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원과 변천
4. 기원과 변천
고구려 토기의 기원과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형편인데, 이는 전적으로 자료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의 국가 형성을 1세기경으로 보는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으나, 3세기 이전의 고구려 토기 자료는 매우 영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이 시기의 고구려 고분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토기에 대한 연구는 더 부진한 상황이어서 고구려 토기의 기원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 고고자료의 양상을 파악해야 한다.
주지하듯 고구려의 발상지는 혼강 유역과 압록강 중류 유역이므로 이 지역의 고고학적 문화양상의 고찰을 통하여 고구려 토기의 형성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혼강–압록강 일대의 청동기문화는 선동검기의 묘후산유형문화와 비파형동검기의 공귀리유형문화로 이해되며, 납납둔유형, 대순자유형 등이 뒤를 잇고 있는데, 대순자유형은 이 지역의 초기철기문화로 기원전 200년경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중 납납둔유형에는 고구려 토기에서 보이는 대상파수가 보이며, 이는 고구려 토기의 초기 형태인 노남리형토기와 같은 특징이라고 보고 있다(朴淳發, 1999).
노남리형토기는 자강도 시중군 노남리유적의 상층에서 출토된 토기를 표지유물로 하는데(정찬영, 1973), 횡위 또는 종위상의 대상파수를 특징으로 하며, 이를 고구려 토기의 초현형으로 보고 있다. 보고자에 따르면 이들 토기의 태토에는 청동기시대보다는 적은 양이지만 고운 모래가 섞여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청동기시대와 같은 양의 모래를 섞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갈색 간그릇과 검정 간그릇이 주를 이루는데 이 역시 고구려 토기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박순발은 고구려 토기의 특징을 대상파수와 니질태토, 표면의 마연 기법으로 설정하고, 마연기법과 대상파수는 미송리형토기나 공귀리형 토기에서 보이는 것으로 이 지역 고유 전통이나, 니질태토는 전국시대 말~한대 회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朴淳發, 1999).
고구려 토기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다고 생각되나, 고구려 토기 중 일부는 사립이 섞인 조질태토로 형성기 고구려 토기의 특징을 니질태토로 일반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니질화라는 용어가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현재의 자료로 보아 고구려 토기의 기원은 노남리형토기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와 더불어 집안 지역 및 압록강 중류 유역의 초기 적석총 출토 자료 및 초기철기시대 토기들과의 비교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생각된다.
종위 또는 횡위상 대상파수를 가진 심발류는 이른 시기의 고구려 토기의 대표적인 형식이고 양적으로도 가장 많다. 최근 상세한 발굴보고서가 간행된 오녀산성 3기문화층에서 출토된 토기류도 대부분 횡위상 파수가 부착된 심발류이고, 호류나 동이류, 합류 및 컵형토기류 등 다른 기종은 소량에 불과하며, 토기질은 조질이고, 물레를 사용한 흔적도 없다(양시은, 2005). 이러한 형태의 심발류는 크기와 형태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데, 오녀산성 3기문화층에서 출토된 토기류만 보아도 적지 않은 차이를 알 수 있다(그림16). 또한 종위상 대상파수를 제외하면 청동기시대나 초기철기시대의 토기들과는 기형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림16 | 오녀산성 3기문화층 출토 심발류 각종(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2004)
- 1. 47호 건물지 2. 57호 건물지 3. 3기층 회갱
- 1. 47호 건물지 2. 57호 건물지 3. 3기층 회갱
