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곽의 분포현황과 군사방어체계의 구성
1. 성곽의 분포현황과 군사방어체계의 구성
1) 요동 지역 성곽의 분포현황
〈표1〉은 요하~압록강 유역에 산재한 고구려 성곽을 종합한 것인데, 총 168기가 분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주 001 이 지역에 분포한 고구려 성곽을 입지에 따른 유형으로 분류하면 평지성 15기, 산성 148기(소형 보루성 포함), 관애 3기(장성 포함), 미상 2기 등으로 산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평지성은 수도 많지 않지만, 신빈 영릉진고성, 무순 노동공원 고성, 단동 애하첨고성, 요양 요동성지 등 대부분 중원 왕조의 군현성을 재활용한 것이다(윤용구, 1999). 고구려가 중원 왕조의 군현성을 일부 재활용하는 한편, 주로 산성을 새로 축조한 것이다.
표1 | 요동 지역(요하~압록강 유역)의 고구려 성곽 현황양시은과 정원철의 분류안을 종합한 것이다. 다만 보루성에 해당하는 초소형 산성의 기준을 양시은은 400m 이하, 정원철은 300m 미만으로 설정했다. 또 정원철은 중형 산성을 1~2km의 중소형과 2~3km의 중대형으로 세분했고, 양시은은 초대형 산성을 별도로 상정하지 않았다(양시은, 2016, 127~129쪽; 정원철, 2017, 128~134쪽). 한편 중국의 진대위는 둘레 0.2~1km를 소형 산성, 1~2km를 중형 산성, 2km 이상은 대형 산성, 위존성은 1km 미만을 소형, 1~3km를 중형, 3km 이상을 대형으로 분류했다(陳大爲, 1985; 魏存成, 2011).
| 시·현 | 입지 유형 | 축성 방식 | |||||||||
| 평지성 | 산성 | 관애(장성) | 미상 | 합계 | 석축 | 토축 | 토석혼축 | 토축 + 석축 | 미상 | 합계 | |
| 심양시 | 4 | 4 | 2 | 1 | 1 | 4 | |||||
| 신민현 | 1 | 1 | 1 | 1 | |||||||
| 무순시·현 | 2 | 7 | 9 | 2 | 4 | 1 | 1 | 1 | 9 | ||
| 신빈현 (소자하) | 3 | 8 | 11 | 2 | 3 | 6 | 11 | ||||
| 청원현 | 1 | 1 | 1 | 1 | |||||||
| 영구시 | 1 | 1 | 1 | 1 | |||||||
| 개주시 | 1 | 15 | 16 | 12 | 2 | 2 | 16 | ||||
| 대석교시 | 1 | 3 | 4 | 3 | 1 | 4 | |||||
| 안산시 | 2 | 2 | 2 | 2 | |||||||
| 해성시 | 4 | 4 | 2 | 2 | 4 | ||||||
| 수암현 | 24 | 1 | 25 | 21 | 1 | 1 | 2 | 25 | |||
| 요양시 | 1 | 1 | 1 | 1 | |||||||
| 등탑시 | 1 | 1 | 1 | 1 | |||||||
| 요양현 | 1 | 2 | 3 | 1 | 2 | 3 | |||||
| 본계시 | 5 | 5 | 4 | 1 | 5 | ||||||
| 본계현 | 1 | 5 | 6 | 4 | 2 | 6 | |||||
| 신빈현 (태자하) | 3 | 3 | 3 | 3 | |||||||
| 단동시 | 1 | 2 | 3 | 1 | 2 | 3 | |||||
| 봉성시 | 15 | 15 | 11 | 1 | 2 | 1 | 15 | ||||
| 관전현 | 5 | 1 | 6 | 6 | 6 | ||||||
| 동항시 | 1 | 8 | 9 | 8 | 1 | 9 | |||||
| 대련시 | 1 | 2 | 3 | 2 | 1 | 3 | |||||
| 와방점시 | 5 | 5 | 5 | 5 | |||||||
| 장하시 | 5 | 5 | 5 | 5 | |||||||
| 보란점시 | 3 | 1 | 4 | 3 | 1 | 4 | |||||
| 철령시 | 1 | 5 | 1 | 7 | 3 | 1 | 1 | 2 | 7 | ||
| 개원시 | 4 | 4 | 1 | 3 | 4 | ||||||
