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실
1. 석실
석실봉토분의 분구는 방형 평면의 방추형 또는 방대형이어서 형태에서 보이는 차별성은 없지만, 방대형 봉토 분구는 반구형의 백제 석실이나 신라, 가야 석실분과 구별되는 고구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구려 석실봉토분의 큰 특징은 석실에 있다. 석실이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어서 석실봉토분은 석실의 구조를 기준으로 형식을 나누고, 시간에 따른 형식 변화로 석실 구조의 변화를 설명한다. 특히 석실 구조의 변화는 벽화분에서 잘 보이는데, 단칸과 여러 칸 구조가 병존하다가 차츰 여러 칸 구조가 줄어들면서 단칸구조로 변화한다.
1) 축조방법
석실의 축조는 먼저 지면이나 반지하에 목탄과 점토 또는 돌이나 삼합토 등을 켜켜이 다져서 석실의 기초를 다진 후 그 위에 백회를 바르거나 점토를 발라서 바닥면으로 만든다. 그런 다음 그 위에 가공한 커다란 석재나 가공하지 않은 벽돌 크기의 할석으로 석실을 축조한다(그림1).

그림1 | 삼실총 석실 기초 (제1실 바닥 토층 단면)
1. 황토 2. 흑색토 3. 백회면 4. 냇돌 5. 항토(다진 흙) 6. 생토
1. 황토 2. 흑색토 3. 백회면 4. 냇돌 5. 항토(다진 흙) 6. 생토
벽의 축조는 강서대묘나 강서중묘처럼 잘 가공된 석재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석재는 전면 가공하기보다 벽으로 드러나는 면을 가공하거나 자연 절리면을 이용하여 벽을 축조한다(그림2). 벽은 대개 뉘어쌓기 방식으로 축조되며, 장대석을 뉘어쌓은 경우 큰 장대석을 아래에 작은 장대석을 위에 올려 쌓는다(장천2호분). 가공한 장대석재로 축조한 석실은 주로 대형분에서 관찰된다. 이러한 방식은 크기가 서로 다른 석재의 경우에도 적용되어서 큰 돌을 아래에 놓고, 작은 돌로 벽의 상부를 쌓는다(집안324호분). 깬돌(할석)으로 축조한 경우 크고 작은 돌 크기의 차이가 있지만, 전축분의 벽돌 쌓는 방식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긴 쪽을 뉘어서 쌓아올린다(안학동5호분). 벽돌을 쌓듯이 축조한 석실은 서북한 일대의 석실 축조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황해도와 평양 일부 지역에서는 돌 대신 벽돌로 축조하기도 한다. 벽돌로 축조한 경우 천장부나 현실 입구의 문기둥이나 이맛돌, 문턱 등 문틀시설이나 천장의 상부에 벽돌 대신 돌을 사용한다. 영화9년명 동리묘가 벽 상부와 천장에 돌을 사용한 전석혼축실이다.

