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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2. 요동 북부지역의 청동기문화

2. 요동 북부지역의 청동기문화

요동 북부의 청동기시대 조기 문화로는 요하 본류 연안의 고태산문화, 혼하 유역의 신락(新樂)상층문화, 태자하 유역의 마성자문화 등이 있다.
한국 청동기시대 조기 토기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마성자문화는 태자하 유역 주변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묘(洞窟墓) 출토유물을 표지로 한다. 동굴묘는 토광묘 혹은 석관묘로, 단인장의 여러 무덤이 모여 있는 집단묘의 특징을 보인다. 장가보(張家堡)A동굴유적처럼 50여 기의 무덤이 한 동굴에서 발견된 예도 있지만, 대부분 20기 내외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주로 토기류가 발견되며, 석부, 석착, 돌자귀와 같은 석기류와 청동환이나 청동귀걸이 같은 소형의 청동제 장식품도 소량 확인된다. 마성자문화는 공간적으로는 태자하 유역과 혼하(渾河)일대의 본계(本溪)·무순(撫順)·신빈(新宾)일대를 아우르는 요동 산지에 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는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 전기에 위치한다.
그림2 | 요동 북부권 청동기시대 토기 양상(김승옥, 2015, 그림3.3)
- 1·2. 마성자B동굴 13호묘 3. 마성자B동굴 3호묘 4·5. 대리수구(大梨 树沟) 6. 묘후산(廟後山)B동굴 7. 장가보A동굴 M50호묘 8. 장가보A동굴 M52호묘 9. 장가보A동굴 M47호묘 10. 장가보A동굴 M45호묘(미송리식토기) 11. 산성자(山城子)C동굴 7호묘 12. 산성자C동굴 2호묘(미송리식토기) 13. 동승(東昇, 채문토기) 14. 정가와자 6512호묘(흑도장경호) 15~17. 공주둔(公主屯, 점토대토기)
마성자문화는 세 단계로 나뉘는데, 1기문화층(신석기시대 말~기원전 17세기경)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압인문 계열의 토기가 발견된다. 한국 청동기시대 조기를 대표하는 돌대문토기도 등장하는데, 돌대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돌아가는 형태(一周刻目)이다. 마성자 2기(기원전 17세기경~기원전 13세기경)에는 이중구연토기와 돌대문토기가 유행한다. 이 시기에는 일주각목 돌대문과 각목이 새겨지지 않은 돌대문이 모두 성행한다. 그리고 2기의 토기에는 자돌문과 현문(횡침선)이 시문된다. 석관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3기(기원전 12세기경~기원전 10세기경)에는 각목이 새겨지지 않은 돌대문과 함께 절상돌대문(節狀突帶文)이 주를 이루며, 미송리식토기와 닮은 토기도 확인된다. 마성자문화의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는 압록강 중상류와 하류를 거쳐 남한 청동기시대 조기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臺附)토기나 채문(彩文)토기의 발생 역시 마성자문화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김승옥, 2015).
마성자문화와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압록강 중상류 유역은 강계 공귀리(公貴里)유적과 시중 심귀리(深貴里)유적이 있다. 공귀리유적에서는 토광식과 위석식 화덕을 갖춘 장방형 주거지 6동과 석관묘 3기, 심귀리유적에서는 장방형 주거지 3동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은 층위와 주거구조, 출토유물에 근거하여 두 시기로 나뉜다. 청동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공 귀리1기문화유형에서는 신암리주 012
각주 012)
신암리(新巖里)문화는 용천 신암리유적을 표지로 하는 압록강 하류 유역 일대 이른 시기의 청동기시대 문화이다. 문화 변천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1기는 쌍타자1기의 문양인 원형첩부문이 시문된 호형토기에 신석기시대의 뇌문(雷文)이 조합되고 있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환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동 북부의 토기 요소인 돌대문과 돌대문으로 구획된 횡대구획문토기도 발견되고 있어, 재지적인 신석기시대 문화요소에 요동의 다양한 요소가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1기의 하한은 기원전 17세기경이다. 2기(기원전 16세기~기원전 12세기)는 일반적으로 쌍타자3기와 병행하는 시기로, 1기와 마찬가지로 요동 남부의 현문(횡침선)과 요동 북부의 각목돌대문의 문양 요소가 함께 발견된다. 그러나 각목돌대문과 함께 절상 및 유상의 돌대문이 나타나거나 현문 위아래로 횡주자돌문이 시문되기도 하며, 이중구연단사선문 토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호형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3기는 돌대문 요소가 사라지면서 이중구연의 옹형과 호형토기가 본격적으로 유행한다. 이중구연토기는 구연부 하단에 각목이나 자돌문이 시문되는 것이 다수이다. 기원전 9세기부터는 현문과 횡위대상파수가 달린 미송리식토기가 유행하게 된다(김승옥, 2015, 「묘제의 특징과 변천」,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5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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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돌대문토기와 마성자3기 이중구연토기가 함께 발견되지만, 이중구연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짧은 목의 구연부, 배부른 동체, 좁은 저부, 종위상 대상파수를 특징으로 하는 소위 공귀리식토기는 공귀리2기(기원전 12세기~기원전 5세기경)문화유형의 특징인데, 횡주자돌문 혹은 공렬문이 시문된 토기와 함께 발견된다. 한편, 공귀리2기와 비슷한 시기인 중강 토성리유적과 장성리유적에서는 미송리식토기와 묵방리식(墨房里式)토기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압록강 중상류권의 청동기문화가 요동 남단의 쌍타자문화, 요동 북부의 마성자문화, 두만강 유역의 공렬토기문화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김승옥, 2015).
