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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일행의 인원수에 대한 조선국의 문서 사본

조선신사기록권지오 신사내빙(信使來聘), 등성(登城), 닛코 참배주 010
각주 010)
이 책에서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은 ‘『대일외교사전』’으로 약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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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통신사 일행의 인원수에 관해 조선국에서 도착한 문서의 사본을 다음에 적는다.
정사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선 임광(任絖)
부사 통훈대부 홍문관응교 지제 겸 경연시강관 춘추관편수관 세자시강원보덕 김세렴(金世濂)
종사 통훈대부 행 사헌부집의 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 황호(黃㦿)
상상관주 010
각주 010)
일본 측은 통신사의 등급을 삼사·상상관·상관·차관·중관·하관으로 구분했다. 삼사는 정사·부사·종사관, 상상관은 통신사를 수행한 조선의 역관 중 최고위 당상관(堂上官). 통신사행에서 수역(首譯)을 가리키는 일본 측 호칭.(『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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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홍희남(洪喜男)
절충대부 첨지중추부사 강위빈(姜渭賓)
상관주 010
각주 010)
통신사행에서 상통사(上通事), 제술관(製述官), 양의(良醫), 차상통사(次上通事), 압물관(押物官), 사자관(寫字官), 의원(醫員), 화원(畵員), 자제군관(子弟軍官), 군관(軍官), 서기(書記), 별파진(別破陣) 등을 묶어 부르는 일본 측 호칭.(『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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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직대부 사역원 첨정 강우성(康遇聖)
봉정대부 사역원 첨정 이장생(李長生)
중직대부 사역원 첨정 윤대선(尹大銑)
중직대부 전 회령판관 박홍주(朴弘疇)
전 진천현감 이유형(李惟浻)
전 소근첨사 김자문(金子文)
조산대부 통례원 인의 경대유(景大裕)
장문준(張文俊)
훈련원 습독 조임명(趙任命)
충좌위 부장 정한기(鄭漢𩦸)
전 조산만호 이완(李浣)
충의위 부사과 임환(任紈)
봉전대부 전 황주판관 김광립(金光立)
행 옥포만호 백사철(白士哲)
전 청수만호 최성급(崔成及)
충무위 부사과 이준망(李俊望)
권경(權瓊)
윤애신(尹愛信)
윤애(尹涯)
김계헌(金繼獻)
학사주 010
각주 010)
제술관을 일본에서 부르던 명칭. 통신사행 때 전례문(典禮文) 등을 지어 바치는 임시 벼슬. 문장이 뛰어난 사람 중에서 선발했고, 정사가 타고 가는 제일선에 배속되었다. 제술관이라는 명칭은 1682년 통신사행 때부터 나타났다. 그 이전에는 학관(學官)·이문학관(吏文學官)·독축관(讀祝官)의 명칭으로 사행에 참여했다. 학관에서 독축관으로의 명칭 변화는 통신사행의 닛코산치제(日光山致祭) 참여로 인하여 축문을 읽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닛코산치제 폐지 이후에는 필담창화(筆談唱和)와 같은 문화 교류의 전담자로서 제술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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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직대부 시학 교관 권칙(權侙)
당통사(唐通事)주 010
각주 010)
조선시대 중국이나 일본과의 사행(使行) 때 세폐(歲幣)를 비롯한 각종 방물(方物)과 예물 등을 기록·운송·관리·수납하는 일과 통역을 담당했던 관리를 압물통사(押物通詞)·압물관·압물통관(押物通官)·압물판사(押物判事)라고 했는데, 이들은 모두 사역원(司譯院)의 역관들로 임명했다. 통신사행의 압물통사는 초기에 왜학역관(倭學譯官) 2인, 한학역관(漢學譯官) 1인으로 구성되다가 1682년부터 왜학역관 1인이 추가되었다. 당통사란 통신사와 동행한 한학역관으로 추정된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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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대부 사역원 교수 피득침(皮得忱)
판사(判事)주 010
각주 010)
조선의 왜학역관에는 훈도(訓導)와 별차(別差)가 있었다. 훈도는 30개월, 별차는 1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다. 훈도는 ‘판사(判事)’라고도 하며, 쓰시마는 훈도와 별차를 합하여 ‘양역(兩譯)’이라 불렀다. 훈도와 별차는 평상시 왜관에 출입하면서 외교와 무역 업무를 통할하고, 일상적인 통교활동을 하는 데 있어 조선 정부의 정책과 쓰시마 측의 의사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문위행에 참가하는 도해역관(渡海譯官)과 양역은 별개였다.(『增正交隣志』 卷3, 任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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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원 판관 한상국(韓相國)
