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통사

1. 연구현황

1. 연구현황

고구려 토기에 대한 관심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으나, 토기를 대상으로 한 종합적인 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야 본격화되었다. 고구려 토기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崔鍾澤, 1999; 2001; 白井克也, 2005; 孫顥, 2012).주 001
각주 001)
특히 시라이 가쓰야는 시기별·지역별·주제별 연구성과를 자세히 검토하고, 향후의 연구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白井克也, 2005).
닫기
1980년대 이전의 고구려 토기에 대한 연구는 발굴보고서에서 개별 토기에 대한 설명이나 도록 및 개설서 등의 고구려 토기에 대한 개설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본격적인 연구논문으로 보기는 어렵고 고구려 토기의 일반적인 특징을 서술하는 데 치중하고 있으며, 고구려 토기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한 논문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973년 북한의 정찬영은 4세기경까지의 고구려 고분을 편년하는 논문을 통해 고분 출토 토기류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을 시도하였다(정찬영, 1973). 이 글은 고구려 고분을 구조적인 특징에 따라 편년하고 그에 따라 고분 출토 토기를 편년한 것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연구경향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1980년대에 들어와 중국에서 그동안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토기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1984년 경철화와 임지덕은 중국 집안 지역 출토 고구려 토기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고 변천 과정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고구려 토기에 대한 연구가 부진한 이유를 자료의 부족과 산재에 있다고 보고 1980년대 들어서 집안 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된 96점의 토기를 중심으로 형식 분류와 편년을 실시하였다(耿鐵華·林至德, 1984). 이들은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를 형태와 태토 등의 특징에 따라 분류하고 이를 고분의 편년과 대비하여 3단계의 유형을 설정하고 있다(그림2). 이들의 연구는 고분의 편년관에 따라 토기를 나열하고 각 기종별 특징과 변천 과정을 설명하는 단순한 구조이며 순환논리의 모순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고구려 토기에 대한 본격적인 종합 연구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그림2 | 고구려 토기 편년표(耿鐵華·林至德, 1984)
고구려 토기 연구 초기에서 주목되는 점의 하나는 대표적인 기종인 사이장경옹(四耳長頸甕)에 대한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며, 이 기종의 형식 분류와 편년이 고구려 토기 편년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연구 사례로 중국 위존성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이 사이장경옹을 목 형태에 따라 경부에서 구연으로 곧바로 외반되는 형태(Ⅰ형)와 직립의 경부가 형성된 후 꺾여서 구연부로 외반되는 형태(Ⅱ형)의 두 형식으로 나누고, Ⅰ형은 목이 긴 것에서 짧은 형태로 변화되었으며, Ⅱ형은 목이 짧은 것에서 긴 것으로 변화되었고, 동체부의 형태는 두 형식 모두 최대경이 어깨로 올라가고 어깨가 발달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고 보았다(魏存成, 1985, 그림3). 이러한 편년관은 이후 일본의 아즈마 우시오(東潮)에 의해 수정이 가해지고 세분화되었다(東潮, 1988). 특히 마구를 비롯한 편년적 위치가 비교적 분명한 자료와 중국 동북 지방 출토 토기를 함께 고려한 편년안을 제시하였는데, 당시까 지 제시된 편년안 중 가장 정치한 것이다(그림4).
