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서 일하는 신세야
창살 없는 감옥, 비참한 일상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감시와 통제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징용노동자들은 일본어도 모르고, 돈도 없고, 지리도 모르니 도망은 꿈도 못 꾸었다고 말합니다.
식민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동원된 곳은 탄광이었습니다. 기술이나 안전 교육 대신 규율에 복종하도록 군사훈련과 정신교육만 받았습니다. 한국인들은 특별한 기술 없이 고되고 위험한 육체노동이 필요한 곳에 주로 배치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여러 이름의 강제저축으로 떼이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겨우 담배나 살 정도였습니다. 이마저도 일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현금은 거의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장1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지어진 야하타제철소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든 청일전쟁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국으로부터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이 돈을 군사력 확충과 야하타제철소 건설, 철도와 전신·전화사업에 쏟아 부었습니다. 야하타제철소는 일본의 '산업혁명'이 침략전쟁으로 얻은 근대화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야하타제철소 옛 사무소
- 1922년까지 야하타제철소 본 사무소로 사용된 건물
- 1922년까지 야하타제철소 본 사무소로 사용된 건물

온가강 수원지 펌프장
- 1910년 조업을 시작한 야하타제철소 급수시설
- 1910년 조업을 시작한 야하타제철소 급수시설
[증언] 영예로운 사원이 됐다고 정신훈련 했어 -김규수, 15세에 강제동원-
"훈련소라기보다는 감시 초소가 있는 수용소 같았어요. 거기서 그냥 시키는 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뛰라면 뛰고. 야하타제철소의 영예로운 사원이 되었으니 봉사해야 한다는 정신훈련이었어. 그리고 불 끄는 훈련하고 미군이 들어오면 싸움해야 한다고 죽창가지고 훈련하고." (출처: 민족문제연구소/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구술영상)
[증언] 단속반에 걸리면 반 죽어 -주석봉, 19세에 강제동원-
"월급은 무슨, 돈은 구경도 못 했어. 용돈이란 게 어딨어? 밥만 먹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했어. 무조건 밤이고 낮이고 일할 때도 일본 헌병들이 총 들고 감시를 하는데 어디 외출을 할 수가 없지." (출처: 민족문제연구소/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구술영상)
현장2 죄수노동으로 성장한 미이케탄광
죄수와 다름없었던 강제노동
1939∼1945년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의 약 40%가 탄광에 배치되었습니다. 미이케탄광에 강제동원된 한국인은 9,000명이 넘습니다. 노무담당자는 한반도에서 "노무자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잡아온 것"이라고 밝혔고, 한국인들은 죄수, 노예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이케탄광 전용 감옥 슈지칸(集治監) 유적
-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1873년부터 미이케탄광은 석탄운반에 죄수를 강제 노동시켰다. 1883년 탄광 전용 감옥을 설치해 1931년까지 죄수들의 강제노동을 이어갔다.
만다갱 유적

만다갱 유적
-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미이케탄광 미야노하라갱과 전용 철도 유적

