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통사

4. 와당의 형식과 시기 구분

4. 와당의 형식과 시기 구분

고구려 와당은 크게 집안 지역과 평양 지역 그리고 장수왕의 한강 유역 진출 이후 남한 지역에 분포한다. 집안 지역은 국내성, 환도산성, 동대자유적, 이수원자남유적, 승리촌유적, 마선서북중학유적 등 성곽과 건물지 유적이 있으며, 서대묘, 우산하3319호, 우산하992호묘, 마선구2100호묘, 천추총, 태왕릉, 장군총, 상활룡5호묘, 장천2호묘 등 고분유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집안 지역은 국내성을 중심으로 압록강 북안을 따라 동북쪽으로는 장천2호묘에 이르고 서남쪽으로는 상·하활룡촌까지 해당되며, 북쪽으로는 환도산성을 포함한다. 이외 봉성 봉황산성, 개주 고려성산성, 무순 고이산성, 요원 용수산성, 서풍 성자산성, 혼춘 온특혁부성 등이 있다. 그리고 평양 지역은 대동강유역의 대성산성, 청암리성, 안학궁, 평양성, 토성리유적, 청암리성, 정릉사지, 금강사지, 경신리1호분 등이 있으며, 남한 지역에서는 연천 호로고루, 서울 홍련봉1보루, 화성 고금산유적, 강릉읍성 확장트렌치 출토품 등이 있다.
 
1) 와당의 형식
(1) 집안 지역
집안 지역에서 출토된 와당은 문양의 종류에 따라 권운문, 연화문, 인동문, 귀면문 등 4종이다. 이 중 연화문와당은 복선의 유무와 횡판문, 시체문 등 4종이다. 유복선(이하 복선)은 화판 위에 돌출된 융기선의 형태가 3종으로 나타나며, 무복선(이하 단판)은 화판 사이의 삼각형 간판문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 연판은 대부분 단판으로 그 수는 6엽과 8엽이 가장 많은 수를 이룬다.
권운문와당은 고사리잎처럼 끝부분이 또아리모양으로 말리거나 구부러진 형태의 문양을 가진다. 와당면은 중방부, 권운부, 주연부 등을 기본구도로 하는데, 명문의 유무에 따라 유문자와 무문자로 나뉜다. 유문자는 ‘태녕4년(太寧四年)’과 ‘태녕(太寧)’ 등의 연호명과 ‘무술년(戊戌年)’, ‘기축년(己丑年)’, ‘을묘년(乙卯年)’, ‘정사(丁巳)’ 등의 간지명, 그 외 ‘대길(大吉)’, ‘십곡민조(十谷民造)’ 등이 있다.
그림6 | 집안 지역 권운문와당
- 1. Ⅰ식(인민욕지지점) 2. Ⅱ식(국내성) 3. Ⅲ식(서대묘) 4. Ⅲ식(우산하3319호묘) 5. Ⅳ식(마선구2100호묘)
‘태녕4년’명와당은 가운데 중방을 두고 원권이 주위를 돌아가며 권운부를 4분할 하였으며 주연부와의 사이에는 연호부가 없이 명문을 시문하였다. ‘태녕4년’은 326년으로 편년되며 국내성의 인민욕지지점과 영화관공사장지점에서 출토되었다. 지름은 12.5cm이다. 또 ‘태녕□년’명와당은 중방의 원권에 붙어 1줄의 구획선으로 권운부를 8분할 하였고 연호부에는 명문을 새겼으며 주연부는 거치문이다. 연호부는 이 와당에서 처음 보인다. 국내성 남문리지점에서 출토되었으며 지름은 14cm이다.
‘기축’명과 ‘무술’명 와당은 앞에서 언급한 ‘태녕□년’명와당과 동일한 구도를 보여준다. 전자는 주연부에 ‘기축년□□우리작(己丑年□□于利作)’, 후자는 중방에 ‘태(泰)’명과 주연부에 ‘무술년조와소기(戊戌年造瓦所記)’ 등 명문 내용만 다르다. 기축은 329년, 무술은 338년으로 이수원자남유적과 서대묘에서 출토되었다. 지름은 14.4cm이다.
