한 바로 그 의심을 풀어주신다면 양국에 모두 다행이겠습니다.”
마건충: “삼가 분부하신 대로 여서창 공사에게 서신을 보내, 우리 총리아문에 대신 전달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이것은 또한 제 직분 내의 일이기도 합니다.”
다케조에: “조선에서 만약 다시 폭동이 일어난다면, 제 말은 모두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마건충: “저 역시 조선 정부에 일본군의 출동은 응당 진압을 선무로 삼는 것이지 다른 의외의 일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차분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별지: 「7월 11일 7시, 인천 부사의 관서에서 마건충이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나눈 문답 절략」: 1) 반드시 조선 국왕이 자주할 수 있게 해야 조선과 일본의 논의가 공담(空談)이 되지 않습니다. 2) 중국이 출병하여 조선의 난당을 처벌한 것은 오로지 조선이 그 나라를 지키고 영토를 보전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13) 「7월 11일 7시, 인천 부사의 관서에서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나눈 문답 절략(十一日七㸃鐘, 至仁川府署與日使花房義質問答節略)」
마건충: “한성에서 논의하신 일은 대강 이미 곤도(近籘)로부터 들었습니다. 다만 보다 상세한 경과를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부사 요시모토: “7월 초3일 저는 부대를 이끌고 양화진까지 전진하였는데, 조선 정부가 그 입구에 관원을 파견하여 제 한성 입성을 막았습니다. 저는 성외(城外)에서 일을 논의하기는 불편하여 곧바로 한성에 입성하였고, 국왕이 인견(引見) 일기를 정해 달라고 주청하였으나, 조선인[韓人]은 또한 완강하게 따르지 않았습니다. 초7일에 이르러서야 처음 국왕을 알현할 수 있었는데 7개 조의 요구를 적은 문서를 올리고, 관원을 파견하여 상의하자고 요청하면서 3일 이내에 답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국왕은 당장 영의정[首相] 홍순목(洪純穆)을 의사전권대관(議事全權大官)으로 삼았는데, 8일에 이르러서 그가 보내온 서신에서 말하길, ‘다시 산릉(山陵)의 길지(吉地)를 가서 살펴보라 지시받아, 반드시 3~4일 후에야 한성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말하길 ‘[왕비 능묘를 위한] 산릉은 조선의 중대한 일로, 일본이 내건 조건은 자신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 다시 논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국왕은 분명히 3일 기한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홍순목을 의사전권대관으로 임명하였는데, 다음 날 갑자기 전날 임명하였던 사람에게 다른 임무를 주어 다른 곳으로 파견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모순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산릉의 선택이 중대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하게 일본의 일이 가벼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미 우리와 협상할 수 있는 길을 끊었으니, 그에 따라 나는 기한이 만료되면 이 뜻을 국왕에게 상주하고 한성을 나설 것입니다.”
마건충: “초7일에 또한 대원군을 만나셨는데, 대원군은 무슨 관직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혹은 일찍이 직접 물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부사: “그의 말은 비록 관직을 지명하지는 않지만, 국정에는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건충: “귀하는 국왕께서 화호(和好)를 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홍집 등 여러 사람의 의견은 어떤지?”
하나부사: “국왕은 정명(精明)하여 화호(和好)의 복구를 원합니다. 김홍집 등은 비록 강수관(講修官)이지만, 실로 이 문제를 논의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가 일직이 곤도(近藤)에게 비밀리에 말하길, ‘조선의 근래 일은 정말 통곡스럽다.’고 하였습니다.”
마건충: “그렇다면 귀하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역시 조선 국왕이 몹시 귀 공사와 함께 사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를 원하고 대소 신료들도 역시 이에 동의한다고 알고 있는데도, 헛되이 뜻은 있지만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국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귀하는 ‘조선에 여전히 정부가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기억하길 전에 배 위에서 귀하에게 조선의 정세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국왕이 자주하는 것을 선무로 삼아야 하며, 국왕이 하루라도 자주하지 못하면 일본 역시 하루라도 함께 일을 논의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사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사람이 정부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국공법에 비추어보면 터키나 이집트에서 매번 반란군이 외국인을 살상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각국은 반드시 그 군주가 자주할 수 있게 됨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사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사방으로 탐방해 보니, 국왕은 모든 일에 대해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러므로 지난번 귀하께서 오기 전에 올린 주접 역시 국왕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이 봉투를 열어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부사: “그 사람은 반드시 대원군이겠지요.”