심발류 외에 초기 고구려 토기의 대표적인 예로 환인 망강루고분군 출토 토기류를 들 수 있다. 망강루고분군은 무기단식적석총으로 기원전 1세기 전반 또는 고구려 건국을 전후한 시기로 편년되고 있다(梁志龍·王俊輝, 1994; 李新全, 2005; 여호규, 2011; 孫顥, 2012). 망강루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류를 보면 제작기법의 측면에서는 노남리형토기와 유사하지만 기형 측면에서는 훨씬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그림17). 망강루고분군 토기류는 모두 수제이고 조질태토이며 제작수법이나 기형적인 면에서 서풍 서차구고분 토기류와 유사하다(王綿厚, 2009). 또한 대부사이호와 같은 일부 기종은 유수 노하심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류와 유사하다(孫顥, 2012). 망강루고분군에서 출토된 이식과 장신구들이 노하심고분군과 서차구고분군 출토품과 유사하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이 두 고분군은 부여계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 초기의 토기에 부여계 토기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고구려 초기 토기의 특징으로 조질태토의 수제 (양이)심발류를 주목하였으며, 태토와 성형방법 및 종위상 대상파수 등의 요소가 혼강이나 압록강 유역 청동기시대 이래의 토기 전통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망강루고분군 출토 토기류를 통해 볼 때 고구려 토기의 형성 과정에 재지적 전통 외에도 부여계 토기 등 주변 지역의 영향이 일정 정도 작용했음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주 004

그림17 | 망강루고분군 출토 유물 각종 - M4호분(孫顥, 2012)

그림17 | 망강루고분군 출토 유물 각종 - M6호분(孫顥, 2012)

그림17 | 망강루고분군 출토 유물 각종 - M1호분(孫顥, 2012)
고구려 토기의 변천 과정을 전·중·후 3기로 구분하는 견해(耿鐵華·林至德, 1984)와 조기(200~300년), 전기(300~400년), 중기(400~500년), 후기(500~600년), 만기(600년 이후) 등 5기로 세분하는 견해(東潮, 1988) 등이 있다. 고구려 토기의 변천 과정을 5기로 구분한 아즈마 우시오의 견해는 자세하지만 토기 자료만으로 이처럼 획기를 세분할 만한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며, 특히 200년 이전 고구려 토기 자료는 매우 영성하여 양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자료상으로는 고구려 토기의 변화 과정을 전기(300년 이전), 중기(300~500년), 후기(500년 이후)의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안정적이다.주 005
고구려 토기의 제작기술과 관련된 각 속성의 분포는 〈표2〉와 같으며, 시기별로 서로 다른 분포양상을 보이고 있다.주 006 고구려 토기 태토는 크게 조질과 니질로 구분되며, 일부 시유토기가 있다. 이들의 시기별 분포를 보면 전기에는 시유토기가 1점도 없으며, 조질이 9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니질태토는 9%에 불과하다. 중기에는 니질태토가 57%로 증가하고 조질태토는 29%로 감소하며, 시유토기가 14% 가량의 구성비를 보이고 있다. 후기에는 니질태토가 89%, 시유토기가 8%, 조질태토는 3%의 구성비를 보이는데, 시유토기의 태토도 니질로 추정되므로 거의 모든 토기가 니질태토라고 할 수 있다.
표2 | 고구려 토기 제작기술 관련 속성의 시기별 일람표(崔鍾澤, 1999) (단위: 개체수)
| 구분 | 전기 | 중기 | 후기 | 합계 | ||
| 태토 | 조질 | 21 | 36 | 4 | 61 | 419 |
| 니질 | 2 | 70 | 141 | 213 | ||
| 시유토기 | 0 | 17 | 13 | 30 | ||
| 미확인 | 14 | 42 | 59 | 115 | ||
| 성형방법 | 수제 | 2 | 6 | 2 | 10 | 419 |
| 윤제 | 2 | 82 | 123 | 207 | ||
| 미확인 | 33 | 77 | 92 | 202 | ||
| 표면색 | 회색 | 8 | 48 | 52 | 108 | 419 |
| 흑색 | 5 | 21 | 44 | 70 | ||
| 황색 | 10 | 70 | 85 | 165 | ||
| 미확인 | 14 | 26 | 36 | 76 | ||
| 문양 | 유문 | 0 | 33 | 35 | 68 | 419 |
| 무문 | 37 | 132 | 182 | 351 | ||
| 표면 처리 | 마연 | 1 | 13 | 15 | 29 | 419 |
| 마연 안 함 | 36 | 152 | 202 | 390 | ||
이러한 태토별 구성비의 양상을 보면 4세기 이전의 전기에는 조질태토가 주를 이루다가 점차 니질이 증가하여, 후기에는 심발류와 부형토기류 등을 제외하면 모든 토기가 니질로 변화됨을 알 수 있다. 또, 고구려 중기에 들어와서 시유기법이 등장하여 후기까지 일정한 비율을 보이며 사용된다. 토기에 시유하는 제작 전통은 당시 백제나 신라·가야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며, 시유토기는 대부분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어서 부장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림18). 시유토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3세기 이전으로 보는 견해(리광희, 1990)와 3세기 말로 보는 견해(姜敬淑, 1993), 4세기 초로 보는 견해(耿鐵華, 2001)가 있는데, 고구려 토기에 보이는 시유토기는 저화도 연유도로 중국의 경우 한대에 제작이 시작되며, 고구려의 경우 3세기 말, 늦어도 4세기 초에는 저화도 녹갈도기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18 | 고분 출토 시유토기 각종(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외, 2010)