| 서풍현 | 1 | 5 | 6 | 3 | 1 | 1 | 1 | 6 | |||
| 요원시 | 3 | 3 | 3 | 3 | |||||||
| 공주령시 | 1 | 1 | 1 | 1 | |||||||
| 합계 | 15 | 148 | 3 | 2 | 168 | 107 | 22 | 21 | 7 | 11 | 168 |
산성은 규모에 따라 둘레 500m 이하인 보루성, 둘레 0.5~1km의 소형 산성, 1~3km의 중형 산성, 3~5km의 대형 산성, 5km 이상의 초대형 산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주 003 초대형 산성으로는 둘레가 무려 16km에 이르는 봉성 봉황산산성을 들 수 있다. 대형 산성은 각 권역별로 1~2기가 점점이 분포하며, 중형 산성이나 소형 산성이 소지역별로 1~2기 산재하며, 둘레 500m 이하의 보루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산성의 규모에 따른 분포양상은 고구려 중후기의 군사방어체계나 지방제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축성 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석축성 107기, 토축성 22기, 토석혼축성 21기, 토축+석축성 7기, 미상 11기이다. 정밀조사를 거치지 않은 성곽이 상당수 있지만, 대체적인 추이는 보여준다. 종래 일부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가 요동 진출 이후에 주로 토성을 축조했다고 보았지만(李殿福, 1991; 1994; 辛占山, 1994; 溫秀榮·張波, 1996), 오히려 석성의 비중이 더 높다. 또 철령 최진보산성이나 개주 고려성산성처럼 하나의 성곽에서 구간별로 석벽, 토벽, 토석혼축벽을 혼용한 사례가 많다. 축성 방식은 시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조달 가능한 축성재료, 성벽의 입지 조건과 방어상의 역할 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대평원지대에는 신민 고대자산성, 영구 태평보고성, 요양 요동성지 등을 제외하면 고구려 성곽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주요 성곽은 요하 본류 연안의 대평원이 아니라 요하의 지류로 진입하는 길목인 대평원과 산간지대의 결절점 및 요하 지류의 연안로를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요동반도에도 해안 평야지대보다는 해안평야와 내륙 산간지대의 결절점, 주요 하천 연안로나 천산산맥 협곡로를 따라 분포해 있다.

그림1 | 요하~압록강 유역의 성곽 분포현황과 방어체계의 구성(여호규, 1999a)
- [蘇子河 유역] 1. 新賓 永陵鎭古城 2. 二道河子舊老城 3. 羅家堡子城 4. 頭道砬子山城 5. 三道堡東山城 6. 溫家窯山城 7. 阿伙洛村山城 8. 白旗堡古城 9. 河西村古城 10. 五龍山城
[渾河와 그 주변] 11. 撫順 高爾山城 12. 勞動公園古城 13. 鐵背山城 14. 馬和寺山城 15. 南章黨山城 16. 城子溝山城 17. 西山山城 18. 淸原 山城子山城 19. 瀋陽 石臺子山城 20. 新民 高台子山城
[太子河 유역] 21. 新賓 太子城 22. 杉松山城 23. 本溪 下堡山城 24. 有官山城 25. 邊牛山城 26. 瀋陽 塔山山城 27. 燈塔 白巖城 28. 遼陽 姑嫂山城 29. 鞍山 古道關石城 30. 遼陽 遼東城址
[遼河 하구 주변] 31. 海城 英城子山城 32. 營口 馬圈子山城 33. 盖州 高麗城山城 34. 營口 太平堡古城
[鐵嶺 지역] 41. 鐵嶺 催陣堡山城 42. 靑龍山古城 43. 開原 馬家寨山城 44. 古城子山城 45. 龍潭寺山城 46. 西豊 城子山山城
[東遼河 유역] 51. 遼源 龍首山城 52. 工農山城 53. 城子山山城
[老邊崗遺蹟] 54. 公主嶺(舊 懷德) 55. 農安 56. 德惠
