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어용 무기의 종류와 특징
2. 방어용 무기의 종류와 특징
방어용 무기(무구)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투구와 갑옷으로 대표된다. 고구려의 갑주는 작은 철편을 이어 붙여 활동성과 방어력을 높인 찰갑(札甲)을 기본으로 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온몸을 갑옷으로 중무장한 중장기병이 묘사되어 있어, 전신 찰갑은 주로 기마용 갑옷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방어용 무기로는 방패를 들 수 있으나 아직까지 실물로 발견된 사례는 없으며 고분벽화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안악3호분의 행렬도에는 창병이 하트모양과 길쭉한 모양의 방패를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갑옷
삼국시대의 갑옷은 기본적으로 비늘갑옷인 소찰(小札)을 이어 만든 찰갑(札甲)과 철제판을 이어 붙여 만든 판갑(板甲)으로 구분된다. 찰갑은 철판을 이어 만든 것이 대부분이지만, 서울 몽촌토성에서는 뼈로 만든 골제찰갑이, 공주 공산성에서는 가죽으로 제작한 찰갑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판갑은 가야, 신라, 왜, 백제 등에서 주로 확인되지만 아직까지 고구려 유적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고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되지 않으므로 고구려는 찰갑을 주로 제작하여 착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찰갑의 완전한 형태는 연천 무등리2보루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평안남도의 덕흥리고분, 약수리고분, 감신총, 평양의 개마총, 그리고 중국 집안의 통구12호묘, 삼실총 등과 같은 고분벽화에서 갑주의 형태가 잘 묘사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갑옷이 횡선과 사선으로 표현되어 있어 가죽갑옷일 가능성이 있는 감신총을 제외한다면, 고분벽화에 묘사된 대부분의 갑옷은 실제 철제찰갑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실총 서벽에 그려진 갑주무사(그림6-2)를 통해 고구려 갑옷의 기본 구성이 경갑(頸甲), 신갑(身甲), 상갑(裳甲), 대퇴갑(大腿甲), 경갑(脛甲), 상박갑(上膊甲), 굉갑(肱甲)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신갑, 상갑, 대퇴갑, 경갑은 소찰(小札)로 표현되어 있으나, 위팔을 보호하는 상박갑은 가죽으로, 팔뚝을 보호하는 굉갑은 철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갑옷편이 출토된 주요 유적으로는 집안 산성하159호묘, 만보정242호묘, 칠성산871호묘, 칠성산211호묘, 마선구2100호묘, 우산하992호묘, 천추총, 태왕릉, 우산하41호묘, 환인 오녀산성, 무순 고이산성, 그리고 남한 지역에서는 한강 유역의 아차산보루군과 연천 무등리2보루 등이 있다.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개별 소찰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상부가 원형을 띠고 하부는 방형(上圓下方)인 철제판이다. 개별 소찰에는 작은 구멍 여러 개가 뚫려 있는데,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에서 마갑과 함께 출토된 찰갑의 소찰에 가죽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개별 소찰을 가죽끈으로 연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천 무등리2보루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보병용 찰갑 1개체가 그대로 주저앉은 채로 발견되었다. 동체부를 구성하는 소찰은 대체로 장방형계로, 하단은 양쪽의 모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종횡 비율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형식(그림16-1, 2, 3)으로 구분이 가능한데, 전체 수량은 343편 이상이다. 첫 번째 형식의 소찰은 종횡 비율이 1.5 :1로 상대적으로 소형의 찰편이다. 평면 형태는 산단에서 하단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좁아져 역사다리꼴을 이룬다. 두 번째 형식은 종횡 비율이 2.5 :1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한다. 세 번째 형식은 종횡 비율이 약 3.5 :1 이상으로, 장변의 폭이 중간에 약간 축약된다.
견갑은 2개의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평면 형태는 상단과 하단이 길고 아래로 갈수록 너비가 좁아지는 역사다리꼴이다. 상단부는 내만한 호형을 이루는데 끝단이 살짝 외반한다. 이 밖에도 U자형 부속갑과 두 견갑편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사다리형 찰갑편도 확인되었다.
한편, 집안 마선구2100호묘, 천추총, 태왕릉 등과 같이 왕릉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적석총에서는 금동제찰갑편도 소량 발견되었다. 금동제소찰은 수량이 많지 않아 왕과 같은 최상위층이 본인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금동제찰갑을 제작하여 착장하였던 것인지, 아니면 부장을 하기 위해 별도로 제작한 것인지 현재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림14 | 연천 무등리2보루 출토 찰갑(서울대학교박물관, 2015)