![]() 1. 시유사이장경옹(장천4호분) |
![]() 2. 시유완(삼실총) |
![]() 4. 시유접시(우산하3319호분) |
![]() 3. 시유반(우산하3319호분) | ||
![]() 5. 시유부뚜막(삼실총) |
![]() 6. 시유이배(삼실총) | |
성형기법은 수제와 윤제의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한 윤제토기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바닥판을 만들고 그 위에 테쌓기로 성형한 후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하여 정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기에는 수제토기가 50%가량을 차지하지만 중기에는 7%로 급격히 감소하며, 후기에는 2%에 불과한 구성비를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토기는 거의 모든 토기를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하여 성형하였으며, 전기의 일부 토기만 손으로 빚어 올린 토기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구려 토기의 표면처리기법은 표면을 마연하는 것을 특징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표면을 마연한 개체는 고구려 전 시기를 통해 29개체에 불과하며, 전체 자료의 7%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구려 토기의 표면 처리 특징을 마연이라고 하는 데는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구성비는 시유토기의 구성비와 거의 같은 양으로 마연토기는 고구려 토기의 일부에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직접 관찰이 가능한 한강 유역 출토품의 경우 대부분의 토기는 물레나 돌림판을 사용하여 표면을 정면하였으며, 장동호류와 같은 일부 기종에서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하여 표면을 정면한 후 동체 하단부와 저부가 결합되는 부분을 예새로 깎아서 정면하거나 문질러 정면한 예가 있다. 이러한 제작기법은 표면을 마연하는 기법의 연속으로 볼 수 있으며, 일부는 마연한 것과 같이 약간의 광택을 내는 경우가 있으나, 의도적인 마연과는 다르다. 고구려 토기에는 문양이 거의 시문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전기에는 문양이 시문된 토기가 전혀 없으며, 중기와 후기에는 일정한 비율로 문양이 시문된 토기가 사용되고 있다(그림19).

그림19 | 고구려 토기 문양 각종(崔鍾澤, 1999)
고구려 토기는 기종별로 다양한 형태적 변화를 보이며 발전하는데, 시기별 기종 구성상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우선 기종 구성상의 특징을 보면, 전기에는 아주 일부 기종만 출토되며, 중기 이후가 되어야 모든 기종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고구려 전기의 토기는 출토 예가 많지 않은데, 기종별로 보면 사이장경호류, 양이심발류 및 심발류, 이부호류, 직구호류, 시루류, 완류, 반류, 이배류, A형 뚜껑류, 접시류, 합류, 대부사이발류 등이다. 이들 전기 토기의 형태상 특징은 파수가 부착된 것이 특징이며, 대부분의 기종에 대상파수나 꼭지형파수가 부착되어 있다. 또 대상파수의 경우 횡위파수도 있으나, 종위파수가 많다. 토기질은 조질이 우세하며, 표면이 마연된 것이 많고 아직 시유토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 밖에 문양이 시문된 토기도 아직 없으며, 대부분 물레나 돌림판을 사용하지 않은 수제토기이다.
중기에는 대부분의 기종이 모두 사용되지만, 대형 옹류와 직구옹류 등은 중기 후반에 들어서야 출토 예가 확인된다. 또, 광구호류는 중기에도 나타나지 않는 기종이다. 한편, 중기에 들어서면 사이옹류와 사이장경옹류, 장경호류 등의 기종이 새로이 나타나는데, 이 기종들은 사이장경호류에서 파생된 기종으로 생각된다. 또한 심발류에 있어서 파수가 부착된 양이심발류는 출토 예가 감소하는 반면에 심발류는 양적으로 증가하고 동체가 불룩하고 어깨와 목이 발달하는 형태로 바뀌며, 중기 후반 이후에는 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장동호류도 중기에 새로이 나타나는 기종인데, 심발류에서 변화된 기종으로 어깨가 발달하고 목이 길어지는 형태로 변화된다.