[요동반도 일대] 61. 大連 大黑山城 62. 瓦房店 得利寺山城 63. 普蘭店 魏覇山城 64. 蓋州 赤山山城 65. 庄河 城山山城 66. 岫岩 娘娘山城 67. 岫岩 松樹溝山城 68. 鳳城 鳳凰山城 69. 丹東 虎山山城
[서북한 지역] 71. 백마산성 72. 용골산성 73. 능한산성 74. 농오리산성 75. 철옹성 76. 안주성 77. 청룡산성 78. 황룡산성 79. 흘골산성
- [蘇子河 유역] 1. 新賓 永陵鎭古城 2. 二道河子舊老城 3. 羅家堡子城 4. 頭道砬子山城 5. 三道堡東山城 6. 溫家窯山城 7. 阿伙洛村山城 8. 白旗堡古城 9. 河西村古城 10. 五龍山城
[渾河와 그 주변] 11. 撫順 高爾山城 12. 勞動公園古城 13. 鐵背山城 14. 馬和寺山城 15. 南章黨山城 16. 城子溝山城 17. 西山山城 18. 淸原 山城子山城 19. 瀋陽 石臺子山城 20. 新民 高台子山城
[太子河 유역] 21. 新賓 太子城 22. 杉松山城 23. 本溪 下堡山城 24. 有官山城 25. 邊牛山城 26. 瀋陽 塔山山城 27. 燈塔 白巖城 28. 遼陽 姑嫂山城 29. 鞍山 古道關石城 30. 遼陽 遼東城址
[遼河 하구 주변] 31. 海城 英城子山城 32. 營口 馬圈子山城 33. 盖州 高麗城山城 34. 營口 太平堡古城
[鐵嶺 지역] 41. 鐵嶺 催陣堡山城 42. 靑龍山古城 43. 開原 馬家寨山城 44. 古城子山城 45. 龍潭寺山城 46. 西豊 城子山山城
[東遼河 유역] 51. 遼源 龍首山城 52. 工農山城 53. 城子山山城
[老邊崗遺蹟] 54. 公主嶺(舊 懷德) 55. 農安 56. 德惠
[요동반도 일대] 61. 大連 大黑山城 62. 瓦房店 得利寺山城 63. 普蘭店 魏覇山城 64. 蓋州 赤山山城 65. 庄河 城山山城 66. 岫岩 娘娘山城 67. 岫岩 松樹溝山城 68. 鳳城 鳳凰山城 69. 丹東 虎山山城
[서북한 지역] 71. 백마산성 72. 용골산성 73. 능한산성 74. 농오리산성 75. 철옹성 76. 안주성 77. 청룡산성 78. 황룡산성 79. 흘골산성
이러한 성곽의 분포양상은 고구려의 지방지배나 방어전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요하~압록강 일대는 자연지형과 방어체계의 구성 등을 기준으로 크게 혼하~태자하 중상류, 요하~압록강 하류, 요하 중상류 동안지역 등 세 권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럼 각 권역별로 성곽의 분포현황 및 방어체계의 구성양상을 고찰해보자.
2) 혼하~태자하 중상류의 성곽 분포현황과 군사방어체계
요하 유역 가운데 혼하(渾河)와 태자하(太子河) 중상류 일대는 고구려 초기 중심부인 압록강 중류 유역과 요동 지역을 잇는 간선교통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이 지역은 7장에서 간략히 고찰한 것처럼 평양성보다는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의 방어체계와 더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다만 이 지역은 수·당과의 전쟁에서도 중요한 전장이었는데, 자연지형과 고구려의 진출시점을 고려하면 태자하 중상류, 소자하 유역, 혼하 본류 연안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태자하 중상류 유역은 천산산맥이 동북에서 서남으로 내리뻗은 험준한 산간지대이다. 이 지역은 양맥(梁貊)의 거주지로 고구려 건국 직후에 편입되었다. 이곳에서는 6기의 고구려 성곽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신빈 태자성은 둘레 1.5km 전후의 중형 산성, 신빈 삼송산성과 본계 하보산성은 둘레 1km 전후의 소형 산성이며, 나머지 3기는 소형 보루이다. 대형 산성은 확인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성곽이 비교적 골고루 분포한다.
