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승마구
1. 기승마구
기승마구는 수레를 끄는 차마구와 달리 사람이 직접 말을 타고 부리는 데 필요한 각종 기물을 말한다. 고구려에서는 4세기에 출현하는 신문물로서, 주로 4, 5세기의 무덤에 부장된다. 부장된 기승마구는 철, 청동, 금동과 금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서 무덤 주인공의 사회적 위상을 보여준다. 특히 벽화분에 기승마구가 잘 표현된 말은 출행이나 행렬, 수렵 및 전쟁 장면에 등장하므로 기승마구가 고구려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고구려에서 유행한 기승마구와 형태적으로 유사한 마구가 신라와 가야 유적에서 출토되었고, 신라와 가야의 마구 일부는 일본 고분시대 유적에서도 출토되어서 기승마구를 통하여 북아시아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 가야를 거쳐 일본과의 교류를 살필 수 있다.
1) 재갈
제어용 마구는 재갈과 굴레, 고삐로 이루어졌다. 굴레와 고삐는 가죽 등 유기질로 만들어서 남아있지 않지만, 재갈은 금속으로 만들어서 남아있는 예가 적지 않다.
재갈은 재갈쇠와 재갈멈치, 고삐이음쇠 등 여러 부품으로 이루어졌으며, 한자어로 비(轡)라고 한다. 재갈쇠는 말의 입에 물려서 말을 제어하는 것으로, 함(銜)으로도 불러서 넓은 의미의 재갈과 구분한다. 재갈쇠는 말의 앞니와 송곳니 사이 벌어진 틈에 끼워서 재갈쇠의 움직임이 말의 혀를 자극하여 말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동북아시아에서 청동기시대 이래 재갈쇠는 청동을 주조한 것으로 세 가닥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고구려의 재갈쇠는 철로 만들었고 두 가닥으로 이루어졌다. 각 가닥은 철봉을 접어서 만들거나 꼬아서 만들며 양 끝에는 둥근 고리가 있다. 양쪽의 둥근 고리는 한쪽은 작고 다른 한쪽은 조금 크며, 작은 쪽 고리가 서로 연결되어 두 가닥이 된다. 가운데 연결된 둥근 고리가 말의 혀를 자극하며, 바깥쪽의 조금 큰 고리에 고삐이음쇠가 연결되는데, 그 사이에 재갈멈치가 있다. 현재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재갈쇠는 환인 망강루1호 적석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철제재갈쇠 한 가닥만 남아 있고, 망강루4호 적석총에서는 차축두(車軸頭)가 출토되어서 차마구용 재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갈멈치는 재갈쇠가 안정적으로 말에 고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뿔이나 나무 외에 금속으로도 만들었으며, 형태에 따라서 막대형과 판형으로 나뉜다. 막대형 재갈멈치는 표(鑣)라고 부르며, 대개 뿔이나 나무 등 유기질로 만들어서 남아있는 예가 거의 없다. 따라서 재갈멈치 없이 재갈쇠만 잔존하는 경우 표비(鑣轡)로 추정되며, 차마구에 사용된 재갈의 다수가 표비이다. 판형 재갈멈치는 금속으로 만든 평편한 판으로 만들었으며, 판의 형태에 따라 원형, 타원형, f자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판형 재갈멈치는 경판(鏡板)으로 부르기도 하며, 판형 재갈멈치를 가진 재갈을 경판비(鏡板轡) 혹은 판비(板轡)라고 하여 막대형 재갈멈치 재갈과 구별한다. 이외에도 철봉을 구부려 만든 고리형 재갈멈치가 있어서 이를 원환비(圓環轡) 혹은 환비(環轡)라고 부른다. 판형이나 고리형 재갈멈치는 재갈쇠의 바깥쪽 고리와 연결된 고삐이음쇠 사이에 끼어서 재갈쇠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며, 한쪽에 굴레와 연결되도록 연결부속구나 고리가 있어서 재갈이 안정적으로 말에 장착되도록 하였다.