그림2 | 석실 벽 축조방식 - 장천2호분

그림2 | 석실 벽 축조방식 - 집안324호분

그림2 | 석실 벽 축조방식 - 안학동5호분

그림2 | 석실 벽 축조방식 - 영화 9년명 동리묘
석실은 반지하나 지상에 자리해서 석실의 벽과 천장을 축조하면서 흙으로 분구를 쌓아올렸고, 석실의 입구 부분을 제외한 분구의 나머지 부분을 축조한 후 맨 마지막에 입구를 막았을 것이다. 석실기단봉토분도 기단을 축조한 후의 석실 축조는 석실봉토분과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2) 평면 구조
석실의 기본 구조는 주검이 안치되는 방과 통로로, 주검이 안치되는 방을 현실이라고 하고,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를 연도라고 한다. 현실 한쪽 벽에 문이 있고, 문은 통로와 연결되며, 통로를 통해서 시간을 달리하며 추가로 매장이 이루어진다.
현실 내에는 주검이 안치된 목관이 놓이며, 목관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관대가 마련되어 있다. 목관은 대개 두 기가 놓이지만, 세 기가 놓이기도 한다. 따라서 현실은 합장이 가능하도록 일정 길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를 갖고 있어야 한다.
현실 중에는 한 변 길이가 1.5m 내외이거나 너비가 1m 미만으로 작고 좁아서 실질적으로 현실 내에 추가 합장이 가능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분구 내에 비슷한 규모의 석실이 2~3개 놓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동일 분구 내에 여러 개의 매장부가 있는 무덤을 동분이혈합장(同墳異穴合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실은 한 변 길이가 2m 내외이고, 너비는 1.4~5m 정도여서 추가 합장이 가능한 규모이다. 큰 현실은 한 변 길이와 너비가 3m를 넘으며, 경신리1호분의 경우 현실의 한 변 길이가 3.3~3.5m이고 높이는 3.5m로 높고 크다. 현실과 연결된 통로(연도)도 길이 5m, 너비 1.5m로 길다. 따라서 현실과 연도로 이루어진 대형 석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방형이나 장방형 평면이 중심이 된다. 길이는 비슷하지만 너비가 넓어지면서 현실의 평면은 장방형에서 너비가 넓어져 방형이 되고, 다시 너비가 더 넓어진 횡장방형 평면이 되어서 현실의 크기는 횡장방형, 방형, 장방형 순이다. 횡장방형 석실인 통구 오회분 4호분이나 5호분의 경우 현실 내에 관대가 3개 확인되고 있어서 현실 너비가 넓어지는 것은 추가 합장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한편, 장방형 현실 중에는 현실의 너비가 좁아서 실질적으로 추가 합장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안악 오국리무덤이나 요동성총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로 현실의 너비가 70~80cm 내외이다. 이러한 장방형 현실은 같은 분구 내에 여러 기의 매장부가 있는 동분이혈합장무덤에서 관찰된다.
연도는 현실의 한쪽 벽에 있다. 연도는 벽의 가운데에 있는 중앙연도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친 편재연도 두 가지로 나뉘며, 중국에서는 중앙연도를 산형(鏟形), 치우친 연도를 도형(刀形)이라고 부른다. 연도 위치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는 않지만, 중국 동북지방인 집안·환인·통화 등지에서는 중앙연도와 왼쪽으로 치우친 편재연도가 우세한 데 비해, 평양과 서북한 일대에서는 중앙연도와 오른쪽으로 치우친 편재연도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해서 지역에 따른 선호도 차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3) 천장 가구
완성된 건축물로서 석실봉토분을 특징 짓는 중요한 구조적 속성 중 하나가 천장 가구이다. 석실의 벽을 일정한 높이로 쌓고 그 위로 조금씩 안으로 들여쌓아서 천장부를 형성하였다. 천장부는 생활풍속도가 그려진 벽화분의 경우 석실 전체 공간의 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높게 형성되었다. 천장을 높게 쌓아올렸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분구로부터 오는 압력을 분산시킨 것은 고구려 석실의 탁월한 특징이며, 적석총과 함께 고구려의 높은 건축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벽화분이 오늘날까지 잘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견고하고 완전히 밀봉된 석실 축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장부의 형성방법에 따라서 천장은 평천장, 고임식 천장, 궁륭상식 천장으로 나눌 수 있다(그림3).

