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명왕편』, 『제왕운기』, 『해동고승전』의 고구려 관련 기사
3. 『동명왕편』, 『제왕운기』, 『해동고승전』의 고구려 관련 기사
1) 『동명왕편』
『동명왕편』은 고려 후기에 이규보가 지은 장편 서사시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동명왕편』은 『제왕운기』와 더불어 고려 후기 역사의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저작물로서 사학사적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는 고대사 연구자료로서 의미만을 살펴본다. 『동명왕편』의 서문에서 이규보는 저술 의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지난 계축년 4월 『구삼국사』를 얻어 동명왕본기를 보니 신이한 사적이 세상에서 말하는 정도보다 더했다.…김부식 공이 우리나라 역사를 중찬할 때에 그 일을 꽤 많이 생략해버렸다.…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이함으로 뭇사람의 눈을 현혹함이 아니다. 이는 참으로 나라를 창시한 신성한 사적이니 이와 같은 일을 서술해놓지 않으면 뒷날 장차 무엇을 볼 것인가.
이 서문에서 보듯이 『동명왕편』은 현재 전하지 않는 『구삼국사』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고대사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동명왕편』의 본편은 오언시 부분과 시에 대한 세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세주가 곧 『구삼국사』에서 직접 인용한 부분이다. 이 세주의 인용이 『구삼국사』 동명왕본기 중 해당 내용의 어느 정도 비중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 상당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다만 『동명왕편』 세주에 기술된 내용을 모두 종합하여 주몽 전승을 구성하더라도 본래 『구삼국사』에 실려 있는 주몽 전승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동명왕편』에서 세주로 전하고 있는 『구삼국사』 동명왕본기의 내용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본기의 내용과 비교하여, 고구려본기 원전을 추적하는 중요 자료로 활용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동명 전승 첫부분은 『구삼국사』 기사와 일부 문자와 문장이 약간 첨가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제왕운기』에서도 ‘동명본기(東明本紀)’에서 인용한 문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대체로 동일하다. 『삼국유사』 동부여조에도 거의 같은 내용의 전승을 전하고 있는데, 내용의 선후가 바뀌어 있고, ‘북부여왕’, ‘천제(天帝)’ 등 일부 표현에서 차이가 나타나지만, 거의 동일 자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동부여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위 문장의 가장 오래된 자료는 『구삼국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고구려본기의 문장과 『구삼국사』의 문장이 거의 동일한 이유가 『구삼국사』에 의거하여 기사를 작성한 결과인지, 아니면 『구삼국사』와 동일한 전거자료에 의한 결과인지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임기환, 2016).
그런데 『동명왕편』에 인용된 부분에서는 해부루의 죽음과 금와왕 즉위에 관한 기사는 전하고 있지 않다. 이규보가 지은 시에 금와왕의 존재가 언급되고 있듯이 이규보는 해부루와 금와왕 관련 전승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이해가 『구삼국사』의 관련 기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구삼국사』에는 금와왕 관련 기사가 없지만, 이규보가 고구려본기나 다른 별도의 자료를 보고 알고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모둔곡 3인 관련 전승도 『동명왕편』에는 인용되고 있지 않다. 이 역시 『구삼국사』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규보가 인용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임기환, 2016). 그리고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3인이다”, “일명 개사수(盖斯水)라고 하는데, 지금 압록강 동북에 있다”라는 두 건의 세주는 너무 간략하기 때문에 『구삼국사』의 해당 기사 일부만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개사수 관련 세주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주몽 전승에서도 세주로 기록되어 있기에, 적어도 이 기사는 『구삼국사』의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명왕편』에서 인용된 『구삼국사』 기사는 주몽 전승과 유리왕 전승에 한정되지만, 고구려의 건국 전승 중에서 지금까지 확인되는 것이 고구려본기의 건국 전승, 중국 사서인 『위서』에 전해지는 건국 전승, 지리지 삼국유명미상지분조에서 지명 구성을 통해 확인되는 건국 전승 등이 있는데, 이들 여러 건국 전승과 대교할 수 있는 또 다른 건국 전승이면서 그중에서 내용이 가장 풍부하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
2) 『제왕운기』
이승휴는 『제왕운기』 하권 동국군왕개국년대(東國君王開國年代)를 찬술할 때에 『삼국사기』, 『구삼국사』, ‘단군본기(檀君本紀)’,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 ‘백제고기’를 비롯한 여러 고기류에 전하는 기록을 참조하였다. 그런데 『제왕운기』에 보이는 ‘국사(國史)’는 『삼국사기』를 가르킨다고 보는 견해(조인성, 2007: 홍창우, 2022; 전덕재, 2023), 『구삼국사』로 보는 견해(박인호, 2009), 오랑우(吳良遇) 등이 1286년 11월에 찬술한 ‘국사(國史)’로 보는 견해(노명호, 2020)가 있다. 그리고 동명본기를 인용한 부분도 이승휴가 『구삼국사』를 직접 보았다는 견해(田中俊明, 1982; 서영대, 1994), 『구삼국사』의 동명왕본기를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구삼국사』 동명왕본기의 기록을 인용한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의거하여 찬술하였다는 견해가 있다(전덕재, 2023).
그리고 이승휴는 고구려기(高句麗紀)에서 “고구려 시조 성은 고씨이다【왕이 처음 태어났을 때에 온 나라가 그를 높이 받들었기 때문에 성(姓)을 고(高)라 하였고, 시호를 동명이라고 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이런 내용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및 『삼국유사』 기이 고구려조에 전하는 내용과 다르다. 아마도 고려시대에 주몽이 ‘고’를 성씨로 삼은 이유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전하고 있었는데, 이승휴는 그런 전승자료 중 하나를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전덕재, 2023).
3) 『해동고승전』
『해동고승전』은 고려 후기의 승려 각훈이 우리나라 고승들의 전기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이다. 2권 1책, 필사본으로, 완전한 책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판본에는 삼국시대의 고승에 관한 기록으로 끝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승전(僧傳)’· ‘해동승전(海東僧傳)’· ‘고승전(高僧傳)’ 등의 서명으로 여러 군데 인용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이 고승전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당시 사람을 많이 미혹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구려 불교사와 관련된 인물로는 순도·의연·담시·마라난타·아도 등을 들 수 있으며, 고구려에 왔던 순도와 아도의 국적 등에서 『삼국유사』 기록과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삼국유사』의 고구려 관련 기사를 검토하면서 함께 살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