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분
2. 고분
1) 조사연구현황
남한 지역에서 고구려 고분이 처음 확인된 것은 1916년의 일이지만 간단한 현지조사를 통해 존재가 확인된 것으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朝鮮總督府, 1916). 이후 1980년대 초반 춘천 방동리(金元龍, 1981)와 신매리(趙由典, 1987)에서 고구려계 석실분이 조사되었으나 고분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이를 고구려 고분으로 특정할 만한 근거가 없어 더 이상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와 방동리고분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졌고(盧爀眞·沈載淵, 1993), 춘천 만천리에서도 유사한 구조의 석실분이 조사되었다(翰林大學校博物館, 2000). 이를 통해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존재 여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지만 확실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상황에서 논의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어 2000년대 초반 연천 신답리(김상익·김충배, 2003), 춘천 천전리(江原文化財硏究所, 2008), 홍천 역내리(강원문화재연구소, 2005), 가평 신천리(이재설 외, 2009) 등지에서 고구려계 석실분이 잇달아 발굴되었으나 역시 고구려 고분으로 특정할 만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아 연구는 답보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007년 봄 용인 보정동에서 2기의 석실분이 발굴되었는데, 각 고분에서 철제 관정 및 관고리와 함께 확실한 고구려 토기 심발과 흑색마연토기 구형호가 1점씩 출토되었다(이희수 외, 2009). 같은 해 성남 판교동(韓國文化財保護財團, 2012), 홍천 철정리(江原文化財硏究所, 2010), 충주 두정리고분군(김병희 외, 2010)이 발굴되었으며, 두정리고분군에서도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다. 2008년에는 화성 청계리고분(한백문화재연구원, 2013b)이 조사되었으며, 역시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다. 2010년에는 연천 강내리에서 9기의 고분이 3기씩 열상으로 배치되어 발굴되었으며, 고구려 토기와 함께 관정, 관고리, 금동제품 등이 출토되었고(김병모 외, 2012), 화천 거례리에서도 1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다(한백문화재연구원, 2013a).
이처럼 2007년 이후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는 고분의 발굴 사례가 증가하면서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존재가 명확해졌다(그림13). 또한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는 모든 고분이 장방형 묘실에 우편재 연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삼각고임방식의 천정 가구와 회칠로 마감한 묘실 벽체 등 전형적인 고구려 고분의 특징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아울러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고분도 이러한 고구려 고분의 특징을 모두 또는 일부를 공유하고 있으며, 백제나 신라의 석실분과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다(崔鍾澤, 2011).
2) 입지와 분포
지금까지 남한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고분은 14개 지역에 걸쳐 35기에 달하는데,주 004 입지와 분포에 있어서 특징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은 임진강·한탄강, 북한강 상류, 남한강 상류 등 큰 강가에 위치하거나 성남, 용인, 화성 등지의 내륙에 분포하고 있는데, 내륙에 분포하는 경우에도 하천에 인접해 있어서 강가의 저평한 지역에 입지하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그림13).