그림3 | 압록강 중상류 유역 청동기시대 토기 양상(김승옥, 2015, 그림3.6)
- 1·2. 심귀리유적 1호 3. 심귀리유적 4. 공귀리유적 5~7. 심귀리유적2호 8·9·11·12. 공귀리유적5호 10. 토성리 퇴적층
한편, 요동 동부에 해당하는 환인(桓仁)일대는 석관묘, 대석개묘와 함께 부가퇴문구연토기, 종위대상파수토기, 발형토기, 삼각요저첨입석촉, 마제석검, 다양한 형태의 석도 등이 확인된다. 대석개묘는 동산유형, 석관묘는 요동 북부지역, 토기는 주로 마성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철기문화가 유입되기 이전까지 급진적인 변화상은 발견되지 않는다(오강원, 2005).
기원전 10세기경이 되면 요동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문화가 등장하게 된다. 물론 이 시기 비파형동검문화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요동 지역이 아니라 비파형동검과 다뉴조문경이 함께 출토된 십이대영자유적주 013
각주 013)
조양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유적은 평지성 구릉에 입지하고 있으며, 3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1호 석곽묘에서는 부부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머리를 서쪽으로 향한 채 확인되었다. 비파형동검과 검파두식, 동촉, 동부, 동도자, 동착, 동추, 다뉴동경, 청동거마구, 청동장식품 등과 함께 약간의 석기와 토기가 출토되었다. 2호묘와 3호묘에서도 비파형동검과 다뉴조문경이 수습되었다(조진선, 2015,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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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는 요서 조양(朝陽)일대이다. 요동의 비파형동검문화는 요동반도의 강상(崗上)유형과 내륙산지의 이도하자(二道河子)유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강상유형은 요동반도 남단을 중심으로 하면서 해안을 따라 압록강 하구까지 분포한다. 주된 묘제는 적석묘이지만 지석묘도 확인된다. 적석묘는 여러 기의 무덤이 함께 조영된 집단묘로, 화장묘가 대부분이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 동모, 동촉 등의 무기류, 동부, 동착 등의 공구류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각종 청동장식품과 거마구도 출토된다. 물론 십이대영자 문화의 출토 양상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비교적 다양한 청동기들이 확인된다. 이도하자유형은 요동 북부부터 길림성 중남부에 걸쳐 있는 요동 산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주된 묘제는 지석묘와 석관묘이다. 본계 양가(梁家)유적처럼 다뉴조문경이 출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파형동검, 비파형동모, 동촉과 같은 무기류와 동부나 동착 등의 공구류만 출토된다(조진선, 2015).
그림4 | 요동 지역의 청동기문화 분포 양상(華玉冰·王來柱, 2011, 도1)
- 1. 본계 신성자고분 2. 봉성 동산고분 3. 보란점 쌍방고분 4. 우가촌 타두적석묘
같은 시기 요동 북부지역에서는 신성자(新城子)문화의 미송리식토기가 유행한다. 미송리식토기는 표주박의 위아래를 잘라버린 단지모양 혹은 구경부가 발형(鉢形)인 토기로, 동체부에 횡침선(현문)이 시문되며 입술모양의 파수 내지는 대상파수가 부착되는 것이 특징이다. 토기와 석관묘의 양상으로 볼 때, 신성자문화는 그 이전 시기에 동일 지역에서 유행한 마성자(馬城子)문화에서 발전한 것이다. 석관묘에서는 미송리식토기 외에도 비파형동검이 출토된다. 신성자문화가 남쪽으로 내려가면 동산(東山)문화유형으로 변화하는데, 봉성(鳳城)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동산유형은 미송리식토기와 대석개묘를 기본 요소로 한다. 동 시기 요동반도 남쪽의 쌍방문화유형에도 미송리식토기와 이중구연심발이 등장한다. 쌍방유형에서는 주로 대석개묘(大石蓋墓, 석개석관묘)에 비파형동검이 부장되지만, 지석묘도 일부 발견된다. 그리고 요동반도 남단에는 재지적 전통의 적석묘에 날이 직인화되고 등대에서 융기부도 찾아볼 수 없는 요령식 세형동검(변형 비파형동검)이 부장되는 윤가촌문화유형이 확인된다. 이처럼 요동 일대에서 발견되는 미송리식토기와 일련의 변형 토기들은 당시의 광범위한 문화 교류 양상을 짐작케 한다.
