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산성
薔薇山城
해설
장미산성은 충주시 가금면 장미산 능선을 따라 둘러쌓은 둘레 약 2.9km의 삼국시대 산성이다.
남한강을 따라 남북교통의 요충지를 차단하는 위치여서 전략적으로도 중요시되었지만, 산성의 남쪽 입석리에서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
가 발견되어 고구려와 신라 사이의 국경 근방에 축조된 요새로 주목되었다.
성벽은 할석(割石)을 대강 다듬어 네모난 면을 바깥으로 정연하게 쌓아올렸는데, 성벽의 모습은 서쪽과 서남쪽에 원래의 웅장한 모습이 남아 있다. 높이는 4∼6m이고 아랫돌보다 윗돌을 조금씩 물려쌓아 안정감이 있다. 성벽의 대부분은 산의 비탈면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충주 지역은 원래 백제의 영역에 속해 있다가 5세기 말경 고구려의 영역으로 바뀌었고, 이후 신라가 557년(진흥왕 18)
에 국원 소경으로 삼고, 이듬해 귀족의 자제와 육부의 호민을 이주시키면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장미산성은 백제-고구려-신라로 이어지는 소속국의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성벽은 할석(割石)을 대강 다듬어 네모난 면을 바깥으로 정연하게 쌓아올렸는데, 성벽의 모습은 서쪽과 서남쪽에 원래의 웅장한 모습이 남아 있다. 높이는 4∼6m이고 아랫돌보다 윗돌을 조금씩 물려쌓아 안정감이 있다. 성벽의 대부분은 산의 비탈면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충주 지역은 원래 백제의 영역에 속해 있다가 5세기 말경 고구려의 영역으로 바뀌었고, 이후 신라가 557년(진흥왕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