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석총의 구조와 형식
1. 적석총의 구조와 형식
적석총은 지상에 돌을 깔아서 무덤의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주검을 놓은 후 주검의 주위를 돌아가며 돌을 돌리고, 다시 그 위를 돌로 덮어서 만든 무덤이다. 분구를 쌓는 데 사용한 돌과 돌의 가공 정도, 쌓아 올리는 방식 등에 따라서 드러나는 적석총의 분구는 여러 형태를 띤다. 주검은 지상의 분구 가운데 놓이게 되는데, 무덤 하나에 1인이 안치되기도 하고, 여럿이 안치되기도 한다. 보통 1인이 안치되는 경우 수혈식 장법이라고 하고, 2인 이상이 시간 차이를 두고 안치되는 경우 횡혈식 장법으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매장방식은 매장부 구조와 연결되어서 수혈식 장법은 목관이나 목곽에 한 사람이 안치되며, 횡혈식 장법은 목관에 안치된 주검이 목실이나 돌로 만든 석실 한쪽 벽의 입구를 통해서 시차를 두고 안치된다(그림2).

그림2 | 적석총 축조방식(강현숙, 2013)
1) 무덤의 구조
(1) 분구
분구는 사용된 돌의 재질과 가공 정도, 돌을 쌓는 방식에 따라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 중국이나 남한의 연구자들은 적석총의 분구를 무기단(무단), 기단(방단), 계단(방단계제, 방계제, 방계대)으로 설명한다. 북한의 연구자들은 돌무덤, 돌무지무덤 또는 돌각담무덤으로 표현하며, 세부적으로는 무기단무덤(돌무지무덤), 기단돌무덤으로 설명하는데, 기단돌무덤에는 계단돌무덤이 포함된다. 이는 아마도 북한의 적석총 가운데 잘 남아 있는 초대형분이 많지 않고 대부분 파괴되어서 계단과 기단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무기단은 기단이 없는 돌무지로, 가장 단순한 축조기술이다. 가공하지 않은 깨진 돌이나 자연 냇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다듬지 않은 돌이므로 높고 크게 쌓는 것은 한계가 있고, 정형화된 형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무기단 분구의 평면은 방형, 장방형, 타원형, 원형 외에도 사우돌출형, 전방후원형, 전원후방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사우돌출형과 전방후원형은 압록강 이남의 자성 송암리, 초산 연무리 일대 적석총에서 보고되었다. 초산 연무리2호분은 분구의 네 모서리가 돌출된 사우돌출형 평면이고, 초산 운평리4-6호분은 원형 평면의 적석총 앞에 방형 평면으로 돌을 깐 시설이 있어서 전방후원형을 띤다. 집안의 통구분지, 환인 일대에서는 반원형의 돌을 깐 시설이 있어서 전체 평면이 전원후방형인 적석총도 있다.
계장식은 무덤의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가면서 울타리를 쌓듯이 돌을 돌리고 그 내부에 작은 돌을 채우고 다시 같은 방식으로 울타리를 쌓고 그 내부를 잔돌로 채워가면서 평면적을 넓게 하고, 다시 같은 방식으로 높이를 높여 가며 축조해서 무기단적석총보다 크고 높게 쌓은 방식이다. 적석 분구의 맨 가장자리 울타리돌은 무덤의 외연을 표시하는 동시에 분구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한다. 기단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러나는 형태는 무기단적석총과 같고, 기단식과는 네 모서리가 서로 맞지 않고 각 변 울타리 높이도 서로 달라서 구별이 가능하지만, 한 변의 중간 부분에서는 계단상을 띠기도 하여 원상이 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간 부분만으로 계단적석총과 구별이 쉽지 않다. 따라서 계장식은 무덤을 높고 크게 쌓으려는 의도하에 조성된 무기단적석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계장식으로 축조된 적석총은 환인 망강루 4호분, 5호분, 6호분과 집안 호자구1호분을 들 수 있고, 이 무덤들은 각 지역의 최대분에 해당된다. 중국에서 왕릉급 무덤으로 비정한 집안 통구분지의 마선구2378호분, 마선구626호분, 산성하 전창36호분, 칠성산871호분 등이 계장식적석총으로 분류되었다.
