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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목소리들

나가사키조선소

연합군 포로 | 후쿠오카 제14분소 수용소

1943.4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개설

약 500명이 연행되었던 수용소는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왕복 2시간 거리에 위치했습니다. 10~12시간 중노동에 해군과 관리자의 폭력행위가 빈번했습니다. 1943년~44년에 폐렴이 만연했지만 제대로 된 의료 조치가 없어 90명이 사망했고, 패전까지 113명이 사망했습니다.
원폭이 투하된 폭심지로부터 1.7km 거리에 위치한 수용소
- 출처: POW연구회 사사모토 다에코 작성 지도 참조
 
[증언]연합군 포로 오토 판 덴 베리히 | 1942년 포로가 되어 나가사키조선소에 연행
18살에 네덜란드군에 징병되었다가 1942년 3월에 일본군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중노동과 영양실조로 인해 반년 만에 폐렴으로 쓰러졌습니다. 1945년 8월 9일 원자 폭탄이 폭발한 중심으로부터 1.7㎞ 떨어진 곳에서 피폭 당해 왼쪽 몸 전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출처: 「전 네덜란드인 포로들, 재외 피폭자 지원 충실히 해야」, 『쥬고쿠신문(中國新聞)』 2009.2.2.
 
[증언]연합군 포로 레네세퍼 | 1942년 포로가 되어 1943년 나가사키조선소에서 강제노동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 레네세퍼는 1923년생으로 자바섬 출신입니다. 1942년 반둥(Bandung)에서 포로가 되어 씨마히(Cimahi), 바타비아(Batavia) 수용소를 거쳐 싱가포르에서 하와이마루를 타고 일본에 끌려갔습니다. 1943년 4월 모지(門司)에 도착해 나가사키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매일 아침 5시 30분줄을 서서미쓰비시조선소-로 걸어가 강제노동을 한 후, 저녁 6시에 완전히 지친 상태로 수용소로 돌아왔습니다. 폐렴으로 사망자가 속출했고 거푸집 낙하로 인한 두개골 골절 사고나 발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위병(衛兵)에게 경례하는 것을 잊으면 대열에서 끌려 나와 얼굴이 퉁퉁 부을 때까지 몇 번이고 맞아야 했습니다. 반장 중에는 다른 반장이나 직공의 폭력에서 지켜주고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원폭 투하 때는 방공호로 대피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원자폭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방을 쓰던 베어는 원자폭탄의 섬광으로 몸에 화상을 입고 결국 귀 안에도 구더기가 끓어 괴로워하다 죽었습니다. 세퍼는 평화가 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 사랑과 원폭금지가 평화를 얻어내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출처: 『네덜란드병사 원폭체험기(オランダ兵士原爆被爆記)』, 草土文化,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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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조선소 자료번호 : isfv.d_0002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