물서(物書)주 010
각주 010)
서기 혹은 사자관(寫字官)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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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습독 문홍적(文弘績)
설의립(薛義立)
임허롱(林許弄)
안기손(安起孫)
김군상(金群祥)
시자(侍者) 5명
중관주 010
각주 010)
통신사행단의 중관에는 승마술에 능한 마상재, 전악(典樂), 선장 등이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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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명
하관주 010
각주 010)
통신사행에서 풍악수(風樂手), 도우장(屠牛匠), 격군(格軍) 등을 일본 측에서 구분하여 부르는 호칭.(『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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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명

  • 각주 010)
    이 책에서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은 ‘『대일외교사전』’으로 약칭함. 바로가기
  • 각주 010)
    일본 측은 통신사의 등급을 삼사·상상관·상관·차관·중관·하관으로 구분했다. 삼사는 정사·부사·종사관, 상상관은 통신사를 수행한 조선의 역관 중 최고위 당상관(堂上官). 통신사행에서 수역(首譯)을 가리키는 일본 측 호칭.(『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010)
    통신사행에서 상통사(上通事), 제술관(製述官), 양의(良醫), 차상통사(次上通事), 압물관(押物官), 사자관(寫字官), 의원(醫員), 화원(畵員), 자제군관(子弟軍官), 군관(軍官), 서기(書記), 별파진(別破陣) 등을 묶어 부르는 일본 측 호칭.(『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010)
    제술관을 일본에서 부르던 명칭. 통신사행 때 전례문(典禮文) 등을 지어 바치는 임시 벼슬. 문장이 뛰어난 사람 중에서 선발했고, 정사가 타고 가는 제일선에 배속되었다. 제술관이라는 명칭은 1682년 통신사행 때부터 나타났다. 그 이전에는 학관(學官)·이문학관(吏文學官)·독축관(讀祝官)의 명칭으로 사행에 참여했다. 학관에서 독축관으로의 명칭 변화는 통신사행의 닛코산치제(日光山致祭) 참여로 인하여 축문을 읽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닛코산치제 폐지 이후에는 필담창화(筆談唱和)와 같은 문화 교류의 전담자로서 제술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010)
    조선시대 중국이나 일본과의 사행(使行) 때 세폐(歲幣)를 비롯한 각종 방물(方物)과 예물 등을 기록·운송·관리·수납하는 일과 통역을 담당했던 관리를 압물통사(押物通詞)·압물관·압물통관(押物通官)·압물판사(押物判事)라고 했는데, 이들은 모두 사역원(司譯院)의 역관들로 임명했다. 통신사행의 압물통사는 초기에 왜학역관(倭學譯官) 2인, 한학역관(漢學譯官) 1인으로 구성되다가 1682년부터 왜학역관 1인이 추가되었다. 당통사란 통신사와 동행한 한학역관으로 추정된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010)
    조선의 왜학역관에는 훈도(訓導)와 별차(別差)가 있었다. 훈도는 30개월, 별차는 1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다. 훈도는 ‘판사(判事)’라고도 하며, 쓰시마는 훈도와 별차를 합하여 ‘양역(兩譯)’이라 불렀다. 훈도와 별차는 평상시 왜관에 출입하면서 외교와 무역 업무를 통할하고, 일상적인 통교활동을 하는 데 있어 조선 정부의 정책과 쓰시마 측의 의사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문위행에 참가하는 도해역관(渡海譯官)과 양역은 별개였다.(『增正交隣志』 卷3, 任官) 바로가기
  • 각주 010)
    서기 혹은 사자관(寫字官)을 의미. 바로가기
  • 각주 010)
    통신사행단의 중관에는 승마술에 능한 마상재, 전악(典樂), 선장 등이 속한다. 바로가기
  • 각주 010)
    통신사행에서 풍악수(風樂手), 도우장(屠牛匠), 격군(格軍) 등을 일본 측에서 구분하여 부르는 호칭.(『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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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일행의 인원수에 대한 조선국의 문서 사본 자료번호 : kn.k_0007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