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상재(馬上才)가 쓰시마 도착과 이동 경로
一. 간에이(寬永) 12년(1635) 을해(乙亥) 정월
一. 2월 5일, 조선의 마상재주 100
각주 100)

곡예사(馬藝之者)가 쓰시마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쓰시마에서 왔기에, 이즈노카미님·분고노카미님께 서한으로 이를 말씀드렸다.조선시대에 말을 타고 그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등의 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보통 마상재(馬上才)라고 한다. 쓰시마의 기록에 의하면, 1634년 9월 쇼군 이에미쓰가 닛코(日光)에서 돌아온 이튿날(21일) ‘조선의 승마술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 발단이 되어 쓰시마가 조선에 사절을 급파, 마상재 초청 의사를 전했다. 쓰시마가 마상재 파견을 요청한 1634년 당시 잇켄은 이미 본격화되어 막부가 심리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조선은 마상재 파견을 수락하였고, 이 사행은 1635년 정월에 조선을 출발, 3월 말 에도에 도착하여 쇼군과 다이묘들에게 마술(馬術)을 선보인 후 7월 조선에 귀국했다. 이 사행은 조선의 역관(홍희남과 최의길)이 통신사의 동행 없이 마상재만을 동반하고 에도까지 다녀온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 뒤로 통신사는 1643년 사행부터 1764년 사행까지 6번 마상재인들을 동행하여 에도에서 마상재 공연을 했다. (宗家記錄, 『譯官洪同知崔判事幷馬藝張司果金司果上下合二十一人江戶參上之日々記拔書』)
一. 동 6일, 보초로와 그 밖의 사람들이 정월 28일에 도착했다고 파발(飛脚)주 100로 오사카에서 알려 왔다.
一. 동 12일, 보초로·스기무라 우네메·야나가와 가게유(柳川勘解由)와 그 외의 사람들이 에 도에 도착했다. 고쿠초(斛町) 인근에 머물렀다.
一. 동 15일, 보초로와 그 외의 사람들이 모두 숙소를 바꾸어 절로 옮겼다.
一. 동 19일, 이즈노카미님이 “사누키노카미님 댁으로 후루카와 우마노스케를 보내라”고 하셨다. 우마노스케를 보냈더니 마상재 일행이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오는] 도중(道中)에 필요한 덴마(傳馬)주 100 및 숙소에 관한 증인을 건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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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00)
조선시대에 말을 타고 그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등의 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보통 마상재(馬上才)라고 한다. 쓰시마의 기록에 의하면, 1634년 9월 쇼군 이에미쓰가 닛코(日光)에서 돌아온 이튿날(21일) ‘조선의 승마술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 발단이 되어 쓰시마가 조선에 사절을 급파, 마상재 초청 의사를 전했다. 쓰시마가 마상재 파견을 요청한 1634년 당시 잇켄은 이미 본격화되어 막부가 심리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조선은 마상재 파견을 수락하였고, 이 사행은 1635년 정월에 조선을 출발, 3월 말 에도에 도착하여 쇼군과 다이묘들에게 마술(馬術)을 선보인 후 7월 조선에 귀국했다. 이 사행은 조선의 역관(홍희남과 최의길)이 통신사의 동행 없이 마상재만을 동반하고 에도까지 다녀온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 뒤로 통신사는 1643년 사행부터 1764년 사행까지 6번 마상재인들을 동행하여 에도에서 마상재 공연을 했다. (宗家記錄, 『譯官洪同知崔判事幷馬藝張司果金司果上下合二十一人江戶參上之日々記拔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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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