‘정사’명와당은 다른 간지명와당과 달리 연호부와 주연부를 다르게 조식하였다. 즉 연호부의 각 칸마다 권운을 1조씩 배치하였고 주연부에는 거치문 대신 명문을 양각한 점이 특이하다. 정사는 357년으로 추정되며 우산하3319호묘에서 출토되었다. 지름은 15.5~16cm이다.
무문자 권운문와당은 연호부에 새무늬를 배치한 마선구2011호묘 출토문과 역시 연호부에 ‘정(井)’자를 양각한 천추총 출토품이 있다. 이러한 연호부의 변화는 구도의 퇴화를 의미하며, 이는 주연부에 시문되었던 거치문이 연호부의 퇴화와 함께 사라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복선연화문와당은 연판 사이에 2줄 한 조의 복선이 내구를 구획하는 문양이다. 화판에 융기선이 있는 것은 ‘Y(그림7-1)’, ‘凸(그림7-2)’, ‘凹(그림7-3)’형으로 확인된다. 주로 천추총, 태왕릉, 장군총과 같은 고분에서 출토되며 색깔은 진한 회청색 계통으로 대부분 대형에 속한다. ‘Y’, ‘凸’형에서 연판은 6엽으로 나타나며, ‘凹’형에서는 8엽이다. 화판에 융기선이 없는 것(그림7-4)은 국내성과 동대자유적, 이수원자남유적 등 성곽과 건물지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색깔은 회청색과 회색이며 지름은 18.5cm이고 주연 높이는 2cm 정도의 중형과 대형 와당이다.
그림7 | 집안 지역 복선연화문와당
- 1. 태왕릉 2. 천추총 3. 장군총 4. 국내성
단판연화문와당이 사라지고 연판에 돌출된 융기선이 없는 형태로 연판 사이에 삼각추형의 간판문을 보조적으로 장식한 와당이다. 삼각추는 세 변이 모두 남아 있거나 한 변이 주연부로 들어간 형태 두 가지로 확인된다. 세 변이 모두 남은 것(그림8-1)은 동대자유적, 이수원자남유적, 집안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자방은 팔각 연호형과 반구형이고 연판은 8엽과 9엽이 대부분이다. 크기는 중형과 대형급이다. 한 변이 주연부로 들어간 형태(그림8-2)는 동대자유적, 이수원자유적, 승리촌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연판은 6엽과 8엽이고 색깔은 회색과 적색 계통으로 중형과 대형 와당에 속한다.
그림8 | 집안 지역 단판연화문와당
- 1. 삼각추 세 변이 모두 남은 형태(동대자유적) 2. 삼각추 한 변이 주연부로 들어간 형태(동대자유적)
횡판연화문와당은 가운데 자방을 두고 그 주위로 연화문을 횡으로 연결해 놓았으며 주연부와의 사이에 연주문이나 돌기문을 배치하였다(그림9). 환도산성, 동대자유적, 이수원자남유적, 혼춘 온특혁부성 등에서 출토되었으며 횡판은 8엽을 연결해 놓았다. 색깔은 적색이고 지름은 직경 15.5cm이다.
그림9 | 집안 지역 횡판연화문와당(동대자유적)
시체연화문와당은 자방 주위로 4엽의 연판 사이에 감꼭지무늬를 배치한 문양이다. 감꼭지 화판이 가늘고 정교한 것(그림10-1)에서 점차 거친 것(그림10-2)으로 퇴화해 간다. 이수원자남유적, 동대자유적과 환도산성에서 출토되었는데 수량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색깔은 적색이고 지름은 15cm 정도이다.
그림10 | 집안 지역 시체연화문와당
- 1. 감꼭지 화판이 가늘고 정교한 것(이수원자남유적) 2. 감꼭지 화판이 거친 것(이수원자남유적)
인동문와당은 6지 혹은 8지의 인동문이 부조를 달리하는 문양이다. 8지의 인동문이 낮은 부조식으로 돌아가는 것(그림11-1)과 높은 부조식으로 시문된 것(그림11-2), 그리고 6지의 인동문이 높은 부조식으로 조성된 것(그림11-3)으로 분류된다. 비교적 높은 부조식이며 수량은 많은 편으로 모두 적색 계통을 이루고 있다. 출토지는 환도산성, 국내성, 이수원자남유적, 동대자유적, 집안 제2초대소 등이다. 지름은 14.7~16cm이다.