고삐는 남아있지 않고, 고삐와 연결되는 고삐이음쇠만 남아있다. 고삐이음쇠는 재갈쇠와 고삐를 연결해주는 것으로 여러 형태이다. 철봉 한 줄을 구부려서 타원형으로 만들기도 하고(집안 만보정242-1호분), 철봉의 접어서 양쪽에 둥근 고리를 만들기도 하고(평성 지경동1호분), 고삐와 연결되는 부분을 직선으로 만들어서 원형과 삼각형이 결합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집안 우산하3241호분), 삽자루모양도 있다(집안 칠성산1096호). 고삐이음쇠 바깥쪽 고리의 여러 가지 모양은 고삐와 잘 연결되도록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고구려 유물 중 금속제 재갈쇠와 고삐이음쇠만 잔존하는 경우 유기질로 만든 막대형 재갈멈치가 잔존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서 표비로 보고 있다. 고구려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부여 유적인 중국 유수현 노하심 중층 3호무덤에서 사슴뿔로 만든 재갈멈치가 출토되었고, 김해 대성동유적에서는 사슴뿔을 이용한 막대형의 재갈멈치가 출토되어서 고구려에서도 뿔이나 나무로도 재갈멈치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4세기 전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표비는 기승마구와 공반되지 않아서 차마구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림2 | 재갈
- 1. 만보정242-1호분 2. 칠성산1096호분 3. 서해리2지구 1호분 4. 임강총 5. 우산하3241호분 6. 석대자산성 서문지 7. 장천4호분 8. 만보정1078호분 9. 지경동1호분 10. 오녀산성 철기저장구덩이
- 1. 만보정242-1호분 2. 칠성산1096호분 3. 서해리2지구 1호분 4. 임강총 5. 우산하3241호분 6. 석대자산성 서문지 7. 장천4호분 8. 만보정1078호분 9. 지경동1호분 10. 오녀산성 철기저장구덩이
고분에서 출토된 표비는 재갈멈치가 남아있는 예는 매우 드물며, 대개는 두 가닥을 이은 이련식(二連式)재갈쇠만 남아있다. 재갈쇠는 주조한 철봉을 이용하거나 철봉을 꼬아서 만들었다. 환인 망강루1호분, 법동리하구비 적석총, 서해리2지구 1호분, 임강총, 집안 우산하3241호분, 심양 석대자산성 서문지에서 출토되었다. 가장 이른 것은 망강루1호분에서 출토된 재갈쇠로, 주조한 것으로 보이는 재갈쇠 한쪽만 출토되었다. 재갈멈치가 잘 남아있는 것은 만보정242-1호분과 석대자산성 서문지에서 출토되었다. 만보정242-1호분 표비는 재갈쇠와 재갈멈치, 고삐이음쇠를 모두 갖추었다. 재갈쇠는 철봉의 양쪽에 고리를 만들어 연결하였는데, 바깥쪽 고리는 크고 삼각형에 가깝다. 바깥쪽 고리에 재갈멈치와 고삐이음쇠를 끼었다. 재갈멈치는 f자 형태로 굽은닭벼슬모양이며, 중간의 구멍 2개에 장방형 고리를 만들어 굴레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고삐이음쇠는 중간이 살짝 들어간 타원형 고리 형태이다. 석대자산성 서문지에서 출토된 표비는 재갈쇠는 주조하여 만든 것으로 재갈멈치는 f자 형태로 굽은 막대형이며, 중간에 굴레와 연결되는 고리가 있다.
고구려에서 표비는 이른 시기의 적석총인 망강루1호분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망강루4호 적석총에서 출토된 차축두 등을 고려해볼 때 고구려에서 먼저 출현한 표비는 차마구였을 것이다. 한편, 만보정242-1호분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형태의 재갈멈치는 노하심 중층 11호무덤에서 출토되었고, 고삐이음쇠는 노하심 중층 56호무덤에서 출토되어서 고구려에서 차마구로 재갈을 부장한 것은 부여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임강총이나 우산하2100호분에서 출토된 수레부속구인 사람얼굴형상의 차할을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금속제 경판비는 주로 4세기 이후의 무덤에서 기승마구와 함께 출토되어서 기승마구와 함께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칠성산1096호분의 재갈은 전체 길이 40.6cm이고, 재갈쇠는 11cm 길이의 막대를 붙여 만들었고, 재갈멈치는 원형 철판에 금동판을 덧대고 원형의 가장가리를 돌아가며 테두리를 덧대어 못으로 고정하였다. 둥근 판의 작은 구멍으로 재갈쇠와 고삐이음쇠의 안쪽 고리를 연결시키고, 이를 고정시키는 가로로 된 고정쇠는 못을 이용하여 판에 고정시켰다. 재갈멈치의 위쪽으로 가로로 긴 장방형 구멍을 내어 굴레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고삐이음쇠는 두 줄을 붙여 만든 것으로, 한쪽 둥근 고리는 재갈쇠와 연결되고, 다른 쪽 둥근 고리는 고삐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와 유사한 재갈이 중국 요령성 조양에 있는 전연시기의 원대자벽화분에서 출토된 바 있고, 경주 월성로가-13호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서, 4세기 중엽 중국 동북지역과 고구려, 신라 간 교류를 시사한다.
만보정1078호분에서는 재갈 2점이 출토되었다. 1점은 재갈쇠가 남아있지 않고 재갈멈치와 연결된 고삐이음쇠 일부가 남아있다. 재갈멈치는 청동으로 만든 가로로 긴 타원형 판이며, 그 판의 테두리와 연결 구멍 주위에 십자상의 금동테를 덧대었다. 굴레와 연결되는 고리는 없다. 다른 1점은 자세히 보고되지 않았지만, 재갈멈치 테두리를 돌아가며 권운문을 점각하였고, 굴레와 연결되는 장방형 구멍이 있다.
평성 지경동1호분은 벽화가 없는 유사두칸구조의 석실봉토분으로, 재갈은 각 부품이 분리된 채 출토되었다. 재갈쇠는 이련식이며, 고삐이음쇠는 철봉을 구부려 양쪽에 둥근 고리를 만들고 중간부분은 서로 붙였다. 재갈멈치는 심엽형 판으로 철판에 테두리를 덧대고, 재갈쇠와 고삐이음쇠를 연결시키는 구멍은 양 끝이 뾰족한 타원형이며 중간에 가로로 고정쇠가 있다.