기단적석총은 비교적 커다란 돌로 방형이나 장방형의 테두리를 돌리고 그 내부에 잔돌을 채워 넣어 기단을 만든 후 기단 위에 주검을 안치하고 돌을 쌓은 것이다. 둘레를 돌린 기단석은 부분 가공하거나 떼어져 나간 돌의 절리면을 밖이 되도록 해서 드러난 기단의 외면은 비교적 가지런하다. 기단 둘레돌 내부에 채워진 돌은 깨진 잔돌이거나 작은 냇돌이며, 규모가 큰 무덤의 경우 기단 내부에는 잔돌을 채워 넣기 위해 구획된 석렬이 확인되기도 한다. 기단의 평면이 방형이어서 중국에서는 방단(方壇)적석묘로 부르기도 하는데, 집안 하활룡24호분이 이에 해당된다.
계단적석총은 가공된 장대석을 이용하여 기단 축조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층층이 올려 쌓아 전체 모습은 계단 형태이다. 대개 3~5단 정도 쌓아올리며, 네모난 평면의 계단이라는 의미에서 중국에서는 방단계제(方段階梯), 방계제(方階梯) 또는 방계대(方階台)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른다. 가장 잘 보존된 계단적석총은 최고의 기술로 축조된 7층 계단의 장군총이다.
이 외에도 적석총의 분구를 적석분구의 상부가 둥글어서 원구식(圓丘式)이라고 하며, 경사져 내린 면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 단을 만든 것을 유단식(有壇式)으로 부르기도 한다. 원구식적석총으로 보고된(陳大爲, 1960) 환인 고력묘자15호분은 계단적석총 2기가 연접된 무덤이다. 집안 칠성산879호분은 경사진 사면에 자리하는데, 경사진 위쪽은 단을 형성하지 않았지만 경사져 내린 면은 두 단을 올린 유단식적석총이다. 또한 경사진 곳에 자리한 적석총을 보호하기 위해 보축단을 세운 경우가 있는데, 집안 우산3146호분은 방형 평면의 기단적석총으로 경사가 낮은 하단에 보축단을 덧대어서 무덤의 전체 평면은 전방후방형을 띤다. 분구를 보호하기 위한 이 보축단을 중국에서는 묘설(墓舌)로 부르기도 한다.
분구를 기준으로 무기단식 혹은 계장식, 기단식, 계단식으로 분류한 명칭은 결국 축조에 사용한 돌과 돌을 다듬는 기술, 축조기술의 차이에 의한 것이다. 시간에 따른 기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적석총은 높고 크게 축조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서 분구의 형태는 무기단에서 기단, 계단으로 변화하였다. 한편, 분구의 무기단식과 계장식, 기단식과 계단식 등 각 형태는 등장시점에서의 선후관계를 가지며, 같은 시기에 병존하는 적석총 분구의 규모는 계단, 기단, 무기단 순이어서 병존하는 서로 다른 형태의 분구를 통하여 피장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적석총의 분구 형태는 사회의 분화 정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므로 적석총은 분구 지향형 묘제라고 할 수 있다.
(2) 매장부
매장부는 주검이 안치되는 시설 또는 구조로, 무덤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적석총의 매장부는 지상의 분구 중에 놓인다는 점에서 지하의 매장부와 지상의 분구로 이루어진 중국 동북의 여타 지역 무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매장부 구조는 매장방식에 따라서 1인을 안치하고 1회로 매장이 마감되는 수혈식 장법의 구조와 2인이 동실에 합장되는 횡혈식 장법의 구조로 대별된다.
