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적석총의 입지와 분포
3. 적석총의 입지와 분포
고구려 적석총은 압록강 중하류와 그 지류에 형성된 강변의 평탄한 곳에 모여 있기도 하고, 강변에 임한 구릉의 사면에 모여 있기도 하다. 강변의 평탄한 곳에 모여 있는 적석총은 강의 흐름과 나란히 줄지어 분포하며, 구릉 사면에 모여 있는 적석총은 구릉을 따라서 내려오면서 열지어 분포한다. 이러한 분포 양상은 모두 의도적으로 입지를 선정한 결과라도 할 수 있다.
한편, 무리를 이루는 적석총들은 하나의 무덤에 한 사람이 묻힌 단독분도 있지만, 단독분이 분구의 한 변과 잇대어 있는 연접무덤도 있고, 하나의 분구에 매장부가 여러 기 있는 집단무덤 형태도 있다. 이렇게 여러 양상의 무덤이 줄지어 분포하여 무리를 이루는 적석총의 수나 개개 적석총의 규모와 무덤 형식 등을 통해서 적석총 축조 집단을 상정해볼 수도 있다. 따라서 적석총의 입지와 분포는 축조 집단의 의도가 반영된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 입지의 특징
고구려 적석총은 대부분 강변 대지나 평탄화된 대지 혹은 급하지 않은 구릉 사면에 모여 있다. 공간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혼강과 압록강 중하류와 그 지류 유역 양안에 분포하는 적석총의 이러한 입지는 고분을 조성할 당시부터 생활역과 묘역을 분리하고자 한 의도에서 결정된 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구릉 사면에 자리하는 산지 입지는 산 정상부에 자리하는 경우와 급하지 않는 기슭의 사면에 자리하는 경우가 있다. 환인 망강루고분군의 적석총은 산 정상부에서 사면을 따라 6기가 열지어 자리한다. 혼강이 지나가는 환인과 통화 일대의 적석총이나 압록강 중하류 유역 양안과 지류 유역에 모여 있는 적석총은 대개 평탄지에 자리한다. 장백 간구자고분군의 적석총, 집안 태평구와 유수림하 유역 고력묘자고분군의 적석총, 초산, 만포, 위원 등지의 적석총이 강변 대지에 자리한다.
평지에 조성된 고분군은 적석총끼리 모여 있기도 하지만, 일부는 봉토분과 함께 있다. 가령, 압록강 이북의 집안 상활룡촌과 하활룡촌의 고분군이나 유수림하 유역의 집안 대고력묘자, 소고력묘자 고분군은 평지에 적석총과 봉토분이 함께 자리하며, 적석총과 봉토분 사이에 묘역의 분리나 분포에서의 정형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가장 많은 적석총이 분포하는 집안 통구분지의 경우 적석총 무리는 경사가 완만해지기 시작하는 산 중턱에서부터 기슭의 사면을 따라 내려오면서 평지와 연결된다. 산 중턱이 시작되는 곳에는 무기단적석총의 비중이 크고, 내려오면서 기단적석총, 계단적석총의 비중이 증가하며, 구릉의 끝자락에는 적석총 사이에 봉토분이 자리한다. 초대형 적석총의 형식 변화에 비추어볼 때 초대형 적석총은 산 정상부에서 사면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4세기 말에서 5세기를 경과하면서 대형 계단적석총은 평탄한 대지나 평탄화된 구릉 끝자락에 분포한다. 특히 환도산성 동벽 아래 통구하변의 평탄지에 대형 계단적석총과 석실봉토벽화분이 함께 모여 있어서 귀족묘역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집안 통구고분군의 적석총은 산지에서 평지로의 일정한 질서를 갖고 축조되어서 5세기대까지는 입지 선정에서 의도적 질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덤 조성에서의 질서는 지방의 고분군에서도 확인된다. 가령, 환인 고력묘자고분군, 임강 동전자고분군과 집안 장천고분군이 그 예이다. 특히 장천고분군은 통구분지에서 벗어난 대형 계단적석총과 석실봉토벽화분이 함께 있는 대규모 고분군으로, 간구천 계곡을 따라 백여 기의 적석총이 모여 있다. 그중 산 중턱이나 정상 가까이에는 대형 계단석실적석총이 자리한다.

