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통사

1. 초기 불교미술

1. 초기 불교미술

평양 덕흥리고분(408년)의 묵서명에 묘주인 유주자사(幽州刺史) 진(鎭)이 ‘석가문불(釋伽文佛)의 제자’로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 고구려 왕실과 상류 지배층을 중심으로 불교신앙이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서 무용총 벽화의 묘주가 승려로 보이는 인물을 맞이하여 함께 식사를 하는 생활도와 쌍영총 벽화에서 승려를 따라 묘주의 부인과 식솔들이 예불을 하러 행진하는 장면, 뒤에서 살펴볼 장천1호묘 벽화에 부처에 예배하는 묘주와 그의 부인이 묘사된 장면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불교미술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유물이 전하지 않고, 고구려에 불상을 전해준 전진(前秦, 351~394년) 시기의 불상도 전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당시 어떤 형태의 불상이 고구려의 사원에 봉안되고 예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호십육국시대의 불상 가운데 기년작(紀年作)인 후조(後趙) 건무(建武) 4년 금동여래좌상(338년)과 감숙성 영정(永靖) 병령사(炳靈寺)석굴 169굴의 서진(西秦)시기 벽화와 소조불상들(420년), 북량(北涼) 석탑(397~414년) 표면에 새겨진 불상들, 대하(大夏, 407~431년)에서 제작된 금동여래좌상(429년), 남조 송 원가(元嘉) 14년 금동여래좌상(437년)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어깨를 가리는 인도의 통견식(通肩式)으로 대의(大衣: 부처나 승려가 입는 가사)를 입고 두 손을 마주 포개어 복부에 대고 있는 초기 선정인(禪定印)의 수인을 결(結)한 형식의 여래좌상이 고구려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 초기 불상을 유추해볼 수 있는 상으로 1959년 서울 자양동(뚝섬)에서 발견된 금동여래좌상(국립중앙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그림1). 이 상은 크기가 4.9cm의 소형 불상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불상 가운데 제작시기가 가장 이르다. 광배를 잃었고 얼굴에 손상이 심하지만 양어깨를 가리는 통견식으로 대의가 표현되고 초기 선정인을 결한 모습이나 방형대좌의 좌우에 사자(獅子)가 새겨진 형태는 후조 건무 4년(338년) 금동여래좌상(그림2)과 같은 중국 화북 지방에서 제작된 오호십육국시대 불상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1 | 서울 자양동(뚝섬) 출토 금동여래 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2 | 후조 건무 4년 금동여래좌상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소장)
뚝섬 출토 금동여래좌상의 제작국에 대해서는 국내 제작설과 중국 화북 지역 제작설이 제기되었으나, 아직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다만, 매우 작은 소형 금동불이므로 화북 지역의 전법승(傳法僧)을 통해 전래된 상일 가능성이 있다. 한강 유역은 고구려가 진출한 475년까지 백제의 영토였고 551년 무렵부터 신라의 영역이었으므로 삼국 가운데 어느 나라로 가져온 불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불상이 중국 화북 지역에서 제작된 4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4세기에 전진을 비롯한 오호십육국에서 고구려에 불상이 전래되었다면 이 불상과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 초기 불상의 형태를 유추해볼 수 있는 확실한 자료는 길림성 집안에 있는 장천1호분의 전실 동쪽 천장고임에 그려져 있는 〈예불도〉의 여래좌상이다(문명대, 1991; 전호태, 2000). 현존하는 유일한 5세기 중엽 고구려 불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예불도〉 여래좌상은 수염이 표현된 온화한 상호(相好), 어깨가 처진 불신(佛身) 위에 통견식으로 입은 대의, 붉은 안료로 화염문이 그려진 거신광배(擧身光背), 방형대좌의 좌우에 백색 안료로 사자가 표현되었는데, 그 형식이 5세기 전반의 중국 불상에서 보이는 특징과 유사하다(그림3). 이 〈예불도〉 위쪽으로 돌출된 벽면에는 육계(肉髻)가 높은 불상의 머리와 원형 광배, 광배에서 퍼져 나간 광선을 표현한 듯 붉은색으로 칠한 부채꼴의 배경장식이 그려져 있다. 마치 천상세계를 표현한 듯한 이 장면은 석가불의 수기(受記)를 받고 56억 7,000만 년 동안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며 하생을 기다리는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림3 | 장천1호분 〈예불도〉의 여래좌상(길림성 집안)
또한 장천1호분 전실 천장고임의 서쪽 측면에 그려진 〈보살도〉(그림4)는 당당하고 다부진 체구와 천의(天衣) 자락이 좌우로 힘차게 휘날리는 표현이 북량~북위대에 개착된 장액 금탑사(金塔寺)석굴의 보살입상이나 5세기 북위 금동보살입상(그림5)과 유사하다(김리나, 1996). 이 처럼 북중국을 지배했던 오호십육국이나 북위, 양자강 이남의 남조 지 역에서 제작된 불상이 고구려에 전해져 고구려 초기 불상 형성에 기초 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4 | 장천1호분 〈예불도〉의 보살입상(길림성 집안)
그림5 | 북위 금동보살입상(워싱턴 프리어갤러리 소장)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1. 초기 불교미술 자료번호 : gt.d_0009_007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