수혈식 장법의 매장부 구조는 중국에서는 석광(石壙)으로, 북한에서는 석곽으로 표현한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석광은 돌구덩이란 뜻으로 토광(土壙)에 대응되며, 일부 연구자는 돌로 네 벽을 쌓고 천장이 없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魏存成, 1995). 북한에서는 석곽 또는 돌곽으로 표현하며, 수혈식 석곽과 횡구식 석곽으로 구별한다. 수혈식 장법의 석곽은 석곽 내에 1인을 안치한 후 덮개돌을 덮은 것이고, 횡구식 석곽은 추가 합장을 위해 한쪽 단벽에 입구시설이 있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정찬영(1961)은 꺾쇠를 사용한 목곽이나 별도의 장구 없이 칠성판 위에 주검을 안치했을 것으로 추정한 바도 있다. 남한이나 일본의 학자들도 석곽으로 표현하지만, 분구 상부가 함몰된 상태로 확인되는 적석총이 다수인 점으로 미루어 돌로 덮개를 한 상자형 석곽일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으며, 석광적석총은 정찬영의 견해대로 목관이나 목곽일 가능성이 크다.
횡혈식 장법의 매장부 구조는 2인 이상이 시차를 두고 매장되어서 매장 공간이 관이나 곽에 비해 크므로, 관, 곽과 구별하여 실(室)이라고 한다. 실은 대개 돌로 쌓았으므로 석실(石室)이 횡혈식 구조 무덤을 대표한다. 석실은 돌로 연도와 현실을 완전하게 쌓은 것으로 동실 추가 합장이 가능한 구조이다. 드물게 벽돌이 함께 사용된 전석혼축실(塼石混築室)도 있다. 현재 조사보고된 전석혼축실은 집안 우산하3319호분이다. 한편, 중국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광실(壙室)도 이에 해당된다. 광실은 석광과 마찬가지로 함몰갱을 표현한 것으로, 광실로 보고된 적석총에서 관못, 꺾쇠, 장막걸이쇠 등이 출토되어서(그림3), 주검은 목관에 안치된 후 목실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목실 내에는 유장(帷帳)을 드리웠을 것이다. 한편, 광실로 분류된 무덤 중에 석실의 하부구조처럼 돌로 쌓은 현실과 통로의 아래 벽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구조도 천장석이 없다는 점에서 광실로 분류한다. 따라서 광실 중에는 목실이나 나무로 뚜껑을 대신한 목개석실(木蓋石室)이 포함될 것이다. 현실 벽과 연도 벽을 돌로 쌓았지만 돌로 천장을 덮지 않았다는 점에서 목개석실은 목실과 석실의 과도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림3 | 목관(목곽)이나 목실 부재(강현숙 외, 2020)
- 1・3・4. 마선구401호분 2・5. 우산하540호분 6. 우산하2112호분 7・8. 칠성산1096호분
- 1・3・4. 마선구401호분 2・5. 우산하540호분 6. 우산하2112호분 7・8. 칠성산1096호분
이 외에 중국에서는 동실(洞室)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동실은 석실과 같은 구조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는 소형 적석총의 매장부로, 지면에서 떨어져 분구 중간에 있는 적석총의 석실과 구별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1997년 「통구고묘고분 실측조사보고서」(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2)에서는 석실만 남아 있고, 분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동실묘로 표현하였다. 특히 소형 동실묘 중에는 분구가 훼손되어서 적석총인지 또는 봉토분이었는지 구분이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무덤들은 비교적 늦은 시기로 추정되며, 일부는 고구려 멸망 이후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무덤의 형식
적석총은 분구와 매장부가 지상에 자리하므로 자연적·인위적 변형에 노출되기 쉬운 구조이다. 특히 매장부가 돌로 잘 쌓은 석실이 아닌 경우 분구의 원래 모습을 알기 어렵고, 중·소형 적석총의 대부분은 함몰 구덩이가 있는 돌무지 상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적석총은 주로 분구 형태를 기준으로 형식을 설정하였지만, 조사가 증가되면서 매장부를 기준으로 형식을 설정하기도 하였다(표1).