그림3 | 사이장경옹 편년표(魏存成, 1985)
그림4 | 고구려 토기 편년표(東潮, 1988)
1990년대 북한에서 고구려 토기의 일부 특징적인 속성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는데, 리광희는 시유토기와 문양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는 이들 논문을 통해 고구려 시유토기가 3세기 이전에 등장하였으며, 고구려 토기 문양의 대부분이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말까지의 기간에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리광희, 1991a; 1991b). 이 두 논문은 토기에 대한 설명이나 편년의 논리가 단순하고, 시유토기의 출현 시점을 너무 올려 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고구려 토기의 제작기법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는 측면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남한에서도 고구려 토기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崔鍾澤, 1995). 그동안 고구려 토기에 대한 연구가 주로 고분의 편년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순환논리적인 모순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 고구려 토기 자체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중국과 북한 및 남한 지역에서 출토·보고된 고구려 토기 완형 419개체를 대상으로 제작기술 및 형태적 속성을 분석하여 고구려 토기의 양상과 변천 과정을 고찰하였다(崔鍾澤, 1999). 그러나 편년의 기준이 되는 자료의 부족으로 고구려 토기 변천 과정의 획기를 고분 편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여전히 가지고 있어 세부적인 편년을 위한 보완 연구가 요구된다. 같은 해 고구려 토기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기원전 200년경의 납납둔유형과 대순자유형에서 보이는 대상파수가 고구려 토기의 초기 형태인 노남리형토기와 같은 특징으로 보고 있다(朴淳發, 1999). 이 연구는 혼강–압록강 일대의 청동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로 이어지는 문화적 전통을 자세히 검토하고, 고구려 토기의 형성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이후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고구려 토기의 제작기법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데, 양시은은 한강 유역의 아차산4보루와 시루봉보루, 구의동보루 및 몽촌토성 등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의 제작기법에 대해 고찰하였다(梁時恩, 2003). 고구려 토기 제작기법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은 아차산4보루 보고서에서 검토된 바 있으나(임효재 외, 2000), 양시은은 실물자료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고구려 토기의 제작과 관련된 전 과정을 정치하게 분석하였으며, 제작기법에서 보이는 차이는 시간적인 차이를 반영하는 것임을 시사하였다(梁時恩, 2003). 양시은의 제작 기법에 관한 연구는 5세기 후반 이후 한강 유역 출토 토기류에 대한 연구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제작기법을 정치하게 분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향후 중국과 북한 지역에서도 고구려 토기의 제작기법에 대해 이와 유사한 형태의 분석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한편, 부여 지역 일원에서 출토되는 사비기 백제 토기 중 전 달린 토기를 비롯한 회색 토기, 회흑색 자배기, 연가 등의 기종이 고구려 토기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이며, 문헌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는 연구가 진행되었다(金容民, 2002; 朴永民, 2002; 土田純子, 2009; 이재진, 2013).
2004년 남한 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 자료에 대한 연구성과를 종합하고 부분적으로 수정한 편년안이 제시된 바 있는데(최종택, 2004), 한강 유역 고구려 토기의 연대를 세분하여 몽촌토성 출토품은 475~500년 전후, 한강 북안 아차산 일원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는 500~551년 사이로 수정한 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남한 지역 고구려 토기 제작기법상의 특징과 형식변천 및 관련된 몇 개의 절대연대 등을 고려하여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토기에 대한 상대 서열을 설정하였다(崔鍾澤, 2006). 그 밖에 2017년 남한 지역 고구려 관방유적에서 출토된 토기편 88점과 홍련봉2보루 토기 태토 5점에 대한 중성자방사화분석(NAA)을 실시하여, 각 유적의 토기가 다른 점토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임을 밝히기도 하였다(J. Choi et al., 2017).
2010년 이후 한국에서도 고구려 토기를 주제로 한 학위논문이 발표되는데, 김한성은 남한 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 중 장동호와 장동옹, 광구옹에 대해 새로운 형식 분류를 시도하고 변천 과정을 고찰하였다(김한성, 2013). 이형호는 연천 호로고루에서 출토된 토기를 출토 유구의 중복관계나 맥락에 따라 3기로 구분하였는데(이형호, 2014), 향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남한 지역 고구려 토기에 대해 같은 방식의 세분화된 편년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공정길은 고구려의 식생활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토기를 기능에 따라 조리용기, 배식용기, 운반용기, 저장용기로 분류하고, 배식용기의 출토양상 변화에 주목하여 식생활의 변화 과정을 유추하였다(사공정길, 2013). 그 밖에 이승미는 고분에 부장된 토기의 부장양상을 구형호+심발, 반 또는 장경호+부형토기, 시루+부형토기, 사이장경옹+부뚜막형토기 등과 같은 조합으로 구분하고, 부장양상의 변화와 맥락을 고찰하였다(이승미, 2017).