그림15 | 연천 무등리2보루 투구와 찰갑 복원도(ⓒ박상미)
- 1. 투구 2. 찰갑
- 1. 투구 2. 찰갑

그림16 | 연천 무등리2보루 찰갑편 분류(서울대학교박물관, 2015)
- 1. 동체소찰 A형 2. 동체소찰 B형 3. 동체소찰 C형 4. 견갑 추정편 5. 견갑 관련편 6. U자형 부속갑
- 1. 동체소찰 A형 2. 동체소찰 B형 3. 동체소찰 C형 4. 견갑 추정편 5. 견갑 관련편 6. U자형 부속갑
2) 투구
갑옷과 함께 세트를 이루는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구이다. 가늘고 긴 철판을 횡으로 연결하여 만든 투구인 종장판주(縱長板冑)와 작은 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소찰주(小札冑)가 대표적이다. 종장판주는 투구 꼭대기에 정수리 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반원형의 복발(覆鉢)에 소찰을 붙였다고 하여 몽고발형주(蒙古鉢形冑)라고도 한다. 간혹 복발이 없는 채로 확인된 투구의 경우 정수리 부분에 유기질로 된 막음 장치가 있었을 것이며, 이마가 닿는 투구 하단의 외연은 가죽으로 감쌌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투구가 확인된다. 우선 북한 황해도의 안악 2호분과 3호분, 평안남도 남포의 감신총(龕神塚)과 강서군의 약수리(藥水里)벽화분 등에서는 종장판주가 묘사되어 있다. 이들 종장판주는 기본적으로 정수리 부분에 복발을 씌우고, 그 아래에 윗부분이 좁고 아랫부분이 약간 넓은 장방형 철판을 여러 개 이어 만든 것이다. 집안 삼실총 2실 서벽의 무사나 통구12호묘의 무사는 오각형이나 사각형의 작은 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소찰주가 묘사되어 있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투구 중에는 깃털로 장식을 하거나 뿔을 부착하여 장식한 것도 있다.
투구와 관련한 실물자료는 중국의 환인 오녀산성과 무순 고이산성, 북한 평안북도 태천군의 농오리산성, 남한의 구리 아차산4보루, 연천 무등리2보루, 양주 태봉산보루 등과 같은 관방유적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이 중 종장판주는 고이산성과 농오리산성에서, 소찰주는 아차산4보루에서 확인되었다.

