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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4. 혼강 및 압록강 중상류 일대의 초기철기문화

4. 혼강 및 압록강 중상류 일대의 초기철기문화

기원전 4세기대 요동 지역은 비파형동검에 이어 요령식세형동검이 등장함에 따라 청동기문화 수준이 한층 더 높아졌다. 압록강 중상류를 포함한 요동 동부지역(천산산맥 동부)과 청천강 이북의 한반도 서북한 북부지역에서는 연-진-한 교체기인 3세기 말경 명도전 유적의 확산 및 유이민 파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초기철기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초기철기문화인 연화보-세죽리유형은 무순 연화보유적과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細竹里)유적을 표지(標識)로 하는데, 세형동검을 대표로 하는 재지적 청동기문화요소와 주조철부를 대표로 하는 연나라의 철기문화요소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明’자가 장식된 칼모양의 연나라 동전인 명도전(明刀錢)이 발견된다. 철기류로는 도끼, 괭이, 삽날, 낫, 자귀, 끌, 손칼, 송곳 등의 철제농공구와 창끝, 검, 칼 등의 철제무기가 있으며, 농공구는 주조 방식으로, 무기류는 단조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철기는 연나라 계통이 대부분이지만, 반월형철도(半月形鐵刀)와 같이 토착 전통에 기반하여 제작된 것도 있다. 토기의 경우에도 재지적 전통의 점토대토기를 바탕으로 연계 토기문화가 이입되어 지역화된 양상이 확인된다. 연에서 유래한 회도(灰陶)나 자비용 토기인 부형토기(燕式釜)등도 재지화되면서 연하도(燕下都)유적 출토품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요동 지역에서 유행하였던 산화염 소성의 점토대토기 역시 일부 기종에서는 연식토기(燕式土器)의 영향으로 기존의 점토대토기와는 다른 독특한 변화가 관찰된다(정인성, 2014).
표2 요동 지역과 서북한 지역의 초기철기문화 유적 현황표(이청규, 2014, 표3)이청규는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부에서 출토되는 중국 화폐의 연대를 분석한 古澤義久(2010)의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해당 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유적 현황표를 작성하였다(古澤義久, 2010, 「中國東北地方·韓半島西北部における戰國·秦·漢初代の方孔圓錢の展開」, 『古文化談叢』 64, 九州古文化硏究會). 요동-서북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중국계 화폐의 보급 현황에 따른 단계 구분은 다음과 같다. 1기: 명도전-포전(1기), 2기: 명도전-포전-일화전-진 반량(2~3기), 3기: 명도전-명화전-팔수반량전(4기), 4기: 사수반량전(5기), 5기: 오수전(5기 이후).
구분1기2기3기4기5기
기원전
3세기 전반
기원전
3세기 후반
기원전
2세기 전반
기원전
2세기 후반
기원전
1세기 전반
고조선
후기 후반
고조선
후기 말
위만조선
전기
위만조선
후기
한 군현
초기
요서
북부
생활 안산 양초장
(鞍山 洋草場)
요양 삼도호요양 삼도호
매납 태안 백성자
무덤요양 서왕자묘
(徐王子墓)
요양 망수대묘
(望水台墓)
요양 신성동
(新城洞)
요동
북부
생활 무순 연화보무순 연화보철령 구태(丘台)철령 구태
매납 철령 구태본계 괴석동