그림3 | 여러 천장 가구(강현숙, 2013) - 평천장

그림3 | 여러 천장 가구(강현숙, 2013) - 고임식 천장

그림3 | 여러 천장 가구(강현숙, 2013) - 궁륭상식 천장

그림3 | 여러 천장 가구(강현숙, 2013) - 궁륭상식 + 고임식
평천장은 벽의 상부로 가면서 조금씩 들여쌓아 벽 상부의 너비를 좁힌 후 그 위에 커다란 돌 몇 매로 천장을 막은 것이다. 별도의 천장부가 형성되지 않아서 석실의 횡단면은 사다리꼴이나 네모난 형태가 된다. 평천장은 현실 폭이 좁은 장방형 평면이거나 횡구식 석실에서 많이 확인되며, 소형분에서도 다수 확인된다. 우산하742호분은 벽 위에 커다란 돌 몇 매를 덮었으며, 봉토분은 아니지만 대형 석실적석총인 우산하1041호분(우산하41호분)은 커다란 돌 한 매로 천장을 막았다.
고임식 천장은 일정 높이로 벽을 쌓아올린 후 천장부가 시작되는 곳에서 돌을 석실 내부쪽으로 한 단 한 단씩 고이면서 천장부를 줄여가며 높이 쌓은 방법이다. 현실 내부에서 천장을 올려 볼 때 보이는 모양에 따라서 고임식 천장은 몇 가지로 나뉜다. 평행고임은 네 변에서 일정한 폭으로 돌을 안으로 내밀면서 고여 쌓아 계단 모양이 된 것이다(장천1호분 현실, 통구12호분 오른쪽 현실). 삼각고임은 네 모서리를 귀접이 하듯이 네 변의 모서리에 돌을 고여서 현실 아래에서 올려 보면 네 모서리에 삼각형의 고임석이 보인다(집안1897호분 왼쪽 현실). 팔각고임은 삼각고임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여서 아래에서 보면 천장의 평면이 팔각형이 되도록 고인 것으로 계단상의 팔각형 평면 천장이다(덕화리1호분). 고임 단이 많을수록 천장부는 높게 형성된다. 고구려 석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2~3단의 평행고임 위에 1~2단의 삼각고임을 하여 천장부의 면적을 줄인 후 1매의 돌로 천장을 막은 것이다(강서대묘). 평행삼각고임으로 불리는 이러한 천장 가구는 벽돌무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른 시기 벽화분인 안악3호분은 평행삼각고임천장이어서 고구려에서 석실의 축조에는 벽돌무덤과는 다른 기술 계통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궁륭상식 천장은 네 벽의 모서리를 죽이면서 조금씩 안으로 들여서 둥글게 쌓아올려 천장 상부의 면적을 둥글게 좁혀가는 방식이다(복사리벽화분, 마선구1호분). 그렇지만 천장이 반구상으로 둥글게 되지 않는 경우, 이를 궁류상식과 구별하여 네 모서리의 선이 살아있는 것을 사아식 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만보정1368호분, 통구12호분 좌실). 엄격하게 적용하자면 고구려 석실의 궁륭상식 천장은 대부분 사아식이다. 절천장은 사아식처럼 올라가다가 중간에 급하게 경사를 줄여서 천장을 마무리한 것으로, 사아식이나 궁륭상식과 구별하여 절천장으로 부른다(절천장총, 산성하1408호분 전실). 사아식이나 절천장은 계단석실적석총에도 사용된 천장 가구이다(절천장총).
4) 공간 구성
석실봉토분은 현실과 연도 외에 별도의 공간 유무에 따라서 공간 구성이 다양하다. 가장 많은 수를 점하는 것은 하나의 현실에 연결된 하나의 연도로 이루어진 단칸구조이고, 별도의 공간을 가진 석실은 벽화분이나 대형분에서 주로 확인된다. 이 외에도 현실이 두 개 이상의 복수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석실의 공간 구성은 현실의 수와 별도의 공간 유무, 그리고 연도의 조합에 따라서 나누어볼 수 있다(그림5).