중국 연구자들 가운데 분구를 기준으로 분류한 방기동(1985), 이전복(1980)의 형식 가운데 적석묘는 무기단적석묘에 해당되어서 광의의 적석총 또는 적석묘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적석총의 형식은 분구나 매장부 하나만을 기준으로 하거나, 분구와 매장부를 결부시켜 설정되었다. 그러나 적석총의 분구 형태와 매장부 구조가 꼭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어서, 연구자의 분류목적에 따라 적석총은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만, 분구 형태와 매장부 구조는 무기단적석총은 목관이나 목곽과 상관성을 보이며, 계단적석총은 목실이나 석실과 상관성을 보인다. 따라서 분구와 매장부 구조를 결부시켜 세분하자면, 적석총의 형식은 무기단목곽(관)적석총, 무기단석실적석총, 기단목곽(관)적석총, 기단목실적석총, 기단석실적석총, 계단목실적석총, 계단(목개)석실적석총 등 7개의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표1 | 적석총 형식 분류안(강현숙, 2013)
| 연구자 | 수혈식장법 | 횡혈식장법 | |||||||||||||||
| 횡구식 | 횡혈식 | ||||||||||||||||
| 주영헌(1962) | 무기단적석 | 기단적석 | 곽실적석 | 묘실적석 | |||||||||||||
| 정찬영(1973) | 강돌돌각담 | 돌기단, 수혈식 | 돌기단(연도 표시) | 돌칸돌무덤 | |||||||||||||
| 손수호(2001) | 무기단돌곽 | 기단돌곽 | - | 기단 돌칸 | 계단 돌칸 | 돌칸돌무덤 | |||||||||||
| 陳大爲(1981) | 원구식 | 계대식적석묘 | 계대식곽실 | 계대식석실 | 봉석석실 | ||||||||||||
| 張雪岩(1979) | 석광적석묘 | 계대식적석묘 | - | 방단계제석실묘 | - | ||||||||||||
| 方起東(1985) | 적석묘 | 기단・방단적석묘 | 계단적석묘(묘광) | 계단적석묘 묘실 | - | ||||||||||||
| 方起東(1996) | 적석석광묘 | 기단적석석광묘 | 계단적석석광묘 | - | 계단적석석실묘 | - | |||||||||||
| 方起東·劉振華(1979) | 적석석광묘 | 유단적석석광묘 | 계단석광분 | - | 계단적석 | - | |||||||||||
| 석실 | 동실 | ||||||||||||||||
| 李殿福(1980) | 적석묘 | 방단적석묘 | 방단계단적석묘 | - | 방단계단석실묘 | 방단봉석석실묘 | |||||||||||
| 魏存成(1987) | 무단석광묘 | 방단석광묘 | 방단계제석광묘 | - | 방단계제석실묘 | 방단석실묘 | |||||||||||
| 孫仁杰(1993) | 석광적석묘 | 광실적석묘 | 적석석실묘 | ||||||||||||||
| 鄭永振(2003) | 무기단석광적석묘 | 방단석광적석묘 | 방단계제석광적석묘 | - | 방단계제석실적석묘 | 방단석실적석묘 | |||||||||||
| 田村晃一(1982) | 석곽적석총 | 연도부석곽 | 석실적석총 | ||||||||||||||
| 방대형분구 | (1단) 기단 | 계단 | 단장 | 합장 | 궁륭상천장 | 석실지상 | 석실지표 | ||||||||||
| 東潮(1995) | 무기단석곽 | 방단부원구석곽 | 방단석곽 | 방단계제석곽 | 방단계제석곽연접 | - | 방단계제석실 | 방대형석실 | |||||||||
| 원구 | 방구 | ||||||||||||||||
| 지병목(1987) | 수혈식적석총 | 연도부기단 | 석실적석 | ||||||||||||||
| 무기단 | 방단 | 기단 | 연도무 | 연도유 | 기단석실 | 봉석석실 | |||||||||||