그림13 |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 분포도(ⓒ최종택)
세부적으로 보면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입지는 구릉 말단부나 곡부, 강가의 충적대지로 구분된다. 화천 거례리고분, 홍천 철정리고분, 춘천 천전리고분은 강가의 충적대지에 입지해 있어 일반적인 고구려 고분의 입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고분은 구릉 말단에 입지하고 있는데, 구릉 말단이라고는 하나 경사가 완만하며, 두정리고분군을 제외하면 해발고도가 100m 미만의 저평한 완사면에 위치해 있다. 또한 강내리고분군은 강가의 충적대지와 이어지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보정동고분, 신답리고분 역시 강과 인접한 구릉 말단의 저평한 완사면에 위치해 있다. 한편, 춘천 신매리고분과 방동리고분, 만천리고분, 판교동고분 역시 구릉 말단에 위치해 있으나 다른 고분들보다는 다소 경사가 급한 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정리 소실 21호분과 청계리고분 역시 구릉 말단의 비교적 경사가 급한 곡부 사면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고구려 고분은 충적대지나 구릉 말단의 완사면에 위치하지만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사면이나 곡부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으므로(김일성종합대학 고고학및민속학강좌, 1973)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 역시 입지에 있어서 동일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은 1기 또는 2~3기가 분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충주 두정리고분군은 5기가 한 줄로 배치되어 있으며, 연천강내리고분군은 9기의 고분이 3기씩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어 열상으로 군집을 이루며 분포하는 고구려 고분의 일반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그림14). 이상과 같이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은 큰 강이나 작은 하천 변의 충적대지나 구릉 말단 완사면에 입지하며, 이는 북한 지역이나 중국 동북지방 고구려 고분의 입지와 같다. 또 두정리고분군이나 강내리고분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기의 고분이 열상으로 배치되는 점도 고구려 고분의 일반적인 특징과 동일하다. 이는 남한 지역의 고구려 고분이 비교적 넓은 지역에 걸쳐 소수로 분포하기는 하지만 입지와 분포에 있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축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림14 | 연천 강내리고분군 배치도(ⓒ김병모 외, 2012, 50쪽, 도면3 재편집)
3) 구조
남한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고분 중 구조가 모두 확인된 예는 연천 신답리1호분이 유일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분은 천정부를 제외한 묘실의 일부 또는 전체가 확인되어 봉분을 제외한 나머지 구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1) 봉분
대부분의 고분은 봉분이 남아 있지 않으나 연천 신답리1호분과 춘천 천전리고분, 홍천 철정리2호분, 춘천 방동리고분 등에서 봉분의 형태 또는 관련된 구조가 확인되었다. 신답리1호분은 봉분이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는데, 평면형태는 원형으로 보고되었으나 원래 방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그림15-1). 봉분은 석실의 축조와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회흑색점토질의 기반토층 위에 황갈색·갈색·회갈색의 점토와 사질점토를 겹겹이 다져 쌓았다. 규모는 동서 19.4m, 남북 19m이고, 잔존하는 높이는 3m이나 원래 높이는 4m 내외로 추정된다(김상익·김충배, 2003).
그림15 |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 평면도
![]() 1. 신답리 1호분 평면도(김상익·김충배, 2003, 41쪽) |
![]() 2. 천전리고분 평면도(江原文化財硏究所, 2008, 303쪽) |
![]() 3. 방동리 2호분 평면도(盧爀眞·沈載淵, 1993, 93쪽) |
![]() 4. 신천리 1·2호분 평면도(이재설 외, 2009, 192쪽) |
천전리고분과 철정리2호분은 묘실 외곽에서 주구가 확인되었다(그림15-2). 구조가 잘 남아 있는 천전리고분의 경우 묘실 입구 쪽은 주구가 없는 ‘ㄷ’자 형태이고, 주구의 폭은 1.85~3.2m, 깊이는 0.4~0.75m가량 된다(江原文化財硏究所, 2008). 또한 철정리2호분 역시 연도 쪽이 터진 ‘ㄷ’자형 주구가 설치되어 있다(江原文化財硏究所, 2010). 일반적으로 고구려 고분에는 주구가 설치된 예가 없으나 평안남도 대동군 고산리7호분과 대보면7호분과 같이 봉분 외곽에 구가 확인되는 예가 있어서주 005 주구를 남한 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수한 시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편, 구조상으로 보면 주구 안쪽에 봉분이 설치된 것이 분명한데, 천전리고분의 동서 주구 사이 폭은 8m, 철정리2호분은 5m가량 되므로 봉분의 규모는 이와 비슷한 크기로 추정할 수 있다. 주구의 형태로 보아 천전리고분의 봉분은 방대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15-2). 그 밖에 방동리2호분은 묘실 외곽으로 방형 적석부가 설치되어 있으며(그림15-3), 가평 신천리고분군에서도 1호분과 2호분의 연도부를 연결한 석렬이 확인되었는데(그림15-4), 봉분의 유실을 막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이재설 외, 2009).
(2) 묘실의 위치와 축조방식
남한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고분의 묘실 위치는 지상식과 반지하식이 있는데, 반지하식이 많다. 지상식은 지면을 정지하고 바로 묘실을 구축한 것과 경사지의 높은 면을 ‘ㄴ’자 형태로 파내고 묘실을 축조한 것으로 구분된다. 축조 과정이 잘 밝혀진 신답리1호분의 경우를 보면 약간의 굴곡이 있는 기반토 위에 입자가 곱고 점도가 높은 회흑색점토를 6~30cm 두께로 다진 후 묘실을 축조하였으며, 벽석을 놓은 후 벽석 뒷면의 공간을 동시에 점토로 채우며 벽체를 구축하였다(그림16 아래). 판교동1·2호분은 경사진 지형의 풍화암반을 깎아 정지하였으며, 낮은 지점은 사질점토를 채운 후 다시 벽체를 축조하였다(韓國文化財保護財團, 2012).