무덤 본계 상보촌
본계 남분
창도 적가촌
(昌道 翟家村)
본계 유가초
본계 박보촌
(朴堡村)
서풍 서차구서풍 서차구
신빈 용두산
무순 노동공원
요서
남부
생활 대련 목양성
대련 고려채
대련 목양성
금주 대령촌
대련 목양성
금주 대령촌
금주 대령촌
(錦州 大嶺村)
매납 대련 남산리
(南山里)
무덤여순 윤가촌
장해 서가구
(長海 西家溝)
여순 누상
대련 후원태
(後元台)
대련 대반가촌
(大磻街村)
보란점 강둔
(姜屯)
대련 이가구
대련 대반가촌
보란점 강둔
요동
남부
생활 봉성 유가보
수암 성남
봉성 유가보
수암 성남
매납 관전 쌍산자
무덤단동 조가보화전 서황산둔
(西荒山屯)
서북한
북부
생활 영변 세죽리
박천 단산리
매납 위원 용연동
그림8 | 요동-서북한 지역 초기철기시대 유적분포도(이광명, 2010, 도1)
- 1. 구태(邱台) 2. 연화보(蓮花堡) 3. 용두산(龍頭山) 4. 적가촌(翟家村) 5. 동산(東山) 6. 유이둔(劉爾屯) 7. 서차구(西岔溝) 8. 추수동(抽水洞) 9. 유가보(劉家堡) 10. 상보촌(上堡村) 11. 쌍산자(雙山子) 12. 대전자(大甸子) 13. 남분(南芬) 화차참(火車站) 14. 괴석동(怪石洞) 15. 적탑보자(滴塔堡子) 16. 망강루(望江樓) 17. 오녀산(五女山) 18. 대침가(大沈家) 19. 이가구(李家溝) 20. 후목성역(後牧城驛) 21. 마산패묘(馬山貝墓) 22. 후원태(後元台) 23. 삼주구(三 淍區) 24. 영성자(營城子) 25. 사구자(沙溝子) 26. 성남(城南) 27. 삼도호(三道壕) 28. 백성자(白城子) 29. 위원 용연동 30. 영변 세죽리 31. 시중 로남리 32. 중강 토성리 33. 북창 대평리 34. 강서 태성리 35. 평양 석암동 36. 봉산 솔뫼골 37. 은파 갈현리 38. 은율 운성리 39. 신성 전국묘(新城戰國墓) 40. 열애 전국묘(熱愛戰國墓) 41. 장가보 전국묘(張家堡戰國墓) 42. 고려채(高麗寨) 43. 목양성(牧羊城) 44. 대령둔(大嶺屯)
아마도 기원전 3세기경에 연과 고조선 간에 소형 철제농공구를 중심으로 한 교역이 이루어지다가, 연 장수 진개(秦開)가 동진하면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서북한 북부까지 명도전 화폐를 비롯한 연계 철기문화가 확산되었고, 결국 고조선 지역을 중심으로 연화보-세죽리문화유형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시기에 전 지역에 걸쳐 획일화된 유통 시스템이 작동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개별적으로 성장한 다수의 지역 주체 간에 상호 긴밀한 네트워크가 조성되어 각 거점별로 화폐와 철기 등의 재화가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요동 북부의 서쪽지역(요양 신성동유적, 서왕자유적)에서는 다량의 중원계 위세품이 출토되지만, 요동 북부의 동쪽지역(본계 유가초유적)과 요동 남부지역(장해 서가구유적, 단동 조가보유적)에서는 철기 없이 토착계 청동기인 세형동검을 비롯한 무기와 공구를 부장한 목관묘나 토광묘가 확인된다. 연의 철기와 화폐가 종전의 토착 청동기 갖춤새를 전면 대체한 것은 아니며, 외래계인 연나라 주초철기를 기본 갖춤새로 한 연화보-세죽리유형이 등장할 때, 재지계 청동기를 기본 갖춤새로 한 유가초(劉家哨)-조가보(趙家堡)유형의 청동기 부장 무덤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일정 거점에 연의 철기집단이 등장할 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재지 청동기집단이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이청규, 2014).