| 김용성(2005) | 목곽묘(단곽식/주부곽식) | 목실(단실식, 유부곽식, 유이실식) | 석실(단실식, 유이실식) | ||||||||||||||
| 무단원구 | 무단방대형 | 방단방대형 | 방단층단 | 계장계단 | 계단방대 | 계단층단 | 방단방대 | 방단층단 | 계단방대 | 계단층단 | 방단방대 | 방단층단 | 계단방대 | 계단층단 | 지표방대형 | ||
| 여호규(2012) | 무기단묘곽 | 기단묘곽 | 계단묘곽 | 방단곽실 | 계단곽실 | 계단석실 | 봉석석실 | ||||||||||
| 강현숙(2013) | 무기단목곽 | 기단 목곽 | (계단) | 기단 | 계단 | 기단 | 계단 | 봉석석실동실 | |||||||||
| 목곽실, 목개석실 | 석실 | ||||||||||||||||
(1) 무기단목곽(관)적석총
적석 분구의 함몰상황으로 미루어 매장부는 하나이고, 주검은 나무로 만든 목관이나 목곽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분구와 매장부를 결부시킨다면 무기단목관적석총 또는 무기단목곽적석총으로 부를 수 있다.
무기단 분구는 방형이나 장방형, 또는 원형이나 타원형이지만, 전방후원형, 전원후방형, 사우돌출형 등도 있다. 초산 연무리2호분은 사우돌출형 평면이고, 초산 운평리4-6호분은 전방후원형 평면이다. 초산 운평리4-9호분은 주곽과 부곽이 종렬로 배치된 주부곽식무덤이다.
무기단 분구를 가진 적석총은 고구려 건국 이전부터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림4). 중국 전한(前漢)의 화폐가 출토된 장백(長白) 간구자(干溝子)고분군의 적석총은 평면 원형이며, 청동기와 철기가 공반된 집안 오도령구문(五道嶺溝門)고분은 장방형 평면이다. 출토유물로 미루어 두 무덤은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경으로 비정된다. 한편, 환인 망강루고분군의 적석총은 환인 일대 무기단적석총 가운데 최상위에 해당된다. 특히 망강루 4호분과 6호분에서 출토된 금제이식은 부여 노하심중층56호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해서, 두 무덤은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집안 하활룡8호분, 산성하 동대파(東台坡)356호분 순으로 축조되었을 것이다. 가장 늦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는 집안 상활룡2호분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출토된 토기는 어깨에 밀집파상선문이 있는 시루로, 밀집파상선문은 4세기 중엽에 유행한 무늬이다. 따라서 무기단목곽(관)적석총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4세기대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을 것이다.

그림4 | 무기단목곽(관)적석총 - 장백 간구자 A M 2호분

그림4 | 무기단목곽(관)적석총 - 환인 망강루 4호분

그림4 | 무기단목곽(관)적석총 - 집안 하활룡 8호분
(2) 무기단석실적석총(무기단토석혼봉무덤)
분구의 적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동실묘로 부르기도 하고, 석실의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채 돌무지 일부만 남아 있기도 하여 봉석묘로 부른다. 훼손된 상태여서 원상을 알 수 없지만 잔존상태만 보면 토석혼봉무덤에 가깝다. 대부분 소형분의 형태로 소형의 봉토분과 함께 군을 이루고 있다.
