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천하관과 기타 연구
7. 천하관과 기타 연구
천하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천하관은 현실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자국의 위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천하관은 국내외의 현실적인 정치질서와 현상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천하에 대한 인식은 중국으로부터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고, 당시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고구려에도 이러한 천하관이 수용되었다.
고구려의 천하관은 5세기에 작성된 광개토왕비, 모두루묘지명, 충주고구려비 등의 비문과 묘지명에 잘 나타나 있다. 이를 통해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에 대해 구명된 바 있는데(양기석, 1983; 노태돈, 1988), 고구려는 5세기에 중국 대륙의 분열상황을 활용하여 중국의 여러 왕조와 대등한 외교관계를 펼치며 독자 세력권을 구축하고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확립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2000년대 이후의 연구에서도 주변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고구려의 위상을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천하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다. 기존 천하관의 개념을 문제로 보고 천하의 개념을 엄밀하게 따져보면서 현실공간 속에서 천하질서 내지는 국제질서 인식의 전개를 살펴보기도 하였고, 고구려 천하관의 실체를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시도도 있었다. 아울러 4~5세기에 집중되었던 천하관 연구를 넘어 고구려 초기부터 5세기에 걸친 천하관의 형성 배경 등을 통시적으로 짚어보기도 하였다(篠原啓方, 2006; 여호규, 2009; 윤상열, 2010; 정효운, 2012; 이희진, 2014; 방용철, 2021).
세계적으로 빅히스토리가 유행하면서 고구려사 연구에도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기도 하였다. 해양, 환경, 질병, 생태 등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새로운 연구경향도 나타났다. 고구려와 관련한 해양사 연구(윤명철, 2003), 전염병에 관한 연구도 등장하였고(이정빈, 2021), 의약이나 의약기술 교류 등과 관련한 연구도 나왔으며(이현숙, 2021; 박준형, 2021), 중요 물자의 생산·유통·소비 등과 관련한 연구도 나오고 있다(여호규, 2014; 양인호, 2021; 2022).
신채호와 박은식의 고구려사 인식이나 문학적 서사가 역사화되는 과정과 기억의 전승에 대한 고찰도 있었고(조인성, 2009; 조법종, 2017; 정호섭, 2014; 2020; 2022), 중국 정사의 고구려 인식을 살펴보기도 하였다(이정자, 2008). 특정한 지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고증하고 연구도 다수 확인된다(김민수, 2003; 박종서, 2010; 윤경진, 2017; 윤성호, 2017; 여호규, 2021; 정호섭, 2020; 문영철, 2021).
상대적으로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한 사회경제사와 관련하여 고구려척과 관련한 검토도 있었다(유태용, 2001; 윤선태, 2002; 박찬흥, 2005; 이우태, 2007). 단편적인 기록만 확인되는 고구려 유인(遊人)이나 유녀(遊女) 등에 관해서도 연구를 통해 그 성격을 다양하게 구명하고자 했으나, 각양각색의 가설만 난무한 상황이다(권주현, 2000; 김락기, 2000; 김선주, 2000; 조상현, 2003; 김현정, 2006; 안정준, 2015; 나유정, 2020). 근대 일본의 만선사와 관련한 고구려사 연구를 되돌아보기도 하였다(井上直樹, 2004; 박찬흥, 2005; 이준성, 2014).
아울러 고구려 교육제도나 역사 편찬과 관련한 연구도 나왔다(이정빈, 2012; 조범환, 2015; 이재석, 2021; 전덕재, 2022; 김준형, 2022). 또한 고구려에 이주한 외래인이나 고구려로부터 북위 등에 이주한 사람들에 대해 주목하기도 하였다(공석구, 2003; 정호섭, 2017; 이동훈, 2018; 이성제, 2020; 윤용구,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