그림11 | 집안 지역 인동문와당
- 1. Ⅰ식(동대자유적) 2. Ⅱ식(동대자유적) 3. Ⅲ식(동대자유적)
귀면문와당의 문양은 주로 눈, 코, 입으로 구성되었으며 대부분 지름이 큰 대형 와당에 속한다. 태토는 니질에 적색 계통이나 경질 소성품이 많이 나타난다. 이 와당은 입모양이나 치아의 숫자, 혀의 유무에 따라 나누어진다. 장방형 입모양에 13개 치아인 것(그림12-1)과 장방형에 12개 치아인 것(그림12-2), 혀를 내밀고 10~12개 치아인 것(그림12-3) 등이 있다. 지름은 16~22cm 정도이고 출토지는 환도산성과 국내성, 동대자유적 등이다.
그림12 | 집안 지역 귀면문와당
- 1. Ⅰ식(환도산성) 2. Ⅱ식(동대자유적) 3. Ⅲ식(동대자유적)
 
(2) 평양 지역
평양 지역에서 출토된 와당은 연화문, 인동문, 용면문 등과 만초문, 전지문, 와운문, 보상화문, 기하문과 기타 형식을 합하여 10여 종이다. 연화문은 복선의 유무와 조합문, 복합문, 횡판문 등으로 다섯 가지로 나타나며, 이 중 조합문과 복합문의 유형이 평양 지역에서 새롭게 나타나는데, 그 변화양상 또한 가장 다양하기 때문에 평양성기의 대표적인 연화문으로 볼 수 있다.
복선연화문와당은 연판 사이에 1~3줄 한 조의 복선이 내구를 구획하는 문양으로 4엽, 6엽, 8엽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복선문은 3줄의 직선이 한 조를 이루다가 2줄의 직선이 한 조를 이루는 형태로 변화하고 나중에는 1줄의 복선으로 남는다. 이 중 2줄 한 조는 집안 지역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반면에 1줄과 3줄 한 조 등은 평양 지역에서 새롭게 나타난 형태이다.
3줄 한 조를 이루는 경우(그림13-1)는 6엽이 가장 많고 자방은 반구형이나 중앙에 하나의 연주문을 두고 있다. 다른 일부는 자방에 방사상의 3줄 융기선을 교차시켜 자방을 6분할 하고 있는데 그 안에 다시 연주문을 1개씩 장식하였다. 화판 사이의 복선은 3줄 한 조를 이루고 있으며 복선의 양 끝이 자방과 주연부에 서로 이어져 있다. 화판의 판단 사이에는 연주문이나 삼각문 등을 간판문으로 장식한 경우가 있다. 대성산성, 토성리유적, 금강사지, 정릉사지 등에서 출토되었으며 색깔은 회색과 적색 계통이 모두 보인다. 특히 대성산성과 한왕묘 출토품의 경우 자방의 중앙부에서 2줄의 융기선이 출발하여 자방과 주연부를 서로 이어주며 와당면을 여러 등분하고 있다.
그림13 | 평양 지역 복선연화문와당
- 1. 토성리 2. 청암리성 3. 안학궁
2줄 한 조를 이루는 것(그림13-2)은 8엽이 주류를 이룬다. 자방 주위를 2줄의 원권이 돌아가는 경우와 원권 안에 방격이 돌출된 형태의 2종이 있다. 화판은 중간이 돌기되어 있으며 연판 사이의 복선은 그 길이가 짧아 자방과 주연부에 이어지지 않고 있다. 또 복선의 양 끝에는 작게 뭉쳐진 꽃술이 형성되어 복선문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청암리성, 토성리유적과 정릉사지 등에서 수습되었다.
1줄 한 조(그림13-3)는 4엽, 6엽, 8엽의 화판이 모두 관찰된다. 지방은 반구상이며 돌기된 화판은 바깥쪽이 뾰족하고 안쪽이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화판 사이의 복선은 1줄로 이루어져 있어 변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대성산성과 정릉사지, 안학궁 등에서 확인되었다.