신빈 태자성은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양성(梁城)으로 비정된다(여호규, 1999a). 이로 보아 이 지역에는 늦어도 광개토왕 시기에는 고구려 성곽이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데, 삼송산성의 경우 그 입지나 축조 양상이 환인 고검지산성과 유사하다는 점에서(溫秀榮·張波, 1996; 王綿厚, 2002) 3세기에 축조했을 가능성도 있다(여호규 외, 2020a).주 004 3세기 중반 양맥 일대가 조위나 서진과의 주요 전장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혼하 지류인 소자하(蘇子河) 유역은 한의 제2현도군이 두어졌던 곳인데, 고구려가 1세기 말경에 제2현도군을 혼하 방면으로 몰아내고 이 지역으로 진출했다. 이 지역에서는 11기의 고구려 성곽이 보고되었다. 고구려가 제2현도군 치소인 신빈 영릉진고성은 재활용했지만, 현성이나 책구루로 비정되는 백기보고성은 재활용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으로 둘레 5km 전후의 대형 산성인 비아랍성(이도하자구노성), 1~2km 전후인 오룡산성과 득승보산성, 둘레 500m 이하인 보루성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대형 산성이나 중형 산성은 모두 석축이나 토석혼축성이며, 오룡산성에서는 고구려 시기의 제련유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영릉진고성을 중심으로 삼도보동산성, 온가요산성, 나가보자산성, 두도립자산성 등 소형 산성이나 보루가 환상(環狀)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후금(後金)의 6조성(六祖城)으로 비정된다(傳波, 1994). 이들 성은 1980년대에 고구려 성곽으로 보고되었지만(王禹浪·王宏北, 1994),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고구려 성곽으로 보지 않기도 한다(肖景全·鄭辰, 2007). 목기진의 하서촌고성은 평지성으로 한대 유물은 출토되지 않은 반면, 고구려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고구려가 축조한 평지성일 가능성 있다(張正岩·王平魯, 1994).
혼하 유역은 송료대평원에 속한 심양 지역, 대평원과 산간지대의 결절점인 무순 지역, 북류 송화강 유역으로 나아가는 청원 지역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무순 지역에는 제3현도군의 치소가 두어졌는데, 고구려가 4세기 전반에 이곳으로 진출해 신성을 축조하여 요동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9기의 고구려 성곽이 확인되었는데, 무순 노동공원 고성과 동주고성은 한의 군현성을 재활용한 것이다(윤용구, 1999). 나머지 7기는 고구려가 축조한 것이다.
고이산성은 둘레 4km에 이르는 대형 산성이다. 철배산성도 총둘레 4.6km에 이르는 복곽식 대형 산성인데, 고구려 시기에는 동위성만 축조하고 내성이나 서위성 일대는 망대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화사산성과 성자구산성은 둘레 1~2km의 중형 산성이며, 서산산성과 열사산산성은 둘레 500m 이하의 소형 보루인데, 대체로 고이산성을 중심으로 환상으로 분포한다. 667년 신성과 함께 주변 16개 성곽도 당에 함락되었다고 하는데, 신성의 관할을 받던 지방지배의 거점이거나 위성산성일 가능성이 높다(여호규, 1999a; 1999b).주 005
혼하~태자하 중상류의 주요 고구려 성곽은 하천 연안로의 요충지를 따라 분포하는데(여호규, 1995; 임기환, 1998; 田中俊明, 1997; 정원철, 2011), 이 지역의 지정학적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혼하~소자하 연안로는 압록강 중류와 요동 지역을 연결하던 간선교통로였다. 고구려는 이 교통로를 따라 한의 현도군을 요동 방면으로 몰아내면서 소자하나 혼하 유역으로 진출했다. 물론 한, 조위, 전연 등 중원 왕조도 이 연안로를 따라 고구려 도성까지 침공했다.
이에 고구려는 이 지역에 신성(新城), 남소성(南蘇城), 목저성(木底城) 등을 축조하고, 신성태수 고노자(高奴子)처럼 민정과 군정을 겸하는 지방관을 파견했다. 신성의 축조연대를 태조왕 대(李甸甫, 1988)나 3세기 후반(王綿厚, 1993)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4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주 006 목저성과 남소성은 사료상 342년과 345년에 각각 처음 등장한다. 이 가운데 신성은 무순 고이산성으로 비정된다(渡邊三三, 1933). 남소성의 위치는 논란이 분분한데, 남소수(南蘇水)가 지금의 소자하에 해당하며 “신성 동북쪽 70리(31~37km) 산 위”에 위치했다는 기록주 007을 참조하면, 혼하·소자하 합류지점 동쪽의 철배산성이 가장 유력하다. 남소성에서 시작되는 남도(南道)에 위치했다는 목저성주 008은 신빈 목기진(木奇鎭)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여호규, 1995).