석실은 횡혈식 구조를 완비했다기보다 커다란 괴석 한두 매 혹은 가공하지 않는 석재를 쌓아서 벽석을 만들고 연도를 냈지만, 연도가 낮고 좁아서 연도를 통한 추가 합장이 가능하지 않다. 집안 노호초(老虎硝)2호분, 4호분, 5호분 등은 석실 구조가 잘 남아 있는 토석혼봉무덤이다(그림5). 연대를 추정할 만한 자료는 없지만, 횡혈식 장법과 봉토분이 등장한 4세기 이후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존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5 | 집안 노호초4호분
(3) 기단목곽(관)적석총
가공하지 않았거나 부분 가공한 크고 작은 돌로 방형이나 장방형 평면의 테두리를 만든 후 내부에 작은 돌을 채워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목곽 혹은 목제장구를 놓고 돌을 돌리고 덮어 쌓은 무덤이다. 중국에서는 방단적석묘 또는 방단석광적석묘로 부르는데, 조사보고 사례는 많지 않다. 칠성산879호분(孫仁杰·遲勇, 2007)과 칠성산695호분, 집안양민73호분 등이 이 형식에 해당하는데, 이 중 칠성산879호분은 3세기 말로 비정된다(그림6-1).
(4) 기단목실적석총
기단을 축조한 후 그 위에 목실을 놓고 주위에 돌을 돌리고 덮은 무덤으로, 기단광실적석총으로 불리기도 한다. 목실은 남아 있지 않으나, 목실이 부식됨에 따라서 생긴 함몰 구덩이나 그 주위에서 관못과 꺾쇠, 장막걸이쇠 등이 출토되어서 목실 내에 목관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집안 우산하68호분, 우산하3241호분, 우산하3232호분, 우산하3296호분 등이 이 형식에 해당된다. 우산하68호분은 출토된 동정(銅鼎)으로 미루어 4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로 비정된다(그림6-2).
(5) 기단석실적석총
기단을 만들고 상면을 고르게 한 후 그 위에 석실을 만든 무덤으로, 석실은 천장까지 돌로 쌓았다. 통구분지에서는 잘 보존된 기단석실적석총은 보고되지 않았다. 초산 운평리4-10호분은 분구는 길이 13.5m, 폭 9m, 높이 1.45m로 장방형 평면이고, 매장부는 장방형 현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연도를 가진 평천장 석실이다. 현실은 길이 250m, 폭 85m, 높이 96~104m, 연도 길이 197m, 폭 65m, 높이 94m이다. 현실의 폭이 좁아서 추가 합장하기에 넉넉한 공간은 아니다(그림6-3).

그림6 | 기단적석총의 여러 형식 - 1. 기단목곽적석총(칠성산879호분)

그림6 | 기단적석총의 여러 형식 - 2. 기단목실적석총(우산하 68호분과 청동유물)

그림6 | 기단적석총의 여러 형식 - 3. 기단석실적석총(초산 운평리4-10호분)
(6) 계단목실적석총
분구는 전면 가공하거나 부분 가공한 석재를 이용하여 기단을 만든 후 다시 조금씩 들여서 계단상의 층단을 이루었다. 층단은 대개 3~5단이며, 목실은 2~3단에 위치한다. 적석 분구의 무너져 내린 내부 채움돌이나 함몰 구덩이에서 관못이나 꺾쇠, 장막걸이쇠가 출토되어서 주검은 목실 내의 목관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을 중국에서는 광실적석총으로 부른다.

그림7 | 집안 산성하195호분
집안 산성하195호분(그림7)과 우산하249호분, 우산하3148호분, 우산하1340호분, 만보정78호분과 환인 고력묘자15호분 등은 입구시설이 없는 횡구식 목실일 가능성이 크다. 시중 로남리 남파동32호분은 입구를 돌로 표시한 횡구식 목실이다. 집안 산성하19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제덮개방울이 만보정242-1호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여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로 비정되므로, 계단목실적석총은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에 축조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계단목실적석총 축조의 하한시기는 만보정78호분에서 출토된 마구와 시유도기가 5세기 전반으로 비정되었으므로 5세기 전반까지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7) 계단(목개)석실적석총
횡혈식 구조의 매장부를 가진 계단적석총으로, 천장석의 유무에 따라서 목개석실과 석실로 구분된다.