요동 북부에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청동기시대 후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는 심양 정가와자(鄭家窪子)유적을 들 수 있다. 정가와자6512호 장방형 토광목곽묘(5×3m)에서는 후기형 비파형동검, 선형동부(扇形銅斧), 지그재그형 다뉴조문경을 비롯하여 끌, 송곳, 청동도자(손칼)와 같은 청동공구, 재갈과 재갈멈치, 나팔형장식 등의 청동마구, 원개형동기, 방패형동기와 같은 청동의기, 단추장식, 비녀, 구슬 등과 같은 청동 장신구와 장식, 그리고 화살촉 등 400여 점의 다양한 청동기와 함께 골기(비녀, 침, 재갈멈치), 석기(구슬), 토기(흑도장경호)가 출토되었다.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경 요동 지역의 최상위급 수장묘로 판단된다. 정가와자문화유형은 이전 시기의 십이대영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수장급 무덤의 출현은 요동 지역 역시 후기복합사회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림5 | 정가와자6512호묘(이후석, 2017a, 도면6)
정가와자유적에서는 흑도장경호와 함께 단면 원형에 가까운 점토띠를 부착한 점토대토기도 출토된다. 이들 토기군은 날이 직선화되는 변형 비파형동검 등과 같은 일련의 청동기와 함께 목곽묘에 부장되는 경우가 많다. 관의 위쪽이나 주변에 돌을 쌓거나 돌리기도 하여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로운 묘제(토광목곽묘)의 등장과 비파형동검, 풍부한 마구류와 함께 다양한 청동기의 부장, 점토대토기와 흑도장경호의 부장 등은 정가와자유형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이러한 양상은 요동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가 되면 동질적인 문화를 영위하는 집단이 일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

  • 각주 012)
    신암리(新巖里)문화는 용천 신암리유적을 표지로 하는 압록강 하류 유역 일대 이른 시기의 청동기시대 문화이다. 문화 변천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1기는 쌍타자1기의 문양인 원형첩부문이 시문된 호형토기에 신석기시대의 뇌문(雷文)이 조합되고 있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환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동 북부의 토기 요소인 돌대문과 돌대문으로 구획된 횡대구획문토기도 발견되고 있어, 재지적인 신석기시대 문화요소에 요동의 다양한 요소가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1기의 하한은 기원전 17세기경이다. 2기(기원전 16세기~기원전 12세기)는 일반적으로 쌍타자3기와 병행하는 시기로, 1기와 마찬가지로 요동 남부의 현문(횡침선)과 요동 북부의 각목돌대문의 문양 요소가 함께 발견된다. 그러나 각목돌대문과 함께 절상 및 유상의 돌대문이 나타나거나 현문 위아래로 횡주자돌문이 시문되기도 하며, 이중구연단사선문 토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호형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3기는 돌대문 요소가 사라지면서 이중구연의 옹형과 호형토기가 본격적으로 유행한다. 이중구연토기는 구연부 하단에 각목이나 자돌문이 시문되는 것이 다수이다. 기원전 9세기부터는 현문과 횡위대상파수가 달린 미송리식토기가 유행하게 된다(김승옥, 2015, 「묘제의 특징과 변천」,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51~52쪽). 바로가기
  • 각주 013)
    조양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유적은 평지성 구릉에 입지하고 있으며, 3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1호 석곽묘에서는 부부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머리를 서쪽으로 향한 채 확인되었다. 비파형동검과 검파두식, 동촉, 동부, 동도자, 동착, 동추, 다뉴동경, 청동거마구, 청동장식품 등과 함께 약간의 석기와 토기가 출토되었다. 2호묘와 3호묘에서도 비파형동검과 다뉴조문경이 수습되었다(조진선, 2015,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154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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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동 북부지역의 청동기문화 자료번호 : gt.d_0001_002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