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李昰應)이 귀국하지 못하도록 유지를 내려달라고 요청하며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내는 초록(抄錄)
이하응을 안치하여 귀국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 대해 먼저 명백하게 유지를 내려주시길 간청합니다.
8월 13일, 군기처에서 이홍장의 다음과 같은 주접 부편을 보내왔습니다.
첨부합니다. 조선 국왕이 파견한 배신(陪臣) 조영하, 김홍집 등이 사후 처리 문제를 만나 상의하기 위해 천진에 왔는데, 신 등이 불러서 만났을 때 직접 조선 국왕의 자문 2건을 제출하였는데, 하나는 병력을 조달하여 원호(援護)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생부인 이하응을 석방해서 귀국시켜달라고 은혜를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칭하기를 따로 표주(表奏) 및 총리아문과 예부에 보내는 자문이 있다고 하였는데, 저희에게 보낸 자문과 취지는 거의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 등이 필담을 나누면서 왕복하여 변론하자, 조영하 등은 비로소 “이하응이 이번에 권력을 잡은 것은 국왕의 뜻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왕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따진다면 응당 석방해서 귀국시키는 것이 옳지만, 만약 공론으로 따진다면 그런 감정을 돌아볼 여지는 없습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무릇 조선 국왕이 표주와 자문으로 대신 은혜를 간청해 달라고 한 것은 본래 부자 사이의 지극한 감정으로 도의상 미룰 수 없는 일이지만, 이하응은 흉악하고 교활한 발자취를 보이고 악행의 흔적도 아주 많고 뚜렷하니 만약 풀어놓아 귀국하게 한다면 결코 그 죄를 회개하여 자신을 새롭게 하길 기대하기는 어렵고. 또한 국왕이 능히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조선은 배도(陪都)인 심양(瀋陽)과 아주 가까워 전체 대국(大局)에 관계되는 만큼, 응당 적절하게 방안을 마련하여 미리 말썽의 실마리를 없애 조정의 동쪽 변경에 대한 우려를 풀고, 번복(藩服)을 편안하게 안정시키려 하는 뜻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신 등이 그 방안을 논의하여 따로 주접을 갖추어 아뢰는 것 외에, 조선 국왕의 자문을 베껴 삼가 황상께서 살펴보실 수 있도록 올리는 바입니다. 조영하 등이 가져온 표주는 초8일 출발하여 북경으로 갈 때 예부를 통해 전달해서 올릴 예정인데, 계산해 보면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므로, 먼지 미리 유지를 분명하게 내려주셔서 적절하게 대원군을 안치하게 되면 조선 국왕의 표주가 전달된 다음, 그것에 대해 반박하는 일 역시 쉽사리 근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영하, 김윤식, 어윤중 등은 사람됨이 상당히 공평하고 정직하지만, 평소 이하응의 권세를 두려워하는 데다가 아울러 그가 국왕의 부친이라서 감히 공개적으로 나서서 입증하고 증언할 수 없었습니다. 신 등이 주복, 마건충 등을 독려하여 재삼 발언을 유도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하응의 죄상을 털어놓고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후환이 있을까 두려우니, 상유 속에서 그 용어를 매끄럽게 활용하여 나중에 조선 국왕이 조금이라도 원망이나 의심을 피할 수 있게 해야만 보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의견이 타당한지 아닌지 황상께서 살펴주시길 엎드려 간청합니다. 삼가 편문(片文)을 추가로 붙여 상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