고구려가 4세기 전반에 혼하~소자하 연안로의 전략적 요충지에 신성(고이산성), 남소성(철배산성), 목저성(목기진 일대) 등을 축조한 것이다. 이러한 성은 기본적으로 전연을 비롯한 중원 왕조의 침공을 방어하고, 요동평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곧 군사거점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고구려는 이 지역에 주로 군사방어 기능이 뛰어난 산정식산성(철배산성)이나 산상형 포곡식산성(오룡산성)을 축조했다. 다만 지방제도 정비에 따라 거점성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점차 평지형 포곡식산성(고이산성)으로 전환했다(임기환, 1998; 양시은, 2016).
이상과 같이 혼하~태자하 중상류의 산성은 기본적으로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고, 축조시점도 4세기 전반 전후로 편년된다. 이들은 혼강 우안의 흑구산성, 전수호산성, 고검지산성, 마안산성 등과 연계하여 국경지대에서 국내성에 이르는 입체적 방어체계를 구성했다. 다만 645년 당 태종 침공 시에 고구려가 국내성과 신성의 군사 4만 명을 동원하여 요동성을 구원한 사실, 666년에 당군이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을 격파한 다음 국내성에 웅거하던 남생(男生)과 회합한 사실 등에서 보듯이 이 지역의 방어체계는 평양 천도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었고, 요동 지역의 다른 방어체계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운영되었다(여호규, 1999b).
3) 요하~압록강 하류의 성곽 분포현황과 군사방어체계
요하~압록강 하류 구간은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지역이다. 이에 고구려는 이 지역에 성곽을 촘촘하게 축조하여 방어체계를 구축했는데, 120여 기의 고구려 성곽이 확인되었다. 이 지역은 자연지형과 방어체계의 구성양상 등을 기준으로 크게 송료대평원 구간인 요동평원, 천산산맥이 가로지르는 요동반도 지역, 압록강 하류 일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요동평원에는 고구려 성곽이 의외로 적게 분포하는데, 신민 고대자산성, 대석교 태평보고성, 요양 요동성지와 고력성지 등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은 전국 연(燕) 아래 중원 왕조의 군현성이 많이 축조되었지만, 고구려가 요동성지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군현성만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폐기했다(윤용구, 2008). 신민 고대자산성은 요하를 도하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소형 보루성인데, 무려라(武厲邏)로 비정하기도 한다(王綿厚·李健才, 1990).주 009 다만 고대자산성을 제외하면 요하 본류의 서쪽에서 고구려 성곽이 발견된 사례는 없지만, 고구려가 요하 서안을 따라 소형 보루나 라(邏), 수(戍), 봉수 등 다앙한 군사시설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다(이정빈, 2011; 2018; 이성제, 2017).
고구려 성곽이 가장 밀집 분포한 지역은 요동평원에서 천산산맥으로 나아가는 진입로와 천산산맥 횡단로 일대이다. 천산산맥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기다랗게 뻗어 있는데, 많은 하천이 발원하여 태자하나 황해로 흘러든다. 세하(細河), 해성하(海城河), 대청하(大淸河)는 서북 방향으로 흘러 태자하나 요동만으로 유입된다. 또 애하(靉河), 대양하(大洋河), 벽류하(碧流河)는 동남 방향으로 흘러 압록강이나 황해로 흘러든다. 이러한 하천 연안로는 일찍부터 천산산맥 횡단로로 활용되었는데, 세하~애하 연안을 따라 본계~봉성로, 해성하~대양하 연안을 따라 해성~수암로, 대청하~벽류하 연안을 따라 개주~장하로가 발달했다.
고구려는 이러한 지형조건을 고려하면서 성곽을 축조했다. 먼저 요동평원에서 천산산맥 횡단로로 진입하는 길목마다 중대형 산성을 촘촘하게 축조했다. 본계~봉성로 진입 경로는 두 갈래인데, 북쪽 진입로인 심양~본계로에는 탑산산성과 변우산성, 남쪽 진입로인 요양~본계로에는 요동성·연주성·고수산성이 각각 위치했다. 해성~수암로 길목에는 영성자산성, 개주~장하로 길목에는 고려성산성(靑石嶺山城)·연통산산성이 위치했으며, 대청하에서 수암으로 나아가는 산간로 입구에는 마권자산성이 위치했다. 이 가운데 탑산산성은 개모성(蓋牟城), 변우산성은 마미성(磨米城), 연주성은 백암성(白巖城), 영성자산성은 안시성(安市城), 고려성산성은 건안성(建安城)으로 비정된다(여호규, 1999a). 이들 성곽은 둘레 2~3km의 포곡식산성으로 군사방어와 함께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 기능을 수행했다(陳大爲, 1985; 노태돈, 1999a).
