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를 출발하여 히라카타(枚方)에 도착하여 조선의 기일(忌日)이라고 향응에 대한 양해를 구함
一. 동 14일, 진각(辰刻)에 오사카를 출발해서 히라카타에 도착했다.
〃 삼사, 상상관 2명, 두 초로 모두 하천용 배를 탔다. 행렬은 맨 앞에는 이쪽[번주님]이 타신 배, 다음에 깃발과 취악기 담당을 태운 배, 다음에 정사·부사·종사, 그다음이 상상관 등의 배, 그 뒤에 두 초로가 탄 배가 따랐다. 신각(申刻)에 히라카타에 도착했다.
〃 오늘은 삼사의 제사날인데 접대소에서 [향응] 준비에 특히 정성을 들였다고 해서 그런지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데 히라카타에 이르러 도시요리들에게 살짝 말하길, “향응을 받으러 가서 제사날이라고 말하면 무례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의 제사날도 아니고 조선의 기일(忌日)이라서 어쩔 수 없이 여러분께 말씀드리니 잘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하기에, 접대 담당 히코사카 헤이쿠로님·히라노 후지쓰구(平野藤次)님께 전했더니 바로 정진(精進) 요리주 370를 내주셨다. 삼사가 향응을 받고 깊은 감사 인사를 드렸다.
〃 위 상차림은 시치고산이었다. 단, 정사는 뱃멀미를 했다며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 같은 날, 해각(亥刻)에 히라카타를 출발해서 축각(丑刻)에 요도(淀)에 도착했다.
〃 오늘 밤은 밤이 깊어서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 이곳의 접대 담당은 성주 나가이 시나노노카미(永井信濃守)주 370님과 히라노 후지쓰구님이었다. 시나노노카미님은 히라카타까지 나오셔서 접대에 관해 지시한 뒤 먼저 돌아가셨다.
〃 오늘 오사카에서 이곳까지 중간에 있는 여울들에 인부를 배치하여 모래를 파내게 해서 강의 수심을 깊게 만들었기 때문에 모든 배가 지체되지 않았고, 게다가 이날 경치가 특히 다른 날보다 뛰어나 삼사가 대단히 칭찬했다.