단판연화문와당은 와당면에 복선이 형성되지 않고 대신 연판 사이에 삼각형이나 초형문 그리고 여러 문양을 간판으로 사용한 형태이다. 삼각형을 간판문으로 사용한 것(그림14-1)은 6엽과 8엽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 삼각형 세 변이 모두 남은 입체적인 삼각형에서 평면 삼각형으로 변화하다가 후에는 주연부 방향의 평면 삼각형 외변이 넓어지면서 변형된다. 청암리성과 대성산성에서 출토되었다. 초형문이 간판인 것(그림14-2)은 6엽과 8엽에서 많이 보인다. 화판 사이에는 감꼭지무늬와 나뭇가지 등과 유사한 초형문이 배치되어 있으며 주로 안학궁과 평양성에서 수습되었다.
그림14 | 평양 지역 단판연화문와당
- 1. 청암리성 2. 안학궁 3. 대성산성
이외에 조각달이나 주문, 연화문 등이 간판문으로 있는 특수한 형태(그림14-3)가 있다. 대성산성에서는 자방 주위에 연주문을 6개 돌리고 6엽의 화판을 배치하였으며 화판은 양 끝이 모두 뾰족한 형태로 판단부에 맞추어 초승달모양의 간판문을 장식하였다. 정릉사지 출토품은 자방의 둘레에 한 줄의 원권을 두고 그 주변으로 중판과 같이 두 줄의 소연판문을 교대로 11엽씩 배치하였다. 바깥쪽의 소연판문과 주연부 사이에는 연주문이 간판문으로 들어가 있다.
조합연화문와당은 연화문이라는 동일 계열의 단위문양을 시문방법에 따라 부조와 선조를 교대로 하며 배치한 형태이다. 또 선조는 연판을 측면관으로 표현한 것과 평면관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부조의 연판 사이에 선조의 꽃봉오리형을 측면에서 바라본 모양을 시문한 형태는 모두 8엽으로 구성되었으며, 4+4엽의 배치를 기본구도로 하고 있다(그림15-1). 자방은 반구형으로 전반적으로 자방이 연판부에 비해 위축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형식은 꽃봉오리를 전체적으로 표현한 것과 연꽃에 꽃받침이 달린 것으로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안학궁과 청암리성에서, 후자는 대성산성에서 출토되었다.
그림15 | 평양 지역 조합연화문와당
- 1. 대성산성 2. 평양성 3. 평양성
부조와 선조를 평면관에서 바라본 형태는 4+4엽의 8엽 배치를 기본구도로 하고 있으며 일부 5+5엽의 10엽과 6+6엽의 12엽도 관찰된다(그림15-2). 부조는 모두 단판이나 선조는 단판인 것과 복판인 것의 두 종류가 있다. 먼저 단판부조+단판선조는 8엽을 기본구도로 10엽과 12엽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연판 수에 있어 가장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중앙의 자방이 반구상인 것, 중심부에 연자 1과를 둔 것, 그리고 1 +8과의 연자를 배치한 것 등 여러 형태로 자방이 변화되고 있다. 두 연판에는 화륜권이 형성되었으며 연판 사이에 삼각형이나 주문이 간판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음으로 부조단판+선조복판은 8엽만이 확인되었다(그림13-3). 중앙의 자방 변화가 매우 다양하다. 반구상의 자방에 연자나 원권을 두른 형태에서 자방을 방사상의 융기선으로 구획하는 다양화된 표현방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연판 사이에는 삼각형이나 주문이 간판문으로 장식되었는데, 자방의 변화가 다양한 형태에는 주문의 간판문이 주로 시문되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 형식은 평양 지역의 유적에서 고루 출토되고 있다.
복합연화문와당은 부조의 연화문 사이에 다른 계열의 단위문양을 배치한 형태로, 연화문 사이에는 인동문이나 귀면문, 인면문 등을 시문하였다.
먼저, 연화문+인동문은 4+4엽의 8엽을 구도로 하며 6+6엽의 12엽, 8+8엽의 16엽도 나타난다. 복합문에서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그림16-1). 자방은 다양한 양식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부조의 연판도 화륜권을 두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 여러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인동문은 4+4엽의 기본구도일 때는 비교적 정제된 인동을 표현하였으나 6 +6엽이나 8+8엽의 경우 중심 줄기에서 4엽을 양쪽으로 짧게 펼치는 변형 인동을 시문한다. 판단부 사이에는 주문이 있으며 8엽과 12엽의 외구에서는 연주문대가 일부 나타나기도 한다.