그림16 | 연천 신답리고분 전경(ⓒ최종택)

그림16 | 1호분 층위도(ⓒ김상익·김충배, 2003, 61쪽)
반지하식은 벽체의 일정 높이까지만 굴광을 한 후 축조한 것으로 대부분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굴광의 깊이는 보통 벽체의 3~5단 정도 높이까지 이르며, 잔존 깊이는 충주 두정리2호분의 경우 39cm가량 된다. 천전리고분의 경우는 묘실과 연도부 모두를 굴광한 후 축조하였는데, 석축 구조의 연도부 외곽까지 굴광이 이어져 묘도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江原文化財硏究所, 2008). 화천 거례리고분 역시 연도부까지 굴광하였으며, 연도부 외곽까지 자갈이 깔려 있어 묘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한백문화재연구원, 2013a). 반지하식 고분의 입지는 구릉 말단 완사면이나 충적대지를 구분하지 않으며, 특히 충적대지에 축조된 고분 모두가 반지하식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묘실의 기초를 견고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묘실의 축조재료는 크기나 형태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판석형 할석을 사용하였다. 묘실 벽체는 동시에 축조하였는데, 장방형의 석재를 가로로 눕혀서 쌓았으며, 할석 사이에 생긴 공간에는 작은 돌을 채워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부 고분은 할석 벽체에 회반죽을 발라서 마감하였는데, 신답리1호분과 천전리고분은 바닥까지 회를 발라 마감하였다. 신매리고분의 경우는 벽체를 축조할 때 할석 사이에 회를 놓고 쌓아올려서 다른 고분과 축조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 강내리고분군의 경우 벽체에 점토를 발라 마감한 것이 있는데, 회반죽으로 마감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벽체를 1매의 커다란 판석으로 마감한 예가 하나 있다. 홍천 철정리4호분은 북벽과 연도가 설치된 남벽을 각각 1매의 판석을 세워서 마감하였으며, 먼저 판석을 세워 북벽과 남벽을 축조한 후 그 사이에 할석을 쌓아 장벽을 축조하였다(그림18-2). 고구려 고분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축조된 고분으로는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2호분(최응선·김성철, 2009) 등을 들 수 있으나 수적으로는 소수에 불과하다.
묘실의 벽체는 수직으로 쌓아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천정까지 구조가 남아 있는 경우를 보면 모두 안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석실의 단면형태는 마치 궁륭상 천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천정의 크기를 줄여 벽체가 받는 하중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또한 신매리고분은 벽석 제1단부터 각 모서리 돌을 직접 교차시키지 않고 떨어지게 배치한 후 그 사이에 작은 돌을 넣어 모서리 각을 죽이며 쌓았다(趙由典, 1987). 방동리고분에서도 이와 유사한 축조방식을 사용했는데(盧爀眞·沈載淵, 1993), 역시 위로 갈수록 조금씩 안으로 들여쌓아 천정의 공간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기법으로 보인다.
(3) 천정 가구 및 연도
천정 구조를 알 수 있는 고분이 많지는 않으나 일부라도 남아 있는 경우는 모두 삼각고임방식의 천정이다. 대체로 묘실 벽체의 마지막 단은 편평한 석재를 이용해 정연하게 쌓고, 모서리에 각각 1매씩의 판석을 놓아 삼각형으로 모를 줄여 쌓는다(그림17). 천정 구조가 잘 남아 있는 신매리고분의 경우 그 위에 1단을 더 올려 모줄임을 한 후 마지막으로 1매의 판석을 덮어 천정을 마감하였으며(趙由典, 1987), 신답리1호분과 방동리2호분, 역내리1호분도 마찬가지로 2단의 삼각고임천정이다. 삼각고임천정이라도 형태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역내리1호분의 경우 삼각고임방식과 평행고임방식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림18-1). 이처럼 같은 삼각고임방식의 천정이라도 그 구조에 차이가 있는 것은 석재의 형태와 크기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방형의 대형 판석을 사용할 경우는 정형화된 삼각고임구조가 가능했지만 형태가 불규칙하거나 작은 판석으로는 정형화된 삼각고임구조를 만들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도부 쪽의 천정은 대체로 여러 매의 판석을 이용해 바로 덮는 평천정 형태이며, 묘실과 연결되는 부분은 대부분 커다란 장방형 석재를 올려서 문미(門楣)의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림17 | 연천 신답리1호분 석실 평·입면도(ⓒ김상익·김충배, 2003, 67쪽)

