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의 원조 요청을 착수하기 어렵다는 뜻과 조선의 난사(亂事)에 대해 일본이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일본공사 여서창(黎庶昌)이 총리아문에 보낸 서신과 첨부한 관련 문서
1) 류큐가 복국(復國)을 위해 원조를 요청하지만, 쉽사리 착수해서는 안 됩니다. 2) 조선 난사에 대해 일본은 대체로 지나친 요구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일본이 부산으로 전선을 연결하고자 하니 중국도 역시 응당 전선을 설치하여 조선과 통하게 해야 합니다.
8월 초5일, 주일본 공사 여서창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7월 초2일, 창자(昌字) 제14호 서신을 보냈는데, 이미 받아보셨을 줄 압니다. 11일에는 본자(本字) 67호 서신과 자문 1건을 받았는데, 이미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최근 북양대신 장수성이 보낸 전보를 받고, 이홍장 중당이 12일 본적에서 출발하였음을 알게 되었는데, 몹시 위안이 됩니다. 류큐 문제는 이달 초8일 밤 그곳 관리 마겸재(馬兼才) 등이 다시 찾아와 만나주기를 요청하면서 절략(節畧)을 제출하였는데, 결국은 “나라를 되살리고 군주를 세워달라고 구원을 간청하는 것으로, 즉 류큐의 남도(南島)는 메마르고 척박하여 나라를 세울 수 없으니, 이 방안은 도저히 실행될 수 없으며, 듣기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문제가 있고, 중국에서 군대를 파견하였다는데, 이 기회를 틈타 류큐 문제를 가지고 함께 다투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서창은 단지 좋은 말로 위안해서 보낼 뿐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에 의하면 “법사관(法司官) 모봉래(毛鳯來)가 북경에서 애소(哀訴)하여 그것이 황상에게 알려져 총리아문 및 주일본 공사에게 적절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라는 유지가 내려졌다.”고 하는데, 그런 분명한 공문을 본 적이 없어 그 말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곳의 상황은 류큐 문제는 전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만약 대만(臺灣)에 수군(水軍)의 한 부대를 증연(增練)하여 진취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들은 전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리 없습니다. 북경에 주재하는 미국 공사 영(John Russell Young)의 논의도 또한 참작해 볼만 합니다. 다만 이 일은 우리가 먼저 쉽사리 나서서 착수해선 곤란하며, 만약 영의 의견을 따라나서서 조정하면서 옆에서 건의하게 된다면 이루어지든 않든 분명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건대 일본인들은 반드시 여기에 따르고자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선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논의가 분분하고 전국의 인심이 흉흉하여 이것을 구실로 삼아 일을 벌일 태세였는데, 뒤이어 우리가 군대를 파견하여 응원하면서 일찌감치 손을 써버리자, 일본인들은 중국의 이번 행동은 종전처럼 모든 일에 신중한 것이 아니라는 데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교활한 계모(計謀)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조선이 중국의 속방임을 인정하지는 않고 억지로 버티며 강변하였지만, 시끄러운 소동이 벌어졌을 때 공사(公使)를 바꿔 에노모토 다케아키를 북경에 파견한 것은 실로 중국을 무마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이노우에 가오루가 여서창에게 말하길 에노모토가 가족을 동반하고 간다고 이야기한 데서 그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노모토는 해군 중장 출신으로 도쿄에서 흥아회(興亞會)를 창립하였는데, 그 취지는 동아시아 각국을 연락하여 아시아주(洲)를 흥기(興 起)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으며, 전임 하여장 공사와 여서창 모두 이 모임에 가담하였습니다. 에노모토는 일찍이 유럽을 여행하였고 또한 러시아의 수도에 주재한 적도 있어 외무에 통달하였으니, 당연히 시시도 다마키(宍戶璣)와 같은 고집을 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언제 부임하는가는 아직 분명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8월 내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도착하면 총리아문에서 잘 대주시길 요청합니다. 여서창이 여기 오랫동안 머물면서 일을 만날 때마다 완곡하게 도와주는 표시를 하였고 조금도 신분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으니, 일본의 접대 역시 실례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다만 그 사람의 말투는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대략 중국을 깔보고 서법(西法)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뜻을 내비쳐서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불쾌하게 여깁니다. 최근 조선의 일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는 금폐(金幣)가 갑작스레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등귀하여 여러 상인이 이틈을 타서 매점 매석을 시도하였고, 태정관(太政官)과 외무성(外務省)에서 힘써 유언비어를 금지하자 비로소 점차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마건충 도대는 한성(漢城)에 도착한 다음, 조선 정치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하였는지, 대원군은 물러나 권력을 놓으려 하는지, 제 사견으로 추측하건대 처리에 착수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듣기에 일본 공사 하나부사는 화평(和平)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하니, 생각건대 이 사안에 대한 요구가 지나친 것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략]. 중요한 소식이 있으면 수시로 전보로 알리는 것 외에, 대신 총리아문의 여러 대신께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편안하시길 빕니다.
추가합니다. 다케조에 신이치로는 지난달 하나부사 공사를 따라 조선에 가는 일행에 합류하였으며, 현재 외무성(外務省) 대서기관(大書記官)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부록으로 『조선지지략(朝鮮地志畧)』을 올립니다.
추가합니다. 조선에 이번 변고가 발생하자 중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원조하고 내정을 정돈하였으니, 앞으로 조선의 국사에 당연히 수시로 개입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일본과의 교섭 역시 반드시 날로 늘어날 것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소식을 제대로 전달해야만 비로소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이 조선 문제에 개입한 것이 비교적 빨랐던 것은 실로 전신(電信)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에 전보를 설치하는 일은 진실로 당장 추진해야 할 급무입니다. 일본은 누차 시모노세키(下關) 지방에서 전선을 설치하여 곧장 이키(一歧)・쓰시마(對罵) 두 섬을 거쳐 부산(釡山)에 도달하는 전선을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설치를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듣기에 이미 밧줄 전선[電纜]을 구입하였고, 머지않아 곧 설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조선과 단지 통상 관계에 있을 뿐인데도 지금 이렇게 경영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조선은 우리의 속방으로 문호(門戶)에 관련되는 곳인데, 여전히 이를 치지도외할 수 있겠습니까? 응당 전선을 설치하여 천진(天津)에서 곧장 여순(旅順), 인천(仁川)을 거쳐 한성으로 연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외국) 공사에 설치를 떠맡긴다면 3~4개월이면 곧 완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천 명의 부대보다 훨씬 더 쓰임이 있을 것입니다. 천진에 이르는 전선은 또한 응당 직접 총리아문에 이르게 해야 통신이 비교적 신속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의견이 타당한지는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편안하시길 빕니다.
1. 「조선국도 한성기략」: 한성 지세 상황.
2. 「목록(淸摺)」: 봉수제도.
3. 「통상항구 상황 부산포기략」: 부산포의 형세 상황.
4. 「통상항구 상황 원산진기략」: 원산진의 위치 상업 산물 기후 등의 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