구형호류는 중기에 가장 다양한 형태를 보이며 발전하는데, A형과 C형 구형호는 동체부가 길어지고 어깨가 발달하는 형태로 변화되고, B형 구형호는 목이 길고 동체부가 구형인 형태에서 목이 짧고 동체부가 편구형인 형태로 변화된다. 시루류는 가운데 원공을 중심으로 8개 뚫은 것에서 6개 뚫은 것으로 바닥의 구멍 수가 줄어들며, 구멍의 크기는 커진다. 전기에 일부 나타나는 시루와 중기 초반까지의 시루는 대부분 부형토기와 함께 부장용으로 사용되고, 중기 중반 이후에 들어와서야 실용적인 대형 시루가 등장한다. 부형토기는 중기에 들어와서 새로이 나타나는 기종으로 시유토기도 있으며, 굽이 달린 형태에서 굽이 없는 형태로 변화된다.
그 밖에 동이류, 완류, 반류, 이배류 등의 출토 예가 증가하며, 뚜껑은 보주형꼭지가 달린 C형과 반형(F형)이 등장한다. C형 뚜껑은 주로 완류나 원통형삼족기류의 뚜껑으로 사용된 것이며, 반형 뚜껑은 대형 옹류의 뚜껑으로 사용된 것인데, 이러한 뚜껑의 출현은 완류 및 대형 옹류의 출현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접시류는 전기의 수제품에서 윤제품으로 바뀌며, 바닥이 넓고 구연이 낮은 납작한 형태로 변하고 낮은 굽이 있는 형태도 등장한다. 또한 중국 육조시대의 반구병과 같은 형태의 병류가 나타나며, 원통형삼족기류와 같은 특이한 기종도 이 시기에 새로이 나타난다.
중기의 토기는 조질태토가 소량 있으나 니질태토가 주를 이루며, 시유토기가 새로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토기가 물레나 돌림판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으며, 테쌓기를 한 경우에도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하여 표면을 정면하고 있다. 중기 토기의 특징 중 하나는 문양이 시문된 토기가 많은 점인데, 사이장경옹류와 B형 구형호류 등의 어깨 부분에 중호문, 파상문, 점렬문, 거치문, 어골문 등의 문양이 시문되고 있다. 일부 토기에서는 암문이 시문되어 있는데, 암문은 중기 후반에 가서야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후기는 중기의 모든 기종이 그대로 사용되지만 호류나 옹류 같은 실용기의 출토 예가 증가한다. 사이장경옹류는 동체부가 세장한 형태로 변하며, 발해시기가 되면 목이 좁고 길어져서 병의 형태로 변한다. 후기에는 직구옹류와 대형 옹류, 동이류 등의 대형 기종이 많이 보이며, 반류와 뚜껑류도 대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이러한 기종 내부의 변화 양상은 실용기로서의 기능과 관련된 것으로 후기 토기 중에 생활유적에서 출토된 예가 많은 것도 이러한 양상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후기의 토기는 거의 모두 니질태토의 윤제토기이며, 중기에 성행하던 중호문, 점렬문, 파상문 등의 문양은 거의 보이지 않고 암문이 많이 시문된다.
최근 고구려 토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는 있으나 향후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 고구려 토기의 기원 및 형성 과정과 관련하여 고구려 초기 유적에 대한 조사가 요구되며, 토기의 변천과 관련하여 정치한 편년과 세분화가 요구된다. 남한 지역 출토 고구려 토기의 제작기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북한이나 중국에서 출토된 토기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연구성과가 없는 것도 고구려 토기 연구에 있어서 큰 걸림돌의 하나이다. 또한 환인과 집안, 평양 등 고구려 중앙의 토기와 지방의 토기에 대한 비교분석 등 토기의 지역성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며, 삼연이나 흉노 및 백제 등 주변 지역 토기와의 영향 관계도 연구해야 할 주요한 주제이다.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