그림16 | 평양 지역 복합연화문와당
- 1. 대성산성 2. 평양성 3. 대동 장수원리
연화문+귀면문은 4 +4엽의 구도 안에서 선각으로 귀면문을 시문하였다(그림16-2). 자방은 1조의 원권을 돌리며 연화문은 화륜권이 있는 단판 양식이고 귀면문은 간략화된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외구에는 사선문대를 돌려 장식하였으며 평양성에서 출토되었다.
마지막으로 연화문+인면문이 있는데, 4 +4엽의 구도 안에서 연화문과 인면문을 교대로 배치하였다(그림16-3). 반구상의 자방 밖으로 원권과 연주문이 돌아간다. 연화문은 화륜권이 있는 복판 양식이고 인면은 상하와 좌우가 서로 다른 얼굴모양을 하고 있는데 부조와 선조를 적절하게 섞으며 표현되었다. 간판은 초화문을 선조로 장식하였으며 평안남도 대동군 장수원리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복합문은 평양성기에 들어서면서 발전한 독특한 양식이다.
횡판연화문와당은 평양성 출토품으로 자방의 중앙에 연자를 표시하였으며 자방 둘레에 1~2줄의 원권을 돌리고 있다. 연판은 9엽을 가로 방향으로 돌려 하나의 커다란 꽃띠를 이룬 것 같이 머리와 꼬리 부분이 앞뒤로 이어지도록 배치하였다. 연판부의 안과 밖으로는 쉼표모양의 운문 같은 돌기문과 연주문을 시문하였다(그림17).
그림17 | 평양 지역 횡판연화문와당(평양성)
인동문와당은 높은 부조식으로 굵은 선의 6지가 좌측으로 회전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평양성 출토품이다. 이 와당은 집안 지역 인동문 Ⅲ식(그림 11-3)과 같은 형식이다
귀면문와당은 눈과 코가 돌출되었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데 아래쪽이 좁고 위쪽이 넓게 표현되어 역사다리꼴을 하고 있다(그림19). 집안 지역 귀면문과 입모양이 대조적이다. 표정은 활짝 웃는 자신감을 드러냈는데 근육의 움직임을 아주 섬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주연부가 고부조이고 색깔은 적색 계통이며 지름은 18cm 정도이다. 정릉사지와 금강사지에서 수습되었다.
그림18 | 평양 지역 인동문와당(평양성)
그림19 | 평양 지역 귀면문와당(정릉사지)
그림20 | 평양 지역 보상화문와당(토성리)
그림21 | 평양 지역 만초문와당(정릉사지)
그림22 | 평양 지역 전지문와당
- 1. Ⅰ식(정릉사지) 2. Ⅱ식(평양성)
그림23 | 평양 지역 와운문와당(평양성)
그림24 | 평양 지역 차륜문와당(평양성)
그림25 | 평양 지역 기하문와당(정릉사지)
보상화문와당은 4엽과 6엽으로 구분되는데 화판이나 자방에 따라 여러 형태가 나타난다. 4엽은 토성리유적 출토품으로 자방은 1줄의 원권을 두른 후 그 주변에 보상화문을 화려하게 배치했으며, 그 사이에는 간략화된 간판문을 시문했다.
만초문와당은 자방 주위로 1~2조의 원권이 돌아가고 그 주변을 굵은 덩쿨무늬가 채우고 있다. 이 덩쿨은 10회 정도 돌아가며 단위문양을 이루는데 마치 연판과 간판을 표현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정릉사지 출토품이 유일하며 지름은 14cm이다.
전지문와당은 자방 주위로 5~6회의 얽힌 가지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는데, 그 가지가 중복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진다. 평양성과 정릉사지에서 출토되었다.
