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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황상(皇上)이 조선에 오장경(吳長慶)의 사당 건립을 허용하였다고 예부(禮部)가 총리아문에게 보내는 문서와 관련 주접 등 첨부 문서

1) 황상께서 조선이 오장경의 사당을 건립하는것을 허가하셨습니다. 2) 조선 국왕이 오장경의 사당 건립을 청하는 주접을 자문으로 보냈습니다.
  • 발신자
    禮部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4년 8월 6일 (음)(光緖十年八月六日) , 1884년 9월 24일 (光緖十年八月六日)
  • 문서번호
    4-8-05(885, 1480b-1482a)
8월 6일, 예부에서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조선 국왕이 관원을 보내 가져온 주장(奏章)을 초록하여 대신 상주하는 주접은 광서 10년 7월 29일 상주하였습니다. 오늘 군기처에서 군기대신이 받든 다음과 같은 상유를 부편(附片)으로 보내와 받았습니다.
조선의 사당 건립 요청을 허가한다. 즉시 예부에서 조선 국왕에게 전하여 알리도록 하라.
응당 조선 국왕의 주장 및 예부의 주접 원문을 초록하여 총리아문에 알려야 할 것입니다.주 001
각주 001)
조선 정부는 고종 22년(1885) 4월 오장경의 사당을 준공하고 정무사(靖武祠)로 명명하고 관원을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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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주접 초록
별지: 「조선 국왕의 주접」: 오장경을 위한 사당 건립 계획을 상주합니다.
 
1. 「조선 국왕의 주접(朝鮮國王奏摺)」
조선 국왕 이형(李㷩)이 제독 오장경이 조선에서 인애(仁愛)의 마음을 남겼으니, 응당 황상께 아뢰어 은혜를 베푸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간청하면서 삼가 주를 올립니다.
조선은 임오년 변란에서 다행히도 우리 황상 폐하의 천지를 다시 살려주시는 은혜에 의지하였으니, 고위 관원을 가려 뽑아 보내셔서 변란을 진압하고 나라를 안정시켜 주셨습니다. 고(故)광동수사제독 오장경이 병사들을 통솔하여 조선으로 건너오자 20일이 되기도 전에 변란의 분위기가 모두 평정되고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으며, 이전처럼 보호하고 뒷수습을 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오장경 제독은 실력으로 이를 봉행하며 황은을 널리 펼쳤습니다. 군영의 문은 엄숙하고 군인들에게는 사사로움이 없었으며, 그의 몸가짐은 공정하고 청렴하며, 다방면에서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대소 신민들이 하나같이 칭찬하고 탄복하였으니, 비록 『주역(周易)』의 사괘(師卦)에서 말하는 장인(丈人)이나 『시경(詩經)』 「소아(小雅)」에서 말하는 “만방의 모범이 되었다.”고 칭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작년 한겨울에 피로가 쌓이고 병에 걸려 금주(金州)로 옮겨 갔는데 결국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노고와 인내에는 나라만 있었을 뿐 자기 자신은 없었습니다. 부고가 전해진 날 사민(士民)들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고, 무지한 부녀자와 아이들조차도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따로 관리들을 보내 신위(神位)를 세워 멀리서나마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당을 건립하여 봄과 가을에 보답하는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배신(陪臣) 예조참판(禮曹參判) 심상훈(沈相薰)을 금주(金州)로 보내 조문하게 하여 조선인들이 지극히 상처받은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해 보면 황상께서는 군대를 이끄는 장수를 절실히 생각하시고 그 생각이 미천한 자에게까지 미치시므로, 충신을 기리는 데 또한 응당 지극히 주밀하실 것입니다. 다만 오장경 제독은 성은을 대신 베풀고 조선을 안정시켜서 실로 그 은혜를 백성들이 입었으니, 백성들은 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무릇 백성들의 이러한 감정을 감히 황제께 아뢰지 않을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옵기는 황상께서 머리를 굽혀 조금만 양해해 주시고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조선 신민이 모두 우리 성조(聖朝)의 공적을 기록하고 보답할 수 있는 은택을 우러러 받들고 영영 끝없이 대대로 이어가도록 해 주십시오.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황송한 마음으로 명을 기다리는 지극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제독 오장경이 조선에서 인애의 마음을 남겨 마땅히 황상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로 삼가 주접을 갖추어 아룁니다.
별지: 「예부 주접」: 조선 국왕이 오장경을 위한 사당 건립을 요청하는 주접을 대신 상주합니다.
 
2. 「예부 주접(禮部奏摺)」
광서 10년 7월 22일, 조선 국왕 이형(李㷩)이 전담 사신으로 보낸 형조정랑(刑曹正郎) 이학규(李鶴圭) 등이 공손히 주본 한 통을 가져와 예부에 자문으로 보내 대신 상주해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저희들이 함께 살펴보니, 조선의 임오년 변란 당시 고 광동수사제독 오장경이 군대를 통솔하여 조선으로 건너와 20일이 되기도 전에 반란의 분위기가 모두 사라졌고, 겨울에 금주로 옮겨갔으나 결국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부고가 전해진 날 사민들이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고 신위를 세워 멀리서 제사를 지내고자 사당을 건립하여 봄, 가을마다 보답하는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대신 상주해 줄 것을 간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가 주본 원문을 초록하여 공손히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엎드려 하명을 기다렸다가 예부에서 조선 국왕에게 알려 준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본을 가져온 관원 등은 이미 회동사역관에 안치하여 머물도록 하였고, 전례에 따른 연회 업무는 예부에서 전례에 비추어 처리하겠습니다.
추가합니다. 이번에 주본을 가져온 관원 등은 배를 타고 와서 천진에서 경사로 왔음을 함께 밝히는 바입니다. 이에 삼가 상주하여 유지를 청합니다.

  • 각주 001)
    조선 정부는 고종 22년(1885) 4월 오장경의 사당을 준공하고 정무사(靖武祠)로 명명하고 관원을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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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皇上)이 조선에 오장경(吳長慶)의 사당 건립을 허용하였다고 예부(禮部)가 총리아문에게 보내는 문서와 관련 주접 등 첨부 문서 자료번호 : cj.k_0003_008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