미이케탄광 미야노하라갱과 전용 철도 유적
-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1898년 미쓰이가 최초로 개발한 갱구이고, 슈지칸(전용감옥)에 수용된 죄수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05년 부설된 전용 철도 유적은 미야노하라갱에서 만다갱, 미이케항 근처까지 남아 있다.
[증언] 홀랑 벗고서 훈도시만 차고 일해 -류기동, 26세에 강제동원-
"기숙사비, 식사비 같은 것은 월급에서 내지만, 대개 옷은 그냥 줘. 옷이라야 훈도시(일본식 남성 속옷) 하나여. 홀랑 벗고서 훈도시만 차면 가 일하는데 뭐. 거기서 일거리 잘못 만나면 힘들어. 변소 볼만큼 밥이나 먹나, 거기 가서 변소(대변) 안 나와. 여덟 시간을 못 참겠어?"
[증언] 가스가 많아서 폭발하면 다 죽어! -손중구, 20세에 강제동원-
"탄광 속으로 들어가면 가스가 많이 발생돼. 그래서 가스 조사하는 사람이 다녀. 통에 불이 켜져 있는데 가스가 많으면 불이 더 커져. 그래서 가스가 찼는지 알지. 그래도 이따금 탄광 안에서 가스가 폭발해서 거기 있던 사람이 싹 죽어버려."
현장3 전쟁이 있는 곳에 미쓰비시가 있다, 나가사키조선소
전쟁과 함께 성장한 '군수재벌'
작은 상회에서 출발한 미쓰비시는 일제의 타이완 침략(1874) 당시 인력과 군수물자 수송으로 큰 수익을 올려 성장했습니다. 1887년 미쓰비시는 나가사키조선소를 불하받았고,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 제3도크를 만들 정도로 급성장하였습니다. 미쓰비시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통해 해운·석탄·조선업으로 수익을 올리면서 '재벌'로 성장한 것입니다.
[증언] 참, 한국 사람들을 멸시해 -김성수, 18세에 강제동원-
"기숙사 사감이 일본 사람인데 악질이라. 충청도 국민학교 교장을 했더라고. 한국 사람을 인간적으로 보질 않아요. 아주 멸시합니다. 기바치료(木鉢寮)라는 기숙사에서 우리가 있는 1동만 점호를 하지 일본인들이 있는 데는 점호가 없어요. 매일 저녁 심리적으로 괴로움을 주는 거야." (출처: 국가기록원 구술영상)
[증언] 사감이 매일 소지품을 싹 뒤져 -배한섭, 18세에 강제동원-
"기숙사에는 도망 못 가게 울타리가 다 있었어요. 날마다 왜놈들이 와서 우리가 출근하고 나면 소지품을 싹 뒤져요. 그때 태극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어. 그 뒤로 그 사람은 체포되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요." (출처: 국가기록원 구술영상)
현장4 폭압의 상징 다카시마탄광
현장5 지옥섬 하시마탄광
저임금 노동력 찾아 죄수 노동에서 식민지 노동자로
1868년 사가번(佐賀藩)과 글로버상회는 다카시마에 서양식 채탄기술을 도입해 해저탄광을 개발했습니다. 1881년에 미쓰비시가 국영 다카시마탄광을, 1890년 하시마를 사들였습니다. 죄수노동으로 채굴을 하던 미쓰비시 다카시마탄광은 노동자가 부족하자 일본에서 모집하다 1917년 한반도에서도 한국인 약 150명을 데려갔습니다. 1939년부터 다카시마·하시마탄광에는 4,000명 정도의 한국인이 강제동원 되었습니다. 탈출은 어려웠고 끌려간 이들에게 그곳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지옥섬'이자 공포의 노동 현장이었습니다.

군함처럼 보인다고 ‘군함도’로 불린 하시마 (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나카노시마, 무인도에 설치한 화장장

다카시마탄광 홋케이정갱(北溪井坑) (2018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 일본 최초 증기기관에 의한 수직갱의 입구. 다카시마에서 지정된 유산시설은 이것뿐이다.
- 일본 최초 증기기관에 의한 수직갱의 입구. 다카시마에서 지정된 유산시설은 이것뿐이다.

하시마 해안 방파제(2017 민족문제연구소 촬영)
- 하시마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해안 방파제 외에 고층 아파트 등 대부분의 건물시설은 1910년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 하시마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해안 방파제 외에 고층 아파트 등 대부분의 건물시설은 1910년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증언] 섬이니까 도망갈 생각을 못했죠 -손용암, 16세에 강제동원
"사할린에 일단 가면 도망갈 생각은 꿈도 못 꿔요. 만약 도망가다 걸리면 죽으니까. 순종할 생각을 하지. 다카시마에서도 도망갈 생각을 못 했어요. 거기는 섬에다가 일본 애들이 쫙 깔려서. 허가 없이 배가 나가면 큰일 나니까. 그런데도 도망가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냥 헤엄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못 들었어요." (출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구술영상)
[증언] 왜 이런 지옥에 오게 됐나 -서정우, 15세 강제동원-
"보통 다른 탄광은 산에 있는데 하시마는 해저탄광입니다. 바다 밑으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갑니다. 우리가 석탄을 캐는 공간은 좁았고 제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갱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석탄을 캐는데 그 안의 온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정말 덥고 가스도 나오고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목이 너무 말랐어요. 몸은 아프고 배 속은 비었고,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지옥에 오게 됐나 싶었어요." (출처: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구술영상-문의중)
[통계] 야하타제철소 한국인 도망률 45%

야하타제철소 한국인 도망률
- 출처: 박경식 편,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 5, 1976
- 출처: 박경식 편,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 5, 1976
[통계] 탄광노동자의 도망률

탄광노동자의 도망률
- 출처: 나가사와 시게루長澤秀 편·해설, 『전시하조선인중국인연합군포로강제연행자료집』Ⅰ, 1992
- 출처: 나가사와 시게루長澤秀 편·해설, 『전시하조선인중국인연합군포로강제연행자료집』Ⅰ, 1992
[통계] 일본 경찰이 조사한 한국인 탈출 이유

일본 경찰이 조사한 한국인 탈출 이유
- 출처: 내무성 경보국, 『사회운동의 상황社會運動の狀況』, 1941
- 출처: 내무성 경보국, 『사회운동의 상황社會運動の狀況』,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