마건충: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제 저녁 귀하의 편지를 보니, ‘서신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할 참이었으나, 조선 정부가 이미 우리와 협상할 수 있는 길을 끊었으니,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송구스럽다.’고 하였는데, 지금 제가 여기 온 것은 조선을 위해 중간에 서서 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귀하에게 조선 정세를 분명하게 설명하여, 귀하께서 잘못된 방안을 선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조선 국왕이 지금 이미 자주할 수 없는데, 귀 공사는 느닷없이 함께 사후 처리를 논의하겠다고 하니, 그런 제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된다고 해도 언젠가 국왕이 자주하게 되면, 지금 논의한 일이 모두 공담(空談)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또한 만약 지금 결별의 방안을 선택한다면 장래에는 아마 조선 정부만 이를 구실로 삼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이번에 부대를 파견한 것은 오로지 난당을 징벌하기 위해서임을 일본 정부도 아마 들어서 알고 있을 터인데, 만약 귀하께서 가부를 따지지 않고 다급하게 난당과 사후 처리를 협의한다면, 아마 이후 일이 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미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부사: “중국의 부대가 파견된 것이 원래 난당을 징벌하기 위함임은 저 역시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의 육・해군 장병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이 부대를 여기로 보낸 것은 이를 빌미로 싸움을 벌이거나, 아니면 기회를 틈타 조선을 탈취하려는 것인가?’”
마건충: “저 역시 많이 들은 바 있습니다. 군대의 장병들이 무지하니 의심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부대의 장병들 역시 이야기합니다. ‘부대를 이리로 동원한 것은 장차 일본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거나, ‘성경(盛京)에서도 부대를 동원하여 조선 경내로 들어와 후방을 도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잘못 전달된 소문일 뿐이고, 설사 성경에서 부대를 동원하여 조선 경내로 들어오더라고 그 목적은 역시 난당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조선의 토지를 탈취할 속셈이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우리 정부는 반드시 이런 마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뜻은 단지 조선이 그 나라를 지키고 한치라도 영토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고, 또한 그 내정과 외교를 자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부사: “일본 정부의 뜻 역시 조선이 내정을 자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며, 또한 저 역시 이런 지시를 받았습니다. 다만 이 일 처리는 굉장히 어려우니, 귀하께서는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습니다.”
마건충: “우리 부대는 방금 도착해서 갑작스레 계획을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부사: “혹시 무력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뜻입니까?”
마건충: “우리 부대가 온 것은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일본이 부대를 동원해 여기에 온 것과 같은 취지입니다. 만약 혹시 계략으로 속일 수 없다면, 부득이하게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을 터입니다.”
하나부사: “만약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군대 역시 도와줄 수 있습니다.”
마건충: “이 일은 반드시 무력을 사용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때 가서 귀하와 충분히 협의할 것입니다.”
별지: 「7월 12일 9시 하나부사 요시모토가 近籐眞鋤과 함께 화도를 방문하여 나눈 문답 절략」: 일본은 조선은 조약을 맺은 우방[與國]으로,그 내정에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중국이 만약 거동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 국왕이 다시 자주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14) 「7월 12일 9시 하나부사가 곤도와 함께 화도를 방문하여 나눈 문답 절략(十二日九㸃鐘, 花房偕近籐至花島來訪問答節畧)」주 005
하나부사: “어제 귀하께서 멀리 찾아와 주셔서 일본의 일을 논의해 주신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마건충: “이번에 서로 예방하는 것은 오로지 조선의 국세(國勢)를 분명하게 밝혀 이후 처리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귀 공사께서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하나부사: “여전히 인천에서 2~3일 지키며 기다릴 셈인데, 만약 조선 정부가 고위 관원을 이리로 파견하여 상의하지 않는다면, 이후의 일은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건충: “어제 이미 귀하에게 조선 정부는 유명무실하니, 고위 관원을 파견하더라도 논의할 권한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만약 이 때문에 결렬된다면, 어찌 남의 어지러움을 틈타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부사: “조선에 만약 정부가 없다면 반드시 그 내정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는 안 된다고 반드시 전쟁으로 번질 것입니다. 감히 묻건대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데 다른 나라가 무슨 근거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건충: “일본과 조선은 우방[與國]이니, 그 내정에 함부로 간섭하기는 곤란하다는 점은 제가 전에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만약 전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다른 나라가 저지하는가 아닌가는 그 나라와 조선이 어떤 연계를 가졌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부사: “그렇다면, 중국은 장차 조선의 내정을 변경(變更)하고자 합니까?
마건충: “만약 거동이 있더라도, 원래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려 국왕이 자주할 수 있게 하는데 지나지 않으니, 변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조선 정부가 고위 관료를 파견하여 상의하지 않는다면, 대체 귀 공사는 며칠 동안이나 여기에 머무를 것입니까?
하나부사: “3, 4일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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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여기서 마건충이 조정에 보고한 내용에서는 대원군이 사절이나 편지를 보내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점이 철저하게 서술・보고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이와 관련된 부분을 번역・정리한 연구와 비교해 보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岡本隆司, 『馬建忠の中國近代』(京都大學出版會, 2007)의 第II部 6章 「東行三錄」, pp.87-164를 참조] 이를테면 조영하・김홍집이 마건충을 만났을 때 대원군이 보낸 편지를 전달하였는데, 이 보고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원군이 그와 연락한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 보고는 생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원군을 반란의 주동자, 수괴로 몰아 아예 협상・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임오군란 이후 조선의 정국에 대한 청조의 정책을 관철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방향으로 몰고 가려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원군의 배제에 대해서는 또한 국왕이나 민씨 척족, 그리고 김윤식, 어윤중, 김홍집 등 개화파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