그림18 | 역내리1호분 및 철정리4호분 평·입면도 - 1. 역내리 1호분(강원문화재연구소, 2005, 30쪽)

그림18 | 역내리1호분 및 철정리4호분 평·입면도 - 2. 철정리 4호분(江原文化財硏究所, 2010, 136쪽)
연도는 묘실 단벽의 우측에 치우쳐 위치하는 우편재 연도가 대부분이다. 예외적으로 신답리2호분은 단벽 중앙에 위치해 있으나 파괴가 심하여 일부 남아 있는 벽석을 이용해 추정한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다(김상익·김충배, 2003). 또 천전리고분의 경우 단벽 중앙에서 우측으로 치우쳐 위치하지만 묘실 우측 벽과 직선상에 놓이지 않아서 일반적인 우편재 연도와 차이가 있다(그림19-1).
대부분의 고분은 연도만 존재하지만 신답리1호분은 연도 바깥쪽으로 묘도가 따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천전리고분과 거례리고분은 할석으로 축조된 연도 바깥쪽으로 굴광선이 이어지고 있어서 일종의 묘도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도와 관련된 시설로서 묘실과 연도가 만나는 부분에 장방형의 석재를 두어 문지방석의 역할을 한 예가 있는데, 방동리2호분과 철정리2·3·4호분이 이에 해당된다(그림18-2). 방동리2호분은 1매의 판석을 세워서 막은 뒤 바깥쪽으로는 커다란 괴석을 무더기로 쌓아서 연도를 폐쇄하였는데, 이때 판석이 문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신답리1호분, 신매리고분, 천전리고분, 방동리1호분, 역내리1호분, 철정리4호분, 신천리2호분, 판교동1호분에서 1매 또는 2매의 판석으로 연도와 묘실 사이를 막은 것이 확인되며, 일부 고분에서는 세워진 채로 있어서 역시 문비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 관대 및 바닥
남한 지역에서 조사된 고분 중 바닥에 특별한 시설을 한 것이 상당수에 달하는데, 바닥 전면 또는 일부에 불을 놓아 다짐한 것과 회다짐을 한 것, 할석이나 판석을 깐 것 등이 있다. 강내리고분군의 대부분은 묘실 바닥 거의 전면에 걸쳐 불다짐을 하였으며, 만천리1·2호분은 연도만 불다짐을 하였다. 두정리고분군은 모두 묘실 중앙부 일부만 타원형으로 불다짐을 하였다. 그 밖에 신매리고분의 바닥은 회다짐을 하였으며, 천전리고분은 불다짐을 한 후 회칠을 하였다.
바닥 전면에 할석이나 판석을 깔아 마감한 예는 신답리1·2호분, 거례리고분, 보정동1·2호분 등이 있다. 신답리2호분의 경우를 보면 바닥면을 정지한 후 묘실 벽체를 축조함과 동시에 바닥에 판석을 깔았으며, 빈 공간에는 작은 할석을 채우고 회를 발랐는데 연도와 묘도 바닥에도 판석을 깔았다. 보정동1·2호분은 묘실 바닥 전면에 판석을 깔고 빈틈은 할석과 점토를 채웠으며, 철정리4호분도 마찬가지이다. 화천 거례리고분은 묘실 바닥과 연도 바닥 전면에 먼저 천석을 고르게 깔고 난 후 그 위에 판석을 깔았으며, 판석 사이의 빈틈에는 작은 할석을 끼워 넣었다.
이상과 같은 바닥 처리와 별도로 관대를 설치한 고분도 확인되는데, 바닥 처리를 한 고분의 경우는 관대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바닥 처리를 한 고분의 경우 대부분 관정이 출토되고 있으며, 반대로 신매리고분을 제외하면 관대가 설치된 고분에서는 관정이 출토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부 고분은 묘실 바닥에 불다짐이나 회다짐, 또는 판석을 까는 등의 처리를 한 후 관을 안치했으며, 일부는 관대를 설치한 후 그 위에 직접 시신을 안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관대는 묘실의 좌측에 설치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천전리고분만 묘실 양측에 관대가 설치되어 있다(그림19). 관대는 대체로 천석이나 할석을 이용해 쌓았으나 천석과 할석을 섞어서 쌓은 경우도 있다. 묘실 벽체와 반대쪽(묘실 중앙부 쪽)은 장방형의 석재를 길게 놓아 마무리한 예가 많으며, 천전리고분과 신매리고분의 경우는 할석으로 쌓은 후 회를 발라 마감하였다(그림19-1). 관대의 높이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0cm 내외로 높은 편이다.