고구려에서는 표비가 먼저 출현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기승마구의 하나로 판비가 출현하면서 4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표비와 판비가 병존한다. 판비는 칠성산1096호분, 만보정1078호분과 지경동1호분, 그리고 오녀산성와 아차산4보루가 시간적 선후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칠성산1096호분의 재갈은 4세기 중엽, 만보정1078호분과 지경동1호분의 재갈은 5세기 초중엽, 그리고 오녀산성과 아차산4보루의 재갈은 6세기로 추정된다. 이를 고려해볼 때 4~5세기에는 금동제로 장식성이 강한 재갈이 제작되기도 하였으며, 고삐이음쇠는 여러 형태에서 차츰 양쪽 고리형으로 고삐이음쇠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외에도 오녀산성과 아차산4보루에서 재갈이 출토되었다. 아차산4보루에서 출토된 재갈은 이련식재갈쇠이며, 재갈멈치는 말각장방형 판에 십자형 테두리를 덧대고 상부에 좁은 굴레고리가 있다. 고삐이음쇠는 철봉을 연접한 것으로 양쪽에 둥근 고리가 있다. 오녀산성의 4기문화층에 해당되는 철기저장구덩이에서 등자와 함께 출토된 재갈은 2점으로, 재갈쇠는 모두 자루 2개를 연결한 이련식이다. 1점은 네모난 고리형 재갈멈치이고 다른 하나는 말각장방형 판비이다. 네모난 고리형 재갈멈치는 주조한 것으로, 고리 안에 작은 원을 중심으로 한 십자상 구획이 되어있고, 중앙은 작은 원 안으로 재갈쇠의 한쪽이 들어와서 고삐이음쇠와 연결된다. 고리 위에는 굴레와 연결되는 장방형 구멍이 있다. 장방형 판비는 중앙에 고삐이음쇠를 연결시키는 고정쇠가 있으며, 굴레와 연결되는 장방형 구멍이 있다.
2) 발걸이(등자)
발걸이는 말을 탈 때 발을 딛고 말을 달릴 때 발을 올려놓음으로써 안정적으로 말을 탈 수 있도록 하는 기승구로, 등자라고 한다. 발걸이는 크게 안장에 연결되는 자루(柄部)와 발을 딛고 오르고 발을 받칠 수 있는 발받침부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발받침부의 형태에 따라서 두 종류로 나뉜다. 발받침부가 둥근 바퀴의 테모양으로 된 것을 윤등(輪鐙)이라고 하고, 신발의 앞축처럼 생겨서 발의 일부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을 호등(壺鐙)이라고 한다.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되는 등자는 윤등이 다수이며, 오녀산성과 아차산4보루에서 출토된 것은 호등일 가능성도 있다.
윤등은 만든 재질에 따라서 목심(木芯)등자와 철제등자로 나뉜다. 목심등자는 나뭇가지를 구부려서 발걸이 모양을 만든 후 그 위에 금속판을 덧댄 것으로, 대개는 철판을 덧대는데 금동판을 덧대어서 장식 효과를 크게 한 것도 있다. 칠성산1096호분의 등자는 금동판을 덧대고 둥근 못을 촘촘히 막아서 고정하는 동시에 장식 효과를 내기도 하였으며, 태왕릉의 등자는 금동판을 덧대고 그 위에 투조판을 덧대어 높은 장식 효과를 냈다. 철을 주조해서 만든 철제발걸이는 무덤뿐만 아니라 생활유적에서도 출토되어서 고구려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등자는 대개 자루가 긴 형태이지만, 생활 유적에서 출토된 것은 자루가 짧거나 없이 바로 띠와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발걸이의 재질은 시간에 따라서 목심에 금속판을 덧댄 것에서 차츰 철제발걸이로 변화하고, 발받침부의 형태는 하트모양에서 가로로 긴 원형으로 바뀌고, 발을 받치는 답부는 일자형에서 여러 갈래형으로, 일자형은 못이 없는 것에서 못이 튀어나온 것으로 변화하여 안정적으로 발을 받칠 수 있도록 변화하였다.

그림3 | 등자
- 1. 태왕릉 2. 경주 황오동 3. 칠성산1096호분 4. 장천4호분 5. 만보정1078호분 6. 지경동1호분 7. 하해방대대 8. 오녀산성 9. 고이산성 10. 아차산4보루
- 1. 태왕릉 2. 경주 황오동 3. 칠성산1096호분 4. 장천4호분 5. 만보정1078호분 6. 지경동1호분 7. 하해방대대 8. 오녀산성 9. 고이산성 10. 아차산4보루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가장 이른 시기의 등자는 칠성산1096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며, 장식성이 가장 큰 것은 태왕릉의 등자이다. 발을 딛는 답수부에 못을 만들어 기능을 향상시킨 금동제등자는 만보정1078호분에서 출토되었고, 지경동1호분의 등자는 철로 만든 것으로 발받침에 못이 5개 있다.
칠성산1096호분은 묘실 3기가 있는 다장의 적석총으로, 가운데 있는 묘실의 입구 부근에서 재갈, 안교, 행엽, 운주 등 기승마구 일습이 출토되었다. 등자는 목심금동판피(木芯金銅板被) 윤등 2점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등자의 형태를 만든 후 금동판을 덧씌우고 이를 고정하기 위해서 금동못을 박았다. 발을 딛는 윤부와, 안장과 연결되는 자루의 길이가 비슷하다. 윤부는 바닥 가운데가 살짝 위로 올라온 하트모양이다. 자루는 바깥쪽으로 가면서 약간 벌어졌고, 자루 끝부분에 끈이 연결되도록 가로로 긴 장방형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을 통해 띠가 안장과 연결된다.