가령 건안성으로 비정되는 개주 고려성산성은 둘레 약 5km인 대형 산성으로 내부에는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최근 5세기 초에 조영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약 110m, 너비 약 9m인 초대형 기와건물지가 발견되었고, 4호 문지에서는 태왕릉이나 장군총 출토품과 유사한 구획선 연화문와당이 출토되었다(王飛峰, 2015; 中國社會科學院考古研究所 외, 2017; 2022), 건안성의 전신인 평곽(平郭)에는 한 대에 염관(鹽官)과 철관(鐵官)이 설치되었는데, 고구려시기에도 소금과 철 생산을 총괄했다고 파악된다(김현숙, 2005). 고려성산성은 개주~장하로의 입구를 방어하는 군사적 중진일 뿐 아니라 지방지배의 거점성이었던 것이다. 이에 고려성산성에 최고 지방관인 욕살이 파견되었다고 보기도 한다(노태돈, 1999a; 나동욱, 2009; 임기환, 2015)
이처럼 천산산맥 횡단로 입구에는 수·당과의 전쟁에서 각축전이 벌어졌던 주요 성곽이 밀집 분포한다. 이러한 점에서 천산산맥 진입로의 입구에 위치한 성곽은 후기 도성인 평양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고, 최전방의 전연방어선(前沿防禦線)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79; 1991; 박창수, 1988a; 1990). 이처럼 전연방어선을 이루는 성곽은 대체로 고구려가 요동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5세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파악되는데(노태돈, 1996; 1999a), 전술한 개주 고려성산성의 고고조사 성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요동평원을 지나면 천산산맥을 가로지르는 하천 연안로를 따라 고구려 성곽이 조밀하게 분포한다(王禹浪·王文轶, 2008). 이들 성곽은 서북방어체계에서 제1선 종심방어선(縱深防禦線)을 이룬다. 천산산맥 횡단로는 크게 세하~초하·애하의 본계~봉성로, 사철하·해성하~대양하의 해성~수암로, 대청하~벽류하의 개주~장하로 등 3개가 있다. 각 횡단로마다 욕살이나 처려근지가 파견된 초대형이나 대형 산성이 2~3개, 루초나 가라달이 파견된 중형 산성이 10여 개 분포하며, 이들 주위에는 소형 산성이나 보루성이 다수 분포한다(임기환, 2015; 이경미, 2017a; 2017b).주 010
이 가운데 천산산맥 한복판의 수암현과 봉성시는 넓은 분지가 펼쳐져 별도의 소지역권을 이루는데, 초대형이나 대형 산성을 중심으로 여러 중형 산성과 보루성이 밀집 분포한다. 특히 오골성(烏骨城)으로 비정되는 봉성 봉황산성에서 세 갈래의 천산산맥 횡단로를 모두 통제할 수 있다. 이에 고구려는 둘레 16km로 초대형인 봉황산성에 최고 지방관인 욕살을 파견해 핵심 거점성으로 삼고, 주변에 중형 산성과 보루성을 배치해 위성방어체계를 구축했다. 수암 낭랑성산성도 둘레 3km 전후의 대형 산성으로 수암분지를 다스리는 거점성인데,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다벌악주(多伐嶽州)(노태돈, 1999a)나 적리성(積利城)(王綿厚, 1994; 2002)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주 011
고구려는 요동반도의 해안지대에도 성곽을 축조했다. 다만 연안의 평야지대가 아니라 산간지대와의 결절점을 따라 축조했다. 서북 해안지대는 복주하(復州河) 연안로나 개주(蓋州)평야 안쪽의 산간지대를 따라 축조했고, 남쪽 해안지대는 천산산맥 횡단로 남단의 성곽과 중첩된다. 요동반도의 서북과 남쪽 해안이 만나는 서남단에는 대련 대흑산성이 위치하는데, 험준한 산상에 위치한 둘레 5km 전후의 대형 산성으로서 비사성으로 비정된다(許明綱, 1996). 비사성은 황해와 발해만을 동시에 공제하고, 요동반도~산동반도를 잇는 해로를 통제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천산산맥 횡단로는 요동반도 남쪽의 해안지대를 경유해 모두 압록강 하류 일대에서 합쳐진다. 압록강 하류 일대는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에서 황해로 나아가는 교두보인 동시에 천산산맥을 넘은 적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저지선이다. 이에 고구려는 이 지역의 하천 합류처나 해안의 구릉 등을 따라 성곽을 조밀하게 축조해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애하·압록강 합류처 일대는 압록강을 도하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데, 이곳에 위치한 애하첨고성은 한의 서안평(西安平)으로 비정된다. 고구려는 4세기 초에 이 지역을 장악한 다음, 애하첨고성을 재활용하는 한편 맞은편에 호산산성(박작성)을 축조해 방어상의 취약점을 보완했다.
