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과 관등제 변화
2.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과 관등제 변화
나부의 제가세력들이 나부를 떠나 왕도로 결집하고 방위부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들을 정치적으로 국왕 아래 관료기구 및 신분체계 내에 위계상으로 배치하고 편제하는 장치가 관등제이다. 『삼국지』 고구려전에 보이는 초기 관등제에서 왕권 아래에 일원적으로 구성되는 중기 관등제로의 변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관등제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요체는 패자와 우태 등 초기 관등의 일부가 소멸되고, 사자계와 형계 관등이 대소로 분화하여 위계화하는 일원적 관등제가 성립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초기 관등제에서 중기 관등제로 재편되는 과도적 상황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관등이 패자와 대로(對盧)이다.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대로가 있으면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가 있으면 대로를 두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어, 이 관등이 거의 같은 위상이며 서로 교치하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패자와 대로의 성격 및 두 관등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가 충분하지 않아서 여러 견해가 있는데,주 004
각주 004)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책 1장 ‘정치체제의 구조와 운영’을 참고하기 바란다. 패자의 기능과 성격에 대해서는 나부의 수장(임기환, 2004), 나부 형성을 주도한 중심 나국세력(여호규, 2014), 군사적 기능을 전제로 한 나부 최고위직(김광수, 1983), 나부를 구성한 부내부의 장(조영광, 2015) 등 여러 견해가 있다. 대로 역시 패자와 마찬가지로 군사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견해(여호규, 2014), 대로를 왕의 직속 관료군인 주부가 상향 분화하여 탄생한 관등으로서 대주부와 동일한 실체로 보는 견해(조영광, 2015), 국왕과 밀접한 계루부를 구성한 수장층의 위호로 보는 견해(장병진, 2019) 등이 있다.
패자와 대로와 관련된 사료를 보면, 패자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사에서 태조왕 이후 나부를 대표하는 인물과 관련하여 다수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음에 반하여, 대로에 관한 기사는 전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대로가 패자보다 늦은 시기에 성립하여 패자를 대체하는 관등으로 등장하였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패자 관등이 4세기 이후에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대로는 중·후기 관등제에서 최상위 관등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체 맥락에서 볼 때 패자에서 대로로 대체되는 변화의 양상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패자와 대로가 서로 교치되는 상황은 3세기 중엽에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여호규, 2014).
초기 관등제에서 최고위 관등의 하나인 패자가 소멸해 가듯이 우태·조의(皁衣) 관등 역시 중·후기 관등제에서 보이지 않는다. 초기 관등제 중 패자·우태·조의를 나부의 제가세력을 편제하는 나부계 관등으로, 대로·주부(主簿)·사자를 왕권을 뒷받침하는 방위부세력을 편제하는 방위부계 관등조직으로 보는 견해(임기환, 2004)는 3세기 무렵에 당시 지배세력이 점차 나부에서 수도의 방위부로 이주, 편제되어 중앙귀족이 되어 감으로써 나부계 관등이 소멸 과정을 밟게 되며, 방위부계 관등이 점차 확대 개편되는 것으로 이해한다(임기환, 2004). 동시에 『삼국지』 고구려전에 보이는 초기 관등제에서 나부계 관등과 방위부계 관등이 서로 교차되어 있으며, 특히 방위부계 관등이 나부계 관등보다 상위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를 왕권의 강화 과정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방위부계 관등인 대로·주부·사자는 대대로·대주부·대사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大)·소(小)로 분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데 반하여, 나부계 관등인 패자·우태·조의는 그러한 분화 과정이 없이 소멸되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는 나부계 관등이 애초부터 제가의 세력규모나 위계에 따른 편제방식으로 성립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에 반하여 방위부계 관등은 점차 제가세력을 편제하는 기능을 담당하면서 확대 개편되어 가는 과정에서 대·소로 분화되어 갔음을 추지할 수 있다(임기환, 2004).