태왕릉의 등자는 출토 위치는 알 수 없으며, 목심금동판피 윤등 1점이 출토되었다. 윤부는 심엽형으로, 가로 길이 13.2cm, 높이 10.8cm이고, 테두리는 폭 2.5~2.7cm, 두께 1.1cm이다. 자루는 길이 13cm, 너비 3.4~4cm로 끝으로 가면서 조금 넓어졌다. 자루 끝에는 끈이 연결되도록 길이 2.5cm 크기의 가로로 긴 구멍이 있다. 나무로 등자의 형태를 만든 후 그 위를 금동으로 감싸고 윤부에는 다시 투조된 금동판을 덧대었다. 투조된 무늬는 사신으로, 좌우 대칭이다. 윤부의 상부에서 자루로 이어지는 부분까지는 용이, 용의 꼬리와 연결되는 윤부의 아랫부분에는 백호가 이어지고, 발 딛는 부분의 아래에는 주작이 머리를 교차하는 모습이다. 윤부에서 자루로 이어지는 상부에는 현무가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남아있지 않다. 투조된 사신의 가장자리에는 가는 선을 선각하였고, 몸체에는 빗금무늬를 선각하여 운동감과 생동감을 더하였다. 투조된 장식판을 고정하는 금동못은 남아있지 않으며, 발 딛는 부분의 테두리 안쪽으로 고정판의 못이 튀어나와 있고, 바깥쪽을 고정시키는 고정판은 남아있지 않다. 태왕릉 출토 등자의 전체 형태는 칠성산1096호분 등자와 유사하며, 현존하는 유일한 투조 장식된 금동의 장식등자이다.
장천4호분은 벽화가 있는 석실봉토분으로, 하나의 분구 안에 석실 2기가 남북으로 나란하게 있는 무덤이다. 등자는 북쪽 석실에서 출토되었다. 나무로 형태를 만든 후 얇은 금동판을 씌우고 금동못으로 고정한 목심금동판피 윤등이다. 윤부는 가로가 조금 긴 원형으로 길이는 13.2cm, 높이는 9.1cm이다. 자루는 길이 11.1cm, 너비 2.5cm이고, 자루 끝의 장방형 구멍은 길이 1.7cm이다. 전체 형태는 만보정1078호분 등자와 비슷하지만, 발 딛는 부분에 못이 없다는 점에서 칠성산1096호분이나 태왕릉 등자와 공통된다.
만보정1078호분은 계단적석총으로 매장부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서 기승마구 일습이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 등자는 묘도로 추정되는 앞부분에서 2점씩 두 쌍이 출토되어서 총 4점이 출토되었다. 4점 모두 목심의 금동판을 씌어 금동못으로 고정시킨 목심금동판피 윤등이다. 윤부는 타원형이며, 발을 딛는 부분에 금동못 5개를 박아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자루 끝부분에 가로로 긴 장방형 구멍을 통해서 끈이 안장과 연결된다. 등자의 전체 길이는 24cm이고, 윤부의 길이는 18cm이다.
지경동 1호분과 2호분은 30m 간격으로 자리하는데, 등자는 1호분과 2호분 모두에서 출토되었다. 1호분의 등자는 연도의 서쪽에 있는 벽감 앞에서 한 쌍이 출토되었다. 철제윤등으로, 윤부는 길이 15cm, 높이 11.5cm로 타원형에 가까운 원형이며, 발 딛는 부분에 못을 박았다. 못은 3개로 추정된다. 2호분에서는 연도에서 철제윤등 한 쌍이 출토되었다. 등자의 전체 형태는 1호분 등자와 같으며, 윤부의 길이 16cm, 높이 15cm, 자루 길이 11cm로 1호분 등자에 비해 윤부가 커졌다.
오녀산성 4기문화층 철기저장구덩이에서는 철제등자 2점이 출토되었다. 1점은 윤등이고, 다른 1점은 자루의 방향으로 미루어 호등으로 추정된다. 호등으로 추정되는 것은 전체 길이 24.7cm, 답부의 길이 17cm이며, 답부는 남아있지 않으나 답부와 연결되는 부분에 못이 있다. 자루는 나무에 철판을 덧댄 것으로, 중간에 횡장방형의 구멍이 있어서 안장과 연결된다. 윤등은 목심에 철판을 덧댄 것으로 윤부의 바깥쪽 테두리에만 철판을 덧대었다. 전체 길이 23.3cm, 윤부 길이 18.6cm이다. 42호주거지에서 출토된 철제등자는 발을 딛는 부분이 평평해졌고, 자루는 짧은 편이며, 자루의 끝부분에 있는 작은 네모난 구멍을 통해 안장과 연결된다. 전체 길이는 26.2cm, 윤부의 너비는 17.5cm이다.
고이산성 동성 내 서쪽 구릉 소나무 아래에서 출토된 등자는 철제윤등으로, 전체 높이는 17.5cm, 발걸이 부분은 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발 딛는 부분의 길이는 10.5cm이고, 발 딛는 부분의 폭은 4cm로 넓어진 형태이다. 자루 부분이 없이 윤부와 연결되는 네모난 부분에 가로로 긴 네모난 구멍이 있어서 띠와 연결된다.
아차산4보루에서 출토된 철제등자는 주조된 것으로 윤부는 상원하방형이고, 병부는 짧고 띠연결구멍과 윤부의 방향이 직교하여서 호등일 가능성도 있다. 발 딛는 부분이 세 갈래로 나뉘어 있는 것은 고이산성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다.