그림4 | 석실의 공간 구성(덕흥리벽화분)
단칸구조는 석실봉토분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현실과 연도 각 하나로 구성된 가장 간단한 구조이지만, 현실의 평면 형태와 연도의 위치 조합에 따라 평면형은 다양하다. 가장 많은 수를 점하는 것은 방형 현실+중앙연도 무덤이며,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횡장방형 현실+중앙연도 무덤이다. 여러 평면구조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방형 현실에 중앙연도, 천장은 평행삼각고임이다. 한편, 석실봉토벽화분에서는 중앙연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현실은 방형, 장방형, 횡장방형 평면 순이며, 일부 장방형 현실에서는 오른쪽으로 치우친 연도도 있다. 그중 장산동 1호분과 2호분은 장방형 현실, 중앙연도의 벽화분이며, 태성리2호분은 장방형 현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연도, 그리고 현실 좌우에 벽감이 있는 벽화분이다. 사신도 벽화분은 대부분 방형 현실, 중앙연도 구조이다.
두칸구조는 하나의 현실과 통로로 연결된 별도의 공간 하나가 더해진 구조이다. 별도의 공간은 현실과 연도 사이에 위치한다. 현실은 주검이 안치된다는 측면에서 주실(主室), 또는 뒤에 있다고 보아서 후실(後室)로 부르고, 현실 앞에 있는 별도의 공간을 앞칸 또는 전실(前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두칸구조는 현실과 전실 또는 주실과 전실, 후실과 전실로 구성된다. 현실이나 전실의 한쪽 벽 또는 양쪽 벽에 별도의 작은 방이 달리기도 한다. 이 작은 방을 곁칸 또는 측실(側室)로 부르며, 양쪽에 대칭되는 경우 사람의 신체에 비유해서 이실(耳室)로 부르기도 한다.
평양 지경동 1호분과 2호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두칸구조는 벽화분이다. 두칸구조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방형 현실이며, 장방형 현실의 두칸구조 무덤은 드물다. 전실은 종장방형, 방형, 횡장방형 등 다양하다. 예외적인 구조로, 태성리1호분은 장방형 현실에 전실과 현실이 통로로 연결되지 않고, 현실에서 전실로 통하는 입구 중앙에 기둥을 세우고, 전실은 북벽 양측 끝에 벽감을 만들었다. 또한 안악3호분은 회랑으로 공간이 구획된 두칸구조로, 현실을 돌아가며 회랑이 있는 무덤으로는 안악3호분과 태성리3호분 두 기가 보고되었다. 안악3호분은 방형 현실에 회랑이 현실을 ■ 상으로 돌아가며, 현실과 전실은 기둥으로 구획되어 있고, 전실 좌우에 통로로 연결된 측실이 있으며 연실과 연도로 구성되었다. 태성리3호분은 안악3호분과 같으나 회랑이 현실을 ■ 상으로 돌아간다.
별도의 통로로 연결된 공간은 아니지만, 긴 연도의 좌우 벽을 파고 들어가서 별도의 방을 만든 경우 연도와 좌우의 공간이 마치 현실 앞에 횡장방형의 전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과 전실이 통로로 연결된 두칸구조와 구별되므로 연도 좌우에 측실이 있는 이러한 구조는 유사두칸구조라고 할 수 있다. 유사두칸구조인 통구분지의 절천장총, 산성하725호분은 벽화가 있는 계단석실적석총이며, 산성하983호분과 산성하332호분은 석실봉토벽화분이다. 위원 사장리1호분도 유사두칸구조의 계단석실적석총이며, 평양 대성산성, 안학궁 부근의 석실봉토분인 고산동15호분도 유사두칸구조이다.
두칸구조는 현실과 전실, 연도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현실 평면과 전실 평면, 연도 위치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가장 많은 것은 방형 현실, 횡장방형 전실, 중앙연도이며, 장방형 현실의 좌우편재연도와 횡장방형 현실의 경우 별도의 공간을 가진 석실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이처럼 현실은 하나이나 별도 공간이 더해진 두칸구조는 벽화분에서 주로 많이 관찰되지만, 평성 지경동 1호분이나 2호분, 집안 모두루총은 벽화가 없는 두칸구조이다.
현실이 두 개 이상인 경우는 고구려 고분에서 드물다. 현실 두 개와 연도 하나로 구성되거나 현실 세 개와 현도 하나로 구성되기도 한다. 우산하2174호분은 현실 두 기가 통로로 연결되어 좌우로 나란하고, 우측 현실의 좌편재연도를 통하여 좌우 현실에 주검이 매장되었을 것이다. 좌우 현실은 모두 방형 평면이다. 삼실총은 세 개의 방형 현실이 통로로 연결되었다. 좌측이 되는 북편으로 현실 두 개가 통로에 의해 종으로 연결되고, 위쪽에 위치한 현실의 오른편 통로를 통해서 우측(남편) 현실이 연결된다. 연도는 우측 현실의 중앙에 있어서, 연도를 포함한 전체 평면은 ⼌상 배치이다. 각 현실은 방형이다.

그림5 | 고구려 석실봉토분의 공간 구성(ⓒ강현숙)
현실 네 개가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고 그 앞으로 긴 횡장방형의 전실이 있고, 짧은 연도가 두 개 있는 구조도 있다. 요동성총이 이러한 구조로, 짧은 연도 두 개와 가로로 긴 횡장방형 전실, 그리고 주검이 안치되는 관실 4칸이 병렬 배치된 무덤이다. 통념적으로 현실은 두 차례 이상의 추가 합장이 전제된 구조인 데 비해 요동성총의 현실 각각은 너비가 좁아서 관이 하나 정도 들어갈 크기여서 합장이 불가능하여 관실(棺室)이라고 할 수 있다. 너비가 가장 넓은 서측이 1.12m이고 나머지 3칸은 0.8m, 0.86m, 0.88m로 관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요동성총은 나란하게 배열된 4개의 관실이 하나의 긴 횡장방형 전실을 공유한 관실 병렬 배치 무덤이다. 이러한 구조는 고구려에서 유례가 없는 이질적인 것이나 중국 요령성 요양 일대의 후한 말~위·진대에 걸친 벽화분에서 확인되고 있어서 고구려와 중국 동북지방과의 교류를 시사한다.
이 외에도 중국 연구자들이 석붕형으로 부르는 석실도 있다. 석붕형 석실은 판상석 1~2매를 이용하여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덮어서 천장을 하였다. 한쪽 단벽을 입구로 한 전체적인 모습이 마치 북방식 지석묘와 같아서 중국에서는 석붕형(石棚形) 석실이라고도 한다. 이로 인해 고구려 석실분의 기원을 청동기시대 지석묘에서 구하기도 하지만, 석붕형 석실의 대부분은 분구가 돌인지 흙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동실묘 또는 봉석묘와 구분이 쉽지 않다.
태왕릉의 배총 외에도 환인, 관전, 봉성 등지에서는 석붕형 석실이 소형 무기단적석총의 매장부로 확인되기도 하지만, 서북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용강군 황산 남쪽 기슭의 이실총, 삼실총, 칠실총 등은 봉토가 멸실되어서 지상에 드러나 석실은 판상석재로 축조되어서 마치 개석이 없어진 북방식 지석묘와 같은 형상이다(사진2).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으로 인해 지석묘를 고조선의 묘제로 보고 있는 북한에서 고구려 석실이 고조선 묘제를 계승하였다는 주장(주영헌, 1962)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러한 판상석재를 이용한 석곽은 함경북도의 발해 석곽에서도 관찰되어서(국립중앙박물관, 1998)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림6 | 석붕형 석실 - 1. 황산 남쪽 기슭 칠실총(『高句麗時代之遺蹟 下冊』)