한편 초기 관등제의 구성과 성격에 대해서는 계루부 왕권이 나부의 다양한 지배세력을 편제하기 위해 설치한 관등(패자·우태·조의), 계루부 왕권의 집권력을 뒷받침하던 관등(주부·사자), 각 나부의 자치권을 뒷받침한 관등(사자·조의·선인) 등과 같이 다원적인 구성으로 파악하는 견해(여호규, 2014)가 초기 관등제의 전체적인 양상을 이해하는 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 이 경우에도 나부세력을 편제하는 관등이 소멸되는 과정이 국왕 중심의 일원적 관등제로 변화해가는 양상의 하나로 파악되고 있다.
중앙집권체제의 관등제로 이행하는 과정은 단지 나부세력을 편제하는 나부계 관등의 소멸로 그치지 않는다.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초기 관등제의 모습만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변화양상을 살펴보기 위해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관련 기사를 검토하고자 한다.
고구려본기 기사에서 나타나는 초기 관등제에서 중기 관등제로의 변화양상은 대략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여호규, 2014). 1단계는 사자계 관등이 아직 분화하지 않았고, 형계 관등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로서 초기 관등제의 구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시기이다. 2단계는 나부의 지배세력을 편제하는 관등인 패자·우태 등이 점차 사라지고, 사자계 관등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3단계는 나부세력을 편제하는 관등이 소멸되고 형계 관등이 등장하는 시기로, 초기 관등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관등제가 성립하는 시기이다.
2단계와 3단계는 대략 2세기 중반에서 3세기 중·후반에 걸쳐 전개되는데, 초기 관등제에서 중기 관등제로 전환하는 과도기이며 동시에 중기 관등제의 성립기반이 마련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변화 양상을 좀더 살펴보자. 고구려본기에서 사자계 관등의 분화현상은 2세기 말부터 보이고 있다. 앞에 제시한 사료에서 나타나듯이 고국천왕대에 방위부인 4부가 추천한 인물이 동부 안류였는데, 나중에 고국천왕은 안류에게 대사자 관등을 수여하였다. 같은 계루부 출신이면서 고국천왕을 뒷받침하는 세력인 을파소에게 우태 관등을 수여한 사실과 대비된다. 이는 대사자 관등이 국왕의 직속 세력기반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후 동천왕대 관구검의 침공 시에 왕을 지키기 위해 전사한 유유에게는 구사자(仇使者), 그의 아들에게 대사자(大使者)의 관등을 수여하였다. 유유가 받은 구사자는 유일한 사례로서 혹 대사자의 오기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일단 구사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사자계 관등 분화 과정의 여러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후 대사자의 사례는 서천왕의 장인인 서부 우수이다.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우수는 왕비족이라는 점에서 고국천왕 비의 아버지인 연나부 우소와 같은 부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우수는 본래 연나부라는 나부 출신이거나 혹은 나부 출신의 후손으로, 서천왕대에 방위부에 소속되어 있던 인물로 볼 수 있다. 나부 출신 세력들이 방위부로 편제될 때에는 단지 소속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수여받은 관등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이다. 즉 초기 관등제에서 중앙집권적 관등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부계 관등과 방위부계 관등이 관등제 운영의 체계상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는 왕비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나부 출신이 아닌 방위부 출신이 차지하는 정치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서천왕대에는 국상이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갖는 자리에 비류나부(沸流那部) 패자인 음우(陰友),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는 음우의 아들 상루(尙婁)가 올랐다. 고구려본기에 상루의 소속부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음우의 아들이니 비류나부일 수도 있고, 혹은 앞서 서천왕 비의 아버지인 우수의 사례처럼 수도 국내성으로 이주한 뒤 방위부로 편제된 인물일 수도 있다.