고분과 성곽 내에서 출토된 등자를 비교해보면, 성곽 내에서 출토된 등자의 경우 병부가 짧고, 발을 올려놓고 딛는 부분의 폭이 넓어지는 등 형태 차이가 관찰된다. 이러한 차이는 등자의 형태가 시간에 따라 발을 올려놓고 딛기 편한 방향으로 발전해갔음을 고려해볼 때 시간적 선후관계를 갖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3) 안교
사람이 말을 탈 때 편하게 하도록 말 등에 얹는 것을 안장(鞍裝)이라 하며, 안장은 여러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구성품이 모두 보존되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안장의 구성품 중 고고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안교(鞍橋)와 그에 부속된 부품이다. 안교는 말을 탄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안장의 앞뒤에 세운 다리모양의 물건이다. 앞뒤 가리개가 한 세트이며, 앞가리개보다는 뒷가리개가 조금 크다. 안교의 부속품으로는 안교의 테두리와 앉는 부분(座木)을 장식하는 좌목선구(座木先具), 그리고 여기에서 가슴걸이와 뒤걸이를 연결시켜 주는 띠고리(座木先鉸具) 등이 있다. 안교에 남아있는 작은 못구멍과 좌목선구를 통해 안장의 기본틀은 나무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 안교는 주로 고분 부장품에서 확인된다. 칠성산1096호분과 장천4호분, 만보정1078호분과 지경동 1호분과 2호분에서는 기승마구와 함께 안교가 출토되었고, 마선구1호분에서는 좌목선구와 안교가, 우산하152호분에서는 안교 테두리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안교로 미루어 칠성산1096호분처럼 좌목선구가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것과 좌목선구가 일체형인 것이 있는데, 칠성산1096호분과 마선구1호분, 지경동1호분이 전자에 해당되며, 장천4호분과 만보정1078호분은 후자에 해당된다.

그림4 | 안교와 부속구
- 1. 칠성산1096호분 2. 만보정1078호분 3. 우산하41호분 4. 우산하2891호분 5. 우산하540호분 6. 마선구1호분 7. 지경동1호분 8. 장천4호분
- 1. 칠성산1096호분 2. 만보정1078호분 3. 우산하41호분 4. 우산하2891호분 5. 우산하540호분 6. 마선구1호분 7. 지경동1호분 8. 장천4호분
칠성산1096호분 2호묘실의 입구에서 출토된 안교는 금동제로 앞가리개와 뒷가리개에 덧댄다리모양의 금동판과 가장자리 테두리가 함께 출토되었다. 앞가리개가 조금 작고 뒷가리개가 조금 크다. 덧댄 금동판은 두께 0.05cm의 얇은 판으로, 금동판의 바깥쪽 가장자리를 돌아가면 폭 3.2cm의 테두리가 있고, 바깥 테두리의 양쪽 끝에 작은 못이 각각 하나씩 있다. 안쪽 테두리에는 각각 금동못 41매가 박혀 있어서, 나무로 된 앞뒤 가리개를 고정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좌목의 앞을 장식하는 좌목선구는 확인되지 않았고, 좌목선교구는 1점이 보고되었는데, 반구형의 덮개 위로 D자형 교구가 있다.
마선구1호분의 안교 테두리와 좌목선구는 금동제이다. 안교 장식판은 부분적으로 훼손되었고, 안교 테두리는 너비 2cm이고, 양 다리 사이의 거리는 15.4cm이다. 안교 테두리로 보고되었으나, 잔존 상태만으로는 형태를 가늠하기 어렵다. 좌목선구는 좌우 각각 1점씩 한 세트가 출토되었고, 그 중간에 좌목선교구와 연결되는 장방형 구멍이 있다. 구멍의 길이는 15cm, 너비 8.5cm이다.
만보정1078호분에서는 안교 4점이 출토되어서 2세트가 부장된 것으로 보인다. 한 세트는 안교 장식판에 말린구름무늬(卷雲文)가 투조되었고, 바깥쪽과 안쪽으로 돌아가는 테두리에는 나무에 고정시켰던 못 구멍이 있다. 전체 길이는 42.5cm이고, 높이는 27.5cm이다. 다른 한 세트는 문양 없는 금동판을 덧댄 것이다. 좌목선교구는 4점이 출토되었으며, 원형 평면의 납작한 방대형으로 고리는 D자형이며, 걸쇠는 ■ 형이다.
장천4호분 북실에서는 안교의 앞뒤 가리개 한 쌍이 출토되었다. 안교 장식판은 확인되지 않고 안교의 안쪽 테두리와 연결된 금동으로 만든 좌목선구가 확인되었다. 앞가리개의 좌목선구는 일체형으로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못으로 고정되었고, 양쪽에 각 하나씩 좌목선교구가 있었던 횡장방형 구멍이 있다. 전체 길이는 32.8cm이고, 높이는 15.2cm이다. 뒷가리개는 안교 바깥쪽 테두리와 안쪽 테두리에 고정된 좌목선구가 출토되었고, 전체 길이는 44cm, 높이는 24.3cm이며, 좌목선교구가 있었던 흔적이 좌우 양쪽으로 2개씩 총 4개가 있어서, 후걸이는 4줄이었음을 알 수 있다.
4) 띠장식구
띠장식구는 말을 타거나 부리는 데 필요한 재갈이나 등자, 안장 등을 말에 고정시키거나 연결시키는 데 사용하는 띠를 장식하는 것이다. 서북한의 낙랑무덤에서는 차마구로서 재갈과 함께 행엽이 출토되기도 하지만, 고구려 유적에서 띠장식구는 기승마구와 함께 출토된다.
