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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2. 사묘유적

2. 사묘유적

고구려에는 조상신이나 국가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 건축이 있었는데, 『삼국지』에는 “거처하는 좌우에 큰 집을 짓고, 귀신과 영성 및 사직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사묘의 위치와 종류를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주 006
각주 006)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 고구려, “於所居之左右立大屋 祭鬼神 又祀靈星社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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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국양왕 8년(391년)에는 “3월에 교서를 내려 불교를 숭상하여 복을 구하게 하였으며, 관청에 명하여 나라의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게 하였다”주 007
각주 007)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 8년, “三月, 下敎 崇信佛法求福 命有司 立國社修宗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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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 점으로 보아, 늦어도 4세기 후반에는 국사와 종묘 등 사묘 건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집안시 국내성 동쪽의 동대자유적은 고국양왕대에 축조된 사묘유적으로 비정(方起東, 1982)된 이후 별다른 이견 없이 대표적인 사묘유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출토된 와당의 편년을 근거로 볼 때 평양 천도 이후에 축조되어 발해시기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강현숙, 2010)되는 점이나, 종묘사직은 국내성 내부의 왕궁 주변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종합해볼 때 동대자유적을 사묘유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 환도산성 궁전지 내부에서 2기의 팔각 건물지가 조사되어 이를 불탑 또는 사묘 건축으로 추정하거나, 『삼국사기』 제사지에 시조묘가 둘이 있다는 구체적 기록을 근거로 환도산성 팔각 건물을 시조묘로 추정하기도 한다(최광식, 2007). 그러나 궁전지 내부의 건물 배치상태나 고구려의 가람배치 등과 비교해볼 때 이를 불탑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거처하는 곳 좌우에 큰 집을 지어 귀신과 영성, 사직에 제사한다는 기록과도 배치상태가 일치하지 않아 이를 사묘 건축으로 특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고대의 팔각형 건축은 종교나 우주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강병희, 2010), 통일신라시기의 경주 나정이나 이성산성 팔각 건물 등과 구조적인 면에서 유사하므로 환도산성 팔각 건물을 제사나 의례와 관련된 건물로 추정할 수 있다.
환도산성 팔각 건물은 궁전지 2호 기단의 남쪽에 치우쳐 나란히 위치하며, 같은 기단의 북쪽으로는 장방형 건물과 방형 건물이 위치한다(그림2). 건물이 위치한 지점은 다른 건물보다 기단부 폭을 넓게 조성하였는데, 서쪽 기단부는 훼손되었지만 동쪽과 남쪽 및 북쪽에는 건물의 윤곽과 동일하게 팔각형의 배수구를 설치한 것이 확인된다(그림9). 건물의 기단부는 별도로 조성하지 않았으나 이 배수구의 윤곽이 팔각 건물의 기단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 변의 길이는 5.46m, 폭은 12.24m이다.주 008
각주 008)
이하 팔각 건물의 구조 특징은 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b, 78~80쪽), 그림9의 건물 규모와 관련된 일부 수치는 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재계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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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9 | 환도산성 궁전지 팔각 건물 평·단면도(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b, 도43 수정·편집, 안대환·김성우, 2013 그림2 참고)
2기의 건물은 적심기초 위에 초석을 놓은 형태인데, 가운데에 4개, 외곽에 8개 초석을 배치하였으며, 건물의 중심부에는 동서 방향으로 7개의 초석을 일렬로 배치하였다. 적심시설은 지름 1.5m, 깊이 0.45m의 원형 수혈에 할석을 채운 형태이고, 초석은 자연석을 약간 다듬은 형태로 크기는 1.1m 내외인데, 가운데 동서 방향의 적심과 초석은 이보다 약간 작다. 방형의 내부 적심렬과 팔각형의 외부 적심렬의 초석은 크기나 형태가 일정하고 배치도 정연한 데 비해 내부의 초석렬은 크기나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의 초석렬을 건물의 구조와 관계없는 종교나 의례를 위한 용도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상부 구조물을 받치는 보조 기둥인 동바리기둥으로 추정된다(안대환·김성우, 2013). 이렇게 보면 팔각 건물은 내부 적심렬의 기둥 4개와 외부 적심렬 기둥 8개로 이루어진 중층 구조의 팔각 건물로 추정되며, 건물의 전체 폭은 7.72m가량 된다. 내부 방형 적심열의 주간 거리는 3.1m, 외부 팔각형 적심렬의 주간 거리는 3.2m이다. 궁전지의 층위나 출토유물로 보아 팔각 건물지는 궁전지의 다른 건물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서는 342년 전연 모용황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함락되었을 때 소실되어 폐기된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출토된 와당 등의 편년에 의하면 평양 천도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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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 8년, “三月, 下敎 崇信佛法求福 命有司 立國社修宗廟.” 바로가기
  • 각주 008)
    이하 팔각 건물의 구조 특징은 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b, 78~80쪽), 그림9의 건물 규모와 관련된 일부 수치는 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재계측한 것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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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묘유적 자료번호 : gt.d_0008_006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