그 외 자방 외측과 외구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사이에 횡으로 8줄의 와운문을 배치한 와운문와당, 조밀한 구획선을 방사상으로 뻗어나가게 형상화한 차륜문와당, 와당면을 여러 조의 권선으로 돌려가며 그 사이를 비워 두거나 거치문을 기하학적으로 시문한 기하문와당 등은 평양성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2) 시기 구분
와당은 시대적 양식의 변화양상을 살피기에 좋은 자료이다. 와당에 새겨진 연호를 통해 절대연대가 확인되며 문양의 형식 분류가 비교적 양호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와당 문양은 427년 평양 천도를 기점으로 주요 문양의 변화가 확인된다. 또한 국내성기와 평양성기 사이에도 문양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문양의 변화는 당시 고구려인들이 갖고 있던 사상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내성기에 처음으로 나타난 권운문와당은 문양 구성에 있어 토착신앙과 도교적인 세계관이 결합된 형태이며 이후 등장하는 연화문은 불교의 전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화문은 불교의 융성과 함께 와당의 주문양으로 자리 잡아 평양 천도 이후까지 성행한다. 그리고 고구려 후기 도교가 다시 유행하면서 불교적 색채와 도교적 색채가 융합하여 문양의 종류와 구성이 다양해진다.
 
(1) 집안 지역
1기는 4세기 전반부터 후반까지로 권운문와당이 유행한 시기이다. 4세기 전반 권운문와당은 국내성과 이수원자남유적 같은 건물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된다. 그 시점은 326년으로 편년되는 ‘태녕4년’명이 된다. 이 와당은 중국의 권운문와당과 기본적인 구도만 비슷하게 나타날 뿐 세부양식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즉 중방부의 원권은 권운문과 연결되지 않으며, 권운부는 1줄 구획선으로 막새면을 4분할하고 있다. 주연부는 중국의 경우 돌출하여 조성하는 것과 달리 고구려는 평박한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또 ‘태녕4년’명은 거치문의 삼각 꼭지점이 주연부나 운문부를 향하지 않고 지그재그모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와당문화를 수용한 후 짧은 시간 안에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권운문와당 양식이 성립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기축’명(329년), ‘무진’명(338년), ‘정사’명(357년) 등 간지명 권운문와당의 사용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변천 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이들 편년은 329년부터 357년으로 4세기 전반과 중반을 포함하는 시기이다. 막새면 중방부의 원권을 돌리는 형태는 그대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권운부의 구획선이 1줄 8분할로 세분되며 권운도 1.5~2.5회 또아리를 이루게 된다. 이후 구획선은 2~4줄 1조를 4분할 하거나 8분할 하며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변화상에 맞추어 연호부에는 명문이나 권운문, 새무늬 등을 시문하게 된다. 연호부에 새무늬가 시문되면서 권운문와당에서 간지명 등의 문자는 사라진다. 이러한 새무늬가 나타나는 유적은 4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마선구2100호묘부터이다. 처음에는 규칙적으로 새무늬를 시문하였다가 이후 4세기 후반의 천추총 출토품부터는 새무늬와 함께 다른 문양도 추가된다. 이때부터 연호부는 이중선으로 표현되었다가 권운부와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는데 이와 함께 주연부에 시문되었던 거치문도 사라진다. 거치문과 연호부가 사라지는 시기는 천추총 출토품에서 확인되며, 이후 권운문와당은 연화문와당으로 전환된다.
2기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중반까지로 복선연화문와당이 출현한 시기이다. 유적은 천추총과 태왕릉, 장군총, 상활룡5호묘, 장천2호묘, 국내성, 이수원자남유적 등이 있다. 먼저 4세기 후반의 태왕릉 출토품은 ‘Y’형의 융기선을 두고 그 좌우에 한 개씩의 주문을 둔 형태가 확인된다. 주문은 연판부와 복선의 좌우에도 1개씩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문양은 고분벽화 중 안악3호분, 무용총, 각저총, 통구12호묘, 장천1호묘 등의 연화문과 좋은 비교 편년자료가 된다(전호태, 1999). 연판 위에 ‘凸’형의 융기선을 둔 형태는 천추총과 태왕릉에서 출토되었는데 자방부와 연판부에는 와당면을 반으로 가르거나 3분의 1 정도를 궁형으로 가른 듯한 와범의 접합흔이 띠를 이루며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판 위에 ‘凹’형 융기선을 둔 형태는 장군총에서 출토되어 장군총형이라고도 불린다. 연판은 기존 형식이 6엽인 데 비하여 8엽으로 증가하며, 출토지도 태왕릉, 상활룡5호묘, 장천2호묘 등 여러 구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장천2호묘에서는 많은 불교자료가 출현하는데 그중 장군총과 같은 복선연화문이 출토되었다.