띠는 재갈과 말머리를 연결시키는 굴레나, 안장 앞부분에서 끈이 나와 말 가슴 앞쪽으로 늘어지는 앞걸이, 안장을 넘어 가슴에 고정시키는 가슴걸이, 그리고 안장의 뒷부분에 이어지는 후걸이로 나뉜다. 앞걸이에는 방울이 주로 매달리며, 가슴걸이에는 등자와 다래가 달리고, 후걸이에는 여러 종류의 장식이 있다. 띠에 매달아 늘어뜨리는 행엽, 띠에 직접 붙이는 운주, 그리고 여러 띠를 서로 연결하고 고정시키는 띠연결 고정구 등이 후걸이 장식구이다. 이외에도 벽화분에서는 사행상 기꽂이와 기생이 관찰된다.
(1) 운주
운주는 띠에 부착하는 장식구로, 띠에 매다는 장식구인 행엽과 구별된다. 운주는 용도에 따라 단순히 띠에 부착하여 장식하는 것과 여러 갈래의 후걸이를 연결하고 고정시키는 띠연결고정금구로 나뉘기도 하는데, 통상 띠에 부착하여 장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운주는 꽃모양이나 반구형의 띠장식판 중앙에 구멍을 뚫고, 금실을 반으로 접고, 접힌 부분에 영락을 끼우고 띠장식판 중앙 구멍에 금실을 넣어서, 양 갈래 금실을 나누어 띠에 고정시킨다. 운주는 띠장식판의 모양과, 띠장식판과 영락 사이에 세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며, 세움식이 없는 꽃모양장식판의 운주는 서대총과 우산하992호분에서 출토된 바 있고, 반구형장식판은 산성하전창1호분에서 출토된 바 있다. 세움식이 있는 꽃모양장식판은 마선구2100호분, 천추총, 우산하540호분에서 확인되며, 반구형장식판의 세움식 있는 운주는 만보정1078호분, 우산하41호분, 장천2호분 등에서 출토되었다. 시간에 따른 고분의 구조 변화를 고려해볼 때 처음에는 세움식이 없는 꽃모양 장식판과 반구형장식판이 사용되다가 차츰 반구형의 장식판 세움식이 더해져 반구형의 세움식 있는 운주가 중심이 된다.
꽃모양장식판 운주는 서대총과 우산하992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서대총 운주는 10장 꽃잎장식 운주로 지름 2.3cm이며 영락은 남아있지 않으며, 우산하992호분 운주는 8장과 10장 꽃잎의 장식판 운주로, 8장 꽃잎 운주는 지름 4.2cm로 큰 편에 속한다.
세움식이 있는 꽃모양장식판 운주는 천추총에서 출토되었는데, 꽃잎은 10장이며, 꽃모양장식판 지름은 1.8cm, 장식판 높이는 0.9cm이고, 세움식 높이는 0.6cm로 높지 않다. 장타원형 영락 하나가 달려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운주는 태왕릉에서도 출토되었다. 태왕릉의 운주는 꽃모양장식판에 세움식이 있으며, 영락이 하나 달린 것과 네 가닥으로 나누어 영락을 단 것이 있다. 네 가닥으로 영락이 달린 장식판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체 길이는 6cm로 높은 편이다.

그림5 | 운주
- 1. 우산하3319호분 2. 우산하3241호분 3. 우산하540호분 4. 만보정1078호분 5. 산성하전창1호분 6. 우산하3105호분 7. 우산하1041호분
- 1. 우산하3319호분 2. 우산하3241호분 3. 우산하540호분 4. 만보정1078호분 5. 산성하전창1호분 6. 우산하3105호분 7. 우산하1041호분
반구형장식판에 세움식이 있는 운주는 마선구1호분에서 2점이 출토되었다. 반구형장식판에 금실을 접어 두 가닥이 되도록 하고, 접힌 부분에 심엽형 영락을 단 후에 두 가닥이 원형형 세움식을 통과하여 반구형장식판 위에 구멍에 넣어 두 가닥을 양쪽으로 벌려서 띠에 고정시켰다. 만보정1078호분 운주도 반구형장식판에 세움식이 있는 것으로 34점이 출토되었다. 모두 금동제로 영락 장식의 수에 따라서 하나 달린 것과 셋 달린 것, 그리고 넷 달린 것 세 종류가 있다. 영락이 여러 개 달린 것은 세움식 위에 세 가닥 또는 네 가닥으로 나뉜 원통관을 연결시키고, 가닥마다 영락을 달아서 장식성이 증가되었다. 만보정1078호분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것은 세 가닥 영락이 달린 것이다.
우산하1041호분에서는 금동제로 세움식 운주가 3점 출토되었는데, 2중 장식판이 특징이다. 납작해진 반구형 위에 꽃잎 6장의 화판형 장식이 올라가고 그 위에 세움식이 있는데, 영락은 원형으로 하나가 달렸다.