상루의 소속부가 어디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서천왕의 뒤를 이은 봉상왕대에는 남부 대사자 창조리가 국상에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대사자에서 대주부로 승진하였다. 국상의 자리에 방위부 출신이 임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리의 예에서는 대사자-대주부로 이어지는 관등의 승급 사례가 확인되는데, 초기 관등제에서 방위부계 관등으로서 기능하고 있던 주부·사자가 일련의 관등체계 속에서 대·소로 분화하면서 계루부 왕권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고구려 초기에 사자계 관등의 분화는 부여에서 이미 대사(大使)·대사자(大使者)·사자 등의 분화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복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고구려의 통치영역이 확대되고, 또 중앙집권화가 진전되면서 그에 따른 관등의 분화 역시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자계 관등의 분화 배경에는 나부 제가세력의 편제라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서천왕비의 아버지인 서부 대사자 우수의 사례가 사자계 관등이 방위부로 재편된 제가세력을 편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나부의 제가세력이 방위부로 재편될 때에 모두 사자계 관등으로 편제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여기서 형계 관등의 성립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부계 관등의 소멸 시기에 형계 관등이 나타나고 있다. 즉 나부계 관등을 대신하여 형계 관등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형(兄)을 ‘웃치’로 읽어 연장자 내지는 친족공동체의 장이란 의미로 해석하여 우태를 형의 전신으로 보았는데(김철준, 1975), 이러한 어원적인 이해는 자칫 형계 관등이 갖는 역사적 성격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형계 관등은 사료상으로는 봉상왕대에 소형(小兄)에서 대형(大兄)으로 관등이 승진한 고노자(高奴子)가 최초의 예이다. 또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는 대사자 모두루의 선조인 대형 염모(冉牟)가 확인되는데, 선비 모용씨(慕容氏)와의 전쟁기록으로 보건대, 염모의 활동 시기는 대략 고국원왕 무렵으로 추정된다. 즉, 형계 관등의 등장은 대략 봉상왕~고국원왕대를 전후한 시기로, 나부의 소멸 시기와 맞물려 있다.
여기서 3세기 말까지 형계 관등을 역임한 유일한 사례인 고노자와 관련된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고노자는 북부(北部) 출신으로 동북지역의 신성재(新城宰)로 파견되었다가, 봉상왕 2년에 선비 모용외의 침공 때에 전공을 세워 곡림(鵠林)을 식읍으로 하사받고, 소형에서 대형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3년 뒤에는 모용씨의 침공을 막을 적임자로 선임되어 서북지역의 신성태수(新城太守)에 임명되었다.
고노자의 사례에서 당시 형계 관등 운영의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고노자가 전공을 세운 다음에 신성재라는 관직에는 변동이 없고 소형에서 대형으로 관등이 승격한 상황으로 보아 형계 관등도 단순히 관품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정치적 지위나 신분 등급을 나타내는 위계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이해된다(여호규, 2014). 그리고 지방관의 등급에서 신성재와 신성태수는 엄연히 위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재-소형, 태수-대형이라는 관직과 관등의 대응관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도 형계 관등이 관품적 성격보다는 지배세력의 위계적 편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형계 관등은 고노자의 예에서 보듯이 성립 초기부터 대형·소형 등으로 분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사자계 관등의 분화에 맞추어 어느 시기에 제도적으로 성립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패자·우태·조의 등 서열화된 나부계 관등을 대체하는 관등으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그 성립 단계에서 대·소의 분화가 충분히 예상되는 바다(임기환, 2004).
그리고 지배세력의 편제 기능을 한다고 하더라도 초기 관등제에서 나부세력을 편제하는 패자·우태·조의 등은 관등 자체가 명칭상에서 구별되었는데, 형계 관등은 대·소로만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계 관등을 수여받은 인물들이 나부세력들에 비해 등질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여호규, 2014). 아차산4보루에서 출토된 접시에 새겨진 명문 중에서 ‘후부도□형(後部都 □兄)’, ‘지도형(支都兄)’, ‘염모형(冉牟兄)’ 등에 붙은 ‘형(兄)’을 인명 뒤에 붙는 존칭어미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형이라는 관등이 지배세력 일반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여호규, 2014).
이러한 측면은 대·소로 분화되고 있는 사자계 관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3세기 중반 이후 중앙귀족으로 전신한 나부 지배세력 일반을 편제하는 관등으로 사자계 관등과 형계 관등이 대·소로 분화하여 성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자계 관등과 형계 관등의 성격은, 3세기 중·후반 중앙지배세력의 성격이 초기 나부 지배세력에 비해 동질성이 높아진 결과로 파악할 수 있다.