‘凹’형 융기선이 없는 단판 형태는 국내성과 이수원자남유적, 태왕릉에서 출토되었다. 자방의 원권이 2조에서 1조로 줄어들면서 연판과 주연부의 너비가 넓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복선은 현저히 위축되는 구도 변화를 가져오며, 이 단계에서 복선이 사라지면서 점차 단판연화문으로 변화되어 간다. 즉, 융기선이 없는 단판 형태는 고분 중심의 복선연화문와당에서 성곽과 건물지 중심의 단판연화문와당으로 변천되는 과도기 형태라 할 수 있다. 편년은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백종오, 2006a; 2006b).
3기는 5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까지이다. 이 시기 복선연화문와당은 완전히 사라지고 단판연화문와당이 주종을 이루며, 인동문와당과 귀면문와당 등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와 함께 단판연화문와당만이 아니라 횡판연화문와당과 시체연화문와당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양식의 문양구도가 나타난다. 이들 와당의 출현은 이전 시기까지의 획일적 문양 배치와 전혀 상반되는 양식의 성립을 의미하며, 아울러 고구려 와당 발전사의 정점이 된다. 국내성, 집안 제2초대소, 이수원자남유적, 동대자유적, 승리촌유적, 환도산성 등에서 출토된 와당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단판연화문와당은 연판이 6엽에서 9엽으로 연판 사이에 삼각추형의 간판문이 배치된다. 이 삼각추형은 세 변이 모두 남은 형태에서 한 변이 주연부로 들어간 형태로 변화해 간다.
연판문 계열 중 횡판문과 시체문은 횡판의 가운데 자방을 두고, 주위로 연화의 머리와 꼬리를 서로 연결하여 돌리는 문양으로 기존의 자방 중심의 종방향에서 횡방향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양식이 성립되었다. 집안 지역의 시체문은 자방을 중심으로 4엽의 연판 사이에 감꼭지무늬를 배치한 것으로 평양성기에 4 +4엽을 기본구도로 하는 조합연화문, 복합연화문 등과 공시적인 발전 과정을 걷게 된다. 인동문은 높은 부조에서 얕은 부조로, 귀면문은 이빨의 수가 많은 것에서 적은 것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새로운 양식인 횡판연화문와당과 시체연화문와당은 고구려 와당 발전에 있어 계기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보인다.
 
(2) 평양 지역
1기는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로 집안 지역의 복선연화문와당의 전통이 함께 이어지다 퇴화되는 시기이다. 토성리유적, 경신리1호분, 대성산성, 금강사지, 정릉사지 등에서 출토되었다. 복선연화문와당은 그 복선의 수가 집안 지역에서는 2줄 한 조가 기본적으로 유지된 것에 비해 평양 지역에서는 3줄→ 2줄→1줄 한 조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복선의 모티브만 유지되는 후행적인 요소로 이해된다. 자방부와 주연부와도 서로 연결되었다가 떨어지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는 복선연화문의 퇴화 과정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기는 6세기 전반부터 후반까지로 연화문와당이 주종을 이루는 시기이다. 그리고 조합연화문과 복합연화문이 나타나 유행하는데 횡판연화문, 인동문, 귀면문, 보상화문 등 가장 많은 종류의 와당이 생산되었다. 대성산성과 안학궁, 정릉사지, 평양성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조합연화문와당은 부조와 연판 사이에 선조의 꽃봉오리를 측면에서 본 모습으로 시문한 것과 부조의 연판과 선조의 연판을 모두 평면에서 시문한 것이 있다. 전자는 4+4엽의 기본구도를 가지며 자방 중앙부에 1과의 연자를 두고 주위로 1조의 원권을 돌리는데 전반적으로 자방부가 연판부에 비해 위축된다. 후자는 기본구도에 5+5엽과 6+6엽으로 연판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맞추어 자방부의 연자도 중앙의 1과에서 벗어나 1+8과 등 여러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단판 부조와 복판 선조는 자방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된다. 연자나 원권을 두른 상태에서 방사상의 융기선으로 자방 안을 구획하고 있으며 그 안에 다시 원권을 두르거나 연자를 넣어 시문하는 등 다양한 표현방식이 보인다.
