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산악회의 창립과 국토구명사업의 시작
Founding of the Corean Alpine Club and Beginning of the National-land Research Project

조선산악회 창립총회 | 1945. 9. 15. 한국산악회 소장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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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악회 깃발 | 1945 | 복제 | 한국산악회 소장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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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조선산악회 회칙 | 1947. 6. | 3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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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조선산악회 지부규약 1947. 5. | 24.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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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조선산악회 단체회원 가맹규약 1947. 6. | 12.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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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조선산악회 입회신청서 1948. 8. 이전 | 18.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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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조선산악회 회원명부 | 1948. 5. | 19.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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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조선산악회 회원명부 | 1948. 5. | 19.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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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조선산악회 회원명부 | 1948. 5. | 19.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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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국토구명학술조사의 대상은 제주도였다. 조선산악회가 첫번째 국토구명학술조사의 대상으로 제주도를 선정한 이유는 다음의 취지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그간 가혹한 압제 아래 자기 국토조차 자유롭게 탐사할 기회를 못 가졌다. 따라서 조선과 일본 및 중국의 중간에 놓여있어…
특이한 존재로 학술, 교통, 산업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 역시 일본군국주의의 비밀 정책 아래 진정한 자태를 구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해방된 오늘날 우리는 미개미지(未開味知)의 국토를 과학적으로 탐사하는 제1보적 의의에 있어서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를 연구의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다. ”
특이한 존재로 학술, 교통, 산업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 역시 일본군국주의의 비밀 정책 아래 진정한 자태를 구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해방된 오늘날 우리는 미개미지(未開味知)의 국토를 과학적으로 탐사하는 제1보적 의의에 있어서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를 연구의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다. ”

제1차 제주도 한라산 학술조사대 | 1946 | 김정태 소장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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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제주도 한라산 학술조사대, 미군 LST-109호 | 1946 | 김정태 소장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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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제주도 학술조사대 보고회 통지문 | 1946. 3. 24. | 1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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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국토구명사업이었던 제주도 학술조사의 보고회 일정을 알리는 통지문이다.
제1회 제주도 학술조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조선산악회는 2차 학술조사 대상지로 오대산을 비롯한 태백산맥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1947년에는 3차 소백산맥 학술조사와 4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추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