(2) 행엽
행엽은 띠에 매다는 장식구로, 고구려에서는 심엽형 행엽이 중심이 된다. 띠에 매달리도록 횡장방형의 구멍이 있는 띠장식구로, 주로 후걸이 장식에 사용된다. 행엽은 주로 고분에서 출토되지만, 패왕조산성이나 서울의 수락산보루 등 관방유적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패왕조산성에서 출토된 것은 심엽형 철판을 돌아가면서 덧띠를 댄 것이다. 동편(銅片)으로 보고된 덧띠는 금동제로 추정된다. 심엽형 테두리 안에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가면서 비슷한 간격으로 둥근선모양의 덧띠가 있고, 철판과 덧띠는 작은 못으로 고정시켰다. 심엽형 중간 부분에 횡장방형의 띠연결구멍이 돌출되어 있다. 행엽 전체 길이는 10.7cm, 전체 너비는 10.8cm이다.
고분에서 출토된 행엽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심엽형 철판에 테두리를 돌아가며 덧띠를 대고 못으로 고정시킨 것이고, 둘째는 심엽형 철판의 테두리와 테두리 내부에 十자형으로 투조하여 못으로 고정시킨 것, 셋째는 심엽형 철판에 투조된 장식판을 덧대고 그 위에 테두리를 덧대고 못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그림6 | 행엽
- 1. 칠성산1096호분 2. 우산하2891호분 3. 태왕릉 4. 마선구1호분 5. 장천4호분 6. 만보정1078호분
- 1. 칠성산1096호분 2. 우산하2891호분 3. 태왕릉 4. 마선구1호분 5. 장천4호분 6. 만보정1078호분
첫째는 심엽형 행엽으로, 칠성산1096호분, 우산하2891호분과 지경동 1호분과 2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칠성산1096호분의 행엽은 금동제로 9점이 출토되었다. 심엽형 금동판의 테두리에 덧띠를 대고 금동못 8개로 고정시켰고, 상부에는 말띠와 연결되도록 횡장방형 구멍이 있다. 우산하2891호분은 칠성산1096호분과 유사한 구조의 적석총으로, 여기에서 출토된 행엽은 금동판을 겹쳐 만든 것으로 칠성산1096호분 행엽과 유사하다. 상부의 횡장방형 띠연결구멍에는 띠를 고정시켰던 위가 둥글고 바닥이 네모난 띠연결고정구가 있다. 못은 상부에 하나, 아래 양 쪽에 1개씩 총 3개로 띠와 고정시켰다. 전체 길이는 7.6cm이고, 너비는 6.5cm이다. 지경동2호분의 행엽은 길이 9,5cm, 너비 8cm이다.
둘째는 十자형 덧띠를 대고 못으로 고정시킨 심엽형 행엽으로, 우산하3105호분, 만보정1078호분, 산성하332호분과 장천2호분, 장천4호분, 마선구1호분, 산성하동대파217호분 등 고구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형태이다. 장천4호분의 행엽은 철제지판에 금동판을 덧댄 것으로, 점각으로 테두리와 내부에 十자모양을 만들었고, 테두리와 십자를 따라서 16개의 못으로 고정시켰다. 상부에는 띠와 연결되는 횡장방형 구멍이 있다. 길이 9.1cm, 너비 9.8cm이다. 장천2호분 행엽은 금동제로, 길이 8cm, 너비 8cm이다. 동편을 두들겨 중앙에 십자를 투조한 것으로, 상부에 횡장방형 구멍이 있어 띠와 고정시키는 상원하방형 고정구가 있다. 산성하332호분, 마선구1호분과 만보정1078호분의 행엽이 이와 유사하다.
셋째는 테두리 내부에 문양이 투조된 것으로, 태왕릉과 만보정1078호분에서 출토되었다. 태왕릉의 것은 동판 3매를 겹쳐 만든 것으로, 길이 7,2cm, 너비 7.8cm이다. 심엽형 동판 위에 호랑이가 마주하는 투조판을 덧대고 테두리를 더해서 못으로 고정시켰다. 만보정1078호분에서 출토된 장식판은 권운문을 투조한 것으로 권운문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점각을 하였다.
무덤의 연대와 공반유물과의 관계를 볼 때 심엽형 내부에 장식 요소가 없는 것은 십자형이나 장식 투조가 있는 것이 먼저 만들어졌을 것이며, 5세기대에는 여러 형식의 행엽이 제작되고 사용되었을 것이다.
(3) 띠연결고정구
띠연결고정구는 여러 가닥의 띠가 교차되는 곳을 고정시키는 한편, 여러 가닥의 띠를 연결시킨다. 주로 후걸이 고정에 사용되며 재질과 형태에서 장식성을 갖기도 하는데, 고구려에서 출토 예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금동제로 연결되는 띠의 수에 따라서 네 가닥, 다섯 가닥, 여섯 가닥이 있다.
칠성산1096호분에서는 네 가닥과 다섯 가닥을 연결시키는 금동제 고정구가 출토되었다. 모두 반구형이며, 끝이 뾰족해진 반원형 연결 다리가 4개 달린 것과 5개 달린 것이 있으며, 4개 달린 것은 21점이 출토되었고, 5개 달린 것은 1점이 출토되었다. 연결 다리에는 고정못 3개가 있다.