복합연화문와당은 연화문에 인동문이 4+4엽을 기본구도로 하며 6+6엽, 8+8엽으로 나타나고 있다. 4+4엽의 경우 인동문은 정제되고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나 그 외 12엽과 16엽의 경우 중심 줄기의 좌우로 짧게 4줄 벌어진 변형 인동문이 자리하게 된다. 자방 역시 조합연화문와당처럼 다양하게 변화하고 주연부와 연판부 사이에 연주문대가 돌아가는 새로운 양식이 출현한다. 이러한 연주문대는 8엽과 12엽에서 나타나는데 12엽 중에는 횡으로 회전하는 모양의 변형된 연주문대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또 연화문과 귀면문 또는 인면문이 4+4엽 구도 안에서 교대로 배치되었으나 그 수량이 극히 적은 특수양식으로 분류된다. 이외 인동문이나 귀면문의 경우 집안 지역과 기본구도는 유사하다. 인동문은 높은 부조식으로 6엽이 좌측으로 회전하는데 선이 두껍고 거칠게 표현된 집안 지역의 인동문과 같다. 귀면문은 집안 지역보다 좀 더 볼륨감이 있고 여유롭게 웃는 표정이 멋지게 표현되었다.
이 시기의 와당은 종류가 다양해지고 문양 자체가 정교하게 제작되는데, 주요 문양과 보조 문양, 기타 문양 등으로 새로운 장식적 효과를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3기는 7세기 전반부터 후반까지이다. 복합연화문이 성행하며 전지문, 만초문, 와운문, 차륜문 등의 기하문 계열이 발달하는 시기로 평양성과 정릉사지 등에서 출토되었다. 복합연화문은 이전 시기에 비해 연판부가 축소되고 간판이 넓어지거나 연판부 주위로 권운문와당에서 보인 연호부가 도식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부의 문양은 자방부나 연판부에 기하문을 기본구도로 하며 외곽에 일부 연호부가 채용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복합연화문 중에는 6엽의 연화문 사이로 나뭇가지문을 간판문으로 사용한 것이 있는데 주연부와의 사이에 연주문대를 빼곡하게 형성한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집안 지역 3기에서 보인 횡판연화문은 평양 지역 3기에도 나타난다. 집안 지역보다 장식성이 돋보이는 형태로 중앙의 자방부에 원권을 두르고 그 외측으로 연주문이나 쉼표형 돌기문을 돌리고 있다. 연판부는 9엽을 가로 방향으로 돌려 머리와 꼬리 부분이 하나의 커다란 띠로 연이어지도록 배치하였다. 주연부와의 사이에도 연판의 연결부마다 연주문을 시문하였다. 만초문은 자방 주위로 1~2조의 원권이 돌아가고 그 주변을 굵은넝쿨무늬가 10회 정도 돌아가는 문양으로 마치 연판과 간판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하여 교대로 배치한 것처럼 보인다. 전지문 역시 가지가 얽혀있는 형태로 자방 주위로 5~6회에 걸쳐 얽혀있는 가지가 규칙적으로 배열된다. 이외 자방 주위와 외구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사이에 8줄의 와운문을 횡으로 배치한 와운문와당, 조밀한 구획선을 방사상으로 형상화한 차륜문와당, 여러 조의 권선을 와당면에 전체적으로 돌리는 기하문와당 등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림26 | 집안 출토 수막새
- 1~3. 서대묘, 마선구2100호묘 4·7~10. 천추총 5. 태왕릉 6. 장군총 11~15·17·18. 집안 출토(경기도박물관) 16·19·20. 집안 출토(유금와당박물관)
그림27 | 평양 출토 수막새(유금와당박물관)
- 1·2. 복선연화문 3. 귀면문 4. 와운문 5~8. 단판연화문 9~11. 조합연화문 12. 차륜문 13~16. 복합연화문 17~19. 전지문 20. 기하문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4. 와당의 형식과 시기 구분 자료번호 : gt.d_0009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