목개석실은 석실의 벽석은 확인되지만 천장석이 확인되지 않아서 목개로 추정되는 것이다. 집안 만보정242-2호분, 우산하2891호분, 우산하3126호분과 우산하3105호분은 목개석실이다. 만보정242-2호분보다 먼저 축조된 만보정242-1호분에서 철제화살주머니와 금동제덮개방울, 재갈 등이 출토되어서 늦어도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로 비정되므로, 만보정242-2호분은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늦게 축조되었을 것이다. 우산하3105호분은 행엽으로 미루어 4세기 전반으로 비정되어서 계단목개석실적석총의 중심시기는 4세기 전반으로 비정된다.
벽과 천장까지 돌로 잘 쌓은 횡혈식 구조를 완비한 석실은 계단적석총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점한다(그림8). 칠성산1096호분의 1, 2호 석실과 환인 고력묘자 1호분과 11호분, 절천장총, 위원 사장리1호분, 만포 문악리1호분, 운산 용호동1호분, 우산하41호분, 그리고 왕릉으로 비정된 바 있는 태왕릉, 장군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림8 | 계단(목개)석실적석총 - 환인 고력묘자21호분(동분이혈합장)

그림8 | 계단(목개)석실적석총 - 집안 칠성산 65・66호분(동분이혈합장)

그림8 | 계단(목개)석실적석총 - 위원 사장리1호분(유사두칸구조)
대부분의 계단석실적석총은 1개의 현실와 연도로 이루어진 단칸구조이며, 석실의 상당수에서는 돌로 만든 관대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주검이 안치된 목관이 관대 위에 놓였을 것이다. 따라서 석실은 관과 실의 2중 구조 매장부이다. 한편, 태왕릉에서는 관, 곽, 실의 3중 구조가 확인된다. 태왕릉의 석실 내부에는 맞배지붕 형태로 돌을 짜 맞춘 가형석곽이 있고, 석곽 내부에는 돌로 만든 관대 2개가 나란히 있고, 그 위에 목관이 놓였을 것이다. 따라서 태왕릉은 목관, 가형석곽, 석실의 3중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천추총은 석실이 남아 있지 않지만, 적석 분구의 상부에서 태왕릉의 가형석곽 부재와 같은 재질과 형태의 석재가 출토되어서 태왕릉과 같은 가형석곽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천추총의 매장부도 목관, 가형석곽, 석실의 3중 구조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드물지만 연도 좌우에 서로 대칭되도록 측실이 있어서 마치 현실 외에 방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사두칸구조도 있다. 이 구조로는 위원 사장리1호분과 절천장총 외에도 우산하540호분 등 대형 계단적석총에서 확인되며, 절천장총 내부에서 벽화편이 확인되어서 벽화가 그려진 적석총임이 확인되었다.
한편, 계단석실적석총 중에는 추가 합장이 가능한 구조임에도 하나의 분구 내에 여러 개의 매장부가 있는 동분이혈(同墳異穴)의 석실적석총도 있다. 동분이혈 석실적석총 중에는 현실의 폭이 좁아서 실질적인 합장이 가능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합장이 가능한 구조의 석실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어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합장했음을 보여준다. 환인 고력묘자21호분은 추가 합장이 가능하지 않는 동분이혈무덤이며, 집안 칠성산65·66호분은 추가 합장이 가능한 현실이 복수로 있는 다장무덤이다. 동분이혈 석실적석총은 왕릉급 초대형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계단석실적석총은 칠성산1096호분 2호 석실에서 출토된 마구와 청동제 초두와 정으로 미루어 4세기 중엽으로 비정된다. 권운문과 연화문 와당이 출토된 천추총은 4세기 말로 추정되며, 태왕릉은 5세기 초로, 벽화가 있는 우산하41호분은 5세기 후엽으로 비정되어서 4세기 중엽에서 5세기대가 계단석실적석총의 중심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