그림19 |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관대시설 - 1. 천전리고분(江原文化財硏究所, 2008, 303쪽)

그림19 |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관대시설 - 2. 철정리3호분(강원문화재연구소, 2010, 134쪽)

그림19 |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관대시설 - 3. 만천리고분(한림대학교박물관, 2000, 41쪽)
(5) 묘실의 규모 및 평면형태
묘실의 평면형태는 기본적으로 장방형이다. 묘실의 규모는 대체로 묘실의 장축 길이와 비례하는데, 2.2m를 기준으로 소형과 중형으로 구분된다(그림20-1).주 006 묘실의 평면형태는 일반적으로 장방형이지만 장축비에서 차이가 있으며, 장축비 1.6을 경계로 장방형과 세장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20-2).

그림20 |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의 묘실 길이와 장축비 분포도(ⓒ최종택)
(6) 묘실의 방향
묘실의 장축 방향은 남서-북동, 남동-북서 등 편차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남북 방향을 이루고 있으며, 연도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다만 보정동1·2호분과 보정리 소실 21호분 등 용인 지역 고분 3기와 철정리4호분은 장축이 동남-서북 방향이며, 연도는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다른 고분과 차이가 있다. 고분의 장축 방향과 지형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강내리고분군의 경우 장축 방향이 등고선과 평행하고, 강의 흐름과도 일치하며, 연도는 강 하류를 향하고 있다(그림14). 인골이 출토된 고분을 통해 피장자의 두향을 살펴보면 연천 강내리 2호분과 8호분, 9호분 모두 머리를 연도 쪽으로 두고 있어 서남향이며, 신매리고분도 마찬가지로 동남향이다. 반면에 신답리1호분은 두개골편이 주로 북쪽에서 출토되어 머리를 연도 반대편에 둔 것으로 보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김상익·김충배, 2003).
4) 편년
일반적으로 고구려 고분의 외부형태는 적석총에서 봉토분으로 변화하고, 내부구조는 수혈식에서 횡혈식으로 변화한다. 또 횡혈식석실봉토분은 묘실의 구조와 평면형태 및 천정 가구방식 등에서 차이를 보이며 변천하는데, 벽화분의 경우 벽화의 내용에 따라 비교적 자세한 변천이 알려져 있지만 벽화가 없는 봉토석실분의 경우는 자세한 편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다만 묘실의 평면형태가 장방형에서 방형으로 변화하고, 좌우편재 연도에서 중앙 연도로 변화하는 경향은 확인되고 있다(姜賢淑, 2000).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은 묘실 길이 2.2m를 기준으로 소형과 중형으로 구분되고, 장축비 1.6을 기준으로 장방형과 세장방형으로 나뉜다. 강내리고분군 9기와 두정리고분 5기 모두 세장방형이며, 방동리2호분도 세장방형에 속한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정리2호분 출토 B형 구형호와 강내리8호분 출토 C형 구형호는 형태상 5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며, 이 고분들은 세장방형에 속한다. 반면에 장방형으로 구분되는 보정동2호분과 청계리고분 1호 석실에서 출토된 C형 구형호는 5세기 후엽으로 편년된다. 출토유물상의 이러한 차이와 일반적으로 고구려 횡혈식석실분이 장방형 묘실에서 방형 묘실로 변화하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세장방형 묘실의 강내리고분군과 두정리고분군 및 방동리2호분은 5세기 중엽, 나머지는 5세기 후엽으로 편년된다.
한편, 묘실의 평면형태와 바닥 처리방법 및 관대의 유무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데, 일정한 경향성이 보인다. 즉, 장방형 묘실에는 관대가 설치된 것과 없는 것이 비슷하지만 세장방형 묘실은 관대가 없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장방형 묘실 중 바닥 처리를 한 것과 안 한 것은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반면, 세장방형 묘실 중 바닥 처리를 안 한 것은 소수에 불과하고 한 것이 주를 이룬다(崔鍾澤, 2011). 정리하면 세장방형이 유행하는 5세기 중엽에는 관대를 설치하지 않고 바닥 처리를 한 예가 많으며, 장방형이 유행하는 5세기 후엽에는 관대를 설치한 예가 많다. 이를 다시 관정 및 관고리의 출토양상을 감안해 정리하면 5세기 중엽에는 불을 놓아 다진 묘실 바닥에 관을 안치한 경우가 많고, 5세기 후엽에는 관대를 설치하고 시신을 직접 안치한 예가 많다고 할 수 있다.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