그림11 | 장자강(독로강) 유역 로남리 남파동고분군의 고분 분포양상
한편,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에 있는 압록강 중하류와 지류 유역의 고분군들은 강변 대지에 적석총이 줄지어 자리하고, 강변에서 산기슭 쪽으로 들어가면서 봉토분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그림11). 마찬가지로 압록강 이남 지역에서도 입지를 달리하면서 적석총과 봉토분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서 장기간에 걸쳐 커다란 변화 없이 무덤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모여 있는 많은 적석총이 입지 선정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는 것은 적석총 축조 집단의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인 성장을 시사한다. 적석총의 개체 수와 집단의 인구 규모가 비례함을 고려해볼 때 구릉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의도적이고 연속적인 적석총 입지 선정은 고분군 가까이에 대규모 집단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으므로, 특히 왕도 주변의 대규모 고분군은 주요 거점지였을 것이다.
2) 분포양상
적석총의 분포 범위는 동쪽으로 중국 길림성 장백, 서쪽으로 요령성 관전, 북쪽으로 혼강 유역의 환인과 통화 일대에 이르며, 북한의 조사에 따르면 장수산성이 있는 황해도 신원유적에서도 적석총이 확인되었다고 하므로 남쪽으로 황해도 일대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고 볼 수 있다(그림12). 그 가운데 적석총의 최대 밀집지역은 중국 길림성 집안의 통구분지여서 적석총이 국내성시기를 대표하는 무덤임을 잘 보여 준다.

그림12 | 고구려 적석총의 분포(ⓒ최종택)
집안 통구분지의 고분군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마선구고분군, 칠성산고분군, 만보정고분군, 산성하고분군, 우산하고분군, 하해방고분군 등 6개의 고분구역으로 나뉘며(그림13), 그 가운데 적석총은 하해방고분군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확인된다.
적석총은 산기슭의 사면을 따라 줄지어 내려오면서 축조되거나 줄에서 갈라져 내려오면서 축조된다. 내려오면서 무기단적석총보다는 기단적석총이, 기단적석총보다는 계단적석총의 비중이 커지는 변화를 보인다. 환도산성 동벽 아래에는 대형 계단적석총과 봉토분, 벽화분이 모여 있어서 중국에서는 이를 귀족묘역으로 해석하였고, 현재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사진1). 반면, 초대형 적석총은 국내성을 중심으로 5~7km 단독으로 자리해서 도성의 경관을 구성하기도 한다.

사진1 | 환도산성 동벽 아래 산성하고분군(ⓒ최종택)

그림13 | 통구분지의 고분과 주요 적석총(ⓒ강현숙)
통구분지와 비슷한 분포양상을 보이는 고분군으로는 환인 고력묘자고분군을 들 수 있다. 현재는 환인댐에 수몰되었지만, 혼강변의 대지에서 산기슭에 이르는 범위에서 적석총과 봉토분이 확인되었고, 그중에는 열상으로 분지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 장천고분군이나 임강 동전자고분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특히 집안 장천고분군에서는 대형 계단석실적석총과 석실봉토벽화분 그리고 중・소형의 기단적석총이 입지를 달리하며 조성되어서 통구분지 밖의 최대 고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압록강 중류 유역에서는 임강 동전자고분군이 산기슭에서 내려오면서 기단적석총과 계단적석총이 연접하거나 열지어 분포하고, 평탄화된 대지는 대형 계단석들로 미루어 계단적석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서 압록강 중류 유역의 최대 고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혼강 유역의 환인 망강루고분군은 무기단적석총 6기가 구릉을 따라 줄지어 분포한다. 그중 망강루 4호분과 6호분에서 출토된 금제이식(張福有, 2007)은 중국 길림성 노하심유적 중층 56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해서 고구려 초기를 대표하는 상위 무덤군이다.
집안 호자구(蒿子溝)고분군은 초대형 적석총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하며, 현재 6기가 확인, 보고되었다. 호자구고분군의 가장 서쪽에 단독 위치하는 호자구1호분의 적석 분구에서는 기와와 불에 녹은 돌들이 섞여 있다. 이러한 양상은 통구분지의 왕릉으로 비정되는 초대형 적석총인 마선구2378호분이나 칠성산871호분에서도 관찰된다. 이를 근거로 호자구1호분도 왕릉으로 보고 동천왕릉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張福有, 2005).
한편, 적석총은 압록강 하류 유역의 관전과 평안북도 벽동에서도 확인되는데, 벽동의 적석총은 석실적석총이어서 4세기 이후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평양 대성산 일대의 고분군에도 무기단적석총이 있다고 하지만, 보고된 상황으로 미루어 대개는 기단적석총이나 계단적석총으로 구성되어서 4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