1999년 중국에서도 고구려 토기의 편년에 관한 글이 발표되었다. 교량은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토기가 출토된 고분을 편년하고 이를 근거로 고구려 토기를 9조, 4기로 편년하였는데, 기존 중국 학자들의 편년에 비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喬梁, 1999). 2001년 경철화는 집안 지역에서 출토된 시유토기를 일별하고, 벽화고분 등 귀족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양상으로 보아 시유토기는 부장용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늦어도 4세기 초에는 시유토기가 등장하였다고 보았다(耿鐵華, 2001).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고구려 토기에 대한 학위논문이 연속적으로 발표되었다. 비림과 왕비봉은 중국 동북 지방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를 고분 출토품과 생활유적 출토품으로 구분하여 형식 분류와 편년을 시도하고,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이 두 논문은 중국 동북 지방 출토 고구려 토기 자료를 종합화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으나, 편년은 기존 연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卑琳, 2003; 王飛峰, 2009). 정원철은 중국과 북한 및 남한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를 망라하여 편년을 시도하였는데, 남한 지역 출토 고구려 토기에 대한 연구성과를 중국에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鄭元喆, 2005). 2012년 손호의 학위논문은 중국 동북 지방과 북한 및 남한 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 자료를 모두 망라하여 종합화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고구려 토기를 집안 지역, 환인 지역, 요하·혼하·태자하 유역, 북한 지역 및 한강 유역 등으로 출토지역을 구분한 후 고분 출토품과 생활유적 출토품으로 구분하여 형식 분류와 편년을 시도하고,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고찰하였다(孫顥, 2012). 이 논문은 중국과 일본, 북한 및 남한의 연구 성과를 비교적 충실히 반영한 정치한 분석이 주목되나, 토기의 제작기법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상 4편의 학위논문이 중국 내에서 이루어진 연구인데, 연구자별로 기종 구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생각된다.
한편, 2010년 이후 중국의 연구자들은 토기에 대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고구려와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고찰하는 등 연구주제를 확대하고 있는데, 손호는 심발류와 구형호류 등의 형태적 유사성을 고구려 토기에 삼연 토기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4~5세기 고구려와 모용선비 사이의 전쟁을 그 배경으로 설명하였다(孫顥, 2014). 또한 제2송화강 중류지역의 말갈 및 발해 토기를 분석한 후 기본적으로는 고구려 토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말갈의 전통적인 식기인 ‘말갈관(靺鞨罐)’은 고구려 토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발해시기까지 사용된다고 주장하였다(孫顥, 2015). 토기를 주제로 한 논문은 아니지만 왕신휘는 고구려와 모용선비의 관계를 고찰한 학위논문에서 보요장식, 와당과 함께 토기의 상사점과 상이점을 분석하였으며, 고구려 토기에 보이는 삼연토기의 요소에 대해 고찰하였다(王晨晖, 2022).
이상에서 1973년 이후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북한 및 남한에서 이루어진 고구려 토기에 대한 주요 연구성과를 살펴보았다. 고구려 토기에 대한 본격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는 1980년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주목되는 연구성과가 있었다. 1990년대에는 북한에서 시유토기와 문양에 대한 연구가 일부 이루어졌으나 주로 남한에서의 연구성과가 주목된다. 남한에서의 연구는 분석대상이 시공간상으로 제한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별 토기에 대해 자세한 보고가 이루어지고, 제작기법과 기형에 대해 정치한 분석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후 중국에서의 연구에 적지 않은 자극을 준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중국에서 상세한 보고문과 도면 및 사진이 제시된 발굴보고서가 간행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쓴 여러 편의 학위논문을 통해 자료의 종합화가 이루어졌으며, 주변 지역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도 이루어지는 등 연구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2010년 이후에도 이러한 연구경향은 지속되며, 편년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제로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 각주 001)
    특히 시라이 가쓰야는 시기별·지역별·주제별 연구성과를 자세히 검토하고, 향후의 연구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白井克也, 2005).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1. 연구현황 자료번호 : gt.d_0009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