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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통신사와 관련하여 조선에 보낼 서한의 일문(日文)과 진문(眞文) 작성 문제에 관한 논의

一. 동 15일, 작별 인사를 드리러 이즈노카미님에게 가셨으나, 등성하신 터라 돌아오셨다.
一. 동 16일, 지난밤 사누키노카미님에게 후루카와 우마노스케를 보내셨는데, 내일 사시(巳刻)에 등성하라고 우마노스케에게 분부하셔서, 등성하셨다. 가몬노카미님·오이노카미님·이즈노카미님이 나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들은 통신사와 관련해서 조선에 보낼 서한의 일문을 이렇게 쓰는 것이 좋다고 논의되었다”고 하시며 건네셨다. 도슌님·에이키님이 읽으셨다.
그 일문에
이번에 삼가 아룁니다. 일본은 요즈음 평안하고 태평합니다. 귀국(貴國)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왕년에는 축하하기를 겸손하게 사양하여 통신사가 내조하기 어려웠습니다. 전 대군(大君)이 돌아가신 후로 수년 동안 더욱 태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통신사를 파견하여 인사함이 좋을 시기이니 반드시 통신사를 도해시키는 것이 지당합니다. 그것을 위해 비선을 보냅니다.
〃 오이노카미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안문을 조선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조선인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가 알고 있을 테니 의견이 있으면 말하시오”라고 하여, 고운인님이 “제가 쓰시마에 있어서 다소 조선에 관해 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통신사의 도해가 성사되고 안 되고를 말씀드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안문의 취지는 별문제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아뢰자, 오이노카미님이 “그대도 당장 생각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가지고 돌아가서 잘 숙고하시오” 라고 하셨다. 고운인님이 로주님들이 검토하셨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고 아뢰었을 때, 가몬노카미님이 “쓰시마노카미가 말하는 것처럼 이 초안은 로주들이 검토했기 때문에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서면 중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를 잘 이야기하여 마음에 들게 결정되면 건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고운인님이 말씀드리기를 “일문은 로주님들이 검토하셨으므로 별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 관련 상황은 듣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쇼군의 칭호를 서한에는 ‘대군(大君)’이라고 칭했지만 구상(口上)으로는 어떻게 칭해야 할까요?”라고 하자, 가몬노카미님이 “그런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없다. 도슌·에이키 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王)’이라고는 칭하기 어렵고, ‘장군(將軍)’이란 중국에서는 중하(中下)급 관리이다. 공공연히 왕이 아니지만 그에 해당되고 지위도 낮지 않은, 좋은 호칭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도슌님이 “니혼우에사마(日本上樣)라 부르는 것은 어떨지요”라고 하여 로주님들 모두 “적절하다”고 하셨다. 고운인님이 “이 서한 및 이전의 서간 두 통을 함께 이번에 교토에서 한문(眞文) 작성하는 승려에게 쓰게 해서 파발로 보내 로주님들이 일람하시게 하면 일이 지체될 것입니다. [교토쇼시다이] 이타쿠라 스오노카미와 논의해서 역참파발주 860
각주 860)
쓰기비캬쿠(次飛脚, 繼飛脚)는 에도 막부가 각 역참에 배치한 파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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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여쭈니, 로주님 중에서 “이번에 서한이 지체된다 하더라도 그다지 상관없으니 그 서한이 완성되면 제출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
 가몬노카미님이 “2통의 초안을 한꺼번에 제출하려는 게 쓰시마노카미의 생각인 듯하다. 서한을 작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니 완성되었을 때 역참파발로 제출하시오”라고 하시어, 고운인님이 “또한 통신사가 성사되고 되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가능한 한 힘쓸 것입니다. 만일 별다른 일이 발생하면 그 경위를 신속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물러났다.