기록상 고노자의 사례를 통해 형계 관등이 처음 등장하는 봉상왕대에는 남부 대사자 창조리가 국상이 되어 방위부 출신이 처음으로 국상을 차지한 점 역시 주목된다. 나부 지배세력을 편제하는 새로운 관등의 등장이나 그동안 나부세력이 차지하고 있던 최고관직인 국상을 방위부 출신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3세기 후반에는 나부의 제가세력이 방위부로 재편되고, 그 과정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제가세력의 동향은 왕권 강화 및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와 관련된다. 이러한 시기에 형계 관등이 등장하였고 또 사자계 관등과 더불어 4세기 이후 집권적 관등조직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형계 관등의 성립 배경이나 그 성격이 집권체제의 정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이상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초기 관등제는 태조대왕대 이후 나부체제의 성립 과정에서 제가세력을 세력의 대·소에 따라 편제하는 중앙정치조직의 하나로 성립하여, 2세기 이후에는 나부와 방위부라는 이원적 부조직의 구조에 대응하는 형태로 성립하였다. 그러다 3세기 이후 나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나부계 관등이 소멸되고 4세기 이후에는 사자계와 형계 관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 관등조직으로 개편되는 과정을 밟았던 것으로 판단된다(임기환, 2004).
한편 나부세력을 편제하는 새로운 관등제가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관등제 자체만으로 저절로 나부세력이 편제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관등제를 통해 중앙집권체계에 편입하려는 나부세력의 지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초기 관등제가 제가세력을 편제하는 측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개개인의 정치적 지위나 신분적 위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기준으로 기능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대가·소가의 정치적 성격이 각 친족집단을 대표하는 인물의 개인적 지위일 뿐, 그 집단 내의 구성원이 모두 ‘가(加)’라는 지위 혹은 나부계 관등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 주목된다. 예컨대 소노부의 경우 적통대인만이 고추가를 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친족집단 내에서도 가(加) 혹은 나부계 관등을 획득하지 못한 인물들은 왕권과의 결합을 통해 중앙의 관등·관직을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보장받으려는 동향을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친족집단의 가문별 분화 과정과 집권체제의 정비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고구려의 경우 사료상으로 찾아볼 수 없으나, 부여의 경우에서 엿볼 수 있다. 『삼국지』 부여전에는 위거(位居)의 아버지가 죽고 형제상속으로 그 계부(季父)가 우가(牛加)가 되자, 위거는 왕권과 결합하여 대사(大使)가 되었다. 그런데 이 위거가 “매년 사자를 보내”거나 “대가를 보내어 영접”하고, 또 우가 부자를 처형할 수 있었던 것은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널리 베풀기를 좋아하여” 자기 세력을 얻었던 점도 있겠으나, 왕권을 배경으로 한 대사(大使)라는 관직이 본래 이러한 권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김광수, 1993).
당시 부여 왕권의 배경은 ‘대사·대사자·사자’란 관직이었을 것이다. 고구려로 미루어 보아 부여에서도 왕이나 대가의 하위 관직으로서 분화 이전에 사자가 있었음은 충분히 짐작되는 바다. 이러한 사자가 다시 대사 등으로 분화된 것은 곧 왕권의 상대적 강화에 따라 왕권 아래의 사자 관직을 확대하여 이를 왕권의 배경으로 삼기 위함일 것이다. 사자계 관직이 갖는 정치적 성격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도 왕권의 강화 과정에서 점차 왕권을 뒷받침하는 관등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어 가면서 주부·사자의 분화 확대가 이루어지고, 관직과 관등을 매개로 나부세력을 왕권 아래의 관료조직 내로 편제해 갔을 것이다. 나부의 제가세력이 방위부로 재편되는 과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왕권 중심의 일원적 관등조직으로 개편되는 배경의 하나가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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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패자의 기능과 성격에 대해서는 나부의 수장(임기환, 2004), 나부 형성을 주도한 중심 나국세력(여호규, 2014), 군사적 기능을 전제로 한 나부 최고위직(김광수, 1983), 나부를 구성한 부내부의 장(조영광, 2015) 등 여러 견해가 있다. 대로 역시 패자와 마찬가지로 군사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견해(여호규, 2014), 대로를 왕의 직속 관료군인 주부가 상향 분화하여 탄생한 관등으로서 대주부와 동일한 실체로 보는 견해(조영광, 2015), 국왕과 밀접한 계루부를 구성한 수장층의 위호로 보는 견해(장병진, 2019)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