그림6 | 석붕형 석실 - 2. 함경북도 부거리의 판상석재 발해 석곽(ⓒ국립중앙박물관)
5) 그 외 시설
석실 내에서는 주검 안치와 관련하여 관을 올려놓는 관대(또는 관상) 외에도 돌로 만든 상(床)과 돌기둥(石柱) 등이 확인된다.
관대는 관을 받치는 받침대로, 깨진 돌로 만들거나 거대한 판상석을 이용하기도 한다. 경신리1호분에서는 관 받침대 아래에 받침돌이 있어서 관상(棺床)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개는 현실 내에 연도 방향과 일렬로 관대가 두 기 놓이며, 장방형 현실, 중앙연도 석실에서는 연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뉘어 있으며, 편재연도인 경우 연도의 반대쪽 장벽에 관대가 하나 놓인다.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덕흥리벽화분에서는 현실의 북벽쪽으로 연도 방향과 직교하여 관대가 한 개 놓이는데, 관대의 폭이 넓어서 두 기의 목관이 나란히 놓일 만한 크기이다.
석상(石床)은 현실과 전실로 구분된 방에서는 전실에, 현실 하나만 있는 단칸구조 무덤에서는 현실 입구 쪽에 있다. 석상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놓여 있는 위치로 볼 때 제상으로서의 기능을 생각할 수 있다. 두칸구조의 석실인 약수리벽화분, 팔청리벽화분, 동암리벽화분, 덕흥리벽화분, 복사리벽화분에서 석상이 확인되었다. 덕흥리벽화분은 전실의 서측으로 북벽에 그려진 남자 주인공 앞에 석상이 하나 놓여 있어서 배례나 제의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단칸구조의 장산동1호분과 장산동2호분에서는 장방형 현실의 장축과 직교하게 관대가 놓이고, 각 관대 앞에 석상 한 기가 놓여 있어서 제의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한다. 석상은 사신도 벽화분인 통구사신총에서도 확인된다.

그림7 | 석실 내 돌기둥 - 1. 안악3호분(조선유적유물도감, 1993)

그림7 | 석실 내 돌기둥 - 2. 쌍영총(ⓒ국립중앙박물관)
돌기둥은 단칸구조나 두칸구조의 현실이나 전실 내부 혹은 현실과 전실 사이 통로에 있어서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과 함께 천장석을 받치는 역할을 하였다(그림6).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은 안악3호분과 태성리1호분에서 확인된다. 안악3호분에서는 모양을 달리하는 여러 개의 기둥이 전실과 현실 공간을 분리하였고, 단칸구조의 장산동 1호분과 2호분은 현실 내에 기둥을 세워 주검이 안치된 관대와 석상의 공간을 분리하였다. 집안 마선구1호분 현실 중앙에 있는 돌기둥은 현실 공간을 둘로 나누는 역할과 함께 천장석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전실과 현실 사이의 통로에서 장식성이 더해진 상징적 역할의 돌기둥은 팔청리벽화분과 쌍영총에서 확인된다. 이 중 쌍영총은 용이 그려진 팔각기둥이 통로 좌우에 하나씩 세워져 있는 데서 무덤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