그림17 | 고구려 투구
- 1. 구리 아차산4보루(서울대학교박물관, 2000) 2. 연천 무등리2보루(서울대학교박물관, 2015) 3. 무순 고이산성(徐家國·孫力, 1987)
- 1. 구리 아차산4보루(서울대학교박물관, 2000) 2. 연천 무등리2보루(서울대학교박물관, 2015) 3. 무순 고이산성(徐家國·孫力, 1987)
우선 무등리2보루에서 출토된 투구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아몬드 형태의 복판과 세 가지 형식의 소찰로 구성된다. 복판의 단면은 사다리꼴에 가까운데, 상단부 2cm 지점에서 확 꺾어지면서 외반하며 넓어진다. 복판의 하단부에는 상하 2공을 1조로 하여 수결공이 약 3.5cm 단위로 배치되는 반면, 상단부에서는 연결공이 확인되지 않아 아차산4보루나 태봉산보루에서 확인된 철제복발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투구부의 소찰은 상방하원식 소찰이 47매로 가장 많으며, 우상향 횡결과 최소 3단의 상하 배치가 확인된다. 그다음으로는 길이가 12cm에 달하는 세장방형의 소찰이 11매 이상 확인되었는데, 이와 유사한 형태의 소찰이 환인 오녀산성과 한강 유역의 아차산4보루와 용마산2보루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볼가리개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크고 편평한 소찰편도 발견되었다.
아차산4보루 출토 투구는 몽고발형의 복발 1개와 52매의 소찰로 이루어져 있다. 복발의 평면은 타원형에 가까운 말각삼각형으로, 전면이 좀더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다. 복발의 하단부는 마치 차양처럼 짧게 벌어져 있고, 여기에 작은 구멍이 2개씩 뚫려 있어 다른 소찰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차산4보루 출토 소찰 역시 세 가지 형식이 확인된다. 첫 번째 형식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데, 외형과 구멍 배치 면에서 비교적 일관된 정형성을 보인다. 대체로 소찰의 상부 V자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한 개의 구멍이 있고 다른 모서리에는 2개씩 구멍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추가로 구멍을 더 뚫은 것도 있다. 두 번째 형식은 전체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형태가 매우 독특하고 개별적인데, 복발의 하단부와 연결되는 것이다. 세 번째 형식은 다른 소찰에 비해 넓고 길며, 2점만 출토되었다. 아마도 볼가리개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3) 마갑주(馬甲冑)
고구려의 마갑주는 고분벽화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왕릉으로 추정되는 집안의 초대형 적석총에서도 그 실물자료가 일부 확인된 바 있다.
마갑주가 출토된 유적은 대부분 4~5세기대로 편년되는 집안의 초대형 적석총으로, 산성하전창1호묘, 우산하992호묘, 마선구2100호묘, 우산하3319호묘, 천추총, 태왕릉 등이다. 이들 마갑은 장방형 또는 사다리꼴의 찰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안악3호분이나 덕흥리고분에 묘사된 전연(前燕) 계통의 마갑에서 주로 확인되는 상원하방형 찰편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전연의 마주와 동일한 형태가 그려진 안악3호분과 달리 우산하992호묘에서 출토된 마주의 챙은 오히려 늦은 시기에 등장하는 삼엽형 챙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를 통해 볼 때 고구려에서는 4세기부터 전연 계통의 마갑과 함께 고구려만의 특징적인 마갑을 함께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신광철, 2020).

그림18 | 덕흥리벽화고분 행렬도에 묘사된 마갑주(동북아역사넷)
특히 이러한 양상은 문헌에 기록된 3세기 중반 고구려의 동천왕이 운영하였던 철기(鐵騎)의 전통과 전연을 통해 전해진 중장기병 문화가 4세기대에 이르러 혼재되어 나타났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 확인된 고고자료에 따르면 전연의 마구가 고구려에 비해 보다 이른 시기에 등장하였다는 점에서 중장기병술 역시 전연에서 먼저 도입되고 발전하여 고구려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5호16국시대가 개막되기 이전부터 이미 중국에서는 중장기병술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던 터라, 북중국이 혼란기에 접어들자 고구려와 전연이 각각 별도로 중장기병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보기도 한다(전호태, 2017). 후자의 입장은 고분에서 출토되는 고구려와 전연의 중장기병 관련 유물이 유사하면서도 세부기법에서만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큰 시차 없이 두 국가 모두 독자적으로 중장기병술을 도입 및 발전시켰을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고구려 마구의 변화양상은 삼연(三燕) 내지는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하였던 마구의 변화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이와 관련한 연구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양시은, 2022).
4) 마름쇠(蒺藜)
마름쇠는 말의 발에 상처를 입혀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장애물이다. 뾰쪽한 끝이 네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세 갈래가 바닥을 지지하고 한 갈래가 위로 솟아있어 장애물 역할을 한다. 연천 호로고루에서 3점의 마름쇠가 출토된 사례가 있다.

그림19 | 고구려 마름쇠(국립문화재연구소, 2017)
- 1~3. 연천 호로고루
- 1~3. 연천 호로고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