근래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세죽리-연화보유형 내에서 별도의 지역적 구분을 설정하기도 한다(이후석, 2017b). 연·진·한의 요동군(遼東郡)과 관련되는 요중 지역을 세죽리-연화보유형에서 제외한다든지, 요동 산간 또는 동부지역은 상보촌유형, 요동반도 남부지역은 윤가촌유형, 길림의 서남지역을 서황산둔유형으로 세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세형동검문화단계(초기철기시대)의 중국 동북지역 내 여러 지역문화 양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림9 | 중국 동북지역과 서북한 지역 출토 철기의 종류(이청규, 2014, 그림2)
- 1. 괭이/철부(钁, 곽): 수암 성남 2. 괭이/철부(钁, 곽): 수암 성남 3. 괭이(鐝, 궐): 수암 성남 4. 호미(梯形鋤, 제형서/鋤板): 무순 연화보 5. 가래(鍤, 삽): 유수 로하심 6. 반월형 철도(半月刀): 무순 연화보 7. 가래(凹口鍤, 요구삽): 운성리 가말뫼 8. 산(鏟): 수암 성남 9. 낫(鎌, 겸): 무순 연화보 10. 호미(六角形鋤, 육각형서): 연하도 11. 과(戈): 영변 세죽리 12. 화살촉(鏃): 수암 성남 13. 사(鉇/삭, 과): 위원 용연동 14. 끌(鑿, 착): 무순 연화보 15. 도자(刀子): 본계 괴석동 16. 도끼(斧, 부): 수암 성남 17. 도끼(斧, 부): 수암 성남 18. 극(戟): 평양 석암리 19. 창끝(矛, 모): 수암 성남 20. 검(劍): 대동군 상리
요동과 서북한 지역에서는 연계 철기가 도입된 이래 기원전 3세기 후반이 되면, 철기의 공간적 범위가 확대된다. 일부 거점지역에 철제농공구의 기종이 다량 보급되며, 검(劍), 창끝(矛), 과(戈)와 같은 철제무기류가 추가된다. 무순 연화보, 철령 구태(邱台), 대련 고려채(高丽寨), 영변 세죽리, 위원 용연동과 같은 생활유적에서 철제농공구와 함께 무기류가 출토된 바 있다. 진나라에 의해 연나라가 멸망하면서, 요동과 서북한 북부 전역에서는 연나라 화폐였던 명도전을 매납한 유구도 다수 발견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전국계 철기의 도입과 확산은 물론 요령식세형동검, 세문경, 세형동과와 같은 토착 청동기 역시 지속적으로 제작 및 보급된다.
기원전 3세기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통화 만발발자(萬發撥子, 王八脖子)유적과 본계 상보촌(上堡村)유적 등이 있다.
태자하(太子河)유역의 본계 상보촌 석관묘유적에서는 중원계 주조철기와 회색토기 그리고 고조선 계통의 점토대토기와 요령식세형동검(변형 비파형동검)이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앙신직지(仰身直肢) 상태의 인골이 발견된 1호 석관묘(2×1×1m)에서는 세형동검 2점, 원형 청동장식 1점, 점토대토기 1점, 주조 철착 1점, 회색타날문토기 1점 등이 함께 부장되어 있었다(魏海波·梁志龙, 1998).
상보촌유적에서 확인되는 중원계 철기문화와 재지계 청동기문화와의 결합 양상을 표지로 하여, 천산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한 요동 동부지역의 산간구릉지대를 포괄하는 지역에서 확인되는 세형동검문화단계의 유구와 유물 복합체를 상보촌유형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상보촌유형의 특징적인 유물에는 동대장자(東大杖子)유형주 017
각주 017)
동대장자유형은 대릉하 상류의 객좌, 능원, 건창 일대에서 확인된다. 이곳은 기원전 1000년기 전·중엽부터 십이대영자문화가 번성하였던 곳이지만, 중원계 유물들이 자주 공반되어 십이대영자문화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지역색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1000년기 후엽이 되면 지역색이 더욱 심화된다. 동대장자유적의 토광목관(곽)묘는 대부분 2단으로 토광을 파고 1단부에는 강자갈을 0.6~0.8m로 깔았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기가 대다수이며, 철기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청동기로는 돌기부와 융기부가 미약해진 비파형동검과 함께 중원식동검, 중원식동과, 중원계 청동예기, 전국계 거마구, 그리고 한국식동과의 발생과 관련이 있는 요령식동과도 출토되었다(조진선, 2014, 「中國 東北地域의 靑銅器文化와 古朝鮮의 位置 變動」, 『동양학』 5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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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처음 확인된 요령식의 검신 하부가 단이 진 요령식세형동검(상보촌류), 동과, 세형동모(세신형·유엽형)등의 청동무기를 비롯하여 정가와자유형을 계승하는 다뉴조세문경과 점토대토기발, 평저장경호, 두형토기 등의 토기류가 있다. 즉, 동대장자유형과 정가와자유형의 직간접적 상호작용을 통해 상보촌유형이 성립하였으며, 이후 전국 연계 물질문화를 수용하여 더욱 발전한 것이다. 토광묘와 석축묘(석관묘, 대석개묘)가 모두 확인되며, 석축묘의 경우 적석시설이 부가된 점이 특징적이다(이후석, 2017b). 상보촌유형은 십이대영자문화 또는 정가와자유형을 계승하는 청동기문화이면서도 중원계 유물들이 공반되고 있는 점, 분포권이 요동 북부에서 서북한 지역까지 이른다는 점,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나서 설치된 한사군 중 비교적 오랫동안 존속한 현도군과 낙랑군이 설치된 지역이라는 점을 토대로 진개 침입 이후 고조선 및 위만조선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조진선, 2014).