이상과 같이 고구려는 요하~압록강 구간에 여러 겹의 방어망을 구축했다. 요동평원에서 천산산맥으로 진입하는 길목의 성곽은 최전방의 전연방어선, 천산산맥 횡단로의 성곽은 제1선 종심방어체계를 구성한다. 제1선 종심방어체계는 압록강을 넘은 다음, 압록강~청천강 일대의 제2선 종심방어체계로 이어진다(박창수, 1988a; 1990; 남일룡, 1995; 여호규, 1999a; 1999b; 양시은, 2014a; 2016).
4) 요하 중상류 동안지역의 성곽 분포현황과 군사방어체계
요하 중상류 동안지역은 대흑산맥(大黑山脈)과 길림합달령산맥(吉林哈達嶺山脈)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권역을 이룬다. 이 지역은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 유역에서 요동평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서요하(西遼河) 일대로 나아갈 수 있었고, 요동평원에서 송화강 유역으로 나아갈 경우에도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고구려가 늦어도 남쪽의 혼하 연안이나 동쪽의 송화강 중류 일대를 장악한 4세기 전반에는 이 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표1〉 가운데 철령시, 개원시, 서풍현 등이 이 지역에 해당하는데, 총 20기의 성곽이 확인되었다. 송료대평원 구간에서는 노변강(老邊崗) 유적을 제외하면, 고구려 성곽이 조사된 사례가 없고, 모두 대평원 안쪽의 하곡평지나 산간분지를 따라 분포한다. 20기 가운데 산성이 18기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이 지역은 다시 사하(沙河)~시하(柴河)~범하(汎河) 유역권, 구하(寇河)~청하(淸河) 유역권, 동요하(東遼河) 상류의 요원분지 등 세 소권역으로 세분된다.
사하~시하~범하 유역권에서는 9기의 성곽이 확인되었다. 철령 최진보산성이 둘레 5km로 대형 산성이며, 1~2km인 철룡 청룡산고성과 개원 마가채산성은 중형 산성이다. 철령 영반장지는 차단성, 나머지 5기는 둘레 500m 전후의 소형 산성이나 보루이다. 구하~청하 유역권에서는 6기가 확인되었는데, 둘레 4.4km인 서풍 성자산산성이 대형 산성이며, 1~2km인 개원 용담사산성과 고성자산성, 서풍 장가보산성 등은 중형 산성이다. 나머지 2기는 500m 전후의 소형 보루이다. 동요하 상류권에서는 5기가 확인되었는데, 요원 용수산성과 공농산성은 둘레 1~2km의 중형 산성, 성자산산성은 726m로 소형 산성, 나머지 2기는 500m 전후의 소형 보루이다.
전체적으로 각 권역별로 둘레 4~5km인 대형 산성이 1기, 둘레 1~2km인 중형 산성이 2~3기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각 지역에 대한 정밀조사를 통해 종전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둘레 500m 전후의 소형 산성이나 보루를 대거 확인했는데, 각 권역별로 2~5기 전후가 분포하는 양상을 띤다. 이러한 각 권역별 성곽 분포양상은 이 지역에 대한 군사방어체계나 지방통치조직의 정비양상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다.
이 지역의 대형이나 중형 산성은 모두 포곡식산성으로 성 안팎을 쉽게 왕래할 수 있고, 내부에 넓은 거주공간이 펼쳐져 있는데, 군사방어뿐 아니라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의 역할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각 권역별로 1기씩 분포하는 대형 산성이 산간지대 내부나 산줄기에 위치한 반면, 2~3기씩 분포하는 중형 산성은 하곡평지에 접하고 있다. 이는 대형 산성과 중형 산성의 조영시기 및 방어체계나 지방제도상의 위상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현상이다(여호규, 2002).