그림7 | 띠연결고정구
- 1. 칠성산1096호분 2. 태왕릉 3. 우산하1041호분 4. 마선구1호분 5. 산성하동대파217호
- 1. 칠성산1096호분 2. 태왕릉 3. 우산하1041호분 4. 마선구1호분 5. 산성하동대파217호
태왕릉의 띠연결고정구는 네 가닥, 다섯 가닥, 여섯 가닥 등 총 3점이 출토되었다. 모두 금동제로, 반구형에 고리형 고정구가 있다. 이 고정구에 띠가 고정되며, 고정못은 3개다. 반구형은 호랑이 얼굴을 중심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몸을 투조하고, 띠를 연결시키는 장방형 고리에 띠고정구를 연결시켰는데, 네 가닥은 반구형 중심에 다리를 4개 달았고, 다섯 가닥과 여섯 가닥은 반구형 2개를 연결시켰다. 반구형 하나의 지름은 5.9cm 내외이며, 2개를 연결한 경우 10cm 정도이다. 높이는 0.9~1cm이며, 고리에 연결된 고정구는 대략 길이 2.2cm, 너비 1.6cm이다. 현재까지 조사된 띠연결고정구 가운데 가장 장식성이 강하다.
우산하1041호분에서 출토된 띠연결고정구는 금동제로 반구형 중심에 방형의 다리가 4개 달렸다. 다리에는 띠를 연결하여 고정시키는 못이 4개 박혀 있다.
(4) 방울
말에 달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울은 금동, 청동, 철로 만들었고, 덮개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덮개가 있는 방울은 만보정242-1호분에서 출토되었고, 산성하195호분에서 출토된 것도 덮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보정242-1호분의 덮개방울은 금동제로, 1층 계단 남쪽에서 7점이 출토되었다. 방울은 고리가 달려있는데, 반구형 덮개 중앙의 장방형 구멍에 방울의 고리가 끼워져 끈에 달게 된다. 방울의 전체 높이는 3.1~3.3cm이고, 덮개의 지름은 4.75cm, 방울의 지름은 1.9~2.1cm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방울이 산성하195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산성하195호분에서 덮개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방울의 전체 높이는 4.4cm로 만보정242-1호분의 방울보다 조금 크다.
청동으로 만든 방울은 우산하540호분, 천추총, 태왕릉에서 출토되었다. 우산하540호분에서는 크기와 모양이 같은 청동방울 2점이 출토되었다. 몸체는 단면 육각형이며,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이다. 방울의 아랫면은 육각형 모서리를 호상으로 연결하였고, 겉면에는 붉은 칠이 되어 있다. 상면 중앙에 반원형의 작은 고리가 달려있는데, 이 고리에 철로 만든 고리가 연결되어 끈에 달리게 된다. 방울은 막대모양이며 철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4.4cm이다.

그림8 | 방울
- 1. 만보정242-1호분 2. 산성하195호분 3. 천추총 4. 우산하540호분 5. 태왕릉
- 1. 만보정242-1호분 2. 산성하195호분 3. 천추총 4. 우산하540호분 5. 태왕릉
그림9 | 사행상 기꽂이와 기생
![]() 1. 쌍영총 |
![]() 2. 통구12호분 |
![]() 3. 개마총 | |
천추총의 방울은 청동으로 주조한 것으로 3점이 출토되었다. 전체 형태는 상부가 좁고 아랫면이 넓은 단면 타원형으로, 아래는 약간 만곡된 형태이다. 원래의 형태에서 변형이 있었으며, 2점은 상면의 고리가 남아있으나, 나머지 1점은 상면의 고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전체 높이는 5.1~5.4cm이고, 아래 지름은 2~3.4cm, 상면은 1.8~1.9cm이다.
태왕릉에서는 청동방울 3점이 출토되었고, 각각은 형태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는 방울의 아랫면이 ∧ 형태이며, 위쪽에서 아래로 가면서 넓어져서 종의 횡단면은 타원형이다. 상부 중앙에 뚫린 둥근 구멍에 고리가 연결되었을 것이며, 꼭지의 높이 0.7cm, 구멍 지름 0.2cm이며, 방울의 지름은 2.4~3cm이고, 높이는 5cm이다. 둘째는 방울의 아랫면이 직선인 것으로, 위로 가면서 좁아져서 원추형의 상부가 잘린 형태이다. 방울 아래 지름 2.9cm, 상부 지름 2.5cm이며, 전체 높이 5.2cm이다. 나머지 1점은 상부의 고리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전체 형태는 둘째 방울과 같이 아랫면이 직선적이다. 방울 주위를 돌아가면서 세로로 4행의 글자를 새겼다. 각 행은 3글자로, “辛卯年 好太王 □造鈴 九十六”이란 총 12자가 판독되었고, ‘造’ 앞의 글자는 상부의 ‘─’ 가로획은 분명하지만 그 아래 글자는 판별하기 어렵다.
(5) 사행상 기꽂이와 기생
말을 꾸미는 사행상 기꽂이와 기생은 실물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갑옷을 입은 말의 경우 뒷부분에 사행상 기꽂이와 기생이 표현되어 있다.
사행상 기꽂이는 뱀이 기어가는 모양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통구12호분과 쌍영총의 갑옷 입은 말에 표현되어 있다. 통구12호분의 북쪽에 있는 묘실에서는 기마전투 장면에서 창을 찌르는 듯한 자세의 갑옷을 입은 무사가 탄 말의 뒤편에 사행상 기꽂이가 표현되어 있다. 쌍영총에서는 긴 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탄 말도 갑옷을 입고 있고, 안교 뒤편 테두리에서 연결된 사행상 기꽂이는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이다.
기생은 신라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예가 있으나 고구려 유적에서 실물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개마총의 널방 동쪽 천장 고임부에 묘사된 〈묘주출행도〉에 묘주 뒤를 따르는 갑옷을 입은 말 뒤편에 여러 색의 깃발로 장식된 기생이 표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