만발발자유적은 혼강 상류에 위치하며,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가 발굴조사 하였다.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1기)부터 상주시대(2기), 춘추전국시대(3기), 서한시대(4기), 위진시대(5기)를 거쳐 명대(6기)에 이르는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3기(청동기시대 후기)와 4기(초기철기시대)가 중심인데, 고구려 문화의 성립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적에서는 주거지 22기, 무덤 56기, 수혈 160기, 구상유구 9기 및 환호 1기 등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후기의 주 묘제는 세장방형의 토광묘, 대석개묘(大石蓋墓), 석관묘 등이며, 출토유물로는 세형동검, 협봉동모, 다뉴조세문경, 선형동부(扇形銅斧), 동환 등의 청동기와 청동거푸집(동검, 동부, 동촉), 돌대문토기와 발형토기, 호, 권족완을 비롯한 토기, 석도, 석부, 자귀, 구슬 등의 석기 그리고 각종 골기 등이 있다(오강원, 2004).
그림10 | 본계 상보촌유적 출토유물(이후석, 2017b, 그림11)
이 밖에도 환인 대전자(大甸子)석관묘에서는 판석으로 축조한 장방형 단실묘(4×3m)에서 세형동검 1점, 동촉 2점, 명도전 200매와 철삭(鐵削) 1점, 석환과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曾昭藏·齊俊, 1981). 압록강 중류 위원강의 지류인 한백강 유역에 위치한 위원 용연동유적에서는 원형 적석유구에서 수백여 점의 명도전과 동촉, 청동대구 외에도 다양한 철제농공구[주조철부, 자귀(鐵鏟), 가래(鐵鍬), 낫, 반월형철도 등]와 철제창끝(矛) 2점이 함께 출토된 바 있다(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1962). 용연동유적에서 연나라 계통의 철기와 함께 반월형철도와 같은 재지 전통의 철기가 공반되는 점은 철기 사용 집단의 성격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그림11 | 만발발자유적 21호 토광묘 출토 초기철기시대 토기(金旭樂·趙殿坤·董峯, 2003, 도4, 도5)
기원전 2세기 전반이 되면, 요동 전 지역에 농공구는 물론 각종 무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된다. 서북한 남부지역에서도 철제농공구의 일부 기종이 확인된다. 요동 지역에서는 무덤에 비해 생활유적에서 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철기의 도입 시점부터 일상생활용 철제농공구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사군이 설치되는 초기철기시대 후기부터는 무덤에서도 다양한 철제 무기류와 차마구 등이 출토된다.
기원전 2세기 요동 동부와 서북한 남부지역에서는 토착계 청동무기가 지속적으로 변형 발전하는 양상도 확인된다. 본계 박보(樸堡), 통화 금창진(金廠鎭), 집안 오도령구문(五道嶺溝門), 화전 서황산둔(西荒山屯) 유적 등에서 쌍조형의 검파두식을 한 동병동검(雙鳥形劍把頭飾 銅柄銅劍)이 출토되었다.
