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일행의 인원수에 대한 조선국의 문서 사본
一. 통신사 일행의 인원수에 관해 조선국에서 도착한 문서의 사본을 다음에 적는다.
정사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선 임광(任絖)
부사 통훈대부 홍문관응교 지제 겸 경연시강관 춘추관편수관 세자시강원보덕 김세렴(金世濂)
종사 통훈대부 행 사헌부집의 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 황호(黃㦿)
상상관주 010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홍희남(洪喜男)
절충대부 첨지중추부사 강위빈(姜渭賓)
상관주 010
중직대부 사역원 첨정 강우성(康遇聖)
봉정대부 사역원 첨정 이장생(李長生)
중직대부 사역원 첨정 윤대선(尹大銑)
중직대부 전 회령판관 박홍주(朴弘疇)
전 진천현감 이유형(李惟浻)
전 소근첨사 김자문(金子文)
조산대부 통례원 인의 경대유(景大裕)
장문준(張文俊)
훈련원 습독 조임명(趙任命)
충좌위 부장 정한기(鄭漢𩦸)
전 조산만호 이완(李浣)
충의위 부사과 임환(任紈)
봉전대부 전 황주판관 김광립(金光立)
행 옥포만호 백사철(白士哲)
전 청수만호 최성급(崔成及)
충무위 부사과 이준망(李俊望)
권경(權瓊)
윤애신(尹愛信)
윤애(尹涯)
김계헌(金繼獻)
학사주 010
각주 010)

제술관을 일본에서 부르던 명칭. 통신사행 때 전례문(典禮文) 등을 지어 바치는 임시 벼슬. 문장이 뛰어난 사람 중에서 선발했고, 정사가 타고 가는 제일선에 배속되었다. 제술관이라는 명칭은 1682년 통신사행 때부터 나타났다. 그 이전에는 학관(學官)·이문학관(吏文學官)·독축관(讀祝官)의 명칭으로 사행에 참여했다. 학관에서 독축관으로의 명칭 변화는 통신사행의 닛코산치제(日光山致祭) 참여로 인하여 축문을 읽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닛코산치제 폐지 이후에는 필담창화(筆談唱和)와 같은 문화 교류의 전담자로서 제술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대일외교사전』)
중직대부 시학 교관 권칙(權侙)
당통사(唐通事)주 010
봉정대부 사역원 교수 피득침(皮得忱)
판사(判事)주 010
사역원 판관 한상국(韓相國)
강이습독 문홍적(文弘績)
설의립(薛義立)
임허롱(林許弄)
안기손(安起孫)
김군상(金群祥)
시자(侍者)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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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0)
제술관을 일본에서 부르던 명칭. 통신사행 때 전례문(典禮文) 등을 지어 바치는 임시 벼슬. 문장이 뛰어난 사람 중에서 선발했고, 정사가 타고 가는 제일선에 배속되었다. 제술관이라는 명칭은 1682년 통신사행 때부터 나타났다. 그 이전에는 학관(學官)·이문학관(吏文學官)·독축관(讀祝官)의 명칭으로 사행에 참여했다. 학관에서 독축관으로의 명칭 변화는 통신사행의 닛코산치제(日光山致祭) 참여로 인하여 축문을 읽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닛코산치제 폐지 이후에는 필담창화(筆談唱和)와 같은 문화 교류의 전담자로서 제술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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