〃 같은 날, 교부쿄(刑部卿) 에이키님께 에도성에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나오셨다. 교토에서 파발이 도착하여 서역승을 세 명 중 린세이도(璘西堂)주 860
각주 860)
교쿠호 고린(玉峰光璘). 에도시대 전기의 임제종 승려. 교토 도후쿠지(東福寺) 호쇼인(寶勝院) 승려로 1635년 최초로 조선수문직(朝鮮修文職)에 임명되어 교대로 이테이안에 파견되었으며,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조선의 국서에서 도쿠가와 쇼군의 호칭을 ‘대군(大君)’이란 호칭을 제안했다. 1636년 통신사 때에 소 요시나리·조선수문직 도인 겐쇼(棠蔭玄召) 등과 함께 조선사신을 호행 접대하며 외교문서를 담당했다. (『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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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맡는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고 해서 문서를 읽어 보셨다.
서역 출가승에 관한 문서
덴류지(天龍寺)에서
지사이인(慈濟院)  센초로(仙長老)주 860
각주 860)
도샤쿠 주센(洞叔壽仙). 에도시대 전기의 임제종 승려. 주센(壽仙)은 법명. 교토에 있는 덴류지(天龍寺) 지사이인(慈濟院) 승려로 사누키(讚岐) 다카마쓰번(高松藩) 초대 번주인 마쓰다이라 요리시게(松平賴重)를 가르쳤다. 1635년 최초로 조선수문직에 임명되어 교대로 이테이안에 파견되었으며,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문서를 관리했다. (『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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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후쿠지(東福寺)에서
난쇼인(南昌院)   쇼초로(召長老)주 860
각주 860)
도인 겐쇼. 에도시대 전기의 임제종 승려. 성은 겐(玄), 자는 도인(棠陰), 통칭은 고인(江陰). 오미(近江) 출신. 교토에 있는 도후쿠지 난쇼인(南昌院) 승려로 1635년 최초로 조선수문직에 임명되어 교대로 이테이안에 파견되었으며,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시문에도 능했으며 1636년 통신사 때에 조선사신을 호행 접대했다. (『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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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쇼인(寶勝院)   린세이도(璘西堂)

  • 각주 860)
    쓰기비캬쿠(次飛脚, 繼飛脚)는 에도 막부가 각 역참에 배치한 파발꾼. 바로가기
  • 각주 860)
    교쿠호 고린(玉峰光璘). 에도시대 전기의 임제종 승려. 교토 도후쿠지(東福寺) 호쇼인(寶勝院) 승려로 1635년 최초로 조선수문직(朝鮮修文職)에 임명되어 교대로 이테이안에 파견되었으며,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조선의 국서에서 도쿠가와 쇼군의 호칭을 ‘대군(大君)’이란 호칭을 제안했다. 1636년 통신사 때에 소 요시나리·조선수문직 도인 겐쇼(棠蔭玄召) 등과 함께 조선사신을 호행 접대하며 외교문서를 담당했다. (『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860)
    도샤쿠 주센(洞叔壽仙). 에도시대 전기의 임제종 승려. 주센(壽仙)은 법명. 교토에 있는 덴류지(天龍寺) 지사이인(慈濟院) 승려로 사누키(讚岐) 다카마쓰번(高松藩) 초대 번주인 마쓰다이라 요리시게(松平賴重)를 가르쳤다. 1635년 최초로 조선수문직에 임명되어 교대로 이테이안에 파견되었으며,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문서를 관리했다. (『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860)
    도인 겐쇼. 에도시대 전기의 임제종 승려. 성은 겐(玄), 자는 도인(棠陰), 통칭은 고인(江陰). 오미(近江) 출신. 교토에 있는 도후쿠지 난쇼인(南昌院) 승려로 1635년 최초로 조선수문직에 임명되어 교대로 이테이안에 파견되었으며,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시문에도 능했으며 1636년 통신사 때에 조선사신을 호행 접대했다. (『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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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와 관련하여 조선에 보낼 서한의 일문(日文)과 진문(眞文) 작성 문제에 관한 논의 자료번호 : kn.k_0007_0020_0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