가령 대형 산성인 서풍 성자산산성은 길림합달령산맥 방면으로 깊숙히 들어온 지점에 위치했는데, 축성법이나 입지조건 등으로 보아 다른 성곽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성자산산성은 둘레 4km로서 대형 산성이지만 평지가 협소한 편이다. 이에 산성 서쪽 골짜기에 둘레 5km의 외위성을 추가로 축조했다(周向永·趙守利·邢傑, 1993; 孟祥忠·潘國慶·鄭淑雲, 1993). 고구려가 이 지역으로 진출한 초기에 군사방어를 위해 성자산산성을 축조했다가, 거점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로 외위성을 축조한 것이다. 대형 산성인 철령 최진보산성도 축성법이나 입지조건으로 보아 다른 성곽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周向永·王兆華, 1996).
그런데 성자산산성은 연반하 상류를 따라 길림합달령산맥을 넘은 다음 휘발하를 통해, 또 최진보산성은 범하 상류를 따라 길림합달령산맥을 넘은 다음 혼하~소자하를 거쳐 각각 압록강 중류 일대로 진입할 수 있다. 성자산산성과 최진보산성은 압록강 중류에서 곧바로 요하 중상류로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위치한 것이다. 이로 보아 성자산산성과 최진보산성은 압록강 중류에서 휘발하나 혼하를 거쳐 요하 상류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축조했으며, 그 시기는 4세기 전반 전후로 추정된다(여호규, 1999a; 1999b; 양시은, 2016; 홍밝음·강동석, 2021).
이에 비해 송료대평원에서 각 지류 연안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한 포곡식산성은 축성법, 입지조건, 분포양상 등으로 보아 천산산맥 진입로의 입구에 위치한 산성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 이들 성곽은 송료대평원에서 각 지류 연안으로 진입하는 길목을 봉쇄하는 군사방어와 함께 지류 연안의 하곡평지를 지배하는 거점성의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 성곽은 고구려가 이 일대에 대한 지방지배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원지구의 산성은 반경 2~3km에 밀집되어 있다. 요원분지는 동료하의 발원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야트막한 구릉을 통해 북쪽의 이통하, 서북쪽의 동요하 하류, 서남쪽의 구하, 동남쪽의 휘발하 등으로 나아가는 교통로가 발달했다. 이를 고려한다면 용수산성 동북쪽 1.5km의 성자산산성은 이통하, 용수산성은 동요하 하류나 구하 방면에서 침공하는 적군을 방어하는 기능을 담당했고, 동남쪽의 공농산성은 배후산성이었다고 여겨진다. 이 가운데 기와가 다량 출토된 용수산성이 지역 거점성이었을 것이다(여호규, 2002).
이상과 같이 고구려 성곽의 분포양상과 군사방어체계는 지역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혼하~태자하 중상류와 요하~압록강 하류의 방어체계가 각기 국내성과 평양성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면, 요하 중상류 동안지역의 방어체계는 양자가 복합된 양상을 띤다. 그림1에서 보듯이 송료대평원에서 요하의 지류로 진입하는 입구의 산성들은 거대한 산성연방선(山城聯防線)을 이룬다. 요하 유역의 고구려 성곽은 송료대평원에서 각 지류 연안을 통해 고구려 중심부로 나아가는 모든 진입로를 차단하면서 입체적 군사방어체계를 이룬다. 고구려가 이러한 군사방어체계를 운용하는 모습은 수·당과의 전쟁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 각주 001)
-
각주 002)
양시은과 정원철의 분류안을 종합한 것이다. 다만 보루성에 해당하는 초소형 산성의 기준을 양시은은 400m 이하, 정원철은 300m 미만으로 설정했다. 또 정원철은 중형 산성을 1~2km의 중소형과 2~3km의 중대형으로 세분했고, 양시은은 초대형 산성을 별도로 상정하지 않았다(양시은, 2016, 127~129쪽; 정원철, 2017, 128~134쪽). 한편 중국의 진대위는 둘레 0.2~1km를 소형 산성, 1~2km를 중형 산성, 2km 이상은 대형 산성, 위존성은 1km 미만을 소형, 1~3km를 중형, 3km 이상을 대형으로 분류했다(陳大爲, 1985; 魏存成, 2011).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 각주 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