한편, 집안 오도령구문적석묘는 그 시기와 묘제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적석묘계의 무덤에서 요령식세형동검(변형 비파형동검), 동경, 유엽형 동모, 동부 등이 출토되어 고구려 성립 이전에 압록강 중상류 유역에 거주하던 집단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기원전 2세기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생활유적으로는 환인 추수동(抽水洞)유적이 있다. 혼강의 지류인 삼도하(三道河)유역의 북쪽 낮은 구릉 사면에 입지하며, 유적 남쪽에는 대석개묘와 적석묘가 확인된 대전자(大甸子)유적이 있다. 유적에서는 주거지 2기와 수혈 5기, 구상유구 1기, 돌담장 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1호 주거지는 평면 형태 원형(직경 3.2~3.3m)의 4주식 수혈주거지로, 중앙 남쪽에 노지가 설치되어 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토기, 골제비녀, 방추차, 갈판 등과 함께 새모양 철제장식품(鳥形鐵飾) 1점이 출토되었다. 2호 주거지는 평면 형태 장방형(2.4×2m)의 4주식 수혈주거지로, 주조철부와 철제도자, 그리고 명도전, 일화전(一貨錢), 진대 반량전, 동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수혈과 구상유구 등에서 주조철부, 철촉, 철경동촉, 동촉과 명도전과 반량전 등이 발견되었다(武家昌·王俊辉, 2003). 반량전이 출토된 시기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철기들은 전형적인 연나라 계통이라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일부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기원전 2세기 후반부터 요동과 서북한지역에 한나라 단조기술이 확산되면서, 기원전 1세기에는 한나라 계통 단조철기 전 기종이 고루 분포하게 된다. 다만 요동 북동부와 서북한 남부에는 각각의 전통적인 청동 재질과 디자인 속성에 한나라의 새로운 철기 단조기법을 적용한 새로운 형식의 유물이 등장하는데, 요동 북동부에서는 쌍조형 검파두식의 동병철제장검이, 서북한 남부에서는 별도로 주조하여 결합한 동병동검(단검)이 보급되어 지역성이 나타난다. 동병철검(銅柄鐵劍)은 서풍(西豊) 서차구(西岔溝)고분군이나 신빈(新賓) 용두산(龍頭山) 대석개묘, 무순 노동공원(勞動公園)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지역성을 드러내는 유물의 분포는 한사군 설치 이전까지 요동 지역에서 재지세력이 정체성을 유지하며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요동 북동부는 부여, 서북한 남부는 위만조선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1세기대에 해당하는 서차구고분군에서는 한대의 동경, 화폐, 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孫守道, 1960). 괭이(钁), 철부, 자귀, 호미(鋤) 등의 농공구류와 장검, 환두대도, 창끝 등의 무기류, 재지적 특성을 보여주는 촉각식과 환두동병철검이 확인된다.
동 시기 압록강 중류 유역에는 시중 노남리유적과 중강 토성리유적이 있다. 시중 노남리유적은 자강도 시중군 강계시 독로강 유역에 있는데, 초기철기시대 주거지 2기와 제철로 1기가 확인되었다. 철제도끼, 철촉, 송곳, 꺽쇠, 띠고리 등의 철기와 청동팔찌, 청동촉, 명도전, 오수전 등과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토성리유적은 토성리토성 내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초기철기시대 주거지 2기와 야철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부형철촉, 철제 도자, 낚시바늘과 함께 오수전과 회색경질토기 등이 출토되었다(리병선, 1961).
이 밖에도 장백현 간구자적석묘와 통화 만발발자유적에서도 한대 철곽(鐵钁)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구려 적석총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 간구자적석묘에서는 진대 말기 혹은 한대 초기의 반량전(半兩錢), 한대 철곽과 철제도자 등이 출토된바, 전국 말기에서 서한 시기로 편년된다(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2003).

  • 각주 016)
    이청규는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부에서 출토되는 중국 화폐의 연대를 분석한 古澤義久(2010)의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해당 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유적 현황표를 작성하였다(古澤義久, 2010, 「中國東北地方·韓半島西北部における戰國·秦·漢初代の方孔圓錢の展開」, 『古文化談叢』 64, 九州古文化硏究會). 요동-서북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중국계 화폐의 보급 현황에 따른 단계 구분은 다음과 같다. 1기: 명도전-포전(1기), 2기: 명도전-포전-일화전-진 반량(2~3기), 3기: 명도전-명화전-팔수반량전(4기), 4기: 사수반량전(5기), 5기: 오수전(5기 이후). 바로가기
  • 각주 017)
    동대장자유형은 대릉하 상류의 객좌, 능원, 건창 일대에서 확인된다. 이곳은 기원전 1000년기 전·중엽부터 십이대영자문화가 번성하였던 곳이지만, 중원계 유물들이 자주 공반되어 십이대영자문화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지역색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1000년기 후엽이 되면 지역색이 더욱 심화된다. 동대장자유적의 토광목관(곽)묘는 대부분 2단으로 토광을 파고 1단부에는 강자갈을 0.6~0.8m로 깔았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기가 대다수이며, 철기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청동기로는 돌기부와 융기부가 미약해진 비파형동검과 함께 중원식동검, 중원식동과, 중원계 청동예기, 전국계 거마구, 그리고 한국식동과의 발생과 관련이 있는 요령식동과도 출토되었다(조진선, 2014, 「中國 東北地域의 靑銅器文化와 古朝鮮의 位置 變動」, 『동양학』 56, 5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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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혼강 및 압록강 중상류 일대의 초기철기문화 자료번호 : gt.d_0001_0020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