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표문(表文)을 가져와서 대원군을 회국(回國)하려고 하였으나 기일이 계속 바뀌는 일에 대해 북양대신이 총리아문에 보낸 문서
진수당(陳樹棠)이 보고하기를 조선에서 관원을 보내 표문(表文)을 가져오면서 대원군을 맞이하여 회국하려고 하였으나 떠나는 기일이 계속 바뀌었으니 아마도 어떤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6월 8일,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올해 6월 5일, 주참조선판리상무(駐紥朝鮮辦理商務) 도원(道員) 진수당(陳樹棠)주 001
각주 001)

이 5월 12일에 올린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받았습니다.진수당(陳樹棠, 1828~1888)은 광동 향산(香山)출신으로 상해(上海)에서 매판(買辦)으로 활동하다 이홍장에게 발탁되어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에서 근무하였다. 그의 양무(洋務) 경력을 바탕으로 1880~1882년까지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지냈으며, 귀국 후 이홍장의 막료로 활동하였다. 1882년 체결된 「중국・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中國・朝鮮商民水陸貿易章程)」 제1조에서 북양대신이 상무위원(商務委員)을 조선 개항장에 파견하여 청 상인을 관할하도록 한 것에 따라, 이홍장은 1883년 10월 진수당을 총판조선각구교섭상무위원(總辦朝鮮各口交涉商務委員)으로 보내 윤선(輪船)의 왕래, 조계 확보 등 경제적 진출 기반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맡겼다. 진수당은 그 후 2년 동안 청국 상인의 활동 및 화교 사회의 형성에 기여하고 조선에서 일본과의 경쟁에서 청이 우세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 조정에서 정사(正使) 민종묵(閔種默), 부사(副使) 조병식(趙秉式), 삼사(三使) 김세기(金世基)를 보내 표문(表文)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가서 대원군을 영접하여 귀국한다고 합니다. 본래는 5월 9일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현재 18일로 바뀌었고 육로로 길을 떠난다고 합니다. 어제 11일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삼가 보고하오니 이중당 대인께서 검토해 주십시오.
또한 5월 22일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조선 조정에서 파견하려는 사신 민종묵 등 3명이 육로로 주접(奏摺)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가서 대원군을 영접하려고 하여 이미 출발 날짜가 정해졌다는 내용을 일전에 보고서를 올려 살펴보시도록 하였으니, 이미 도착하였을 것으로 생각혀였습니다. 지금 민종묵이 16일 홀연히 병가(病假)를 청하여 18일에 길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신의 출발이 계속 지체되고 여러 차례 출발 날짜가 바뀌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 이유가 없지는 않을 터, 짐작건대 이홍장 중당 대인께서 능히 살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확실히 길을 떠나는 날짜를 알게 되면 재차 삼가 보고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보고서가 본 대신에게 왔습니다. 이에 응당 자문으로 귀 아문에 알려야 하니, 청컨대 번거롭더라도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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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진수당(陳樹棠, 1828~1888)은 광동 향산(香山)출신으로 상해(上海)에서 매판(買辦)으로 활동하다 이홍장에게 발탁되어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에서 근무하였다. 그의 양무(洋務) 경력을 바탕으로 1880~1882년까지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지냈으며, 귀국 후 이홍장의 막료로 활동하였다. 1882년 체결된 「중국・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中國・朝鮮商民水陸貿易章程)」 제1조에서 북양대신이 상무위원(商務委員)을 조선 개항장에 파견하여 청 상인을 관할하도록 한 것에 따라, 이홍장은 1883년 10월 진수당을 총판조선각구교섭상무위원(總辦朝鮮各口交涉商務委員)으로 보내 윤선(輪船)의 왕래, 조계 확보 등 경제적 진출 기반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맡겼다. 진수당은 그 후 2년 동안 청국 상인의 활동 및 화교 사회의 형성에 기여하고 조선에서 일본과의 경쟁에서 청이 우세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